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훈련이 끝났다.
강민단원들은 모두 강민단 기지에 모여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시체 같았다. 그렇게 시체 같은 표정으로 바닥에 널부러진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으으……. 악몽이야.”
“악몽이면 좋겠다…….”
“그래! 깨면 끝이잖아. 하지만 이건 깨어나도 바뀌지 않아!”
민수가 비명처럼 외쳤다.
그 말이 맞다.
이것은 깨지 않을 악몽! 아니, 현실이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내일도, 그리고 다음 주도 이어질 현세의 지옥! 끔찍한 훈련!
차라리 고문에 가깝다!
상황은 여성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으으…….”
“아아…….”
“언니, 힘들어요.”
“그러게…….”
지연과 혜경은 여성인 만큼 남자들보다는 훈련을 약하게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시무시한 훈련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떠올랐던지.
그러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눈앞에서 악마처럼 행동하는 에이리 덕분이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몸매 덕분!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에이리 언니가 이렇게 무서울 줄은…….”
“나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둘은 한숨을 쉬었다. 같이 파김치가 되어 있던 재철 일당이 외쳤다.
“악마야!”
“괴물이야!”
“그런 악독한 면모가 있다니.”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르는 거야.”
강석이 몸살에 시달리는 몸을 주무르며 말했다.
“강민한테 들은 얘기에 따르면 에이리 누나는 기사단장이었다고 하잖아. 그러면 이렇게 흉악한 교관인 것도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모두 그럴 법하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장이라면 한국에서는 훈련 교관쯤 될 것이다. 훈련과정에서 훈련생들에게 흉악하게 구는 건 그걸 생각하면 별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걸 앞으로 몇 달이나…….”
“그래도 주말만 하니까…….”
“어휴…….”
모두 혀를 내둘렀다. 평일에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 만큼 무리지만 주말에는 꼬박꼬박 훈련에 참가해야 했다.
그런데 혜경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있었어.”
“뭐가요?”
지연이 궁금한 듯 물었다.
혜경이 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
“아.”
지연은 놀란 표정이 되었고, 자신의 팔도 확인한 다음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재철 일당과 호성, 강석이 호기심을 느꼈다.
“뭘 자기들끼리만 놀라요.”
“그래요. 우리도 설명 좀 해 줘요.”
지연이 웃으며 설명했다.
“피부가 안 상했어.”
“응. 이렇게 힘들게 움직였는데.”
혜경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었다. 두 사람은 굉장히 열심히 훈련을 받았고, 햇빛도 받았지만, 피부는 더욱 탱탱하고 매끈해져 있을 뿐, 상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호기심을 느끼고 남자들도 확인했다.
“그런가?”
“어디?”
“잘 모르겠는데.”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움직였다. 잘 실감이 안 났다.
호성이 혀를 차며 물었다.
“평소 자기 피부가 어땠는지는 기억하고 있냐?”
“뭐 그런 건 아니지만.”
확실히 남자들은 자신의 피부 같은 건 신경 안 쓴다.
반면에 여자들은 사소한 차이에도 민감!
“어쨌든 열심히 하면 미용에 커다란 효과가 있다는 건 확실해 보이니까.”
“네. 열심히 해야겠어요.”
남자들이야 어쨌든 혜경과 지연은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에이리를 안다. 그녀의 초절륜한 몸매도. 그런 훌륭한 롤모델이 있는 한 효능은 의심할 수 없다!
***
강민은 세나, 그리고 에이리를 데리고 근처의 패밀리 레스토랑에 와 있었다.
종업원은 물론이고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신기한 듯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리와 세나가 너무 아름다웠으니까!
하지만 남자들은 안도하고 있었다.
강민이 저런 미인을 둘이나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절대 애인은 아니란 소리!
그러니 강민을 두고 저런 미인과 사귄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매우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 시선은 무시한 채 강민은 에이리와 세나에게 말했다.
“항상 고마워.”
“고마우면 성의 표시를 자주 하라고.”
에이리가 불평했다.
“음, 그래야지.”
“이왕이면 옆에 누가 하나 더 있는 상황도 피하고.”
에이리가 옆을 흘겨보며 한 번 더 불평했다. 물론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세나였다. 강민은 멋쩍게 웃었다.
“그건……. 둘 다 수고했으니까.”
세나가 코웃음을 쳤다.
