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하지만 세나는 경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천천히 이끌어 올리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마약에 중독된 기득권층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을 막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가.”
“그러니 돌아가면 나를 응원하고 돕도록 해!”
“뭐……. 알았어.”
잘은 모르겠지만 세나가 이런 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나 싶어서 강민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동안 지연이 강민에게 왔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지연 역시 눈부시게 예뻤다. 에이리나 세나에 비하면 빠지는 부분이 있긴 해도 역시 그녀도 절세미인이라고 말해도 문제가 없을 수준!
“수영 안 해요?”
“아, 먼저 하고 계세요. 저는 좀 쉬다가 들어가려고.”
“그러시군요.”
지연은 아쉬운 얼굴을 하고는 먼저 바다로 향했다.
수영복을 입은 늘씬한 뒤태가 보였다.
“음. 좋군.”
강민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세나가 분노로 눈을 번쩍였다.
“뭐가 좋다는 거지?”
“어흠, 그냥…….”
강민이 모르는 척하려 했지만 세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디 애인을 옆에 두고!”
분노한 세나의 손이 강민의 볼을 꼬집었다.
“아야야…….”
강민의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히도록 아프게 꼬집은 다음에야 세나는 손을 놓았다. 그리고 조금 후련해진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착한 애이기는 해.”
“그렇지?”
세나는 강민을 째려봤다.
“너 같은 사악한 뱀의 독아에 걸리면 안 되는데.”
“내가 뭐가!”
“아아, 네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건드렸더라.”
“그건 초기의 일이지.”
강민이 멋쩍게 말했다.
모험을 시작하고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강민에게 접근하는 여자들도 많아졌다.
강민은 대체로 거부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고등학생.
남자는 본래 성욕이 왕성하지만, 그때는 한층 성욕에 불타오르던 시기. 아름다운 여성이 스스로 안기러 온다는데 거부할 리가.
미인을 한껏 안았다.
그 때문에 겪은 곤욕이 여러 차례!
“됐고, 미국에 갔다 와서 생각이 많아진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었어?”
세나가 물었다.
“실은 미국 대통령을 만났거든.”
“호? 그래?”
세나도 흥미를 보였다.
이 이야기는 강민단원들에게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응. 그 사람이 부탁을 하더라고.”
“뭐였는데?”
세나라면 말해도 상관없다.
그녀는 강민과 영혼을 나누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동료이자 애인이다.
“중동에 테러리스트 지휘관 몇 명을 암살해 달라고.”
“아아 강민도 다 됐구나. 그런 정치적인 투쟁에 고민을 다 하고!”
세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민의 강대한 힘은 정치적인 방식으로 이용당하기 쉽다. 그렇기에 과거 모험을 할 때도 특정 국가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이익을 위해 암살을 고민한다니.
그런 원칙이 깨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강민은 서둘러 변명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 그놈들 진짜 나쁜 놈들이긴 한 거 같더라고.”
“흠……. 그럼 좀 알아봐 줄까?”
세나가 제안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이해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한 원칙을 초월할 정도로 실질적으로 쳐부숴야 할 대상이 악당이라면 꼭 이용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충분히 조사해볼 가치가 있다 싶었다.
“그러면 고맙지.”
“좋아. 대신 보수로 나랑 좀 많이 놀아줘야겠어.”
세나가 말했다.
강민은 웃었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온 거 아냐.”
“그렇긴 하지.”
둘은 느긋한 표정으로 함께 바닷가를 바라봤다.
기분 좋은 여름날이다!
***
그날 강민단원들은 6시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호성네의 건물 중 하나였다. 3층짜리로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었다.
다들 1층 거실에 모였다.
남자들은 옷을 갈아입고 거실에 벌러덩 누웠다.
“아, 잘 놀았다.”
“그래.”
“눈요기도 잘했고!”
“쯧쯧.”
호성이 눈요기에 기뻐하는 재철 일당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누워있던 강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물었다.
“너는 못 보던 여자랑 대화하던데 뭐였어?”
“아 별거 아니고 그쪽에서 좀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래서.”
호성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뒹굴거리고 있던 재철 일당에게는 결코 별거 아닌 내용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프링처럼 튕겨 일어나서는 발작했다.
