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그쯤 되면 나름 재미도 있을 것 같고 공익성에서도 위배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죠?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닙니다.”
“또 있어?”
흥미로운 기색으로 물었다.
이번엔 종찬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말했다.
“인간과의 맨손 대결이란 제한을 없애면 흥미진진한 상황이야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까요! 허락을 얻어낼 수 있는가가 문제긴 한데 무장한 경찰특공대와 싸우는 게임 같은 건 티켓 파워도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건 진짜 멋진데.”
강민도 감탄해서 외쳤다.
인간은 약하다.
허약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맨몸의 인간일 뿐, 인간에게 무장을 시킨다면 그 전투력은 곧 세계 최강이 된다.
즉, 현대병기를 착용한 인간이야말로 세게 최강의 맹수인 것이다!
그리고 현대 무기를 상대로 자신의 전투력이 얼마나 통용될 것인가 하는 면에서 강민도 흥미가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최강을 가리는 대결이다!
“네. 티켓 파워라는 면에서 대박을 치리라 생각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장갑맨은 한류의 핵심. 전 세계 최고의 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띄워줄 필요야.”
강민은 쑥스럽게 말했다.
다른 두 사람이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한국에서 오히려 덜 알려진 것 같은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은 김정일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 장갑맨이죠.”
“그, 그런가.”
“네. 정말 어마어마한 인기입니다. 유튜브만 봐도 뻔히 알 수 있는 거죠. 일억 돌파는 수십 개고, 예전에는 유명한 노래들이 차지하고 있던 동영상도 하나둘씩 장갑맨의 활약상으로 바뀌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북미나 유럽 오타쿠들 사이에서는 장갑맨 온리전이라 해서 장갑맨만을 주제로 한 동인 상품 행사 같은 것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그걸 사용해서 좋은 일을 한다면 정말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괜찮군.”
강민은 그 설명을 듣고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수익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강민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곧장 민감한 주제로 넘어갔다.
이것은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민감하지만 가장 처음 철저하게 해 둬야 하는 문제기도 했다 이익 앞에선 모든 인간이 괴물이 될 수 있다. 강민이 이 세계에서 돌아다니며 뼈저리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다.
종찬이 말했다.
“그건…… 저희가 2를 먹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8?”
종찬은 난색을 표했다.
“그렇겐 안 될 겁니다. 외국의 에이전시라든가 여러 가지 경비도 필요하니까요.”
“아마 거기서 4 정도는 빼야…….”
유만이 미안하다는 얼굴로 그리 설명했다.
강민은 결국 자신이 반도 먹지 못하는 셈이 되는 것에 불쾌감을 느꼈다.
“나는 이걸로 돈 벌 생각은 없어. 수익이 생기면 전부 믿을 수 있는 자선 단체 같은 곳에 집어넣든가 아니면 아예 내가 따로 재단을 만들어 운용할 거야. 하지만 내 수익이 너무 적고 당신들이나 그 주변에서 너무 많이 뜯어 가면 그건 너무 수익사업 냄새가 나는데.”
“초반엔 좀 봐주세요. 망해가는 입장이라서…….”
종찬이 애절하게 말했다.
워낙 형편이 어려운지라 협회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익이 필요했다. 우만이 이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저희 뜻은 선의라고 해도 해외에서 협력을 얻어야 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그거야 그런가.”
강민은 마스크 안쪽에서 여전히 불쾌한 표정이었지만 이들의 입장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이 상황이 유지된다면 문제겠지만 초반에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될 동안은 약간 양보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 어떻게……?”
초조하게 종찬이 물었다.
“나도 할 일이 있는 몸인 만큼 항상 시간에 맞출 수는 없어. 일 년에 넉 달, 7, 8월과 12월, 1월에만 하도록 하지.”
딱 방학 때만 하겠다는 소리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 종찬과 유만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시간 내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계획이 생기면 내가 가능한가를 파악하게 먼저 연락을 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어디로 연락을?”
장갑맨과의 연락은 철저하게 일방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어떠하든 장갑맨은 범죄자니까. 만에 하나 신분이 드러나면 엄청난 파장과 함께 강민의 일상생활은 붕괴한다.
“펜을 하나 좀.”
유만이 얼른 펜과 종이를 강민에게 내밀었다.
강민은 쓱쓱 메일 주소를 적은 다음 유만에게 내밀었다.
“여기면 될 거야.”
강민이 넘긴 메모지에는 메일 주소가 있었다.
한국처럼 쓸데없는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고 익명으로 가입할 수 있는 메일이었다. 아이피 문제만 조심한다면 극악한 범죄자라 해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메일이다.
그걸 보고 유만이 물었다.
“스마트폰 같은 건 안 쓰시나 보죠?”
“좋든 싫든 나는 범죄자라고.”
강민이 바보 같은 질문을 한다는 눈빛으로 유만을 보면서 말했다. 생각해 보면 그게 너무 당연해서 유만은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런가요.”
“한국에서 활동은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종찬과 유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활동하기에 강민은 문제가 많다.
“페이크 컴퍼니를 만들어서 그 문제를 해외에서는 해결할 생각입니다.”
“뭐 그런 복잡한 문제는 다 당신들에게 일임하지.”
