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그러면 그 여자는?”
“아프가니스탄 문화를 가르치는 거 말입니까?”
책임자가 물었다.
“그래.”
“그쪽도……. 믿기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길래?”
“끝났습니다.”
책임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완전히 끝났습니다. 언어 공부는 깨끗이 끝났고 풍습을 배우고 있는데 이것도 곧 끝날 겁니다. 진짜 엄청난 천재던데요.”
“그 정도라니…….”
국방부 장관도 어이가 없었다.
친근한 어족의 언어라도 배우려면 일이 년 정도는 걸리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한국어에 대해 아프가니스탄은 매우 상이한 언어 체계다. 그걸 배우려면 사실 몇십 년도 힘들 우려가 있다.
한국인들이 영어를 십 년도 넘게 공부해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그런데 이주라니?
“그 여자는 정말 아프가니스탄 가서 총질할 게 아니라 대학에 보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짓을 하고 있을 재원으로 보이지 않던데.”
책임자가 말했다.
국방부 장관도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 천재라면 차라리 학문을 하게 하는 게 세계를 위한 이득일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은 역시 중동 사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그런 의견은 됐네. 어쨌든 계속 훈련하고 준비가 끝나는 대로 내게 보고해주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책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
훈련과 교육을 끝마치고 강민 일행은 방에 모였다.
강민과 에이리는 세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할 만해?”
“쉬워! 너희야말로 어때?”
“우리도 쉬워.”
세 명 모두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면 곧 가겠네?”
“그렇겠지.”
“오랜만이네. 이렇게 셋이서 모험을 떠나는 거.”
세나가 근처 의자에 앉으며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모험인가?”
강민이 좀 애매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암살하러 가는 것이니만큼 모험이라고 하려니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험이라면 모험이긴 하겠지?”
“그렇잖아. 퀘스트가 있고, 목표가 있고, 보수와 전투가 있다. 이게 모험이지, 뭐가 모험이겠어.”
에이리와 세나는 그냥 단순히 모험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몬스터가 테러리스트로 바뀐 것뿐이지.”
“인간이긴 해도.”
“인간이 몬스터보다 더 몬스터인 건 흔한 일이잖아?”
에이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래. 여기서나 저기서나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무력이 필요한 거고.”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분명 그렇다.
여기나 저기나 인간들이 몬스터보다 사악한 경우는 많았다. 강민도 진짜 모험 같은 모험을 하고 분노 같은 분노를 했던 건 인간을 상대했을 때지, 몬스터를 상대했을 때가 아니다.
그 말이 나오고 보니 살짝 걱정이 됐다.
“한국은 어떨까. 살짝 걱정인데.”
“다들 철저하게 훈련시켜 뒀어. 걱정할 필요 없어.”
에이리는 자신만만했다.
“뭐 그러면 좋겠지만, 쓸데없이 욕심을 부린다면 곤란해질 수도 있잖아.”
강해졌다는 자신감에 부족한 실력으로 무모한 짓을 하는 것이야 말로 모험을 하면서 위험해지는 가장 흔한 이유다.
재철 일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면 연락해 볼까?”
“미군의 눈이 좀 무서우니 말이지.”
강민은 곤혹스레 고개를 저었다.
미군이 나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세 사람에 대한 정보는 정말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들키지 않게 정보를 얻으려 무슨 수를 쓸지도 모른다. 그걸 다 파악하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직접 한국에 연락하는 건 좋지 않았다.
대화를 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지만, 그거야 세나의 마법이 해결할 수 있으니 괜찮다.
“그럼 일단 구글링이나 해 볼까?”
“구글링?”
구글링은 구글을 한다는 뜻이다. 검색 엔진 구글의 위상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머지않아 일반명사가 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 구글신께 빌면 한국의 상황 정도야.”
“뉴스를 보기엔 안 좋던데.”
구글의 검색능력은 압도적이지만 한국처럼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게시글 숫자로 알아볼 수 있으니 괜찮아.”
“그럼 해봐.”
세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노트북을 작동시켰다.
“떴다.”
강민이 모니터를 바라봤다.
수십, 수백 건의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그것은 모두 ‘장갑맨의 동료들, 새로운 도시의 파수꾼으로 데뷔하다!’라는 식으로 적혀 있었다.
“오, 제법.”
“장갑맨의 뒤를 잇는 범죄자란 말은 별로지만.”
