162화
방에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지루한 표정으로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가 앉은 의자 근처에는 낡은 총기가 놓여 있었기.
명기 중의 명기인 ak47이다.
과거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에 노획된 물품을 이제 그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미군이 흘리고 간 물건도 아프간엔 많았지만, 돌격소총만큼은 ak47이 훨씬 뛰어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도그럴게 내구성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다.
무기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신뢰성!
그런 면에서 ak47을 능가하는 무기는 인류사상 존재한 적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니 애용할 수밖에.
그는 하쉬안이라는 남자로, 탈레반의 주요 간부 중 한 명이다. 자신의 파벌을 이끌고 있기도 하고, 또 카불 넓은 아프간에서 보급 문제를 여러모로 담당하는 중책에 있었다.
게릴라의 보급은 물론 현지조달이 기본이지만 그걸 고려해도 탈레반이란 조직으로선 역시 큰 돈이 필요했다. 그는 바로 그걸 위한 돈과 물자를 마련하는게 일이었다.
그가 빈둥거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터번을 두른 여러 남자들이 들어왔다. 그들을 보고 하쉬안은 반갑게 물었다.
“수확은 다 했나?”
“수매는 거의 다 끝났습니다.”
지금 들어온 남자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얼른 아편을 만들어.”
“헤헤, 물론이죠. ”
하쉬안이 지시했고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하쉬안의 부하들로 요즘 수호하기 시작한 양귀비를 사들이고 있었다. 양귀비는 아프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식물이다.
양귀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마약의 원료라 해서 민간에서 재배될 수 없는 이 식물은 아프간에서는 버젓이 민간에서 재배되었고, 이것을 탈레반이 사들여 아편으로 정제해 팔았다. 그러니 탈레반의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마약인 셈이다.
“요즘 브라질쪽 마약이 단속 때문에 미국에 많이 줄었다고 하니 그 빈 공백을 저희가 잡아먹을 수 있을 겁니다.”
“거긴 아편 가지고 안 통 할 텐데.”
부하가 하는 말에 하쉬안이 고개를 흔들었다.
창녀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면 마약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약이다.
그런 방대한 약인데다가 화학이 발달하면서 여러 가지 마약이 나타나게 되어 지금 아편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는 중독자가 많았다.
“그래도 궁하면 통하기 마련이죠.”
“하긴.”
하쉬안도 그렇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약 단속이 심해져 공급이 달리면 아편이라 해도 결국 찾기 마련이다.
“전에 미국 놈들이 양귀비 수매하던게 생각나는군요.”
“우리 자금줄 끊는다고 그 짓을 했지.”
“그땐 정말 아찔했습니다.”
부하가 찌푸려진 얼굴로 푸념했다.
당시를 생각하면 끔찍한 것은 하쉬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때는 나도 아찔했다. 나뿐만이 아니고, 우리 조직 전부가 어쩌면 좋나 하고 걱정했을 정도였지. 그렇지만 결국 물러났지.”
부하 하나가 킬킬 웃었다.
“정부기관에서 마약을 사들이는게 말도 안 된다는 이유였다고 하죠?”
“그렇다는군. 멍청한 새끼들.”
“그러게 나요.”
그들은 피식피식 웃으며 미국을 욕했다.
미군에서 탈레반의 아편사업을 박멸하기 위해 양귀비 수확 철이면 모조리 사들여서 불태웠던 것이 불과 얼마전이다. 하지만 결국 실패한 것은 미국내 여론이 안 좋아서였다.
아편 만들어 피우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따지냐 싶기도 한데,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마약 사업을 미국이 도와준다는 인상을 주는 건 절대로 안 된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게 안 되니까 작물을 바꿔 심도록 한다고 설치기도 했는데...”
“바보 같은 소리지. 양귀비가 여기서 얼마나 중요한 품목인데 그런 같잖은 수작이 통할 수 있을까봐서.”
하쉬안은 비웃었다.
아프간에서 양귀비를 민간에서 많이 재배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환금성이 높은 작물로 미군이 기르라 한 작물에 비해 훨씬 큰돈을 벌 수 있는게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일단 아프간은 선진국이 아니다.
선진국이 아닌 것은 위생도 안 좋고, 치안도 안 좋고, 병원도 거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쉽게 아픈데 치료받을 수 없는 환경이란 것이다.
