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아예 격외로 올리자고요. 장갑맨은 인류라는 규격에서 벗어났다고.”
“오호.”
종찬도 이 바닥 물을 먹은 지는 오래 되었다.
지금 유만이 한 말에 그가 생각해둔 대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주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종찬의 모습에서 자신의 의도를 그가 알았다는 거 눈치챈 유만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대결 역시 좀 특이한 것들로 하는 겁니다.”
“알 만하군. 게다가 어차피 한국에서는 그를 제대로 활용할 방도가 없으니…….”
종찬은 확실히 그도 그렇다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외국에 가야 제대로 된 사업이 가능하겠지요.”
장갑맨은 수배자니까.
맘대로 그를 정식 인가를 받은 단체가 활용해서 장사할 수는 없다. 그건 법에 도전하는 꼴이 된다. 그러니 수배자가 아닌 외국이 최선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유만이 제안을 실행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었다.
그것은 장갑맨을 인간과 대결시키지 말고, 야생동물과 승부를 시키자는 것이다. 그래서 유만은 장갑맨을 인류 밖 규격으로 치자 말한 것이다.
인간 중엔 상대가 없다!
그러니 동물과!
실제로 인간은 매우 약하다. 크기만 보면 대단히 큰 축에 속하는 생명체이지만 그 근력과 속도 등은 한심하다. 그래서 아무리 단련한 인간이라 해도 곰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주먹질 따위 곰의 가죽 앞에서는 그저 간질이는 정도의 힘일 뿐.
그렇지 않다면 최배달이 황소를 때려잡은 정도로 전설이 될 리가 없다. 그리고 그조차도 어찌나 힘들었던지 그는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그러니 맨몸의 인간 따위는 대부분의 동물들에게 먹잇감일 뿐이다.
“흠 성공해도 죽 쒀서 남 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외국에 나가서 행사를 벌여야 한다면 당연 그쪽 조직과의 연계가 필요해지게 되고, 수익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공로의 면에서도 뜯어 먹힐 우려가 있다.
“그건 이쪽에서 조심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벌써 그걸 걱정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죠. 장갑맨과 연락이 닿을지도 확신을 못하는데.”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유만의 말이 옳다 생각해서 결국 종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해도 광고료 정도 외에는 날릴 게 없고 대외 이미지는 좋아질 테니 나쁜 건 아니죠.”
“이봐. 지금 우리 사정에 그 광고비는 절대 적은 게 아니란 걸 명심하라고.”
“그렇긴 하군요…….”
울적하게 종찬이 한 말에 유만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하면 그 광고 때문에 퇴직금도 못 받게 될 우려가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둘은 부디 이 계획이 성과가 있기를 바랐다.
***
동네에 플래카드가 걸렸다.
‘재철 군의 합격을 축하합니다!’라고 아주 크게 적혀 있는 플래카드였다.
이 동네는 재철이 다니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바로 그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주변 건물들은 재개발을 얼른 해야 한다 싶을 만큼 노후화 되어 있었고, 정리정돈 되지 않은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그리 부유한 이들이 살고 있는 동네 같지는 않았다.
재철은 그런 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이 희소식에 기뻐했다.
예전과 달리 이제 개천에서는 용이 나오지 않는 시대다.
그런데 용이 나오지 않았나!
가장 기뻐한 것은 역시 재철의 아버지였다. 그는 오늘 나가야 되는 일용직 일도 나가지 않고 친구들을 불러보아 감격의 술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우하하! 다들 마셔, 오늘은 내가 다 낸다.”
“어이구 고맙군.”
동네의 가장 큰 술집에서 재철의 아버지와 친구들이 있었다.
현재 술집 내부는 전부 그의 지은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낮인데도 술 냄새가 진동!
원래 한국인은 술 빼면 노는 법을 모른다.
“고맙긴. 얼마나 큰 경사가 났는데.”
고마워하는 친구들을 향해 재철의 아버지가 호방하게 말했다. 술잔의 술을 비우며 재철 아버지의 친구 중 하나가 말했다.
