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소수의 의견이지만 핵보다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핵은 대비할 수 있지만 장갑맨은 대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글라스는 진지하게 말했다.
“현행 경비 체계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지 않은가?”
“벙커에만 살 거라면 말입니다.”
더글라스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
티모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격에 십 톤의 힘을 낼 수 있는 초인.
현재 대인 병기로는 대부분 충분한 저지력을 발휘할 수 없고, 발견조차 힘들다. 이런 인간은 원하면 언제든 미국 대통령조차 살해할 수 있다.
핵폭탄 이상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그러면 그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고 또 쓸모 있는 존재란 말이군.”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더글라스는 강력하게 주장했다.
티모시는 낮게 중얼거렸다.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라…….”
“물론 그가 우리 적이 될 리는 없습니다만…….”
장갑맨은 특정 국가에 소속된 공작원이 아니고 테러리스트도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만화 속 슈퍼 히어로에 가까운 사람이다.
지금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도 기아나 빈민, 교육 사업에 쓸 돈을 모으기 위해서란 이유에서였다.
미 재무부는 장갑맨이 비밀리에 모으고 있는 돈에 대해 추적한 적이 있는데, 표면상 나온 이유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목적으로 돈이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미국을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 때문에 미국과 싸우려들 리는 없다.
“그건 다행이지.”
“최대한 아군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적이 아니라 슈퍼 히어로에 가까운 핵폭탄급의 존재라면 당연한 결론이었다.
“동의하네.”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기를 바랍니다.”
더글라스는 단언했다.
티모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대통령께 말씀드리지.”
“기다리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진지한 표정이었다.
위협 아닌 위협.
희망 아닌 희망.
장갑맨의 힘은 그런 것이었다.
***
강민과 에이리가 훈련장을 빠져나왔다.
주변에서 촬영에 열중하던 내셔널의 촬영 팀이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강민도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에이리와 함께 휴게실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가자 안에는 종찬과 유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잘 되어가고 있나요?”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선 물었다.
종찬과 유만에게는 여러 가지 수익 사업의 관리를 맡겨두고 있었다.
“물론이죠. 곰 사냥 다큐멘터리는 벌써 예약만 오백만 장을 넘겨서 다큐멘터리 계열 영상물의 새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촬영한 모의전투 기록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서 개설된 공식 사이트는 매일 트래픽 폭주 상태입니다.”
유만도 싱글벙글한 얼굴로 말했다.
오백만 장의 블루레이 판매!
다큐멘터리란 걸 생각하면 놀라웠다. 그야말로 장갑맨의 파워를 보여주는 수치!
“다행이군요. 그만한 수익이 생겼으면 재단 만드는 것도 잘 되고 있겠지요?”
둘에게는 수익 사업은 물론 기부재단 설립 문제 같은 것도 맡긴 상태였다. 무엇보다 믿을만하니까.
그들은 인성이 훌륭해서 믿을만하다기보다 장갑맨의 무서움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절대 배신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네. 연락한 곳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게 제일 중요하죠. 놀러 온 것도, 돈 벌러 온 것도 아니니까.”
종찬과 유만은 그렇지 않았지만 분명 강민의 입장에서는 돈이나 명성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에이리가 근처의 의자에 앉으면서 물었다.
“후, 그러고 보면 이제 끝이지?”
“벌써 그렇게 됐네.”
강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로써 미국에 온 지 한 달에 가까웠다. 미리 계획했던 일정은 모두 소화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때였다.
“한국에 돌아가시려고요?”
“날짜가 됐으니까요.”
종찬이 아쉽게 말했다.
“다시 생각해보실 수는 없으신지……. 미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매체와 단체에서도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이 산더미처럼 있는데…….”
족히 수백 통의 초청장이 와 있었다.
이름도 쟁쟁하다.
록펠러 재단 같은 곳은 물론 UCLA 각 대학, 그리고 구글이나 애플같은 초대형 글로벌 기업까지! 그들 모두 장갑맨을 초청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강민은 딱 잘라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제 거절해 주세요.”
“그렇습니까…….”
“어쩔 수 없지요…….”
종찬과 유만은 정말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강민이 싫다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초청들 가운데 하나만큼은 그런 식으로 거절하기 어려웠다. 종찬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딱 한 사람만 만나 주십시오.”
“한 사람만?”
“네. 이분은 진짜 중요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종찬이 하는 말에 강민은 잠시 고민했다. 그는 에이리를 돌아보며 의견을 구했다.
“어떻게 할까.”
“딱히 바쁜 건 아니잖아?”
에이리의 생각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말이 옳았다.
“그렇긴 하지.”
강민은 종찬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그분을 만나 보도록 하죠.”
“네. 곧 준비하겠습니다.”
종찬은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어딘가에 연락을 했다.
“저렇게 열심히 자리를 준비하다니, 누굴까?”
“글쎄…….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지.”
강민의 답에 에이리가 피식 웃었다.
“그런 대답은 열 살짜리 애도 하겠다.”
“쳇, 오십 살 넘은 할아버지도 그다지 좋은 대답은 못할걸.”
그런 잡담을 나누면서 강민과 에이리는 누굴 만나게 될지 생각했다.
***
강민과 에이리는 어느 건물로 안내되었다.
훈련장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시골 마을에 있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허름한 외관에 걸맞지 않게 건물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철통같이 경호하고 있었다.
강민은 건물 안에서 복도를 따라 걷다가 어느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 건물은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가 지키고 있었다. 그는 강민과 그를 데려온 사람들을 보고 말했다.
“잠시만 검문…….”
“아니 됐네. 그 사람은 검문 같은 게 의미가 없으니까.”
강민을 이곳까지 안내한 사람이 말했다.
그는 강민이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행동거지에서 군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호원들은 당황하며 반문했다.
“그렇지만…….”
“막을 수 있겠나?”
안내한 사람이 말했다.
경호원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기야 강민에게 총이 있거나 없거나 검색한다는 것은 그냥 시간 낭비다. 그는 맨주먹으로 맹수를 때려잡았다.
인간의 육체는 그 앞에서 두부나 마찬가지였다.
“들어가지요.”
안내한 사람이 문을 열고 말했다.
강민과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모시고 왔습니다.”
“반갑…… 어!”
인사를 하는데 등을 돌린 상태로 창밖을 보던 방 안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보고 강민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만나서 반갑소. 미스터 글러브.”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흑인의 중년 남성이었다.
“당신은…….”
강민에게도 익숙한 얼굴이다.
에이리가 궁금한 듯 물었다.
“누구야? 유명한 사람이야?”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사람이지. 미국 대통령이니까.”
지금 그들에게 웃으며 인사해온 흑인.
그는 현재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을 관리하는 대통령이었다.
사실상 세계 최고의 권력자!
오마바!
에이리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미국 대통령이 저 흑인이야?”
“응. 저 사람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지.”
간단히 설명하고 강민은 손을 내밀었다.
“저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악수했다. 대기하고 있던 통역사가 다가왔다. 그들은 준비되어 있던 의자에 서둘러 착석했다.
특유의 밝은 웃음을 보이면서 오마바가 말했다.
“좋은 일을 하시느라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죠.”
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도 대통령은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강민이 말했다.
립서비스가 아니다.
지난 공화당 정부 당시에 미국이 세계적인 꼴통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뒤처리에 여념이 없는 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강민은 응원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범죄자인데 응원하셔도 괜찮습니까?”
강민이 물었다.
오마바는 가볍게 웃고는 말했다.
“아픈 걸 지적하시는군요. 그래서 이 만남은 비공식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러면 무슨 일로 저를 보려 하신 것인지?”
오마바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