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장갑맨이 가는 곳은 어디나 호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붙어 열광했고, 무수한 방송국의 카메라와 기자들이 쫓아다니며 그의 한마디를 얻으려고 애썼다.
더구나 그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자선모금을 모으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고 했으니 더욱 화제가 될 법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열광을 접하기만 해도 흥분하고 말 정도.
하지만 강민은 무척 침착하게 그런 환대를 접했는데, 사실 이보다도 더한 환호를 과거에 일상적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세계를 구한 용사!
그것이 전직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몇 개의 프로그램에 나서서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대학 강연장 같은 데에서 대학생들과 만나며 인지도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모인 기부금의 총액은 삼천만 달러가 넘어서 과연 미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우선 그것을 미국의 몇몇 세계적인 자선 센터에 맡기고 일부는 연구 자금으로, 또 자연 보호 활동 보조비로 사용하라고 다큐멘터리 촬영 때 도움을 받았던 제임스에게 돈을 주었다. 제임스는 고릴라 서식지를 아예 사들여서 그들을 보호할 수 있을 거라면서 무척 기뻐했다.
그리고…….
***
사막과 같은 황무지를 커다란 차 두 대가 달리고 있었다.
그 차에 타고 있는 것은 강민 일행!
차가 두 대인 것은 둘 중 하나가 내셔널의 촬영 팀이기 때문이다.
끝도 없을 것처럼 길게 뻗은 도로를 차가 열 시간도 넘게 달려서야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위협적인 강철 펜스로 둘러친 광대한 시설이었다.
차 안의 창문을 통해 군사 시설의 모습을 얼핏 확인하고 에이리가 외쳤다.
“여긴가!”
“그렇지.”
“그런데 여긴 정말 땅이 넓군. 도시에서 지내던 게 언제라고 다시 사막이람.”
에이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처음 차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아주 번화한 도시였다. 그런데 어느새 이런 사막 같은 지형이 나왔고, 인가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가 살던 곳에서도 다양한 지형과 넓은 땅이 있었지만 한 나라가 이렇게까지 큰 땅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땅이 넓으면 관리가 힘들기 때문에 가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한 나라가 가진다기엔 믿기 힘들 정도로 광활하긴 하지.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지만.”
러시아, 중국, 미국은 그 나라 사람이라도 고향을 벗어나기 힘들 만큼 땅이 넓다.
“보급 문제만 해결된다면 훈련장으로 참 좋은 곳이긴 해. 시끄럽다는 불만도 없을 테고.”
에이리가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이 주변에는 인가도 없고 땅도 주로 평지여서 군사 훈련에 사용하기에 아주 좋았다. 강민이 답했다.
“미군은 쇼미더머니의 극치를 보여주는 보급으로 유명하니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곳이 훈련장으로 좋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빛을 발한 미국의 보급은 거의 전설이 되었다.
다른 나라의 부대에서 마른 빵을 먹으며 어렵게 전쟁을 수행할 때 스팸과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그것도 싫다고 투덜대던 미군 병사들!
미군의 진정한 힘은 보급일지도 몰랐다.
마치 초한지의 유방군처럼.
“그런 모양이군.”
차량은 검문과 확인을 거치고 군인의 안내에 따라 훈련소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광대한 공간에 건물을 세워둔 특이한 곳으로 가게 됐다. 거기서 강민 일행은 차에서 내렸다.
곧 군인 한 명이 와서 강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강민은 그의 손을 자아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스터 글로브. 저는 데이크라고 합니다.”
“저야말로.”
둘은 통역을 거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내셔널 팀과 함께 해병대원들과 모의 전투를 하신다고 해서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데이크라는 군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팀 운용 가운데 저격은 뺐습니다. 그건 아무리 당신이라도 피해낼 리 없으니 말입니다.”
“그럴 지도요.”
강민은 마스크 안쪽에서 고소를 지었다.
저격이라.
장거리 저격이라면 분명 위험할지도 몰랐다.
이세계에서라면 저격탄이 아니라 핵폭탄이라도 해볼 만하다 생각했겠지만, 지구에선 그렇지가 않다. 총알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그런 걸 급소에 맞으면 역시 상처를 입을 우려가 있었다.
데이크는 곧이어 강민을 향해 친근하게 경례했다.
“그러면 세계 최강의 힘을 기대하도록 하지요.”
“네.”
“저희도 세계 최강인 부대의 힘을 기대 하겠습니다.”
어느새 옆으로 와 있던 에이리가 기대하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데이크는 자신만만했다.
하기야 곰 따위는 현대병기로 무장한 병력 앞에서는 무력한 짐승에 불과하다.
***
훈련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에이리는 주변을 둘러봤다.