“그런데 재철이 그 녀석이 이런 큰일을 해낼지는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러게 말이야. 몰려다니며 쌈박질만 하더니 언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몰라.”
다른 친구도 그 말에 동의했다.
사실 여기 온 재철 아버지의 친구들은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일단 와 있긴 한데 축하하기보다는 배가 아픈 사람도 많았다.
그럴 만도 했다.
재철!
인간쓰레기 소리가 당연하던 호로 자식!
그런데 그놈이 서울대에 간단다!
멀쩡하게 자식을 키우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심하단 말이 나올 법도 했다. 재철의 아버지는 우쭐한 태도로 웃으며 말했다.
“어허, 이 사람들이, 대기만성 몰라? 우리 재철이가 남들보다 일찍 방황 했을 뿐이야.”
아무리 남들이 질투해도 결국 재철은 서울대에 갔다.
서울대에!
그게 중요했다.
과거에 좀 망나니짓을 했으면 어떻단 말인가.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인 것이다.
분위기가 안 좋아질 걸 생각해서 재철의 아버지와 친한 사람 하나가 재철을 변호하듯이 말했다.
“성적만 좋았던 것도 아니라면서? 봉사 활동을 열심히 다녔던 덕분에 내신이 엉망인데도 서울대에 합격이 됐대.”
“허 사람 됐구먼. 예전엔…….”
그 옆에서 야유하듯이 그가 입을 열었다.
재철 아버지의 안색이 슬쩍 굳었다.
이제부터 그의 입에서 줄줄이 나올 이야기가 예상됐다. 깡패니 일진이니 하면서 다른 애들 괴롭힌 이야기를 하려 할 것이다.
그것만 들으면 재철은 죽어 마땅한 개새끼다!
얼른 재철 아버지의 친구가 말렸다.
“이 사람이 이런 좋은 자리에서 무슨. 술이나 들게.”
“어흠. 그게 좋겠지.”
비꼬면서 재철의 화려한 악행을 밝히려던 남자도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입을 여는 건 그만뒀다. 그냥 술과 고기나 얻어먹고 돌아가면 그뿐인 거지.
그리고 곧 다시 술집 안의 분위기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바뀌었다.
“와하하.”
재철 아버지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높게 울렸다.
***
강민은 밤의 공원을 걷고 있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훤칠한 키의 아름다운 미인이 있었다.
일을 끝마친 에이리였다.
“걱정했었는데, 잘됐네.”
이제까지 강민은 에이리에게 함께 공원길을 걸으며 강민단원들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설명해 줬다.
그 결과는 전원 성공!
놀랍게도 모든 단원들이 서울대에 가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재철 일당은 그 가운데서 점수 커트라인이 많이 낮은 과였지만 그래도 서울대였다.
이 결과가 밝혀졌을 때 모두들 크게 기뻐했다. 성공한 본인들이 기뻐한 건 당연했지만 강민도 예상을 넘어서는 성공이라 놀라면서 기뻐했다.
“음, 다 내 덕분이지.”
강민이 뻐기듯이 말했다.
실은 그렇다. 강민이 패고 또 패서 인간들을 뜯어고치지 않았다면 재철 일당은 잘 해봐야 조폭 행동대원으로 서른 되기 전에 별을 대여섯은 단 엘리트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떳떳한 서울대 학생!
“그렇기는 하네. 하지만 좀 불공평한 거 아냐? 네 친구라고 반칙을 사용해서 대학에 들어가게 해 주다니.”
에이리가 지적하듯 말했다.
사실 그 부분은 강민도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들이 서울대에 들어간 건 순전한 자기 노력 때문이 아니다.
“음, 그렇긴 한데…… 대신 그만큼 공익을 위해 부려먹어야지.”
실제로 서울대생으로 만든 이유 자체가 거기 있었다.
대학생이 된다고 희희낙락해서 예전으로 돌아가는 꼴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감독하고 예전의 죄를 다 씻어낼 만큼의 선행을 하도록 만들려는 것이었으니까.
“지연이 구한 것도 있고 하니 그걸로 용납하도록 할까.”
