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모두 낄낄거리며 게시글 내용을 비웃었다.
글의 내용은 뻔한 레퍼토리였다.
한국이 조작했다느니 날조했다느니 돈으로 매수했다느니 하는데, 그 말의 10%만 사실이라 해도 한국은 역사에 존재했던 그 어떤 나라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외교력을 가진 국가임에 틀림없었다.
“자부심을 가져야겠어!”
“중국 따위 무서울 게 뭐야! 우리가 대장이지!”
“으하하하!”
“그렇게 웃겨?”
혜경이 웃음소리를 듣고 찾아와 구경하고 궁금한 듯 물었다.
재철이 얼른 소개했다.
“아, 한번 보세요. 저것들 정말 제정신이 아니라니까요.”
“방사능이 저렇게 무섭다니까!”
후쿠시마가 박살 나고 일본 전역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일본을 비꼬는 이들은 방사능을 자주 입에 올렸다.
“과연!”
“그럼 뇌세포가 박살 나서 저런 뻘소리를 진지하게 하게 된 장애인을 놀리면 못 쓰는 건가.”
“그러게 말이다.”
그러면서 모두들 혐한들을 비웃었다.
갑자기 호성이 좋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야, 이럴 게 아니라 이걸 번역해서 다른 나라에도 공유하는 게 어때?”
“그럴까?”
“우리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개그다!”
“특히 미국 애들한테 보여주고 싶어!”
“동감이야. 미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가 최강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한국이 최강국이란 걸 알면 자존심이 많이 상하겠지!”
모두들 동의했다.
이후 그들은 열심히 그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서 각국의 대표적인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글은 장갑맨에 대한 드문 비판인데다 그 비판이 너무 엉터리라 금방 화제가 되었다. 무수한 이들이 일본을 비웃었고, 심지어 쟈포니즘에 빠진 양키 오타쿠들까지 그 놀라운 병신맛에 실드를 칠 생각을 못하고 비웃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결국 혐한 탓에 일본은 심한 망신을 당하게 됐다.
***
강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물론 마스크에 장갑을 낀 상태였다.
“짜증나게!”
“문제 있습니까?”
옆에서 쉬고 있던 종찬이 놀라 물었다.
강민은 열린 창문으로 손가락질을 하고 말했다.
“저기.”
종찬이 그가 가리킨 쪽을 보았지만,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강민의 눈에는 무언가 확실히 보였던 듯, 그는 주변에 있던 라이터를 하나 들더니 창문으로 냅다 던졌다.
“에라이!”
라이터는 쏜살같이 날아갔다.
악!
저 멀리 건물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사람이 쉬는데 말이야.”
강민은 짜증스러운 어조로 말하고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멀리서 고배율 카메라로 이쪽을 찍고 있던 파파라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종찬은 다시 창문 너머를 봤다. 건물이 작게 보였다.
그 외에 거기 사람이 있다는 것 같은 건 따로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장갑맨은 맨눈으로 알아봤다.
“저게 보이나요?”
“안 보이는데 맞출 수 있겠습니까.”
종찬은 강민의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뻔한 질문이다.
눈으로 직접 보고서도 잘 믿기지 않아 다시 묻는 것뿐. 하지만 사실 시력은 강민이 다른 인류에 비해 그렇게까지 뛰어나지 않은 부분이다.
속도나 근력, 청각이나 후각은 인간이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수준에까지 도달할 수 있지만, 시력만큼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 중에서도 간혹 7.0쯤 되는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몽고 초원 같은 곳에서 산 사람들이 그렇다.
물론 강민은 그보다도 시력이 뛰어나지만 다른 신체 능력에 비하면 떨어진 편이었다.
그리고 사실 눈은 그 이상 좋아 봐야 큰 쓸모가 없다.
지구는 둥글기에 멀리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활용도가 제한된다.
또 현대의 각종 기기에 사용되는 화면은 작은 픽셀이 모여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눈이 너무 좋으면 화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작은 픽셀 덩어리로 보인다.
때문에 강민은 구형 TV나 모니터의 경우 사용할 수가 없었다.
사실 요즘 스마트폰 화면도 강민의 눈으로 보면 화면이 깨끗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파파라치가 극성이군요.”
“일주일 만에 열 놈은 잡은 것 같습니다.”
종찬의 말에 유만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스타가 되었다는 뜻이죠.”
“이런 건 별 필요 없는데.”
강민이 투덜댔다.
특히 그는 파파라치 같은 게 따라붙으면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다.
정말 불편하다!
“어쩔 수 있겠습니까.”
“네. 윈프라 쇼 이후로 비슷한 프로그램은 물론, 각종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정말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신문이니 뉴스에서 떠드는 것은 물론이고요. 학술 단체에서도 꼭 좀 연구를 하고 싶으니 연락을 달라는 이들도 우글우글하고…….”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건 아니잖아요.”
일이 너무 많아 이제는 기쁘기보다 우울해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에이리가 말했다.