에이리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기사 헤드라인 중엔 그렇게 된 것도 있었다.
강민이 살펴보니 평소에도 장갑맨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쓰던 신문이었다. 좋은 일을 하고 욕먹으니 기분이 나빴지만 저런 곳도 필요하다 싶어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언론의 자유!
“영웅이라고 하는 곳도 있으니 괜찮지 않아?”
“월급쟁이 영웅이지.”
세나가 웃으며 말했다.
재철 일당은 데뷔 이후부터 매달 천만 원 정도의 보수를 받기로 했다.
돈에 욕심을 내서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게 하도록 그 돈은 모두 강제로 적금에 들어가기로 계약해둔 상태였다. 강민은 그 돈을 그들이 졸업하면 모두 줄 생각이었다.
“어쨌든 다들 노력하고 있는 모양이야.”
“그러게.”
“안심했어.”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안심하고 암살 임무를 위해 미국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
아프가니스탄.
아프간이라는 단칭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이 땅은 무수한 침략을 겪었다. 그 가운데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셋이다.
먼저 몽골.
세계를 지배하며 쳐들어가던 악마의 군대 몽골군은 이곳을 침략했고, 아프간을 그야말로 쓸어버렸다. 아프간 침공 중 칭기즈칸의 손자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아프간을 지배하던 바미안 왕국은 일 년간 저항했으나 결국 소용없었다.
성은 함락되었고, 칭기즈칸은 그 성안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여버렸다. 이후 다른 지역의 정복에도 들어가지만, 이것은 실패하고 물러간다.
두 번째, 소련.
전쟁의 이유는 간단했다. 소련은 아프간에 친소련 정권을 세우고 싶었고, 당시 아프간의 지배 세력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전면전 자체는 소련이 압도적이었다. 사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는 국가였다. 아무도 소련이 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이후 소련에게 여의치 않게 돌아간다.
무자헤딘 게릴라 반군이 각지에서 게릴라 전법을 통해 소련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은 길어졌고, 소련의 고생이 시작된다.
결국 막대한 전비를 쏟아붓고도 소련은 이곳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련이 무너진 데는 이곳에서 너무 많은 힘을 쏟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제 미국이다.
이제까지는 아프가니스탄이 수동적인 입장에서 당해오던 것이지만, 미국과의 전쟁만큼은 아프간이 얻어맞을 짓을 했다. 9.11테러가 터지고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탈레반이 오사마의 세력과 연합해 있으며 그들을 숨겨주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미국은 당연히 그의 신병을 요구했다.
탈레반은 거부했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은 간단했다. 미군이 한 달 만에 아프간 전역을 제압하고 친미정권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전면전만으로 깨끗이 정리될 수 있는 나라였다면 몽골이 퇴각하고, 소련이 패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탈레반은 퇴각 후 아프간 각지에 수어 저항을 시작한다.
소련을 괴롭혔던 게릴라전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을 한층 짜증나게 만드는 것은 그 게릴라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소련 침공 당시에 그들을 방해하기 위해 이곳 게릴라들에게 뿌렸던 자기들의 무기라는 점이다.
그리고 지방을 시작으로 서서히 미군이 새로 세운 정권의 영향력을 탈레반에게 빼앗기기 시작했다.
미군은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었으나 그 경우 자신들이 세운 정부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은 물론이고 친미라는 명목, 각종 종교적인 명목으로 대학살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막대한 전비를 사용하면서 미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전국은 여전히 내전 상태나 다름없었고, 수도 카불 정도나 치안이 쓸 만한 막장 국가였다.
그러나 아프간이 항상 침공받고 거지꼴로 살던 국가는 아니었다. 20세기 중후반 시절만 해도 아프간은 중동 국가 가운데 눈부시게 발전했고, 다인종, 다종교가 어우러져 번영을 구가하던 국가였다.
당시 한국보다 잘 살았다!
그러나 그 영화는 이제 모두 꿈.
언제 어디서 총성이 들리고 폭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치안이 그나마 안전하다고 하는 수도 카불 역시 얼마 전에 총기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정도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갔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자체가 워낙 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강인한 면모가 있기도 했다.
그런 카불의 도로로 오늘 자동차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그 차에는 네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 셋 가운데 둘은 여자, 둘은 남자였다.
강민 일행이었다.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