그런 대에 가장 중요한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것이 양귀비가. 진통 효과가 있는 것도 그렇고 다양한 민간요법에서 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된다. 그러니 아프간에서 양귀비는 필수품에 가깝다. 거기다 배고프면 그걸 가지고 빵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양귀비는 버릴 것이 없는 식물!
미군이 어지간히 노력해서는 양귀비 재배를 뿌리 뽑지 못하는 것도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죠. 더러운 신의 적 새끼들처럼 지방질이 배에 가득 들어차게 살 수 있는 도시에서나 아편이 필수품이 아닌거지, 이런 곳에서는 양귀비만큼 중요한 산업이 없죠.”
“미군은 언제까지 있을 것 같습니까?”
다른 부하 하나가 물었다.
최근 탈레반들 사이에선 미군 철수에 대한 야이기가 많이 떠돌고 있었다.
미국의 행정부 측에서 발표하는 이야기도 미군의 주둔이 어렵다는 내용이 많았고, 실제 카불에 주둔한 병력이 줄어들고 있는 건 다들 느끼고 있었다.
“위에서는 몇 년 안에 못 버티고 나갈 거라고 한다.”
“경제도 불황이라니 못 버티겠죠.”
“더러운 미국 돼지 새끼들에게는 베트남전의 재림이겠지. 같은 꼴을 겪게 해 줘야 해.”
하쉬안은 승리감에 도취한 어조로 말했다.
“네. 추악한 백인놈들이 꾸란을 태우는 걸 보고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다들 그 말에 동의해서 웃었다.
“조금만 더 버텨라. 위에서는 머지않아 제2의 911을 일으키겠다고 벼르고 있으니까.”
“그땐 정말 통쾌했습니다.”
“영웅 오사마의 위업이지. 그는 장렬하게 죽었다.”
하쉬안이 진지한 얼굴을 했다.
다른 부하들도 그랬다가 한 부하가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추악한 것들이 수장해 버렸죠.”
“성소를 만들지 못하려고 그런 거야.”
하쉬안도 아쉽게 말했다.
만일 오사마 빈 라덴의 유해를 회수할 수 있었다면 그걸 묻어 미국을 적대하는 모든 이슬람 전사들의 메카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무의미합니다. 영웅은 우리 꾸란 전사들의 마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이니까!”
“그렇지. 이 마약으로 돼지새끼들을 모두 중독시켜 버리고, 꾸란에 충실하지 않은 그 백인돼지의 앞잡이 놈들은 모두 도륙 내서 내장을 길거리에 걸어놔야 한다!”
“그렇지요!”
그렇게 그들이 미국과 미국에 협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악의를 드러낼 때였다.
“그 방법이 아편 팔이냐. 미친 것들.”
갑자기 들려온 소리!
“뭐? 뭐냐!”
그들이 올라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쾅!
벽이 박살났다. 그때 날아온 파편에 하쉬안의 부하 하나가 얻어맞고 바닥에 뻗었다. 하쉬안과 부하들은 총기를 들고 공격하려 했지만, 의미 없었다.
상황을 채 파악도 못 했는데,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뭔가가 다가와 그들에게 주먹을 날렸다.
“컥!”
“켁!”
아쉬안과 부하는 함께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누웠다.
갑자기 이 방안에 쳐들어온 이들은 강민과 그의 두 여자였다. 강민은 주변을 쓱 훑어본 다음 세나에게 물었다.
“발음 좋았어?”
방금 이들에게 강민이 날린 욕설은 여기 말을 알아서 한 것이 아니고 세나의 동시통역으로 이야기를 듣다가 열이 뻗쳐서 세나에게 부탁해 배운 욕을 외친 것이다.
세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엉망이던데. 그냥 아무 말 없이 두들겨 패기나 하는게 어때?”
“입이 간지러워서 어쩌지.”
강민은 이런 싸움에선 뭔가 외치면서 싸우는 걸 좋아한다.
세나는 피식 웃었다.
“그럼 동시통역도 일하는 중엔 말아야겠군. 모르면 떠들고 싶지도 않을거 아냐.”
“그건 그래.”
에이리도 그 말이 옳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쳇, 그건 또 궁금하잖아.”
강민은 투덜댔다.
“그런건 됐고, 얼른 정리하자.”
“뭐 죽이면 되는 거잖아.”
강민은 간단히 말하고는 하쉬안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강민은 그를 흘깃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발을 밟았다.
아주 강하게.
