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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134화 (134/227)

134화

차에 탄 채 달리고 달렸다.

얼마나 달린지 모른다.

열 시간? 스무 시간?

아니, 여러 날 달리기만 한 것 같았다.

그렇게나 달리고서야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국의 광대함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강민과 에이리는 그 이상 가는 광활한 대지도 돌아다닌 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서 도착한 북부 침엽수림 지대는 정말 장관이었다.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고층 빌딩만 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모습이라니!

그곳에는 이미 캠프 하나가 세워져 있었고, 주변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차에서 내린 종찬은 우선 먼저 와서 이 캠프를 꾸리고 있는 책임자와 만났다.

책임자는 서른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백인 남자였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얼마간 떨어진 곳에서 강민과 에이는 그들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봤다.

강민이 긴장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영어다.”

“이 나라 말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더니 왜 그리 죽을상이야.”

의아한 얼굴로 에이리가 물었다.

“그야 나도 명문대생이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긴 하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어에 능숙하거나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야.”

영어 울렁증은 한국인의 종족 특성 수준이다!

그러나 역시 에이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상하군. 아주 어릴 적부터 배운 말 아냐? 더구나 밖에 나가면 한글이 오히려 안 보이는 것 같던데. 솔직히 나는 처음에 너희 나라 두 개의 공용어를 가진 줄 알았는데.”

“그건 주체성이 없는 나라라서 그런 거고…… 그렇게 발악해 봐야 세계에서 가장 영어를 못하는 나라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지.”

“그래?”

“뭐 한국어와 영어의 친근성이 낮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서 한국보다 영어를 더 못하는 나라가 일본인 거야.”

일본어는 문법 구조가 한국과 비슷한 만큼 영어가 어려운 언어다.

그래서 일본인과 한국인은 사이좋게 가장 영어를 배우기 힘들다. 거기에서도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한데 그건 발음상의 문제 때문이다. 일본어는 발음 수가 부족해서 이걸 극복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어도 그런 부분이 있긴 하나 일본어에 비하면 대단치 않다.

“속이 좀 시원해 보인다?”

일본을 깔아뭉개며 기분이 좋은 듯 말하는 강민을 보며 에이리가 물었다. 강민은 웃음 지으며 답했다.

“세계 최하위라도 일본이 발아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할까.”

“한국인들은 일본에 참 집착을 하더라.”

에이리가 한국에 와서 곧 익힌 것 중 하나가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었다. 강민이 찌릿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너는 안 그럴 거 같아?”

“하긴.”

알아보니 일본 놈들이 참 나쁜 짓을 많이 하긴 했다. 그러고도 반성도 하지 않으니 한국인들이 화날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캠프 지휘자와 종찬의 이야기가 끝났고, 이제 그가 강민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왔다.

“반갑습니다.”

백인은 손을 내밀며 한국어로 말했다.

강민은 놀라면서 그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

“에…… 반갑습니다.”

“저는 제임스라고 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일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앞으로 스태프를 이끌고 곰 사냥을 위한 전체 진행을 지도하게 될 겁니다.”

강민은 이번 일에 내셔널 지오그래픽까지 관여되어 있다는 것에 또 놀랐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호의적으로 웃음을 교환하고 둘은 손을 떼어냈다.

강민이 아직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한국어를 하시네요?”

“그쪽 대학에서 가르칠 일이 있었지요. 겨우 한국어를 익혀 갔었는데 오히려 한글을 사용하지 말라고 학교에서 신신당부를 하기에 당황한 기억이 있습니다.”

제임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영어 수업이라고 해서 수업을 완전히 영어로 진행하는 촌극이 한국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 아직도 그러는 곳이 있다고도 들었다.

“하하 다들 영어가 급하다 보니.”

“강박적이더군요.”

“그렇죠.”

강민은 창피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제임스는 강민과 에이리를 이리저리 보더니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곰과 맨주먹으로 싸울 생각이신지……?”

“당연하지요.”

새삼스러운 질문을 왜 하냐는 투로 강민은 답했다.

제임스는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노령이라곤 하나 곰은 가장 무서운 맹수입니다. 아니 인간에게는 노령이라서 더 무섭다고 해야 할까요. 동양권에서는 호랑이를 높이 치는 모양이던데 제가 보기엔 체중 문제도 있고 도저히 호랑이 따위의 약골에게 그리즐리가 질 리 없습니다. 그런 걸 맨손이라니…… 물론 당신이 얼마나 강한가는 여러 매체를 통해 보긴 했습니다만…….”

호랑이를 무시하는 말에 강민은 괜히 욱했지만 참았다.

하지만 호랑이가 질까 하는 문제는 제쳐 두고서 곰은 정말 엄청나게 강하다. 우선 근력만 해도 가볍게 툭 치는 것만으로도 충격량이 일 톤을 넘는다. 더구나 달리기 속도는 시속 육십을 넘는다.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도망갈 수 없는 수준.

더구나 그 생명력은 어떤가!

대물저격총쯤 되지 않는다면 어떤 라이플 탄으로도 한 방에 때려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 수준이다. 거기다가 나무도 잘 타고 냄새도 잘 맡는다.

그야말로 숲의 완전체!

같은 곰이 아니고선 상대할 놈이 없을 수준이다.

“그때는 주저 말고 개입해 주세요.”

강민은 역시 가볍게 웃으며 받아넘기고 말았다. 하지만 너무도 가벼워 보이는 그의 태도에 역시 제임스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걱정을 불식시킬 겸 강민은 바닥의 자갈을 툭 차올려 손에 쥐었다.

“그리고…….”

쥐었다.

돌이 뭉개지는 소리가 나며 강민의 손안에서 모래가 되었다.

