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탐색 일주일째.
시작 당시에는 드문드문 발견되었던 곰의 흔적을 이제 자주 발견하게 됐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선두에서 걷고 있던 에이리가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흔적이 있군요.”
에이리가 가리킨 나무는 아주 컸다.
그리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든 곰의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영토 표시였다. 쫓겨난 곰이 새로이 여기 영역표시를 해 둔 모양이었다.
“아. 정말 잘 알아보시는군요.”
제임스가 감탄해 말했다.
에이리는 대수롭잖다는 듯 답했다.
“훈련 같은 데서 경험을 자주 했으니까요.”
정확히는 곰이 아니지만 야생동물의 습성은 비슷한 구석이 많아 추적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어 그들은 영역표시 된 나무 근처에서 또 다른 단서를 발견했다.
제임스는 그걸 잠시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여기 보니…… 배설물이군요. 떠난 지 두 시간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에이리도 그걸 보고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주변에 사늘하게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목표로 한 곰이 하루 이내 거리에 들어왔단 말이다.
긴장할 수밖에.
“저런 걸 잘도 알아내네?”
물론 강민은 전혀 긴장하지 않은 채 에이리에게 물었다.
에이리 역시 가벼운 어조로 그의 말을 받았다.
“너도 할 수 있어. 어때? 이번 겨울에 같이 훈련이라도 하겠어?”
“그런 건 됐어.”
두 사람이 시답잖은 대화를 하는 사이 제임스는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해 팀의 전체적인 경로를 재설정했다.
“저쪽으로 가죠.”
모두들 긴장된 안색으로 그를 따라 이동했다.
***
밤이 됐다.
여름일 텐데 북부 침엽수림인 덕분인지 공기는 싸늘했다.
강민은 그런 넓은 숲에 만든 텐트에 누운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바람 부는 소리가 싸늘하다. 조용한 속삭임이 그를 잠에서 깨웠다.
“강민.”
강민은 곧장 잠에서 깨어났다.
그를 깨운 것은 에이리였다.
“왜?”
“노린내가 나.”
“노린내?”
의아하게 물으며 강민은 킁킁 냄새를 맡았다.
확실히 뭐라 설명하긴 힘든데 좀 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에이리 옆의 제임스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곰이 근처에 있는 것 같단 겁니다.”
“그런 것 같군요.”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텐트 밖으로 나갔다.
텐트 밖에는 이미 깨어난 스태프들이 긴장된 안색이면서도 좋은 장면을 놓칠 수 없다는 듯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어디…….”
강민은 거기서 정신을 집중했다.
곰을 찾기 위해서다.
곧 그는 눈을 떴다. 이후 강민은 어둠의 한 곳을 노려보며 말했다.
“저기군.”
“그래.”
강민의 옆에서 에이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함께 유만과 종찬이 있는 곳으로 가 말을 걸었다.
“두 분.”
“네?”
“촬영 준비해 주세요.”
“헉?”
“차, 찾았습니까?”
종찬과 유만은 강민의 말에 긴장된 얼굴이 되어 물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멀지 않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서둘러, 서둘러 움직여.”
“어서!”
종찬과 유만이 스태프들을 재촉했다.
그렇지 않아도 결정적일 때가 왔다. 그들은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준비하고 있었다. 곰의 공격에 대비한 화약 무기는 물론 특수 헬멧과 방호복을 입고 스태프는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은 곰을 쫓아 움직였다.
곧 어둠 한구석에서 녹색의 빛이 나타났고 노린내가 짙어졌다.
이어서 포효.
으르릉.
둥골이 오싹해지는 위협성이었다.
스태프 중 하나가 불을 켜서 곰의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아주 커다란 녀석이었다.
강민이 그 곰을 보면서 제임스에게 물었다.
“저 녀석이 맞습니까?”
제임스는 잠시 곰의 생김새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옆에는 에이리가 있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제임스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자, 잠시만요.”
“왜 그러시는지?”
“정말 맨몸으로 상대할 겁니까?”
“보여 드리지 않았습니까?”
강민이 의아하게 물었다.
처음 봤을 때 못 믿는 눈치길래 돌을 짜부라트리는 걸 보여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제임스는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그래도 때가 되면 뭔가 특수한 장비 같은 걸 사용한다고 생각했는데…….”
제임스는 당시 강민이 보여준 것에 놀랐다.
그러나 결국 그건 묘기에 가까운 거고 실제 싸울 때는 트릭이 있으리라 제임스는 생각했다. 설령 아무리 힘이 세어도 인간과 곰은 피부의 내구력만 해도 너무 차이가 난다.
힘이 서로 비슷해도 일격의 위력을 인간은 못 버티지만 곰은 쉽게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을 볼 때 정말 맨몸으로 상대하려 하지 않는가.
“아닙니다. 그냥 싸우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장갑맨일 이유가 없는 거고.”
