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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131화 (131/227)

131화

“뭐 다 그렇겠지.”

그들의 시선이 모두 모인 곳은 강민의 옆자리. 거기엔 세나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마주하며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호호, 앞으로 학교에서도 잘 부탁해요.”

“에이리는 어쩔 거야.”

“숨길 수 있어?”

혜경과 호성이 연달아 물었다.

강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무리죠…….”

숨긴다고 해도 하루 이틀이다. 앞으로 4년이나 다닐 학교의 등록 여부를 숨기는 건 어렵다. 하다못해 두 사람이 서로 간에 연락이 드물다거나 하면 모르나 그렇지도 않다.

진지한 안색으로 혜경이 물었다.

“그러면?”

“아…… 뭐 달래봐야죠.”

힘없이 강민은 말했다.

“열심히 해.”

“응. 파이팅!”

안됐단 눈빛으로 혜경과 지연은 강민을 응원했다.

“크윽.”

강민은 울적한 얼굴이었고, 세나는 그 곁에서 기분이 좋은지 호호 하고 웃고 있었다. 그야말로 승자의 미소!

***

에이리는 분노했다!

“이게 뭐야!”

땅을 강하게 쾅 하고 굴렀다.

얼마나 세게 땅을 밟았던지 바닥에 뚜렷한 발자국이 났다. 강민은 주변에 보거나 들은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당황하며 얼른 에이리를 진정시켰다.

“지, 진정해.”

그러나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진정하게 됐어? 뒤통수를 얻어맞아도 유분수지 이렇게 가열하게 뒤통수를 얻어맞다니! 인정할 수 없어!”

“하지만 이건…….”

“으으! 어떻게 이럴 수가.”

강민이 어떻게 진정시키면 좋을까 하는 사이에도 분이 삭지 않은 듯이 에이리는 노골적인 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강민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야 천재에다가 마법까지 사용하니까. 서류 만들기 같은 것도 일사천리였고…… 시험 점수는 최상이었다고 해. 그러니 뭐 서울대가 아니라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대학이라도 문제없지 않았겠어?”

“크윽!”

강민의 말은 정답이다.

문제가 있다면 옳기 때문에 더 열 받는다는 것!

“이건 뭐 더러운 마법의 힘이 너무 유용했기 때문일 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안 쓸 수가 있어! 고 계집애가 너랑 꼭 붙어 다니게 됐는데!”

불이 활활 붙은 눈동자로 에이리는 강민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렇지만 이건 뭐…….”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대학에 간다!”

에이리는 선언하듯 외쳤다.

강민은 얼른 말렸다.

“아서라. 너도 이제 기반이 잡혔잖아 그걸 다 버리는 건…….”

“그딴 게 뭐가 중요해서!”

에이리는 당장 반문했다. 아무래도 필생의 라이벌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 커다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강민은 침착하게 논리적으로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공부할 게 많아서 힘들 거야. 여긴 완전히 다른 세상이잖아. 그리고 세나는 천재니까…….”

“여자의 분노를 우습게 보지 마! 폐인 노릇 하고 있기에 잠시 안심하고 있었던 것뿐인데 이렇게 뒤통수를 얻어맞았으니 나도 각오하고 시작하겠어!”

“지, 진정해.”

“통하지도 않을 말을 계속하는군.”

분노의 눈을 번쩍이며 그렇게 말한 에이리의 표정이 갑자기 돌변했다. 강민은 오한을 느꼈다. 분노의 대상이 세나에서 자기로 옮겨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말이 에이리의 입에서 터졌다.

“오호라, 너 이제 보니 그 계집에게 넘어갔구나!”

“그, 그럴 리가!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오해!”

강민은 강하게 자기를 변호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나를 말리는 거지.”

“그냥 네가 고될 것 같아서.”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이런 일 때문에 공부와 친하지 않던 에이리가 굳이 고생하며 서울대 같은 어려운 대학을 노릴 필요는 없다 싶었고, 또한 대학에 둘 다 와서 주변이 시끄러워지는 건 바라지 않았다.

사실 하나만 있어도 주변 시선 흡수율 50%는 어렵지 않은데 둘이 다 곁에 있으면…… 또 서로가 가까이 있으면 작은 일로 자주 싸울 것 같다는 것도 걱정이었다.