“그렇긴 한데, 이 정도일 줄은…….”
“과연 미국이라고 할까요. 정말 스케일이 큽니다. 한번 뜨니까 정말 어디까지 갈지도 모르게 뜨는 것도 그렇고.”
종찬이 감탄해 말했다.
“그러니 구글 같은 회사가 생기는 거겠죠.”
미국은 자본주의의 온상.
때문에 폐해도 많지만, 그에 따른 혜택도 크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성공의 기회! 기업이든 인물이든 능력이 있다면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
지금 그들의 이야기에 거론된 구글은 단 10년 만에 전 세계 인터넷 검색 시장을 지배했다.
혁신으로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힘과 기회가 미국에서는 언제든지 있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뻔하다.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은 대기업에게 강탈당하고, 그 개발자들은 한 10년 쯤 법정 투쟁을 하다가 결국 실업자로 노숙자 신세가 될 것이다.
혁신을 막는다면 그 어떤 거대 기업도 용서치 않는 반독점법! 그것은 한때 역사상 가장 큰 기업이었던 마이크로 소프트조차 조각내 버릴 정도다.
“그렇죠. 부러운 환경이긴 합니다.”
“부러워만 해선 의미가 없지만.”
그들은 투덜대며 미국에 대한 잡담을 나누다가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지……?”
“놀러온 게 아니니 재단 같은 거라도 만들거나, 아니면 있는 재단을 좀 도와주고. 그리고 미리 준비했던 대로 쇼를 몇 번 한 다음 돌아가는 거죠.”
강민은 간단히 계획을 밝혔다.
어차피 방학 동안에만 움직일 수 있다.
여러 가지 길게 할 수는 없었다.
“미국의 범죄자도 잡고 싶은데. 재밌을 것 같아.”
에이리가 아쉽게 말했다.
“그렇지만 그러면 미국에서도 우리가 범죄자가 될 테니……. 그건 여기 경찰들에게 맡기자고.”
“여기가 훨씬 스케일이 큰 것 같은데?”
강민의 말에 에이리가 투덜거렸다.
한국에서는 기껏해야 사시미 칼이나 꺼내는 놈들이 전부였지만 미국은 달랐다. 개나 소나 가지고 있는 총기! 심지어는 기관총이나 탱크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 미국 스케일.
때문에 범죄자들도 총기를 사용하는 일이 아주 흔했다. 에이리는 그런 가슴 뛰는 전투를 하고 싶었다.
강민은 난색을 표하다 말했다.
“뭐, 그러면 다음에 멕시코에 가자. 거기 범죄가 끝내줘.”
“그래?”
확실히 멕시코는 치안이 나쁘다.
단지 범죄가 많은 수준이 아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거긴 내전 상태다. 마약조직의 힘이 너무 강하고, 그들의 잔혹함이 상상을 초월해서 심지어 군대가 동원되고도 마약조직을 쉽게 소탕하지 못하고 있다.
“후아레스가 유명하지!”
“도시 이름인가봐?”
“응. 그쪽 마피아들이 무장도 철저하고, 쪽수도 많고. 또 진짜 나쁜 놈들이라 때려잡기 좋아.”
마약조직들끼리 싸워서 서로를 죽이고 그 대가리를 잘라 길거리에 전시를 하는가 하면, 자신들을 단속하던 경찰이나 검·판사를 잔혹하게 살해해 시체를 길거리에 내던지는 악당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 자기들 욕을 한다고 민간인들을 고문해서 죽여 본보기로 내버린 일까지 있었다.
“기대되는데!”
에이리에겐 그저 기대되는 적일뿐.
“아니면 이탈리아도 좋고.”
“가서 본 적 있어. 이탈리아 마피아 말하는 거지?”
“응.”
“거기서 몇 놈 때려잡긴 했었지.”
추억을 회상하며 에이리는 그리운 표정을 지었다.
이탈리아 마피아도 확실히 유명하긴 하다. 그리고 원조다. 마피아란 말 자체가 이탈리아에서 온 것이니까.
“그 외엔 소말리아도 좋고……. 아예 탈레반과 한 판 하는 것도 좋겠지.”
진정될 기미가 없는 헬게이트에 인류 평화를 좀먹는 망종 집단의 이름을 줄줄이 거론했다.
거론하면서 강민은 놀랐다.
지구에도 이렇게 마왕에 버금가는 개새끼들이 넘치고 있었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
“아, 듣기만 해도 두근두근한데!”
에이리는 아주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자금을 모으는 데만 주력하자. 에이리과 원하는 전투는, 본격적인 건 아니지만 잘하면 미군 해병대와 모의전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별수 없군. 그걸로 참을게.”
에이리는 아쉽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군 해병대와 싸운다는 건 세계 최강의 군대와 싸운다는 말과 같았다. 훈련 수준과 장비의 질에서 모두 세계 최강이니까.
종찬과 유만은 곁에서 그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