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오우…… 놀라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는군요. 당신은 그걸 정말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하하, 당연하지요.”
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못 믿겠다는 이들이 아주 많은 것이지요. 그래서 말인데, 여기서 확인시켜 주실 수 있나요?”
“아, 물론입니다. 그것 때문에 여기 나온 게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박수 부탁드립니다.”
성대한 박수 소리와 휘파람이 울려 퍼졌다.
윈프라는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놀라울 정도로 쉽게 응하셨는데요, 그러면 다른 분들을 소개하지요.”
그러자 강민이 들어왔던 무대의 문이 또 열리며 거기서 마른 체격의 늙은 백인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랫동안 공부에 전념하던 학자로 보였다.
윈프라가 소개했다.
“오늘 검증을 도와주실 운동 생리학자 윅 헉슬리 교수입니다.”
“반갑습니다.”
“어떻게 실험하실 건가요?”
윈프라가 물었다.
헉슬리가 어딘가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방송국 스태프 몇 명이 커다란 기계를 밀어 무대 안으로 들여왔다. 성인 남자 대여섯의 무게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기계였다.
그걸 보면서 헉슬리는 말했다.
“간단합니다. 공격의 운동량을 측정하는 거죠. 결국, 곰을 때려잡을 수 있을 만한 공격을 이 장갑맨이 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겁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할 수 있나요?”
호기심을 보이며 윈프라가 물었다.
그녀의 질문은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헉슬리는 곧장 답했다.
“전설적인 프로복서라면 주먹으로 일 톤의 충격을 낼 수 있습니다.”
“일 톤! 대단하군요.”
“대단하지요. 그러나 곰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볍게 툭 치는 정도의 충격에 불과할 테죠. 장난치는거라 생각할 겁니다.”
“박사님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헉슬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양손을 모두 펼쳐 보였다.
“열 배. 최소한 그 열 배는 되어야 일격에 곰을 죽일 수 있을 겁니다.”
“십 톤이군요!”
“코끼리나 낼 수 있는 힘이죠.”
코끼리가 십 톤의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본래 체중이 무겁기 때문이다.
특히 온몸을 돌진해서 내는 것이니 주먹이나 발처럼 한곳에 힘을 모아 파괴력을 크게 하는 방법도 쓸 수 없다.
“곰의 피부 두께와 근육의 강도, 그리고 뼈의 내구력을 생각하면 그게 최저선입니다.”
그리고 헉슬리는 장갑맨을 바라봤다.
사기꾼을 바라보는 눈길이었다.
강민은 헉슬리의 시선이 거북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운동학자가 21세기 내에 백 미터 달리기 9초의 벽이 깨진다고 하지도 못하는 판에 그런 걸 가소롭게 취급하는 인간이 나타나면 미친놈이나 사기꾼 보는 시선인 게 당연하다.
“좋습니다. 장갑맨, 자신 있나요?”
“나는 곰을 이미 사냥했는걸요.”
자신만만하게 답한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윈프라 역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른 사람들도 그에 따랐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기계 앞으로 갔다.
“그렇지요. 자 그러면 부탁드리죠.”
“물론입니다.”
강민은 기계 앞에 갔다. 기계는 크고 복잡했지만 결국은 펀치머신과 똑같았다.
중앙 부분에 때려야 하는 원형으로 된 부분이 있었다.
“시작할까요.”
윈프라가 말했고,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치세요.”
그녀의 지시와 동시에 강민은 강하게 발을 내디디며 주먹으로 중앙을 쳤다.
퍼억!
커다란 소리가 나며 기계 전체가 흔들렸다.
헉슬리는 그 소리만 듣고도 크게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슬리만이 아니었다.
방청객 중에서도 좌중을 압도하는 큰 소리에 놀란 사람이 아주 많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놀람이 약간 진정된 다음 윈프라가 물었다.
“얼마나 나왔나요?”
그들은 계기판을 확인했다.
전광디스플레이에 7033이라 찍혀 있었다.
“언빌리버블! 칠 톤이 나왔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헉슬리가 외쳤다.
동요한 방청객들의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칠 톤! 대단하군요. 인간은 일 톤밖에 안 된다고 했는데.”
“그렇습니다. 이건…… 이건 정말이지 상식을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헉슬리는 너무 놀라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전신이 떨릴 정도!
윈프라가 물었다.
“그렇지만 곰을 잡을 순 없는 것 같은데요.”
“네……. 그렇지만 칠 톤인걸요. 이것만 해도 그는 분명 믿을 수 없는 초인입니다. 나는 이제 예수가 부활했다는 걸 믿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이 칠 톤의 충격으로 주먹을 치는데…….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진 않군요.”
“그렇지만 십 톤은 아니죠.”
처음 헉슬리가 했던 말을 상기하며 윈프라가 회의적으로 말했다.
헉슬리는 망설일 것 없다는 태도로 설명했다.
“급소 같은 곳을 맞췄던 것일지도 모르죠. 노령의 곰이라 했으니 몸 이곳저곳에 상처도 있고 내장도 약해진 게 많았을 겁니다.”