“한 달이나 강민을 혼자 차지했으면 욕심을 그만 부릴 줄도 알아야지.”
“너도 휴가 때 같이 같잖아.”
에이리는 곧장 반격!
“그건 일주일도 안 됐다고.”
“자자, 싸우지 말고.”
강민이 싸움이 심화하기 전에 얼른 끼어들어 말렸다. 둘은 투덜댔지만 좋은 때라 싸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이고 평화로운 식사로 돌아갔다.
“음, 오랜만에 이렇게 셋이서 식사하는 것도 좋네.”
“그래. 옛날 생각난다.”
“옛날이라……. 나는 싸우던 것밖에 기억 안 나는데.”
강민은 잠시 과거를 생각하고 그리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과거는 언제나 피칠갑이 되었던 모험의 순간들. 이런 평화로울 때가 과연 있었던가 싶은 것이 사실이다.
에이리와 세나가 동시에 매서운 표정으로 그를 비난했다.
“분위기 없긴.”
“저래서 욕을 많이 들었지.”
“웃.”
강민은 말문이 막혔다.
속으로 쟤들은 이럴 때만 쿵짝이 아주 잘 맞더라며 불평했지만, 입 밖으로 그런 생각을 꺼내진 못했다. 그러면 한층 더 욕먹을 거란 사실이 명백했으니까!
강민은 화제를 돌려 물었다.
“어흠, 그런데 현재 우리 펀드가 얼마 정도 되지?”
“미국 것까지 합치면 천 오백억 정돈데, 한국에서만은 이백억 좀 넘기는 정도지. 내년까진 삼백억 만들 수 있어. 왜, 쓰려고?”
세나가 물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묵혀두고 불리기만 해선 의미가 없잖아. 미국 쪽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맞춰서 한국에서도 작게나마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음……. 좀 더 불리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한데, 네가 그러고 싶다면야.”
세나는 아쉽게 말했다.
사실 그녀의 공격적인 주식 투자는 수익이 매우 좋아서 매년 수익률이 50%에 달한다. 물론 규모가 커지면 그 수익을 유지할 수 없겠지만 한 천억까지는 별문제 없이 그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럼 어떻게 하려고?”
“돈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신분이 없잖아.”
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장갑맨은 돈을 쉽게 사용할 만한 신분이 아니다.
또 강민으로서도 그건 마찬가진데, 그는 한 것이 없이 너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섣불리 움직이면 많은 시선이 그에게 쏠린다.
“그야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알아서 하라고 해야지.”
“그러면 좋은 일 하는 사람을 찾아보고 그 사람들에게 돈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할 거야?”
에이리가 물었다.
“일단은 그게 안전할 것 같아.”
“하긴.”
어차피 강민은 사익을 위해 돈을 쓰고 싶은 게 아니다.
그러니 신분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찾게 된다면 돈을 활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좋은 일에 쓰라고 맡기고 관리 감독을 하는 정도로 충분하니까.
“좋은 사람이 있을지 알아보도록 할게.”
“응. 몇 명 후보를 찾아보고, 세나가 보고 제일 괜찮다 싶은 사람이 발견되면 연락해줘.”
“그래.”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갑자기 세나와 에이리가 서로를 마주봤다.
“그러면……. 자, 가위바위보!”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에이리가 보.
세나가 묵.
에이리는 양손을 꽉 쥐며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좋았어!”
“아! 다시 해!”
세나는 억울한 듯 외쳤다.
물론 에이리는 코웃음!
“한번 결정 난 승부를 내가 취소할 이유가 대체 뭐야!”
“이익!”
세나는 분해서 이를 갈았지만 에이리의 말이 옳았다. 자신이라도 같은 상황에서 결코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민이 의아하게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걸 해?”
“그야 오늘 밤 너를 차지하는 게 누군지를 결정하려는 거지.”
에이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
“커흠.”
강민은 헛기침을 했다.
세나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이런 미인 둘이 사랑해 준다는데 좀 더 굽실거리고 고마워하라구!”
“그건 뭐. 항상 고맙게 여기고 있어.”
그리고 강민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저런 미인들이 내 여자란 말이지!’라고 하는 기쁨과 뿌듯함이 함께 담긴 자랑스러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세나와 에이리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눈빛이 음흉하다!”
“뭐 그쪽이 더 낫지만.”
그리고 두 사람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