“그만두십시오!”
강민이 어깨를 으쓱이며 한 말에 제임스는 질려서 외쳤다.
“당신도 말리세요! 친한 사이 아닙니까? 죽으러 가는 걸 보고 있을 겁니까?”
이어 그는 에이리에게 애원하듯 외쳤다.
“곰은 최강의 맹수입니다. 특히 저 녀석은 그리즐리로 체중이 300을 넘습니다. 어찌나 튼튼한지 라이플탄을 튕겨낼 정도였다고요! 그런 괴물을 맨몸으로 상대한다니…… 당신이 대단한 건 알겠지만 이건 정말 죽으러 가는 것밖에 안 됩니다. 계약서에도 이런 내용은 없었어요!”
계약서 이야기가 나오지 강민도 좀 주춤했다.
만일이게 안전규정 같은 걸 통과하지 못한 거라면 촬영을 끝나고 나서도 제임스의 반대로 인해 공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어, 그건 문젠데.”
“정말 없었습니까?”
에이리가 물었다.
미안한 얼굴로 종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허락해 줄 수 없다고 해서 일단 둘러댔습니다.”
“이런…….”
“사고를 가장한 촬영이면 충분히 커버 될거라고 생각해서…….”
유만이 쑥스럽게 고백했다.
강민과 에이리는 잠시 서서 한숨을 쉬었다. 하기야 인간과 곰이 싸운다는 기획 촬영 같은 게 쉽게 허락이 떨어질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에이리의 물음에 강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깔끔한 해결책을 내 놓았다.
“일단 잠시만 묶어 둬야겠지.”
“역시 그게 좋겠지.”
에이리도 동감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건 걱정을 없애고 허락을 얻기 위해 가타부타 말이 필요 없고 눈앞에서 직접 보여주는 게 가장 편하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강민은 주춤주춤 물러서는 제임스를 잡아서 근처 나무로 끌고 갔다.
“앗, 이보세요!”
제임스는 큰소리로 외치며 그를 막으려 했지만 물론 강민이 그 말을 들을 리는 없었다.
“이봐요!”
“미안합니다. 잠시만 지켜봐 주세요.”
근처의 밧줄로 제임스를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다음 강민은 그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선 에이리 곁으로 돌아왔다.
상대의 전의를 느낀 듯 그리즐리는 이를 드러내며 사나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빨리 끝내는 게 좋겠는데?”
“안 돼. 이건 쇼라고.”
“어쩌려고?”
“장사가 될 만한 멋진 모습을 좀 넣어야지.”
강민이 한 말에 에이리는 혀를 찼다.
“내가 이 세계에 살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진짜라 해도 너무 특출 나면 가짜처럼 보인다는 거야.”
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CG가 너무 발달한 데다 온갖 페이크 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 때문에 진짜라 해도 너무 특이하면 진짜처럼 안 보일 우려가 있었다.
“그러면 적당히 해야 하려나?”
“진위 논란으로 골치를 썩이지 않으려면 그게 좋겠지.”
“별수 없군.”
강민은 에이리의 말을 받아들여 간단히 곰을 상대하기로 하고 몸을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럼 갈까.”
“그래.”
에이리가 그걸 달았다.
그 순간 이곳에 있던 모든 대원들은 비상시를 대비하는 한편 최고의 영상을 찍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으르렁!
곰이 사납게 포효했다.
“자.”
“시작.”
그리고 인간 둘 대 곰 하나의 대결이 시작됐다.
묶여 있던 제임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 뜨고 저 참상을 보고 있을 수 없다는 심경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건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퍽!
퍽!
퍼퍽!
끄어엉!
곰이 연달아 얻어맞으며 비명을 터뜨리는 소리!
깜짝 놀라 제임스는 눈을 떴다.
그리고 정말로 강민과 에이리가 맨손으로 그리즐리를 상대해 손쉽게 두들겨 패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말도 안 돼…….”
제임스는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그건 여기 있는 이들이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근력만이 아니고 속도 역시 곰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우월하다. 그런데 이건 완전히 농락당하다시피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는 동안에 둘에게 얻어맞은 곰은 점점 두려운 기색을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민이 퇴로를 막으며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인간을 잡아먹었다니…… 살려줄 순 없다.”
“대신 고통받지 않고 죽도록 하는 정도의 자비는 보여주지.”
강민의 말을 에이리가 받으며 곰을 등 뒤에서 공격했다.
에이리의 늘씬한 다리가 곰의 목 부분을 쳤다.
퍽!
끄어엉!
커다란 소리가 났고, 인간을 셋이나 잡아먹었던 거대한 곰은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으로 끝, 곰은 죽고 말았다.
“왓 더 헬…….”
죽은 곰의 모습을 보면서 제임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중얼거렸다.
그건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의 생각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