“엇……!”

“이 정도면 믿을 만합니까.”

강민은 손안의 모래를 털어내며 제임스에게 믿으라는 듯이 말했다. 그 놀라운 광경에 제임스가 경악하는 건 당연했다.

장갑맨, 장갑맨 요란하게 떠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강하리라곤. 고릴라라 해도 조금 전처럼 자갈을 모래처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제임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동양의 신비라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이제 바꿔야 할 것 같군요.”

“동양만의 것이라 보긴 힘들죠.”

“저도 가능하니까요.”

이어서 강민 옆에 에이리가 가볍게 말하고 같은 방식의 묘기를 선보였다.

“아…….”

자신과 같은 백인이다 싶은 여성의 손아귀에서 자갈이 모래가 되는 모습을 보며 제임스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똑같이 생긴 손인데 성능은 해괴할 정도로 달랐다.

***

곧 팀이 꾸려졌다.

일행은 그리즐리를 찾아 이동을 시작했다.

험한 길은 아니었지만, 야생동물이 많으니 충분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많았다. 또한, 촬영 중간중간에 재미를 위해 강민과 에이리가 몇 가지 쇼를 보여줘야 하는 것도 있어서 추적 속도는 빠른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며 스태프들은 서로 간에 친분을 쌓았다.

***

곰을 추적한 지 나흘째.

긴 길을 따라가기 지루하던 참에 강민이 물었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하시는지?”

“그저 동물학자입니다. 동물을 연구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요.”

제임스는 간결하게 답했다.

에이리가 끼어들었다.

“실례지만 이런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좋아하진 않지만 필요하다곤 생각합니다.”

쓰게 웃으며 제임스는 그리 말했다.

“그런가요.”

“학문에도 돈은 필요하죠. 인지도도. 장갑맨 역시 그래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닙니까?”

“그렇지요.”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렇다.

단순히 묵묵하게 좋은 일을 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생각했으면 이런 번거로운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곰이랑 싸우고 싶으면 그냥 몰래 건너와서 싸운 다음 가면 되는 거고. 강민은 이런 행위를 통해 지지자를 모아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길 기대했다.

제임스는 이어 설명했다.

“특히 이런 건 흥미 위주긴 하지만 동물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고쳐서 사건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됩니다.”

“그런 효과가 있나요?”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우습게 보는 경우가 생기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고가 생기는 모양이군요.”

흥미롭다는 듯 에이리가 말하자 제임스는 간단하게 답했다.

“총기를 살 수 있는 나라니까요.”

“하긴…….”

미국의 민간 총기보유량은 유명하다.

또한, 그런 총기 회사들의 무서운 로비 실력도.

그래서 심심하면 총을 구매한 싸이코들의 미친 범죄로 인해 시끄러워지면서 총기 규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도리어 총기사건이 터지면 그 불안감 때문에 사람들의 총기 수요가 증가한다.

“그리고 함부로 야생동물의 서식지 근처에 갔다가 죽은 사람이 나오면 훨씬 더 많은 야생동물이 봉변을 당하게 됩니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동물 쪽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겠군요.”

자연은 소중하다.

왜?

인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에게 해가 된다면 자연 속의 동물이고 뭐고 간에 아무 가치가 없다. 미연에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 온순한 짐승을 사냥하는 것 따위는 당연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나운 맹수 하나를 재빨리 처리 못하면 그로인해 죄 없는 동물들이 피를 보게 된다. 특히 곰과 같이 실질적으로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생물의 경우는 그런 경향이 한층 강하다.

“지상최강의 동물은 어쨌거나 인간이니까요.”

“하긴 그렇죠.”

제임스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생명이 지구에 나타나고 몇 번이고 대절멸의 위기가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페름기 대절멸로 당시 살았던 지구 생물의 95%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학자들 중에는 그에 버금가는 멸종이 진행 중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인간에 의해!

“말이 통하는 녀석들도 아닌데 힘들겠습니다.”

“그래도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이런 노력으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만하죠.”

“어떤 동물을 구하고 계신가요?”

에이리가 흥미가 가서 물었다.

“고릴라입니다.”

“아, 킹콩.”

강민이 아는 체를 했다.

제임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고릴라에 대해 위험한 동물이란 인식을 심어줘서 좋아하지 않는 영화죠. 하지만 고릴라 하면 다들 그 영화만 떠올리니.”

“고릴라가 힘이 세다고 들었습니다.”

제임스는 강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몸 정도는 진흙처럼 뜯어낼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와우.”

에이리는 감탄했다.

더한 괴물도 무수히 때려잡았지만, 지구에 오래 있다 보니 기준도 자연히 지구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근효율이 인간의 여섯 배는 되죠. 그만큼 에너지도 많이 사용합니다만…….”

“강하겠군요.”

강민이 하는 말에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편이죠. 하지만 사실 고릴라는 침팬지보다도 온순하고 착합니다. 그런데 잘못된 영화의 영향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고 고릴라가 학살당하는 데 대해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죠.”

“그렇습니까. 몰랐는데.”

“나쁜 이미지 덕에 개발 명목으로 서식처 주변의 지배세력들이 고릴라를 죽이면서도 저항은 적은 편입니다.”

제임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동안 연구를 위해 친하게 지내다가 개발로 인해 학살당한 고릴라들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강민과 에이리도 안된 일이라 생각해 혀를 찼다.

“저런.”

“그 녀석들을 지키려면 돈과 인지도가 많이 필요하죠.”

어디서나 돈이 문제다.

그건 정말 뼈저리다.

그래서 강민도 영웅놀이를 시작하자마자 돈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굴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한다는 거군요.”

“네.”

제임스는 울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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