복잡한 행정상의 처리 같은 건 강민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러나 분명히 말해둬야 하는 것은 있었기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민은 그들을 바라보고 마지막 경고를 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 경고하겠어. 나는 호의로 당신들을 살려주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거야. 만에 하나 내가 부당하게 이용당했다는 거로 판명이 나면…….”
둘은 살기등등한 강민의 표정을 보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후회하게 될걸.”
“무, 물론 알고 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딱딱하게 굳은 모습으로 둘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모습에 만족하고 강민은 웃었다.
“서로를 위해 그게 좋아.”
이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왔던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럼 나는 가지. 열심히들 해.”
“감사합니다.”
“살펴 가세요.”
두 사람의 배웅을 들으며 강민은 창문턱을 밟고 훌쩍 몸을 날렸다.
그가 사라진 뒤 두 사람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땅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가, 갔다.”
“정말로 연락이 오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종찬은 이내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이걸로 우리는 살아난 거야!”
“네, 살아난 거죠!”
유만도 동참해서 기쁜 듯이 외쳤다.
“와하하하!”
“우하하하!”
웃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장갑맨 만세!”
“만세!”
두 사람은 곧 사무실에서 장갑맨을 연호하며 주변에 민폐를 끼쳤다.
*
그다지 넓진 않은 방이었다.
넓지 않을뿐더러 낡은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이 방에 익숙한 얼굴들이, 그러니까 강민단의 단원들이 가득 들어와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핵심은 역시 늘 그러하듯 강민이었다.
그는 방금 혜경이 내민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이 방을 얻기 위해 혜경이 작성해 학교 측에 제출했던 것의 복사본이었다.
“트렌드 조사회라.”
“그럴듯한 이름인데요.”
강민의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호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높이 평가했다. 혜경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그 이름 뽑는다고 여러 차례 고생했어. 장갑맨에 대한 일을 하면서도 의심받지 않고 제대로 된 동아리라고 거짓말을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말야.”
“그래서 트렌드.”
“그래.”
혜경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호성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갑맨은 트렌드의 핵심이니까요.”
“그것도 식지 않는 트렌드지. 첫 등장이 2년 전인데 그때 이후로 검색순위 10위권에서 내려온 적이 없을 정도니까.”
그러므로 장갑맨에 관련된 각종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동아리의 개설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 운영도 가능하다!
재철이 투덜대듯 말했다.
“저지른 짓이 오죽 많았어야지.”
“다 좋은 일이었으니까 괜찮아.”
“하긴 그러니 이렇게 장기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거지.”
지연이 태연하게 답하는 강민의 의견에 동의했다. 강민 덕에 살아나다시피 한 지연은 강민의 열렬한 지지자다. 흔한 말로 강민빠다.
“맞아.”
“그 덕에 이 방도?”
수구가 묻는데 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수가 적당히 채워져 있으니까 하나 얻을 수 있었어. 하지만 예산은 안 나와. 그건 양해해. 예산까지 받기엔 인원수가 적었거든.”
인원수 서른 이하의 동아리에는 예산이 나오지 않는다. 그 이하면 제대로 된 동아리라기보다 친목 모임의 성격이 강하다고 학교 측에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이다.
사실 낡은 방이나마 학교 내에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혜경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거야 뭐.”
“하긴 그렇지.”
“호호호.”
후배들이 수군대며 자신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고 혜경은 만족감을 드러내 보였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의 공간도 만들어졌으니 틈틈이 모이도록 하자구.”
“응.”
“그래.”
강민은 이번에는 시선을 재철 일당에게 보냈다.
“그리고, 너희들.”
“뭐야 또 우리야?”
“우리가 동네북이냐!”
“이건 부당해!”
재철 일당은 발작적으로 불평을 터뜨렸다.
그럴 만도 하다.
심심하면 강민이 나서서 뭔가 지적을 하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아닌가. 더구나 최근에 커다란 퀘스트를 해결해 이제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조금은 풀어줘도 좋지 않은가!
그것이 셋의 생각.
물론 셋의 생각일 뿐이다. 강민 입장에서는 이것도 다 옛 죗값을 치르는 과정이라서 별로 봐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강민은 번갯불이라도 튈 눈빛으로 셋을 둘러보며 말했다.
“북까진 아니라도 신경 쓸 구석이 제일 많다는 건 사실이 아냐. 더구나 너희는 강민단의 자금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그렇긴 하지만…….”
부모님에게는 대출로 학교에 간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셋은 강민단의 자금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장학금을 받으라고는 안 해! 하지만 낙제하면 낙제한 학기의 등록금은 돌려받겠다!”
“그런!”
“줬다 뺏는 것만큼 치사한 게 어디 있다고!”
“그래! 이건 횡포야!”
“그럼 낙제를 하지 마!”
그러나 강민의 태도는 완강!
“으으…….”
“내 캠퍼스 라이프가…….”
재철 일당은 죽을상이 되었지만, 명분과 권력이 모두 강민에게 있었기에 우는 소리 정도를 하는 게 전부일 뿐 반론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웃으며 그런 대화를 지켜보던 중 혜경이 한쪽으로 힐끗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 놀랐어.”
“저도.”
“저도요.”
다들 동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운데는 강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