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세 사람은 한 방을 받았다. 카불은 번화한 도시라곤 할 수 없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외국인들이 자주 찾아오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시설은 잘 마련되어 있었다. 때문에 세 사람이 묶는 호텔도 여느 한국의 호텔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서 짐울 풀고, 창밖을 통해 카불 시내를 바라보며 에이리가 말했다.
“여기가 카불이란 곳이군.”
“가불 같네.”
강민이 비장의 개그랍시고 말했다.
물론 반응은 싸늘!
썩어빠진 것을 보는 시선으로 에이리와 세나는 강민을 보면서 그의 파멸적인 개그센스를 질타했다.
“썰렁한 개그하곤.”
“넌 참 개그 못하더라.”
괜찮은 개그라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민은 억울하면서도 쩔쩔맸다.
“죄, 죄지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공격할 필요 있어?”
“뭐 됐고, 듣던 것보다는 평화로워 보이는데?”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고 에이리는 화제를 그냥 바꿨다. 세나도 동감했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나도 그런 것 같지만, 수도니 이 정도라잖아. 밖은 엉망인 모양이야.”
강민이 창으로 시내를 흘깃 보고는 말했다. 분명 카불은 이곳에 오기 전 들었던 이야기에 비교하면 어엿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정부군이 확실히 행정을 장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사실은 정부군이 확실히 잡지 못했다. 그 점에 대해서 세나가 말했다.
“뭐 신문 보니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긴 하더라. 한 달에 한 번 꼴로 자살 테러에 외국인이라면 납치해서 몸값을 받아내려 혈안이고.”
이전부터 심심하면 한 번씩 관공서 같은 곳에 자살 테러가 일어났다. 또한, 치안이 느슨한 틈을 타서 반군의 특공대가 쳐들어와 수도를 경비하는 군인들을 사살하고 도망치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무력에서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게릴라전이란 원래 이런 면에서 참 상대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지만 대낮에 수십명이 장해 쳐들어와 카불의 경비군을 털어버린 사건은 여러모로 충격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 수반되어 탈레반에 의해 외국인이 납치되는 사건도 종종 일어났다.
강민이 말했다.
“아, 그건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는 사건이군.”
“그래?”
“여기 선교하러 오겠다면서 억지로 와서 피랍당했다가 여러 사람 고생하게 만든 기독교 단체가 있었거든.”
혀를 차며 강민이 말했다. 한때 한국을 들끓게 만들었던 아프간 피랍사태를 말하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모르는 에이리와 세나는 그저 걱정하는 표정을 했다.
“그랬어? 큰일이었네.”
“큰일은 무슨! 얼마나 쪼다같은 것들이었는데!”
강민은 분노해서 외쳤다.
그의 격분에 의아한 표정이 되어 세나가 물었다.
“무슨 짓을 했기에 반응이 그래?”
“여기 가지 말라고 정부에서 얼마나 떠들어 댔다고. 그런데도 가려고 했단 말야. 심지어 법정 소송까지 벌여서.”
강민이 진절머리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아프간은 여행 가면 안 되는 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그때는 금지국까지는 아니었지만 주의국이었다. 외교통상부에서 이들의 선교계획을 미리 알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가겠다고 진상을 부린 끝에 소송까지 벌여서 결국 이곳으로 왔다.
“선교란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아, 대단하지 물론. 사람 죽이는 일이니까.”
에이리는 선교란 것을 그렇게까지 고집부리면서 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 싶어 의아하게 물었던 것이지만, 강민은 비꼬아서 답했다.
세나가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종교전파가 살인행위라는건 좀 무리수 아냐?”
“적어도 여기선 아냐. 이곳 사람이 만일 개종을 하게 되면 그는 죽는다고.”
강민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리와 세나가 함께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여긴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아주 강하단 말야. 적들의 종교라고 해서.”
강민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났던 게 있었던지 세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아... 읽었어. 그랬지. 절대 포교나 기독교적인 상징이 있는걸 선물로 줘선 안 된다고 했었어. 나야 애당초 기독교인 자체가 아니라서 무시했는데.”
