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주말.
힘겨운 훈련을 끝마치고 강민단원들은 강민단 기지에 모여 있었다.
모두 뒹굴거리고 있었다.
힘드니까!
그리고 그들이 보고 있는 80인치 초대형 TV에선 뉴스를 하고 있었다.
뉴스가 아니라 뭔가의 소개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거기에서는 여자와 남자 두 사람의 아나운서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웃는 아이들이란 복지단체를 아시나요?”
“아, 저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자 아나운서의 말에 남자 아나운서가 답했다.
“네. 소장인 김성식 씨가 20년 전부터 운영하던 소규모 복지단체로, 갈 곳 없는 아이들을 거두어 교육시키거나, 어려운 아이들의 생활을 후원하는 곳이었습니다. 김성식 씨는 이 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후원도 받고 있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언제나 후원되는 금액보다 많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뜻있는 분들이 좀 더 많아져야 하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네. 이번에 익명의 독지가로부터 거액의 후원을 받아 장학재단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아, 굉장한 이야기군요!”
남녀 아나운서는 과장되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죠. 여기서 김성식 씨는 어려운 아이들의 학비를 보조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생활의 전반을 책임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까지도 지원할 수 있는 광범위한 원조를 기획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화면이 전환됐다.
떠오른 것은 김성식 씨의 모습이었다.
“……이미 한국은 배고픈 걸 해결해주는 것만으로는 불평등의 고리를 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웃는 아이들이 이번 재단 설립을 통해 양질의 교육을 공급하는 것까지 이루어 냄으로써 좀 더 밝고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생각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무심하게 듣다가 호성이 고개를 돌려 강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야?”
“그래.”
“사람은 착해 보이네.”
재철이 말했다.
“실제로 착해. 나도 알아 봤는데 굉장하던데.”
세나가 말했다. 혜경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돕는 보람이 있겠어.”
“안 그래도 저희 쪽에서도 관심을 표명하게 했어요.”
지연이 자랑하자, 호성도 질세라 끼어들었다.
“나도 물론.”
“저기가 장갑맨 재단이란 말이지.”
강석이 흥미롭게 중얼거렸다.
“표면상으로는 아무도 모르지만.”
“잘 굴러가야 할 텐데.”
“잘 굴러갈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강민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긴.”
“그렇지.”
다들 동의했다.
강민 옆에서 그 광경을 훈훈하게 바라보던 에이리가 파김치가 되어 있는 단원들을 향해 자상하게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들 훈련도 열심히 해야지.”
“아하하하!”
“하하하!”
“호호호!”
“호…… 호호.”
모두들 기뻐 웃었다.
웃는데 왜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걸까.
신기한 일이었다!
***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한 달 반 정도.
대학의 이 학기도 어느덧 중반을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전 중간고사도 끝났다. 중간고사를 끝마치고 지친 표정으로 돌아온 강민단원들이 다시 강민단 기지에 모여 있는 상태였다.
“시험 잘 쳤어?”
“대충.”
“죽을 거 같다…….”
불과 얼마 전이 시험 기간이었으니 강민단원들의 관심이 시험에 몰려 있는 것은 당연했다.
참고로 지난 학기 재철 일당의 성적은 평점 3.1 정도로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고, 호성과 강석은 성적 장학금을 탔다.
지연은 3.5, 혜경은 4.0을 찍었다.
승자의 여유를 가지고 호성이 재철 일당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쯧.”
“공부는 너무 괴로워.”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러게 말이야.”
강석이 찬동했다.
재철 일당은 그들의 태도에 분노해 외쳤다.
“과거부터 쭉 일등하던 놈들은 입 다물어!”
“그래! 우리는 바닥부터 기어올라 왔다고!”
“우리야말로 역전의 용사!”
재철 일당은 자신들이야말로 개천에서 기어 올라왔으므로 더욱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여긴 바닥부터 기어 올라온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라고.”
“그 정도 고생은 각오해야지.”
강석과 호성은 냉소적으로 받아넘길 뿐.
그때 지연이 한숨을 쉬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역시 힘들어요.”
“저런.”
“다음에 같이 공부할까요?”
호성과 강석은 조금 전의 차가운 태도는 어디 갔냐는 듯이 친절하게 제안했다. 재철 일당은 그들이 그렇게 태도가 변하는 것을 보고 욕했다.
