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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125화 (125/227)

125화

신분 문제라면 걱정 없다. 이미 세나는 마법과 재력의 힘으로 적합한 신분을 마련했고, 고등학교까지의 교육도 끝마친 것으로 해 뒀다. 그리고 저기 먼 유럽의 소국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신분을 얻었다.

에이리 당시처럼 마음 졸일 필요도 없었다.

위대한 마법의 힘!

그러니 뜻만 있다면 신청해서 시험을 치면 된다. 그리고 좋은 성적을 얻는다면 원하는 학교에 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

“아니, 아무리 천재라도…….”

하지만 강민은 회의적이었다.

세나가 머리 좋은 건 알겠지만 그런 식으로 학습해서 해결하기엔 수능이란 시험은 범위가 너무 넓다 싶어서였다.

수학 같은 것과 달리 시나 문학은 직접 작품을 접하지 않고선 풀기가 어렵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국이 역사를 잊은 국가라는 정도일까. 한국은 자국 역사를 걸레 취급하기 때문에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나마 의무화하던 서울대도 얼마 전부터는 의무화를 취소!

세나에겐 아주 좋은 일이었다.

“후후, 좋아.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할까.”

그러나 강민의 우려를 무시하고 세나는 계획을 밀어붙였다.

*

수능 날이 되었다!

이상하게 추운 날씨가 오늘은 수능이란 걸 강조했다.

강민이 탄 버스 안에는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모두 긴장해 있는 게 몸에서 바늘이라도 뿜어낼 것 같은 모습.

강민은 그중 한 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능 날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각 기업의 출근시간도 뒤로 미뤄졌을 정도의 큰일이니 한산한 것도 당연했다.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받았다.

지연이었다.

-어때?

“뭐 평상시대로지. 지연이 너는?”

-나는 막 떨려.

조심스럽게 답하는 지연의 목소리에서는 실제로 그녀가 많이 긴장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민이 그녀를 다독였다.

“떨 필요 없어. 그동안 열심히 했잖아.”

-그렇긴 해도.

이지연은 그동안 강민단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공부했다. 강석과, 호성, 그리고 혜경의 가르침에다가 강민이 가르쳐준 명상법까지.

실력은 부쩍부쩍 스스로도 놀랄 만큼 늘었다.

하지만 남들은 삼 년 열심히 준비해서 겨우 합격하는 시험을 겨우 일 년도 안 되는 기간에 해결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었고, 그래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네 실력은 확실하니까.”

-그럴까?

강민이 자신 있게 말해 주자 기쁜 듯이 지연의 목소리가 편안해졌다.

“당연하지. 좋은 소식 가지고 만나자.”

-응. 노력할게. 강민이도 잘해.

지연은 그 말만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강민이 지연의 전화를 받고 얼마 있지 않아 또 전화가 왔다. 확인해 보니 에이리로부터였다. 전화를 받자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시험이라면서?

“응.”

-고 요리치 계집년도 친다고 했지?

적의 가득한 목소리로 에이리는 말했다.

“그렇다고는 하던데…….”

-불합격을 빌어야지.

굳은 목소리로 에이리는 말했다.

강민은 고소를 지었다.

며칠 전에 있었던 대화가 기억났다. 세나가 수능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는 말을 듣자 에이리는 경악하며 ‘뭣이!’라고 했다.

이어서 했던 말이 인상 깊었다.

‘나, 나도 칠 거야!’

원념이 깃든 절규!

그러나 에이리는 이미 직장이 있기 때문에 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를 위로하듯이 강민이 말했다.

“세나라고 해도 힘들 거야.”

-그렇겠지? 그래야 해.

잠시 목소리가 밝아졌지만 이내 에이리의 목소리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 계집애 머리가 너무 좋아서…….

“그 심정은 이해해.”

세나는 정말 머리가 좋다.

무서울 정도.