“뭣!”
“뭐야 그건!”
“반칙이잖아!”
“좋다는 걸 어쩌겠어. 정중히 사양했지만.”
호성은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였다.
강석이 아쉬운 표정이 됐다.
“아깝게. 미인이던데.”
미인이라는 말이 한층 재철 일당의 열등감을 자극했다.
“미인이라고!”
“이럴 수가!”
“나쁜 놈!”
그들은 일제히 호성을 매도했다.
“어허, 거절했다니까.”
재철 일당에게는 결코 먹히지 않는 변명이다.
“미인의 유혹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쁜 놈이야.”
“그렇지.”
“악당이고말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억울하고 분해서 재철 일당에게는 그게 당연했다. 그들은 이제 일제히 호성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죽일 놈.”
“죽일 놈!”
“뭐 이런 것들이…….”
호성은 한숨을 쉬며 이놈들을 어떻게 상대하나 하고 생각했다.
강석이 열등감의 덩어리들과 호성의 다툼을 중재하며 물었다.
“자자, 됐고. 왜 아깝게 거절했어?”
“여기 온건 강민단원으로서니까 그런 사람하고 만나면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잖아.”
“기특한 소릴.”
멀찍이 앉아 듣고 있던 강민이 감격했다.
그러나 재철 일당은 코웃음을 쳤다.
“미인을 앞에 두고 강민단 따위가 무슨 소용이야!”
“그러게!”
“예쁘다는데!”
그것이 당연한 남자의 반응!
지구 멸망보다 미인이 소중하다!
강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철 일당에게 분노의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다시 말해 보시지.”
“아니, 말이 그렇다고…….”
그러면서 재철 일당은 비굴하게 웃으며 굽실거렸다.
강민이 그 꼴을 피식 웃으며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이건 이 녀석들 말이 맞아. 마음에 들면 연락해 보지 그랬냐. 강민단이라고 해서 여기서 꼭 해야 되는 행사가 있던 것도 아닌데.”
호성은 대수롭잖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긴 한데, 그 정도 여자는 또 쉽게 만날 수 있으니까.”
호성이 한 말이 비수처럼 재철 일당의 가슴에 박혔다.
“억!”
“이…… 이…….”
“나쁜 놈!”
쓰라린 가슴을 부둥켜안고 재철 일당이 호성을 욕했다.
“하하하하!”
호성은 승리자의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이번만큼은 강민도 재철 일당을 말릴 수 없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 그걸 보고 있던 혜경이 말했다.
“남자들은 신이 났군.”
“그러네요.”
지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 주제가 좀 저속하긴 해도 그게 또 자연스러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혜경은 지연을 보며 그녀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며 말했다.
“그런데 지연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몸매가 참 좋더라.”
“에이, 혜경 언니도 대단하시던데요. 특히 가슴이…….”
볼을 붉히고 지연이 부러운 듯이 말했다.
혜경은 가슴이 크다.
C컵!
혜경의 자랑거리였다.
“호호, 그래? 그렇지만 허리가 좀……. 너는 허리가 매끈하잖니.”
혜경은 부럽게 지연을 바라봤다.
그녀의 허리는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선을 만들고 있었다. 지연은 기쁜 듯 웃었다. 둘은 서로의 가슴과 허리를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슴과 허리는 서로 등가 관계인 모양이에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둘은 같이 한숨을 쉬었다.
이어 지연이 부러운 듯이 말했다.
“하지만 에이리 언니는 안 그렇죠.”
“그건 반칙이야!”
혜경은 분노했다.
지연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에이리를 처음 본 순간부터 느꼈다.
이건 사기라고!
아름다운데다 키도 크고, 늘씬하고, 가슴도 처지지 않은데다 크다. 또 허리는 어떤가! 그런 몸매가 대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미모!
그런 여자가 있음으로 인해 남자들의 눈이 높아지고 여자들의 열등감을 폭발시킨다는 점에서 전 인류 여성의 적이라 할만 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반칙이 하나 더 있지.”
혜경은 억울한 눈빛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게요.”
지연도 뻔히 안다는 듯 같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둘이 바라보는 쪽에는 세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