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출장이라도 가나요?”
재철 일당은 아쉬움 반, 즐거움 반인 표정으로 물었다. 아쉬운 건 물론 친한 사람이 떠난다니 아쉬운 거지만 기쁜 것은 이로써 주말마다 하는 끔찍한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미국에 가.”
“아…… 그거?”
재철 일당은 그 한마디에 에이리가 어디에 가는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일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으니까.
“그래.”
“위험하지 않을까요?”
수구가 걱정스레 물었다.
이야기를 들은 대로라면 지금부터 상대할 자들은 미국조차 골치를 썩게 만드는 테러 집단이다. 일말의 불안감도 없을 수는 없었다.
에이리는 여유롭게 웃었다.
“그런 테러범 장비로는 우리를 어떻게 하기 불가능해.”
“하기야.”
“그렇겠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촬영했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나서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강민과 에이리는 최강 미군을 상대해서 어린애들 괴롭히는 것처럼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훈련도 장비도 부족한 탈레반 따위가 상대가 될 리가 없다.
“무용담 기대해.”
“네!”
“한국은 그동안 저희가 지키죠!”
재철 일당은 씩씩하게 말했다.
에이리는 웃으며 말했다.
“못 미덥지만……. 수고해! 몸조심하고.”
“넵!”
재철 일당은 강한 어조로 답했고, 그걸 끝으로 그들은 상황 정리에 들어갔다. 다음 날 뉴스에는 수길호가 온몸의 뼈가 산산조각이 나고, 성기가 뜯어진 채 경찰서 안에 버러져 있는 것이 체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
밤의 백악관은 조용했다.
사실 백악관은 낮도 밤도 없다고 봐야 하는 곳이지만 오늘은 일이 있어서 조용했다. 오마바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창문이 열리고, 열린 창문에서 누군가가 풀썩 뛰어 들어왔다.
“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마바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았다.
지금 창문으로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장갑맨이었다. 장갑맨만 온 것은 아니고 동료들과 같이 온 상태였다.
“그런데 한 사람이 더 있군요.”
강민 일행을 보며 오마바가 말했다. 오마바는 두 사람밖에 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자인 것 같았다.
“이번 일을 도와줄 제 동료입니다. 문제는 없겠지요?”
“물론입니다.”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여자를 전장에 보내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겠지만 장갑맨의 동료 여성은 일전에 장갑맨조차 넘어서는 힘을 보였다.
마찬가지로 무언가 놀라운 힘이 이번에 같이 온 새 동료에게도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면 이야기를 시작하죠.”
강민은 미리 준비된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오마바도 동의했고, 그는 신호를 보냈다.
기다리고 있던 국방부 장관이 안으로 들어와 장갑맨에게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우선 이것을 봐주십시오.”
강민은 그가 내민 봉투를 받아 안을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거기에는 사람의 사진이 붙어 있는 서류 여러 장이 들어있었다.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봐도 이름은 미국식이 아니었다. 용모도 흔히 볼 수 있는 미국인의 용모와는 달랐다.
그러면 이들이 뭔지는 뻔했다.
“이 사람들이 암살 대상입니까?”
“그렇습니다. 각자가 탈레반 가운데서 대단한 지위를 가진 인물들입니다. 또한 하나같이 악독하지요.”
고개를 끄덕이며 국방부 장관이 말했다.
“이들을 모두 죽이면 되는 거군요.”
“그러면 탈레반은 자중지란을 일으키게 될 겁니다.”
“위치는 확인된 바가 있습니까?”
“일단은……. 이 지역 정도라는 정보만 알려져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은 고개를 저으며 지도를 가리켰다.
하기야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면 벌서 벙커 버스터가 날아갔을 것이다. 오폭으로 인해 민간인 사상자의 위험이 있긴 하겠지만 미국으로선 그 정도 피해는 감수할 것이다.
미국인도 아니고!
“저곳에 그들이 있다는 말이군요.”
“네.”
“주의해야 할 점 같은 건?”
“저곳은 탈레반에게 완전히 장악된 지역인 만큼, 저곳 풍습을 숙지하고 가시는 게 중요합니다.”
“풍습이요?”
국방부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탈레반은 꼴통 종교 집단이 군사화된 것과 비슷하다.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서는 강압적인 정책을 펼치고 그 내용도 꼴통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명예살인이 허락되는 건 기본이요, 히잡을 하지 않고 길에 나선 여성은 즉각 사형, 사회생활은 일체 불가능하다. 이런 판이니 종교적 풍습을 잘 익히는 게 중요한 건 당연했다.
“교육을 위한 팀도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한 달 정도 철저히 훈련을 받으시면 현지인처럼 행동하는 것도…….”
“아니, 저희 두 사람은 됐습니다. 여기, 이 사람만 하도록 하지요.”
강민은 고개를 흔들며 세나를 가리켰다.
“그건…….”
국방부 장관은 물론 오마바 역시 난처한 표정이 됐다.
강민은 그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을 뿐 아니라 속으로 욕도 하고 있을 거란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암살 작전을 위해 현지 침투를 해야 하는데 필수적인 교육을 받지 않겠다니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힐난당할만 하다.