그러니 이번 시험에서도 예상을 깨고 간단히 시험에서 전과목 일등급을 받고 서울대에 가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에이리는 분한 듯 한숨을 쉰 다음 이야기했다.

-어쨌거나 잘 쳐.

“응. 너도 일 잘해.”

-끝나면 전화해. 오늘은 저녁 식사라도 같이하자.

강민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니가 강민단 와.”

-분위기 없긴.

에이리는 실망한 듯 툴툴거렸다.

“하하, 그렇긴 해도 오늘 같은 날은 다들 함께 있어야 하지 않겠어?”

오늘은 강민단이 잠시나마 찢어질 것인가 아닐 것인가가 결정되는 중요한 날. 시험이 끝난 다음 정도는 다 함께 모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강민의 생각이었다.

그런 강민의 생각에는 에이리도 동감하는 모양이었다.

-쳇, 알겠어.

“그럼 그때 봐.”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한데 강민이 전화를 끊기 무섭게 또 다른 전화가 한 통 왔다. 이번에는 혜경에게서 온 것이었다. 계속 여자한테만 전화가 온다 생각하며 강민은 그 전화를 받았다.

“아 누나.”

-시험장이야?

수능 날이다 보니 역시 시험 얘기가 먼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는 중이죠.”

-긴장하지 마.

강민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제가 긴장하겠습니까? 다른 녀석들이 더 걱정이죠. 그 녀석들한테나 이야기 해 줘요.”

-안 그래도 걔들이랑은 벌써 했어.

“그럼 제가 꼴찌?”

-그렇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데요!”

강민이 투덜거렸다.

그러자 혜경이 더 섭섭한 듯 투덜거렸다.

-이제 내 제자가 아니니 사랑 같은 건 필요 없지!

“음 그래도 고용자는 난데.”

-너는 하루하루 월급 주는 기계일 뿐이지!

“체엣.”

강민의 투덜대는 말에 즐거운 듯이 깔깔 웃은 다음 혜경은 기대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 이제 내년부터 네가 내 후배인가?

“결과가 잘 나와야죠.”

-자신 있다면서. 인제 와서 겁먹은 거야?

강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아니죠. 하지만 다들 합격할 수 있을진 좀 자신이 없군요.”

-응. 다들 굉장해지긴 했지만…… 역시 전원이 합격하게 될지는…….

그 점은 확실히 자신하기 어려웠다. 한 사람 한 사람이라면 이제 서울대를 노리기에 충분한 실력을 갖춘 셈이지만 모두가 그래도 10% 확률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니 시험을 치러야 할 사람의 수가 적지 않으니 한두 사람 정도는 운이 나빠 시험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게 될 수도 있었다.

“일단은 열심히 해야겠죠.”

-그래. 다 잘될 거라 믿고.

이어 강민은 혜경에게 권했다.

“아참, 시험 끝나면 기지에서 모여서 조촐하게 파티를 열까 하는데 꼭 참석해 줘요.”

-응, 그렇게 할게.

혜경 역시 쾌활하게 그러겠다고 답했다. 이미 강민단은 혜경에게도 소중한 집단이었다.

***

버스에서 내린 강민은 종종걸음으로 학교에 갔다. 물론 원래 학교는 아니고 시내의 중학교 중 한 곳이었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두툼한 옷을 입고 학교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학생들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체로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의 가족이었지만 그 외 여러 단체에서 응원한답시고 나온 경우도 많았다.

수능.

12년의 공부를 평가받는 자리.

이곳에서의 점수를 통해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특정한 인생을 구속받는다. 그리고 그 구속을 벗어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지는 부분이긴 한데 강민에게 뾰족한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일단은 군소리 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학교 교문을 넘어 들어가니 눈에 익은 무리들이 보였다.

호성과 강석, 재철 일당이다.

“어, 왔네.”

강민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반갑게 손을 들었다. 마주 호응해 인사하며 강민은 그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전혀 긴장하지 않은 표정인데.”

