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웅성웅성.
왁자지껄.
사람이 아주 많은 화려한 곳이었다.
바로 인천국제공항.
하루에만도 수만 명의 인원이 오가는 이 공항의 대기실에서 지루한 얼굴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 가운데서 종찬은 지루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가 보던 중에 갑자기 새로운 뉴스가 떴다.
-속보! 장갑맨에 의해 도주 중이던 강도범이 검거.
“역시 대단하군,”
“그러게요. 오늘로 오십 건이 넘었죠.”
옆에서 같이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던 유만이 동감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오늘 이들을 잡으러 장갑맨이 움직였다는 것을 메일로 미리 연락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종찬은 곧이어 걱정스러운 표정이 됐다.
“그런데 이러다가 비행기 시간은 맞출지가 걱정이네.”
“그런 거야 걱정할 필요 있을까요.”
“그렇겠지?”
장갑맨이 보통 사람이라면 교통 상태 같은 걸 고려하면 늦을 우려도 있긴 하지만 장갑맨은 그렇지가 않다.
눈앞에서 직접 본 적도 있다.
그런 생각에 도장을 찍듯이, 두 사람 앞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우뚝 섰다. 종찬과 유만이 고개를 들어보니 선글라스와 가발, 그리고 모자로 얼굴을 가린 두 남녀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종찬과 유만은 그들의 인사에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설마?”
“네, 장갑맨입니다. 장갑맨 차림으로 돌아다닐 수는 없는 일이라서 좀 차림을 달리했죠.”
“그러면 옆의 분이?”
“양복걸이죠.”
에이리의 데뷔는 따지고 보면 지연의 사건을 해결할 때부터다. 그러나 당시는 별로 거론되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 된 것은 WWF의 경기에 난입해 그곳 선수들을 박살내면서부터.
이후 장갑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자로서 곳곳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또한, 범인 검거에서도 마찬가지로 장갑맨과 같이 활약을 했기 때문에 이 면에서도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물론 그렇다 해도 아직 그녀에 대한 관심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강민은 만일 에이리의 얼굴이 공개된다면 역전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말이다. 미인은 어디서나 사랑받는 법이니.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야 말로.”
그들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장갑맨에 이어 양복걸이라면 종찬과 유만의 입장에서는 행운이라 할 만한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유만이 그걸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그 차림으로는 출국장 검색대를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만…….”
둘 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차림이다. 미국에 있던 테러 이후로 저런 식으로 모습을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플라스틱으로 된 칼도 사용 못하게 철저히 체크하도록 바뀌었을 정도니 당연했다.
“아 그건 괜찮아요.”
하지만 강민과 에이리는 여유로웠다.
“어째서?”
“이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실 두 사람은 정체를 들키는 게 싫을 강민과 에이리가 비행기를 따로 사용해서 미국에서 만나는 쪽을 택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두 사람은 의심받지 않고 비행기에 타는 게 가능하니까. 한데도 굳이 한국에서 합류해서 미국으로 간다는 데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수가 있길래?
“그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같이 이동하시죠.”
“네.”
의아해하며 두 사람은 강민과 에이리를 데리고 출국 심사로 갔다. 필요한 서류들을 모두 제출하고 심사를 기다렸다. 곧 강민과 에이리의 차례가 됐다.
‘제발!’
‘부디!’
종찬과 유만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걸 느끼며 두 사람의 심사가 문제없이 끝나길 기대했다. 그 기대가 통한 것인지 곧 두 사람은 쉽게 심사를 끝냈다.
“어, 어떻게 한 겁니까?”
“이해를 할 수가…….”
문제없이 심사가 끝나길 바랐음에도 둘이 정말 문제없이 절차를 끝내고 나오자 당황한 얼굴로 둘은 물었다.
그도 그럴게 두 사람은 아직도 얼굴조차 드러내놓고 있지 않았다!
“영업비밀이죠,”
“네. 그렇게 알아두세요.”
가벼운 미소를 보이며 강민과 에이리는 그렇게만 둘러댔다. 세나가 만들어준 환상마법의 힘으로 통과한 것이라곤 밝힐 수 없으니까.
***
한 미국 공항을 사람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강민 일행이었다.
선두에 선 강민을 둘러싸고 종찬과 유만은 새삼 놀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이었군요.”
“미국도…….”
지금 강민과 에이리는 신분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입국심사 절차를 쉽게 통과해서 공항을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한국에 이어서 미국에서도!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영웅 노릇을 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렇지만 어떻게 미국 쪽도…….”
너스레를 떨며 말하는 강민에게 종찬이 어이없어 물었다.
그러나 강민이 돌려 줄 수 있는 답은 역시 단순했다.
“그것도 물론 영업비밀이죠.”
“역시 그렇겠죠. 하하, 하지만 정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몰래 어떻게 입국할 방법이 없나 찾아보려 했었습니다만……. 위장 신분을 만들거나 말입니다. 여러 가질 강구했었죠.”
그러나 이렇게 쉽게 해결된 이상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건 정말 천운이라 하겠죠.”
천운이라기보다 마법이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준비된 차량으로 갔다. 협회 측에서 마련한 큰 지프차에 강민과 에이리가 탔다.
곧 차가 이동을 시작했다.
생경한 미국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강민이 물었다.
