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산속.
그 가운데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 명의 남녀들이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헤엑, 헤엑, 헤엑…….”
“히익, 히익, 히익…….”
“끼익, 끼익, 끼익…….”
한 3분 정도 비닐을 씌웠다가 풀어준 것 같았다. 마치 숨을 쉬고 있는데도 산소가 부족한 것 같은 모습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는걸 보면 격렬한 운동을 했다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는 여인 하나.
에이리!
“이런 약골들!”
그녀는 쓰러져 있는 단원들에게 버럭 외쳤다.
오늘은 주말. 이른 아침부터 모여 보람찬 훈련을 받고 있는데 단원들은 훈련의 반도 소화하지 못한 시점에서 꽥 쓰러지고 말았다.
“꺽…….”
“컥…….”
에이리의 질책에 남자들 몇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일어서려 했으나 헛수고. 결국은 다시 뻗고 말았다.
뒤에서 그 광경을 보며 강민이 말했다.
“너무 심하지 않아?”
“그래. 약골은 아니지, 약골은.”
세나도 동감했다.
하지만 에이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이런 건 일부러 가혹하게 해야지. 그래야 근성이 붙어.”
“하긴.”
그건 동감이란 뜻으로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강민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여자들한테까지 그렇게 할 필요야…….”
“훈련에 남녀가 어디 있어!”
에이리가 강민을 돌아보며 버럭 외쳤다.
“아, 알겠어. 알겠어.”
에이리는 교관이 되면 뭔가 스위치가 켜진 듯이 엄해지곤 했다. 강민은 저것도 직업병이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훈련 상태는 어때?”
“보면 알잖아?”
“내가 보기엔 그냥 다 부족해 보이지만, 정확하게는 에이리 네가 제일 잘 알거 아냐. 그리고 내가 알고 싶은 건 언제쯤 쓸 수 있을까 하는 거니 말이야.”
“그거라면 뭐, 곧 될 것 같은데.”
에이리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답했다.
하지만 강민은 깜짝 놀랐다.
“벌써? 그렇게 빨리?”
“전부는 아니고. 재철 일당 정도.”
세나가 문득 놀란 듯이 물었다.
“너도 재철 일당이라고 불러? 강민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묶어 부를 만한 말이 없다 보니.”
“하긴 그렇지.”
세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재철은 대체로 수구, 만수와 함께 덩어리지어져 불린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들 세 사람은 따로따로 취급하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학교도 같이 다니고 반도 같으니 그런 인상이 한층 더 짙은 것 같았다.
물론 본인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여간 재철 일당은 훈련한 지 시간이 좀 됐기 때문에 기초가 탄탄해. 한국 내에서 활동할 거라면 지금 당장 움직여도 문제가 없을걸.”
“그 정도야?”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체험한 인간들의 전투능력을 생각하면 충분해.”
“대단한데.”
강민은 감탄하며 말했다.
이들을 얼른 성장시켜 자신을 도울 만한 능력자로 만들겠다는 포부는 있었지만 그게 빨리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강민이 생각하는 ‘자신을 도울만한 능력자’란 말이 쉽지, 강민을 제외하고 인류 가운데 상대할 자가 없는 강자란 소리다.
“재능도 있는 편이라고 봐야겠지.”
“그럼 슬슬 실습에 보낼까.”
“실습?”
“범죄자를 때려잡게 할 거란 말이야?”
“그래.”
에이리와 세나가 놀란 듯 묻는데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할 거 같은데.”
“에이리, 네가 같이 가 줘.”
당장 실전에 투입하는 게 위험할 거라는 정도는 강민도 생각하고 있던 바였다. 에이리는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관으로서 그렇게 할까.”
“그럼 다음 주말에 부탁해.”
“알겠어.”
다음 주, 드디어 재철 일당의 데뷔가 이루어지게 됐다.
***
어두운 도심의 골목이었다.
사람은 별로 오가지 않았다.
골목 모퉁이의 어둠 속에 네 사람이 있었다. 그들 중 셋은 남자였고, 하나는 여자였다.
“저, 저기…….”
“꼭 해야 하나요?”
“무, 무서운데.”
남자 셋이 여자를 보면서 애걸하듯이 말했다. 그들은 재철 일당! 물론 여자는 에이리였다. 그들은 오늘 범죄자 때려잡기 실습에 나온 참이었다.
그래서 재철 일당은 현재 모두 마스크에 장갑을 낀 상태였다.
에이리는 두려워하는 그들을 보면서 물었다.
“너희는 뭐지?”
“저, 저희야 장갑맨의…….”
“동료죠.”