우두둑, 하는 뼈 부러지는 느낌이 발에서 느껴지고 하쉬안의 몸은 잠시 떨렸다.
“꺽!”
그것으로 끝. 그 단말마와 함께 하쉬안은 죽었다.
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간단하군.”
“뭐 우리가 상대하기에 지구인은 너무 허약해서....”
에이리가 말했다.
모두 동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곰을 때려잡는 정도 가지고 흥분해 전 세계가 들썩인다. 그런 정도로 강민이 있던 곳의 강자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세나가 그때 아쉽게 말했다.
“그런데 죽이기 보다 살려서 이것저것 캐묻는게 좋지 않았을까?”
“우리한테 필요한 정보는 미군이 다 구해다 주잖아. 적의 위치 같은거 말야. 다른 정보들 까지 우리가 확보해줄 필요는 없지. 괜한 신경 쓰지 말고 그들이 알아서 하도록 놔 두자구. 명색이 미군인데.”
강민이 그렇게 말했다.
지금 하쉬안의 위치를 알아낸 것도 그렇다. 미국의 첩보부가 활약해 얻어냈다. 암살팀을 조직해 실행에 옮겨봐야 성공은 못 해서 놔뒀다는 정도지 위치확인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아주 중요한 물이라면 사정이 다르지만 하쉬안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정보를 구할 수 있는 편이었다.
“하긴 천조국이랬지?”
“미국 혼자 전 세계 국방비의 절반을 잡아먹는다고 할 정도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천조 달성해도 국가 총생산의 7%밖에 안 되는걸.”
미국의 한해 총생산은 15조 달러 규모다. 천조를 쓴다고 해 봐야 일조달러. 7% 수준이다. 군대를 못 만들게 되어 있는 일본이 1% 규모로 사용하고 있는걸 생각하면 그렇게 큰 비중도 아니다.
그리고 천조를 쓴다는 가정이니 실제 천조를 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정도!
“대단한 나라긴 해.”
에이리가 말햇다.
“그래. 그러니 우리가 쓸데없이 초과근무를 할 필요는 없어!”
강민은 외쳤다.
“그 말도 맞아. 얼른 가자.”
“응!”
그들은 바람처럼 와서 죽이고, 바람처럼 떠났다.
***
“꺽!”
남자가 격한 비명을 내지르고 잠시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 떨림은 멎었다.
죽은 것이다.
남자를 죽인 것은 한 가녀린 발. 목을 지그시 밟아 목뼈를 부러뜨렸다. 에이리였다. 그녀가 지금 죽인 남자는 케릭이라는 남자로, 탈레반의 자살특공대를 맡고 있었다.
그가 숨어 있던 곳에는 사제 폭탄이 즐비했고, 피비린내 나는 수술대도 놓여 있었다. 감시에 걸리지 않는 인간 폭탄을 만들기 위해 절제수술을 해서 몸 안에 숨겨 놓는 작업을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살테러에 동원되는 인원은 적지 않아 한달에 한 두차례씩 카불에서는 폭탄이 터졌다.
“휴, 또 하나 잡았다.”
강민이 말했다.
“별로 어렵진 않군.”
에이리가 발을 케릭에게서 떼어냈다. 세나는 코웃음을 폈다.
“지구인에게 우리를 상대하라고 해 봤자...”
“그렇지만 지구무기는 세다고!”
괜히 자존심이 상해 강민은 외쳤다.
“세긴 하지.”
“그건 인정해.”
에이리와 세나는 그건 인정했다.
현재 병기의 힘은 정말 무섭다! 특히 핵폭탄이던가. 그건 아찔할 정도였다. 설령 본래의 힘을 완전히 되찾아도 그게 터지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그 이유를 에이리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정면으로 현대병기랑 싸울건 아니잖아.”
“그러게 말이야.”
강민도 그 점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에이리는 강민의 입을 다물게 만든 다음 의아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상해.”
“뭐가?”
“왜 아프간에서 이런 놈들이 패권을 쥐는게 가능했던 거지?”
“막장의 극치인데 왜 사람들이 따르냐는 거야?”
세나의 말에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엉망이잖아.”
“공포와 무력이 있잖아.”
“그건 미군이나 정부군도 마찬가지 아냐?”
강력한 무력으로 반발세력을 억누르는 건 미국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이 더 잘한다. 돈과 무장의 차원이 다르니까.
세나가 설명했다.
“나도 자세힌 모르는데 그건 민족 문제도 걸려 있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