“갑자기 호의적으로 변하신 것 같은데요.”
윈프라가 놀리듯이 말했다.
헉슬리는 분명 등장 초반에는 강민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믿지 않았습니다. 잘 만든 합성 영상이나 깜짝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지요. 그러나 눈앞에서 본 이상……. 칠 톤이든 십 톤이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인간의 한계라던 일 톤 따위를 아득히 넘어섰는데.”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때 강민이 말했다.
“잠시만요.”
“네?”
“잘못 친 것 같은데 다시 쳐 보고 싶습니다.”
읜프라는 즐거운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오, 그렇다면 어서 부탁드리죠.”
이어 그녀는 방청객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십 톤에 실패했던 장갑맨이 다시 시도하겠다고 합니다!”
박수 소리가 우레처럼 이어졌다.
“자, 다 같이 카운트다운을 하죠! 셋!”
“둘!”
“하나!”
모두 다 같이 하나 하고 외치는 순간 강민이 움직였다.
그의 움직이는 모습은 가히 전광석화!
퍽!
처음 때렸던 때보다 훨씬 큰 소리가 났다.
기계 전체가 박살 날 듯이 흔들렸다.
그리고 윈프라는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얼른 움직였다. 모두들 결과가 발표되길 초조하게 기다렸다.
“와!”
윈프라의 감탄!
이어 그녀는 정확한 수치를 공개했다.
“텐 사우전드, 트리 헌드레드 투엔티 포!”
10,324!
“만을 넘겼습니다!”
와아아아아!
넘치는 환호성!
그렇지 않아도 놀라있던 헉슬리는 이제 입을 딱 벌린 상태였다.
“여러분, 장갑맨은 진짜입니다!”
윈프라가 외쳤다.
“그는 맨주먹으로 곰을 잡을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초인입니다!”
와아아아!
방청객은 열광했다.
강민은 손을 흔들었다.
***
초인의 등장!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그는 어떻게 저런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인가?
슈퍼 히어로, 현실에 나타나다!
인간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깨는 사고!
인간 혁명!
윈프라 쇼가 방영되고 난 뒤, 미국 내 대부분의 신문들은 헤드라인에 장갑맨에 대한 것을 실었다. 가십지의 주제나 될까 싶은 내용이었지만 너무도 쇼킹했기에 메이저 신문들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만화나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는데 흥분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경제 위기가 한창이라 잠시 불황을 잊을 뉴스가 그리웠던 것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건 그 윈프라 쇼는 충격이 되어 미국 전역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미국을 충격에 삼킨다는 건 세계를 집어삼킨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미국의 영향력은 좋든 싫든 세계적!
그리고 장갑맨은 본래 세계적인 스타였다.
사람들은 장갑맨의 힘 앞에 전율했고, 과거 조작설을 떠들던 사람들은 모조리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직접 눈앞에서 그 힘을 보여준 판이니 조작설을 떠들 여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유일하게 있다면 일본!
일본의 혐한들만은 아직도 눈과 귀를 닫고 날조를 주장하며 한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띄워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낄낄낄.”
“으히힉!”
“으하하!”
재철 일당은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강민단 기지의 휴게방. 거기 있는 대형 모니터의 컴퓨터 앞에 모여 웃고있는 것이다.
뒤에서 느긋하게 뒹굴고 있던 호성이 무슨 일인가 하고 다가가서 물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아, 와서 봐라. 안 웃게 생겼나.”
재철이 그리 말하며 몸을 비켰다.
모니터 화면이 보였다.
어떤 게시판의 글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잠시 그 내용을 읽던 호성은 불쾌한 듯 표정을 찌푸리고 말했다.
“뭐야, 이거 전부 강민 까는 거 아냐?”
그랬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강민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온 게시판 글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이런 걸 보고 뭐가 웃기다는 건지 의아해 하는데 재철 일당은 당연하지 않으냐며 말했다.
“까는 게 너무 웃기지 않냐?”
“흠…….”
특별한 점이 있는 건가, 하고 호성은 다시 그 글을 읽었다.
한국어로 되어 있지만, 한국인이 적은 건 아니었다. 일본 웹에서 글을 긁어다가 번역해 놓은 것 같았다.
곧 호성의 표정이 바뀌었고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뭐야, 이것들 병신 아냐?”
“그렇지.”
재철 일당이 그럴 줄 알았다면서 말했다.
“근데 그런 병신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게 웃긴 거야.”
호성은 설명을 듣고 게시글을 더 읽었다.
“풋!”
결국, 웃음이 터졌다.
이제는 호성도 참을 수 없다는 듯 박장대소를 시작했다.
“우하하! 아, 이것들 정말 걸작인데.”
“그렇지?”
“쟤들이 우릴 까는 건지, 띄워주는 건지도 모르겠다니까.”
“나는 한국이 일본 국력의 20% 정도밖에 안 되는 소국인 줄 알았는데, 여기 나온 대로라면 정말 미국도 쌈 싸먹을 강대국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