“그렇지. 여기선 개종하면 죽어. 기독교 선교하러 온 사람들하고 친하게만 지내고 나중에 보복당할 위험도 높지! 그런데 그 작자들은 여기 선교하러 왔어!”
강민은 이가 갈린다는 듯이 외쳤다.
여자가 맨살만 보여도 살해한다고 할 정도의 꼴통들이 세력을 떨치는 나라다. 카불은 그들의 세력권이 아니라 그나마 났지만, 카불을 조금만 벗어나면 막장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카불에 역시 탈레반의 세력은 얼마든지 있다!
드러내 놓고 있지 않을 뿐이지.
“이단의 구렁텅이에서 고통받는 영혼을 구한다나?”
잔뜩 비꼬아 강민은 코웃음을 쳤다.
“우와.”
“진상 쩐다.”
에이리와 세나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선교로 인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는 판인데도 그 악을 써서 여기까지 와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자기들은 선행을 했다고 주장하려는 그 개념 없음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 짓을 하다가 피랍됐지.”
“살인하러 왔다가 보복당한 거네.”
“뭐 동정도 못 하겠다.”
세나와 에이리는 간단히 그렇게 이야기를 정리했다.
강민도 동감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피랍 소식이 나왔을 때 협상하지 말고 다 죽도록 놔둬야 한다는 인터넷 의견도 아주 많았어. 그래도 사람 죽는걸 내버려 둘 수야 있겠냐. 다 구했지. 덕분에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었는지.”
“반성했겠군.”
에이리가 말했다.
그런 고생을 하고, 거기다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
사람이라면 반성하리라!
그것이 에이리의 생각.
“그게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지! 그 짓을 하고 돌아와서 그들은 반성은커녕 국가를 고소했다고!”
강민이 놀라는 듯한 말에 둘은 정말로 놀라고 말았다. 대체 왜 들어 말리다가 안 돼서 갔고, 가서 하지 말라고 하는 짓 하다가 납치까지 당한 이들을 막대한 돈을 들여 살려줬는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고소를 당해야 하는가?
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됐다. 사실 감옥에 안 잡아 넣은게 더 이상한 상황 아닌가?
“왜?”
“왜 안 말렸느냐고!”
강민이 외쳤다.
둘은 그 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말렸잖아?”
“그래. 뜯어 말렸다며.”
“못 가게 확실히 막았어야 한다는 거야. 끝까지 안 말려서 피랍 당하고 죽은 사람까지 나왔으니 국가 책임이라 이거지.”
강민이 말했다.
“억...”
“내 뒷목...”
세나와 에이리는 숨이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설마 그래서 국가가 돈을 준 건 아니겠지?”
“판사가 병신도 아니고 이런 걸 받아들이겠어. 물론 졌지. 근데 이게 끝이 아니라 더 있어.”
“여기서 더 있다니?”
“못 믿겠어.”
세나와 에이리는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사실이야! 그들은 그렇게 돌아온 다음 자신들의 행위가 영웅적인 행위라면서 책을 내서 자랑까지 했지!”
“우와...”
“얼굴 가리고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창피를 모를 수 있을까. 세나와 에이리는 전율했다.
강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리고 그놈들 때문에 아프간에 와 있던 한국군도 표적이 되기도 했고 현지인은 한국인이라면 진상의 대표격 비슷하게 인식이 안 좋다고 하지.”
“그럴 만도 하겠다.”
“와, 정말 그건...”
이쯤 되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정말 실질적으로 사람이 다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실제로 그 작자들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어. 지들이 피랍 돼서 죽은 거야 상관없는데 진짜 봉사하러 간 사람이 과격 이슬람 단체의 테러 표적이 됐었으니까.”
예면에서 일하던 한국인 간호사가 피살되어 죽었고, 한국인을 노린 테러도 급증했다. 이것이 기독교 단체들의 선교 덕분에 일어난 결과다.
“그러고도 책을 냈다는 거군...”