그러나 강민이 지금 한 말 정도로는 에이리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걸 결정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그, 그러지 말고 진정해. 나도 대신에 너를 위해서 따로 준비한 것이 있으니까.”

강민이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응? 그런 게 있어?”

“그래.”

다행히 에이리가 흥미의 기색을 보이는 데 기뻐하며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호흡을 하며 분기를 가라앉힌 다음 에이리는 강민의 말을 경청할 자세를 취했다.

“어디 들어볼까. 시시한 거면 어떻게 될지 알지?”

“어련할까.”

“알면 다행이군.”

농담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긴장의 기색을 완전히 지우진 못한 채 강민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실은 얼마 전에 WWF 협회 사무실에 갔어.”

“그래서?”

“그래서 사과를 정식으로 받고 같이 일하기로 했지. 그런데 그 일 가운데 진정한 지상최강을 가린다는 명목으로 내가 직접 참여하는 이벤트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말이 나왔지.”

“그리고?”

“물론 좋다고 했지.”

“흥,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다 약골이잖아.”

에이리는 코웃음을 치며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번 싸움에서 나름대로 시원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결국 애들 싸움 가운데 들어가서 진탕을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우긴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지상최강을 말해봐야!

현장감은 부족해도 차라리 강민과 대결하는 게 훨씬 낫다.

“어허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좋아.”

“으흠. 그래서 결정 난 지상최강이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었어.”

“그럼?”

시들었던 흥미가 여기서 다시 좀 살아났다.

“동물과 싸우는 거지. 그것도 인간에게 해를 끼친 맹수들과! 그러니까 몬스터와 싸우는 것과 흡사한 거야.”

“응?”

에이리의 눈동자에 활력이 돌아왔다.

강민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흥미가 있는 모양이지?”

“조, 조금은.”

인간을 넘어선 이곳 동물들과의 대결이라니, 틀림없이 훨씬 더 손맛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래봐야 마나는 사용 못하니 한계는 명백하지만 짚단 덩어리 같던 인간을 생각하면야.

여기서 강민은 한층 더한 결정타를 날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그게 잘되면 그쪽에서는 한층 대단한 기획을 준비하겠다고 하더군.”

“어떤 거야?”

“현대병기로 무장한 병사들과의 대결이지.”

“오오오!”

강민이 던진 폭탄은 확실히 위력이 강했다.

“물론 무장에 실탄은 무리지만 그게 아니라 해도 충분히 서로 간의 전투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어 있으니까 말야.”

강민도 랜드 워리어 같은 시스템은 들어본 적이 있다. 레이저 센서를 사용해서 피탄 판정을 하기 때문에 전투력 측정에는 실탄을 측정하지 않고도 아주 좋다고 한다.

“그렇군.”

이미 에이리는 아주 흥미진진한 기색이었다.

그녀가 이곳에 와서 본 중 가장 흥미진진한 대상이라면 역시 현대 병기와 전술에 대한 것이었다. 총, 방호복, 탱크!

그러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그 힘을 시험하는 건 불가능해서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이번에 잘된다면 그 위력을 직접 느낄 수 있다니!

검에 인생을 건 에이리로서는 도무지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가 없다! 강민은 이제 에이리를 완전히 낚았다고 확신하며 안도의 웃음과 함께 물었다.

“이번 여름 방학 때 당장 시작할 생각이야.”

이번 여름이라는 말에 에이리는 숨을 들이켰다.

이번 여름의 자기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 그녀의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돌아갔다. 휴가를 얼마나 장기로 자유롭게 낼 수 있을지 계산에 들어간 것이다.

“거길 너와 함께 가려고 하는데…… 어때?”

“조, 좋아. 이번엔 세나 고 계집애가 짜증나긴 해도 참도록 할게.”

강민이 던진 말에 역시 에이리는 쉽게 걸려들었다.

“역시 에이리!”

강민은 겨우 한 건 진정시켰다고 기뻐했다.

에이리는 기쁨을 감추며 경고했다.

“대신에 약속은 확실히 지켜야 하는 거야?”

“여부가 있을까!”

“후후후.”

에이리는 벌써 이번 여름에 하게 될 대결을 생각하고 흥분되는 듯이 들뜬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강민은 역시 에이리는 자기는 아닌 척하지만 무서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기야 그건 세나도 마찬가지지만!