강민의 말에 에이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연도 무사히 합격했고, 그러면 강민단은 그대로 서울대로 본거지를 옮길 수 있겠군.”
지연은 정외과에 합격했다.
에이리가 지적했다.
“그런데 과가 다르잖아.”
“그거야 뭐 동아리 만들어서 모이면 돼.”
“그런가.”
“쓸쓸해?”
강민이 짓궂게 묻는데 에이리는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좀 그렇네. 다들 모이는데 나는 일이나 해야 하니.”
“하하, 언제든 만날 수 있는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잖아.”
“뭐 그렇긴 해도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식으로 보지 못하는 게 많으니까.”
에이리는 역시 그런 말로는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강민은 이어서 한 번 더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아. 방학이 있잖아. 그때 다 같이 여행도 갈 테고.”
“흠, 휴가 조정을 열심히 해야겠군.”
“일이 없길 기도하지.”
“그러고 보니, 세나는?”
문득 생각나서 에이리는 물었다.
강민도 묘한 표정이 됐다.
“세나는 글쎄.”
“그 방구석 폐인이야 평소 하던 대로 살겠지.”
알 만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에이리가 말했다. 세나는 이곳에 온 이후 신분을 마련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고 이후 장갑맨 활동에 필요한 마법을 사용한 외에는 밖으로 나온 일 자체가 드물었다. 주로 방 안에서 주식으로 돈 장난만 했으니까.
“그건 곤란한데.”
강민의 표정이 살짝 곤혹스러워졌다.
“곤란할 것까지야. 덕분에 자금도 많이 불렸다면서?”
“그렇긴 해도 그 방구석 폐인 꼴 자체가 싫다고. 이전에 방에 찾아갔을 때 얼마나 악몽이었는데. 사람 불러서 청소하려는데 청소업자가 방의 모습을 보고 울려고 하더라.”
“하긴.”
세나의 정리정돈 실력이 어떤 것인지는 에이리도 알고 있다!
인간 지옥 제조기! 그녀가 묶는 곳은 곧 지옥이 된다!
그런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청소, 질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본인 왈, 머릿속에 다 집어넣으면 되니까 방 청소같이 쓸데없는 짓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누구나가 게을러서 청소하기 싫은 거란 걸 간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업자한테 보너스를 잔뜩 줘야 했지.”
그러고도 듣기에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혀를 차며 에이리는 말했다.
“전생에 바퀴 같은 게 아니었을까.”
“걔가 지금 그 말 들었으면 혈투가 벌어질걸.”
“호호 여기선 마나가 적어서 반응속도가 빠른 내가 더 유리해.”
에이리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에이리는 약해졌다곤 해도 인간의 반사신경을 훨씬 초월한 속도로 공격이 가능하다. 그러나 마법을 항상 펼칠 수 없는 세나는 그 한계를 초월할 수가 없다.
고로 거리만 장악하면 승리는 에이리의 것이었다.
그러나 강민은 부정적이었다.
“모르는 거지. 걔가 응용력이 얼마나 좋은데.”
“뭐 불확정 요소가 있다는 정도는 인정할까.”
마법의 가장 상대하기 곤란한 점이 바로 그 예상을 뛰어넘는 응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에이리쯤 되면 그것도 대체로 다 커버가 되기 마련이지만 세나 역시 단 하나 있는 위대한 존재인 대현자다.
혹시 이런 상황에서도 대비책이 있을 수도 있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 같은 세계 출신이 몇이나 된다고.”
“모든 인간은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거야. 국경이나 세계가 무슨 상관이야.”
강민이 달래듯이 말하는데 에이리는 콧방귀를 뀌었다.
“치사한 정론이군.”
싸우지 않기 위해 필요한 말을 싸우기 위한 수단으로 바꿨으니 확실히 그랬다.
“호호. 아 그리고 지난번에 터뜨린 사건 있지.”
깅민을 놀리는 데 성공한 게 기분 졸은 듯이 웃음 다음 에이리는 생각난 것이 있다는 투로 화제를 바꿨다.
“격투기 대회?”
“응. 거기서 이번에 재밌는 짓을 했던데.”
“호오,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