“여기서 활동이 잘되면 지지자를 많이 얻게 되겠죠?”
“물론이죠. 수익도 커질 거고, 뭘 하려 하든 도움이 될 거란 건 확실하죠.”
미국은 영웅에 심취하는 문화를 가졌다.
무수한 영웅 만화 그리고 영화.
심지어 정부에서도 나서서 영웅을 만들기 위해 안달이 났다. 역으로 영웅답지 않은 영웅이 영웅이랍시고 띄워져서 문제가 될 정도니.
특히 이라크전 때 그런 꼴이 많이 있었다.
“근데 일단은 범죄잔데 방송 같은 게 괜찮을까요?”
강민은 일단 마음에 걸리던 걸 물었다.
유만이 신이 난 듯 말했다.
“그런 게 걱정이면 아예 장갑맨이지만 장갑맨이 아닌 신분을 만들어서 활동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현실의 장갑맨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으니 눈 가리고 아웅이 가능한 거죠.”
한국과 미국이 연계할 경우를 생각하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그럴 린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측에서 국제공조를 요청하며 장갑맨 체포를 도와 달라 하면 아무래도 미국에서는 도와야 한다.
그걸 사전에 차단하는 쉬운 방법이 눈 가리고 아웅!
장갑맨인 게 누가 봐도 분명하지만, 사실은 확실하지 않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방송 같은 데 나가서 나는 장갑맨이 아닙니다, 라고 주장하는 식으로. 그러면 증거가 없어서 손쓸 수 없다는 식으로 미국에서도 모르는 척할 수 있다.
“그렇겠군요.”
에이리와 강민은 함께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서 물었다.
“그러면 여기서 이번에 준비된 싸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죠.”
“여기 있습니다.”
유만이 준비해 뒀던 서류를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강민은 그걸 받아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번역된 서류가 여러 가지 사진과 함께 안에 들어 있었다.
“학살자?”
강민이 소리내어 읽은 것은 서류의 제목이었다.
그리고 그 제목 아래에는 커다란 곰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었다.
유만이 설명했다.
“상대해야 할 그리즐리 베어입니다. 덩치는 크지만 노령으로 인해 영토를 지키지 못해 밀려났고,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결국 사람까지…….”
곱은 잡식이라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냥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니 단 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단 음식은 곰에게는 엄청난 진수성찬. 쓰레기통을 통해 그걸 맛보면 굶주렸을 때 눈이 뒤집히는 것도 당연하다. 더구나 인간은 곰이 사냥할 수 있는 동물 중 가장 연약한 먹잇감이다.
이것도 그런 경우로 보였다.
“피해자는 벌써 셋인데 북미의 침엽수림지대는 정말 광활해서 아직까지 잡고 있지 못하는 형편이라 합니다.”
미국은 땅이 정말 넓다.
선진국이기 때문에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 미국에서만도 지구 상의 거의 모든 환경을 접할 수 있다. 중국 부럽지 않을 정도. 북미의 침엽수림은 그 가운데서도 장관으로 유명하고, 많은 사냥꾼들이 시즌이 열리면 사냥을 하러 가는 곳이다.
“전에 한번 잡을 수 있었습니다만 뼈가 어찌나 튼튼한지 두개골에 맞은 탄이 튕겨 나가 버렸다는군요.”
유만이 설명했다.
“그야 말로 몬스터군요.”
그 설명에는 강민과 에이리도 놀랐다.
총알을 튕겨내는 곰이라니. 몬스터란 설명이 적절했다 싶었는지 유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래서 추적을 위한 사냥단을 준비해 뒀습니다. 위험하면 언제든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테고…….”
종찬이 이어 말하는데 강민이 딱 잘라 거절했다.
“아, 그건 괜찮습니다.”
“괜찮다니요?”
종찬이 당황해 물었다.
“이쪽이 그 정도는 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건 경험이 비교적 있는 편이니 맡겨주세요.”
에이리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강민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 하지만…….”
“두 분이 강한 걸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을지…….”
상대는 곰이다.
인간이 아니다.
단순히 강하고 약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말이 안 통한다.
말이 통하는 인간끼리도 서로 싸우는 시합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리 장갑맨이 강하다곤 해도 야생동물과 싸우면서 그런 준비를 생략한다는 건 역시 무모해 보였다.
강민이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러면 만일을 대비해 총을 들고 가죠. 영상 촬영은 소형 카메라 같은 걸 몸에 매달고 있으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안 됩니다. 권총 정도로 어떻게 될 수 있는 나약한 곰이 아닙니다, 또 팔기 위한 영상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섭외된 분들도 많으니…….”
간청하듯이 유만과 종찬이 말했다.
강민과 에이리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귀찮은 단체 행동을 생략할 수 없게 된 모양이었다.
“아 귀찮게 됐네.”
“그럼 어쩌지?”
“일단은 따라야지. 그냥 단순히 놀러온 건 아니잖아.”
“그건 그래.”
결국, 한숨을 쉬면서도 둘은 종찬과 유만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면 양복걸이 선두에 서서 가이드와 함께 진두지휘하고 나머지는 스태프들이 촬영하면서 안전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죠.”
“네. 그렇게 하죠.”
최소한의 협조를 얻는 데 성공해 안도하며 종찬과 유만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