***

여름이 됐다!

작렬하는 태양!

달아오른 아스팔트!

왕성한 모기!

좋은 점이 있다면 짧아지고 얇아진 옷들!

물론 여성 한정이다.

서울대학교도 이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끝마치고 방학 직전의 나른한 시기에 들어가 있었다. 강민 단원들도 그건 예외가 아니라 오늘도 수업을 끝마친 단원들은 모두 트렌드 연구회라는 애매한 동아리실에 모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비로 들여놓은 에이컨의 시원한 바람을 쐬며 놀던 중, 화제를 전환하듯 호성이 입을 열었다.

“이제 곧 방학인데…….”

재철 일당이 환호했다.

“방학이지!”

“드디어 논다!”

“오오! 자유!”

호성은 한심한 듯 그들을 잠시 바라봤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강석이 중얼거렸고 강민이 그 말을 받았다.

“으음, 그러고 보니 막상 어떻게 놀면 좋을까에 대한 계획은 세운 적이 없네.”

“그야 요즘은 우리가 우리 계획으로 뭘 한 적이 없으니…….”

“기본은 강민 저 녀석이 다 짰지.”

그리고 재철이 지적한 것은 강민이었다. 확실히 고2 정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 있는 이들은 자발적으로 뭔가를 해 본 경험이 적다.

강민이 모두 계획을 짰고 거기 따르는 생활을 하다시피 했으니까.

이어 수구가 투덜거렸다.

“거기다 학교 생활만 해도 빡세니까…….”

“으으 대학생이나 됐으면서 이 새끼들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그래. 꽃밭에 들어갔겠다, 좋은 인연이 좀 생기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게 전부 끝장나고 말았어!”

방학 이야기에 기뻐하던 재철 일당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그것도 여자가 많은 곳에 가서 금방 여친을 만들고 행복한 대학 생활을 보내리라 생각했으나…….

그것은 꿈!

아스라한 환상!

죽도록 공부만 했다!

“내가 채팅용어를 보며 혐오감을 느끼는 날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도.”

“리포트 너무 힘들어…….”

우는소리를 하는 재철 일당을 보고 갑자기 호성이 분노한 표정이 됐다.

“아니야!”

“뭐가?”

“열심히 공부하는 게 아니라고!”

호성이 노해 외친 말에 재철 일당은 당황한 표정이 됐다. 지금 이렇게 자유시간도 별로 못 가지고 학과공부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걸 열심히 하는 거로 안 쳐준다니 억울했다.

“아니야?”

“아니라니…….”

불평스러운 표정으로 반문하는 그들을 보며 호성은 분기탱천해서 외쳤다.

“뭘 모르는군! 여기 모인 애들은 다들 전교 수석이었다고! 당시에 비하면 놀고 있는 게 맞아! 그렇지!”

호성이 마지막 말을 하며 바라본 것은 강석이다.

강석은 갑작스러운 지적에 놀라면서도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사실 그렇지.”

혜경도 동감이어서 한마디 했다.

이어지는 증언에 재철 일당은 한층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이게 노는 거라니!”

“믿을 수 없어!”

호성은 코웃음을 치며 이어 설명했다.

“장학금 노리는 것들은 고딩 때보다 더하다고! 주변에 능력 있는 새끼들만 우글거리니까! 그러니 겨우 이런 정도로 못해 먹겠단 듯이 말하지 마.”

“으으…….”

“너무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는 서울대.

공부를 반쯤은 취미로 하던 괴물들이 모인 곳이다. 거기서 중간이라도 가려면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요즘은 취업이니 뭐니 해서 방학 때도 안 노는 독종들이 얼마나 많다고.”

호성이 이어 한 말에 재철 일당은 더욱 죽상이 되었다.

“안 돼!”

“자퇴할까.”

“그게 나을지도…….”

화려한 캠퍼스 생활을 기대했는데 나타난 것은 무슨 귀신의 집인 판이라 재철 일당은 수군거리며 괴로워했다. 혀를 차며 그걸 옆에서 보고 있던 강민은 재철 일당에게 경고했다.

“그걸 결정하는 건 너희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명심해.”

재철 일당의 얼굴이 푸르죽죽해졌다.

혜경이 웃으며 그 모습을 즐거운 듯이 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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