“그것도 자기들 잘난 척하는 내용으로...”
“경이로운 멘탈이지.”
강민은 한숨을 쉬는 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렇게 많은 피해를 끼치고도 잘못한 줄 모르고 잘했다고 여기저기 자랑하기 바쁘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이것이야말로 ‘말이 안 통하니 이길 자신이 없는’ 상황이다.
세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도 조심해야 하나?”
“우리야 뭐... 그런데 조심은 해야겠지. 덤비러 오는 놈들이야 목숨을 버리는 꼴이 되겠지만, 앞으로 뭐라 할지 생각하면 눈에 띄여서 좋을 건 하나도 없잖아?”
“그 말은 맞아.”
일단 조심은 하면서 활동하는 거로 기본 방침을 잡고, 이제 본격적인 작전 회의를 해 봐야겠다고 강민은 생각했다.
“그러면 목표를 쭉 정리해 볼까.”
“응.”
세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자신의 가방을 뒤져 거기서 서류봉투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거기서 쭉 종이들을 꺼냈다.
“여기 받아온 목록이야.”
“어디보자. 하쉬안, 케릭, 볼루나, 마수나...”
강민은 세나에게서 목록을 받고 거기 기입 된 이름들을 읽었다.
“중요한 탈레반의 간부들이라는군. 그들을 제거하면 탈레반의 손발을 자르는 셈이 된데.”
“최고 몸통은?”
세나가 강민 옆으로 다가와 종이를 살피고는 그중 하나를 뽑아 그에게 내밀었다.
“여기 샤브구나 라는 사람이라는데. 꾸란 원리주의자래.”
“답군.”
강민은 서류에 첨부된 샤브구나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평가했다.
샤브구나는 터번을 두르고 얼굴에 주름이 지고 턱수염이 길게 난 50대 정도의 남자로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얄팍해 보이는 것이 성질이 더럽고 규칙에 깐깐할 것 같았다.
“근데 원리주의자인지 실은 애매하데.”
“원리주의자면 원리주의자지... 왜?”
“니가 말한 거 있잖아. 편한 대로 가져다 쓴다고.”
“아, 그거.”
세나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면도만 해도 남자들 사형시키고, 여자는 얼굴 내보이면 죽이는 꼴통 주제에 꾸란 해석은 지 멋대로 하거든. 나도 꾸란 읽어 봤는데 저걸 어떻게 해석하면 샤브구나라는 놈처럼 해석하는지 모르겠더라.”
“광신은 논리를 초월하나 보군.”
강민은 비웃음의 눈길로 샤브구나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에이리도 비꼬아서 한마디 했다.
“경전까지 초월하는 건 본말전도 같지만.”
실제로 광신자들은 오히려 자기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기독교만 해도 저렇다. 예수가 어디 저런 터무니 없는 짓을 하라고 부추겼을까. 선교를 하라 이야기 하긴 했지만, 그 역시도 모두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시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잘됐지 뭐야. 자기 종교도 제대로 안 지키는 놈 죽이는 거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어.”
세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래.”
강민과 에이리도 그 말이 옳다 싶어 동의했다.
무수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그 신념조차 올바른 것이 아니다. 심지어 종교적인 해석에서조차 틀려 먹었다. 이런 놈이 무력을 휘두르면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힌다니 죽이는 일에 한 점 망설임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하여간 이놈들만 죽이면 된다 이거지.”
“응, 여기 목록에 있는 애들만 작살내면 아프간의 탈레반은 백 여개 이상의 파벌로 쪼개질 거라고 해. 그러면 카불의 중앙정부만 미국이 지원해도 다 청소할 수 있게 되는 거지.”
“괜찮은 방법이군.”
군대를 주둔시키고 직접 싸우는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싸다.
돈도 돈이지만 미군이 안 죽는다!
“그렇지. 그러니까 미국이 그렇게 굽신대며 우리를 초빙하려 한 거 아니겠어.”
“그 말이 맞아.”
그리고 세 사람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어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토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