“와, 더러운 놈들.”
“지연이가 어렵다니까 태도가 싹 바뀌는 걸 보세.”
강석과 호성은 물론 당당했다.
“당연하지! 남자 놈들이 감히 여성과 같은 대접을 받으려고 했냐?”
“그래! 남자가 남자에게 잘 대해 줄 이유가 뭐가 있어!”
남자가 여자한테 잘하는 게 뭐가 어때서!
따지고 보면 진리이긴 하다.
남자가 여자에게 흑심이 있기에 세계는 유지된다.!
인류는 살아남는다!
재철 일당은 할 말이 없었던지 투덜대며 다른 것으로 그들을 공격했다.
“쳇! 니들이 그래 봐야 지연이는 강민을 좋아한다고!”
“그래!”
“으윽, 그런가.”
호성과 강석은 그 말이 맞다 싶었는지 풀이 죽은 얼굴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지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 아니…….”
“아닌가요?”
강석이 물었다.
“그건…….”
지연은 답하지 못했다.
그때 혜경이 끼어들었다.
“친구 괴롭히기는 그 정도로 해둬. 그보다, 이번에 유튜브에서 노래 하나가 뜨고 있던데 들어봤어?”
“유튜브에서 뜨는 노래가 한두 개인가요.”
“그거 챙겨 들으면 인생 다 가지!”
“과제만 해도 바쁘다고요.”
“더구나 훈련까지!”
다들 짜증을 내며 말했다.
혜경은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한국인이고, 너희도 잘 아는 사람의 노래라고.”
“한국인 노래예요?”
“그럼 들어볼까?”
역시 해외에서 한국인이 활약하고 있다고 하면 응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수구가 문득 중얼거렸다.
“근데 장갑맨이 전 세계를 다 평정한 판에 한국인 가수가 하나 나와 봤자 자랑스러울 수 있을까 싶은데.”
“그전에 노래가 좋아서 그런 거야. 더구나 뷰티걸 알지?”
헤경이 말했다.
“물론 알죠. 아쉽게 해체했지만 멤버들이야 여기저기서 보잖아요.”
“걔들 해체하고 사이도 괜찮은 것 같고 말이야.”
“맞아.”
뷰티걸은 작년에 해체했다.
특별히 사이가 나쁜 건 아니고 아이돌 그룹 시장의 포화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활약하려 한다는 이유가 있었다.
인기 없는 멤버를 처리하기 위한 목적도 물론 있긴 했지만.
혜경이 이어 말했다.
“그중에 있었잖아. 노래 갑자기 잘 부르던 애.”
갑자기 노래 잘 부르던 뷰티걸의 멤버!
분명히 강민단원들의 상당수가 잘 아는 사람이다!
“헉? 설마!”
“수란!”
“아, 걔 본명이 수란이었지. 맞아 걔야.”
“걔 노래가 뜨고 있단 말인가요?”
호성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응. 반응이 대단하던데. 벌써 오천만 넘었어.”
오천만!
유튜브 조회수로 오천만이 넘는 동영상은 정말 드물다.
일억을 넘기면 기념비적인 대히트 동영상이다.
“허, 이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데.”
“그러게.”
“수란이라면야.”
“뭐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야? 반응이 격하네?”
혜경은 기대했던 것보다 단원들의 반응이 훨씬 적극적이자 흥미로운 듯 물었다.
“같은 학교 출신이니까요!”
“정말이야?”
혜경은 한층 놀랐다.
“그런 걸로 거짓말해서 뭐 하겠어요.”
호성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고, 다른 단원들은 이미 컴퓨터 앞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보다 얼른 보자.”
“그래!”
그들은 곧 동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노래가 흘러나왔다.
수 분간의 뮤직비디오가 끝났을 때, 강민단원들은 모두 놀랍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와!”
“대단한데.”
“원래 노래 잘 부른다고 칭찬이 많았는데 이건 장난 아닌데.”
“그러게 말이야.”
모두 수란의 노래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은 상태였다.
“그사이 실력이 또 는 것 같아!”
“인기 끌겠어.”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게. 한류라고 해도 까고 말해 장갑맨밖에 없었잖아.”
다들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했다. 수란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장갑맨을 제외하곤 한국 문화가 변변하게 힘을 못 썼는데, 거기에 자랑스럽게 추가될 만한 콘텐츠가 하나 더 늘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