시가지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었다. 실제 건물을 모두 만들어둔 채 사용하고 있었으니 본격적인 게 당연했다.
“시설이 아주 본격적이네. 다른 데서도 이래?”
“아니. 미군 특기지.”
강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든 시설을 실제 스케일로 만들어 훈련에 사용한다!
미군이나 가능한 짓이다.
돈도 돈이지만 공간도 확보하기 힘들고, 관리도 힘들다.
그야말로 천조국 스케일!
“와, 다른 나라가 못 이길만하다.”
“같은 조건이라면 미군이 이기는 게 당연하지. 훈련 설비도 좋겠다, 장비도 좋겠다, 훈련 기간도 많겠다, 월급도 센 데다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지.”
미군은 이렇다.
병력의 질이 우수하다.
장비의 질이 우수하다.
보급의 질이 우수하다.
사회적인 대우가 우수하다.
질이 높고 보급이 잘 되고, 사기까지 높다는 소리다.
괜히 세계 최강이 아니다.
“후반에 한 말에 원한이 가득한 거 같은데.”
에이리가 지적했다.
강민은 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도 한국 청년이야! 시급 300원에 부림을 당하는 장병들을 생각하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지! 나라 지키러 갔지, 시급 300원에 노가다 하러 갔냐!”
정확히는 350원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다.”
한국군의 비극에 대해서는 한국에 있는 동안 에이리도 들은 적이 있다. 노예도 아니고 노예급의 대우를 한국 남자들이 2년이나 받아야 한다는 데 놀랐다.
“그렇다고 군대 나와 봐야 좋은 소리를 듣나? 살인기계라지 않나.”
강민이 계속 투덜거리자 에이리가 지적했다.
“아, 근데 넌 살인기계 맞잖아.”
“자기는 아닌 것처럼.”
강민이 에이리를 째려보며 말했다.
에이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을 알려줬을 뿐이야.”
“내가 예전엔 좀 그랬지만 여기 와선 살인을 안 했다고.”
좀이 아니다.
거의 학살자 소리를 들어도 좋을 수준.
“살인보다 더한 짓은 가끔 했지만.”
“어쨌든 그런 형편이니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있나!”
강민이 얼른 본론으로 돌아오며 외쳤다.
에이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가산점도 안 준다지? 사회적 대우가 너무 열악하다 싶긴 해. 아 그러고 보니 넌 군대 어떻게 할 거야?”
강민은 코웃음을 쳤다.
“그야 패스지.”
“그래?”
“할 일도 많은데 어떻게 이 년이나 그런데 처박혀 있냐. 그런데 썩고 있느니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는 게 한국은 물론 인류를 위해 훨씬 이득이다.”
강민이 하루를 놀게 되면 잡아 죽여 마땅할 범죄자가 하루 평균 둘 정도로 사회에 돌아다닌다. 금액으로 따져도 현재도 수백만 원 이상 어려운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자금이 사라진다.
“하긴. 그러면 단원들도?”
“그건…… 두고 봐서. 한 일이 년 뒤까지 같이 돌아다니며 써먹기 적합한 수준이 되어 주지 않으면 군대에 가야겠지.”
강민 자신은 좋은 일을 한다고 군대에서 낭비할 시간이 없다지만 다른 단원들까지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아직은 별로 도움이 안 되니까.
꾸준히 성장시켜보고 쓸 만한 수준이 되면 같이 일하면서 군대에서 빼면 모를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흠, 그렇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중에 또 다른 군인이 뛰어와서 말했다.
“시간이 됐습니다.”
“시작하면 되나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에이리가 흥분해 물었다.
그는 들고 온 옷을 내밀며 말했다.
“먼저 이 옷을 입어 주시기 바랍니다.”
“뭔가요?”
에이리가 물었다.
군인이 꺼낸 옷은 두꺼워 보이는 윗옷이었다.
“페인트탄은 너무 느려서 레이저에 반응하는 센서가 들어있는 옷입니다. 실제 방탄, 방검 능력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랜드워리어 시스템을 훈련용으로 바꾸어 장착시킨 옷인 모양이었다.
실제 실탄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실전 같은 박력은 부족하지만, 그것만 해도 전투력을 측정하기엔 충분하다. 둘은 옷을 얼른 챙겨 입었다.
“그럼 신호하는 순간부터 시작입니다.”
“알겠습니다.”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은 떠나갔고, 곧 신호를 보냈다.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둘은 전장이 된 훈련장을 달리며 대화했다.
“자, 시작할까.”
“좋아. 나는 왼쪽.”
“그럼 나는 오른쪽을 맡지.”
“누가 먼저 끝내는지 시합할까.”
“좋지!”
대화는 거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