재철 일당은 말하고 보니 쑥스럽다는 기분이 들었다.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너희는 장갑맨과 같은 힘을 익혔지.”
“차이가 많이 나지만요.”
“그러게.”
재철 일당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강민과 같은 힘을 익혔다고는 하지만 실감도 안 나고, 그렇게 세진 것 같지도 않았다. 적어도 아직은 그렇다. 뭐 쇠를 손으로 잡아 구겨버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힘이 세지고 속도가 빨라진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인간 범죄자 따위는 아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위험해지면 내가 도와준다. 그래도 못 믿겠다는 거야?”
“그러면야…….”
“힘을 내봐야겠죠.”
에이리가 한 말이 그들을 안심시켰다.
에이리는 장갑맨보다 더 강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 어떤 범죄자를 때려잡아야 하든 상관없이 그녀에겐 벌레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사실 무기를 들어도 벌레다. 에이리는 완전히 무장한 미 해병대와도 싸워 박살을 냈다.
“그리고 이게 오늘 너희가 때려잡을 범죄자야.”
에이리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재철 일당에게 넘겼다.
그것은 오늘 목표가 된 범죄자의 신상이었다.
“이게…….”
“와, 진짜 개새끼다.”
“그러게.”
“무시무시한 쌍놈이네.”
재철 일당의 입에서 곧장 욕이 튀어나왔다.
목표의 이름은 이강수.
과부가 된 여자와 결혼한 다음 보험금을 노리고 그녀와 그녀의 자식들을 모조리 죽여 30억에 달하는 돈을 챙겼다가 후속 수사로 인해 사실이 드러나 도망치고 있는 지명 수배범이었다.
몇 번 잡을 기회가 있었는데 교활한데다 싸움을 잘해 경찰도 때려눕히고 튀었다고 한다.
“때려죽이자.”
“그래. 살려둘 가치가 없군.”
재철 일당은 의견이 일치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그들이 분노한 것은 어린아이들을 처참히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5살밖에 되지 않는 여자아이까지 있었다.
“역시 동기 제공은 중요하단 말이야.”
에이리는 재철 일당이 불타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만족하며 웃었다. 전쟁이고, 싸움이고 역시 동기가 중요했다.
동기 유발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아군이 선이고 적이 악이라고 못 박아 두는 것!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에 편하고 효과가 좋은 방법이었다.
이어 에이리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옷조각이었다. 경찰서에서 슬쩍 가져온 범인의 착용 의상 중 일부다. 그것은 에이리의 손 위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한 방향에서 멈췄다.
“저기다.”
다들 그쪽으로 움직였다.
으슥한 골목의 어둠 속에 숨어 움직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틀림없이 목표인 이강수!
“좋아.”
“저기 온다.”
“잡으러 가자.”
재철 일당은 우르르 몰려갔다.
에이리는 그들을 불안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간 재철 일당은 재철이 선두가 되어 건들거리며 말을 걸었다.
“형씨.”
“엇, 너희 뭐야!”
이강수는 화들짝 놀라며 그들을 바라봤다.
“누군지 알 거 없고.”
재철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으로 이강수에게 주먹을 날렸다. 이강수는 황급히 막으려 했지만, 복부에 주먹이 꽂혀 들어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컥!”
뒤로 밀려간 이강수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그는 품에서 번쩍이는 쇠붙이를 꺼냈다.
“이 개새끼들이!”
재철 일당이 주춤거렸다.
호되게 훈련을 받아 많이 강해지긴 했지만, 아직 칼침을 맞고도 무사할 정도는 아니다.
“칼을 들었네.”
“조심해!”
재철은 코웃음을 치며 이강수와의 거리를 좁혔다.
“이약!”
이강수는 일그러진 얼굴이 되어 재철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경찰을 때려눕히고 도망간 적이 있다더니 과연 속도가 빠르고 힘이 센 것 같았다.
그러나 재철은 초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저 정도의 칼질을 못 피할 리는 없다. 재철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칼을 피하고 이강수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 주먹을 날렸다.
“컥!”
힘을 실은 주먹을 얻어맞고 이강수의 몸이 붕 떴다.
“으랏차!”
수구와 만수가 달려와 등을 내리찍고 꿈틀거리는 이강수의 팔다리를 부셔버렸다.
“으어어어어!”
이강수는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엎드려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재철 일당은 순간 흠칫 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라고 해서 하긴 했는데 사람의 뼈를 박살내며 이렇게 병신꼴로 만드니 거부감이 들었다.
“별로 힘들지는 않군.”
그래도 끝났다. 재철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 무서운 표정으로 에이리가 다가왔다.
“뭐 하는 짓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