호성의 표정을 보며 강민이 말했다. 호성은 옆의 강석을 가리켰다.

“이 옆의 놈도 그렇다고.”

“그러는 강민 너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강석이 의문스레 지적하자 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간 해 온 게 있는데 이 정도로 긴장하겠냐. 그러면 그게 더 문제지.”

그 말을 듣고 과연 그렇다는 듯이 재철 일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경찰을 비웃고 백 층 빌딩에서 뛰어내리는데 이 정도 가지고 무슨.”

“그렇지.”

“시험에 긴장하면 강민답지 않은 꼴이지.”

강민은 빙그레 웃는 얼굴을 그들에게 보였다.

“너희들이야 말로 재수하면 크나큰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그야…….”

“봉사활동이 나쁘진 않지만 우리도 정상적으로 청춘을 누리고 싶단 말이야.”

“그러니 반드시!”

쩔쩔매는 얼굴이면서도 간절하게 셋은 말했다.

강민과 약속하기에 그들은 이번 시험에서 서울대에 합격할 만한 성적을 얻지 못하면 재수를 하는 것은 물론 주말이 되면 항상 풀타임 봉사 활동을 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본격 군대가 더 나은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꼴은 이제까지 거친 일 년 반이면 족하다!

때문에 재철일당이 이번 시험에 임하는 각오는 대단한 것이었고, 그래서 다른 세 사람과 달리 얼굴에는 긴장의 기색이 역력했다.

강석이 옆에서 그 말을 듣고 감개무량한 표정이 됐다.

“와…….”

“왜?”

초성이 물었다.

강석이 표정의 연유를 설명했다.

“진짜 어마어마하지 않아? 전교에서 뒤에서 놀던 돌들이 서울대를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걸. 장갑맨은 굉장한 일을 많이 해 왔지만 이게 가장 놀라운 업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간혹 들 정도야.”

“그것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호성도 그 말에 동의했다.

셋은 모두 성적이 전교 최하위권!

아니 사실상 전국 최하위였다!

그 어마어마한 학업 성취도를 눈앞에 두고 이것들을 어찌 가르치나 하며 절망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서울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의 실력은 이제 놀라워서 호성이나 강석이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경우도 종종 있었다.

만화에서라도 현실성이 없다고 까일 만한 성적 향상!

그러나 진실이었다.

하지만 대상이 된 기적의 세 사람은 그 말이 꼭 듣기 좋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예 대놓고 욕을 해라!”

“그러게 말야.”

“사람을 바보취급하다니.”

호성은 피식 웃었다.

“대놓고 욕하고 있는 건데?”

“큿!”

“이러니까 공부 잘하는 것들은!”

재철 일당은 분노했지만, 성적이 향상된 지금도 스스로의 성적 향상을 믿기 힘들 지경이라 불평하기도 어려웠다.

강민이 끼어들어 중재했다.

“자자 열폭은 그만하고 만에 하나의 비극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나 하라고.”

“음 그 말이 옳다.”

“이제 와서 뭐 더 준비할 게 없다는 것만 빼면 말야.”

재철 일당이 진정하는 모양새를 보고 강석이 말했다.

“하기야 이제까지 쭉 공부해서 시험 치는 건데 이제 와서 준비한다고 해 봐야 뭐가 가능할까.”

“그 점은 확실히 그래.”

12년의 성취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 수능이다.

수능 시험 문제에 대한 불만은 언제나 있었지만, 출제위원이 바보도 아니고 벼락치기가 통할 만한 문제는 거의 내지 않는다.

그때 예비종이 울렸다. 30분 후 시험을 치르게 된다는 신호다.

강민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자 그럼 추운데 여기서 서 있지 말고 이제 각자 교실에 들어가도록 하자.”

모두 길을 따라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각자 배정받은 방을 향해 헤어졌다.

“그래.”

“잘 쳐.”

“너도.”

“좋은 결과 가지고 만나도록 하자고.”

강민은 진심으로 그리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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