강민은 얼른 설명했다.
“교육의 필요성을 모르는 게 아니라, 저희는 낮에는 숨어 지낼 생각입니다. 현지인처럼 할 필요가 없죠. 그렇게 하는 건 여기, 이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잘 부탁하죠.”
세나는 앞으로 나섰다.
“그건…….”
“그리고, 그쪽 말도 가르쳐 주세요.”
세나는 이어서 요구했다.
“꼭 부탁해요.”
연이은 부탁에 국방부 장관은 얼굴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쉬고 타협안을 내놓았다.
“음, 그러면 알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훈련을 받지 않아도 숨어 있을 수 있을 정도인지는 확인을 해 봐야 합니다.”
“좋습니다. 저격팀을 불러오세요. 저희가 낮 동안 훈련장에 숨어 있을 테니 그들에게 찾게하죠.”
저격의 핵심은 은신이다.
저격을 위해 스나이퍼는 오랫동안 한 장소에 숨어 있을 수 있어야 한다. 특급 사수의 경우는 한 보름 정도 한곳에 숨어 거기서 똥오줌을 다 해결하며 지낼 수도 있어야 할 정도.
그래서 저격에 누군가 당했을 때 그 저격수를 찾는 유일한 방법은 저격수를 불러 찾아내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은신의 프로다.
만일 저격팀이 찾지 못한다면 세상에 찾을 사람은 없다고 봐야 될 정도다.
“그렇게 하죠.”
“그러면 그곳으로 가 그쪽에 있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거로 충분한 겁니까?”
찬찬히 사진을 살피면서 강민이 물었다.
국방부 장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끝나면 연락을 해 주십시오. 가까운 지역은 미군이 직접 장악해서 지역 치안을 유지하고 융합 작전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자살테러 같은 건 없겠습니까?”
강민은 약간 걱정스러워 물었다.
“민중의 탈레반에 대한 지지도는 높지 않습니다. 이라크 때 같은 꼴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오폭 문제 때문에 저희도 결코 지지도가 높진 않지만……. 그 문제는 보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갈 생각입니다.”
이라크는 정말 오점이다.
지난 정권이 싸놓고 간 최대의 똥 중 하나! 저 빌어먹을 전쟁 때문에 미국은 얻을 수 있는 지지도 모조리 잃었고, 재정도 파탄 났다. 악몽 그 자체!
“그러길 바랍니다.”
강민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의 입장에서 이번 작전이 그 지역 사람들을 억압하게 만드는 걸 돕는 꼴이 된다면 상황이 대단치 난처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가 나서는 건 흔히 말하는 미 제국주의를 돕는 꼴이 될 뿐이겠죠.”
국방부 장관과 오마바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세나가 물었다.
“아참. 그리고 이 사람들의 개인 사물을 보관하고 있는 게 있나요?”
“그들의 사물 말입니까?”
“네. 탐색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있습니다.”
“하나씩 챙겨주세요.”
“그렇게 하지요.”
왜 그런 것들이 필요한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국방부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그런 것쯤은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그러면 곧 훈련과 준비에 들어가겠습니다.”
“네. 저희가 숙소를 마련했으니…….”
국방부 장관이 권했지만,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출퇴근으로 하죠. 정체는 계속 숨기고 싶거든요.”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미군을 못 믿는다는 말에 따질 처지는 아니었다.
오마바는 우호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겠습니다.”
“안심하세요.”
세나는 생글 웃으며 말했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
그리고 2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국방부 장관은 초조한 얼굴로 훈련장에 들어가 그곳 책임자와 만났다. 그는 책임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물었다.
“훈련 경과는 어떻지?”
“대단합니다.”
경탄한 얼굴로 책임자는 말했다.
“대단해?”
기뻐하면서 국방부 장관은 반문했다.
“네. 저격팀을 불러 그들을 찾아보는 것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만, 저격팀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낮에는?”
“물론 낮입니다.”
“낮에 발견을 못 했다고?”
국방부 장관은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어느 나라나 저격병은 최고의 병사다. 그들의 실력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 훈련장 같은 협소한 환경에서 그들이 장갑맨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믿기지 않을 만큼 은신을 잘합니다.”
“그냥 숨어 있는 거로는 안 되는데.”
국방부 장관은 물었다.
사실 국방부 장관이 기대하던 것은 저격팀이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준비했던 기존 교육을 이행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동 은신도 물론 테스트했지요.”
“그것도 클리어?”
“완벽하게.”
책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방부 장관은 혀를 내둘렀다.
“자신만만할 법하군.”
“네. 처음엔 저격팀 쪽에서 어이없어하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다들 숭배자가 됐습니다. 거의 장갑맨 컬쳐라니까요.”
컬쳐는 문화라는 뜻 외에도 종교적 광신 집단을 뜻하기도 한다.
“그 정돈가?”
“다들 자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국방부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숨는 것과 찾는 것 하면 저격팀인데 2주 동안 전패 당했다면 그럴 만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장갑맨이라고 하면 지상 최강의 사나이로 유명하지 않은가.
마초스러움을 숭상하는 나라 미국에서 한층 더 마초를 추구하는 미군이다. 장갑맨은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