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원래 주식 페인들은 한 시라도 HTS 앞을 떠나지 못한다. 주식 시장이 닫았으면 닫은 대로 차트 분석이니 재무 분석이니 수급 분석이니 해야 마음이 풀리는 족속.
그래 봐야 한방에 다 날려먹고 한강물 데워지기만을 바라는 자들이 부지기수!
“아…… 근데 별로 안 좋은 거 아닌가.”
장기투자 이외의 기업 주식 투자는 개미들은 보통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이지연은 물어봤다.
“보통은 그렇지만…… 걔는 괜찮아. 어제도 공매도와 싸워 물 먹였다고 아주 좋아하던걸. 수익도 대단해서 맡겨 뒀던 돈이 벌써 세 배가 됐을 정도니…….”
맡겨 뒀던 돈은 전부 40억.
그중 주식으로 굴려서 좀 불려보기로 결정한 돈은 10억 정도. 그게 3배가 됐으니 20억을 벌어들인 것이다. 반년도 되지 않아 낸 성과니 확실히 대단했다.
“와, 그건 굉장하다. 근데 뭐 그럴 필요 없는데.”
이지연은 감탄하면서 말했다.
그녀가 이 말은 한 속뜻은 즉, 언제든 필요하면 자기가 도와주겠다는 말이다.
하기야 한해 배당금만 수백억이고 각종 이자 수익 같은 것까지 합하면 천억이 우스운데 굳이 활동자금 때문에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강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네 마음은 고맙지만, 자력갱생을 기본으로 해야 조직은 오래 가는 거야. 거대 스폰서에 기대기만 해서는 형편없이 늘어진 조직이 될 뿐이지.”
더구나 스폰서의 비중이 커지면 결국에는 스폰서의 의향대로만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될 수 있다. 그래선 정의로운 단체가 될 수 없다!
그런 거라면 이해한다는 듯 지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
휑한 사무실 안에서 종찬이 물었다.
“어떠냐?”
“아 뭐라고 할까…….”
종찬의 곁에 서 있는 것은 유만.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지난달의 결산 보고서.
성적은 형편없었다.
끔찍했다!
매출만 따져서 과거의 절반 수준이 되고 말았다. 이익이 어떤가를 말하자면 그야말로 입은 있으나 할 말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수준!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지난달에 어떤 사건이 생겼던가를 생각하면…….
그로 인해 협회는 허세종결자로 비웃음을 사고 있었고 인터넷에 그나마 좀 있던 지지자들도 모조리 사라져 지금은 그저 바보의 대명사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장갑맨 개새끼…….”
이를 갈며 종찬이 중얼거렸다.
“하필이면 우리를 타깃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유만은 충분히 노림당할 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진 않았다. 고개를 흔들며 종찬은 물었다.
“선수들은?”
“지난번 그 일이 터지고 나서는 한국에 오려는 선수가 없습니다. 본부 지원도 없다시피 하고…… 이제 자력으로 알아서 하라는데요.”
종찬의 얼굴이 팍 일그러지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형편에 어떻게……!”
“그러게 말이지요.”
본디 한국에는 쓸 만한 선수들이 없다. 이제까지 꾸준히 성장할 수 있던 것도 외국의 쓸 만한 선수를 많이 끌어모아서 가능했던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에 기댄 것만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번 일로 톡톡히 창피를 당하고 나니 오려는 선수가 사라졌다. 종찬은 무거운 얼굴로 한숨을 쉬며 유만에게 말했다.
“진짜 망하는 거 아냐?”
“그건 저한테 물으셔도…….”
당혹스럽게 유만도 말했다.
종찬은 여전히 유만을 바라본 채 물었다.
“방법이 없겠냐?”
“그게 말입니다…….”
유만도 이런 상황은 난처할 뿐이었다.
그걸 타개할 방책이라니!
갑자기 생각하려 해 봐야 방법이 있을 린 없지 않은가.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유만에게 화가 난 듯 종찬이 버럭 외쳤다.
“이것도 니가 아이디어 내서 한 거잖아. 그 덕에 이렇게 박살 나고 말았으니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뭔가 해결할 아이디어를 내봐!”
“아니 저한테 그러셔도…….”
유만은 괜히 자신한테 화낸다고 생각하며 그리 말했다.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게 어디 자기 때문인가. 노이즈 마케팅을 시작으로 주목도를 올리자는 말을 분명히 하긴 했으되 그걸 키워서 이런 재앙을 불러온 것은 종찬이지 유만이 아니다.
“에이 무능하긴!”
종찬은 신경질을 내며 고개를 홱 돌렸다.
***
강민은 보컬 트레이닝을 위해 강습실에 와 있는 상태였다.
늘 그러하듯 보컬 트레이닝은 하나도 하지 않고 요가 비슷한 체조와 명상만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게 다 목소리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났다.
오늘 교습도 끝났다.
하지만 오늘 교습은 특별했다. 마지막 교습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언제까지 교습한다는 걸 정해둔 것은 아니었지만 3학년 여름 방학이 끝났다. 이제 수능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니 더는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수란 역시도 해외 스케줄이 잡히기 시작하고 있어서 한국에만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오늘로써 마지막이다.
그런 아쉬움을 담은 듯이 수란이 강민에게 말했다.
“이제 곧 수능이네.”
“그렇지.”
“공부는 열심히 했어?”
“전 과목 일등급은 따 논 당상이라 할까.”
강민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 과목 일등급!
거기다 내신도 좋다. 어지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강민은 설령 서울대 의예과라 해도 충분히 들어갈 만한 성적이다.
그러나 강민이 대학에 가는 목적은 정말로 뭔가 성공을 크게 거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활동하기 편한 신분을 만들고 부모님이 안심하도록 한다는 것이었으니 시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쪽에 갈 생각이었다.
“와, 대단한데.”
수란은 강민의 말에 깜짝 놀라며 감탄했다.
그녀 역시 한때 최상위권 성적을 거두던 우등생. 강민이 말한 게 얼마나 대단한 성적인지 이해하고 있다.
“뭐 너도 가능하잖아.”
“전에는 됐을 텐데 지금은 무리야.”
수란은 씁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꾸준히 복습도 하면서 성적을 유지해 보려 했지만 역시 가수 일이라는 게 공부와 병행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수란의 성적은 한창때에 비하면 많이 하락한 상태.
물론 그것만 해도 상당한 상위였지만 서울대를 노리기는 힘들었다.
“그런가.”
“응. 다들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만 노래하느라 바쁘잖아. 다른 아이들 따라잡을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강민은 수란의 말 가운데 비애 같은 것을 느끼고 물었다.
“후회해?”
“그런 소리 하면 벌 받지.”
수란은 피식 웃었다.
“하긴.”
뷰티걸의 가장 인기 있는 멤버가 바로 수란이다.
그녀의 노래 솜씨는 한국 내에서는 물론 한류붐을 타고 해외에 알려지며 외국에서도 상당한 팬층을 만들었다.
그녀의 해외 스케줄이 잡히기 시작한 것도 다름 아닌 그 때문. 그런 수란이 기껏 대학생이 못 된 걸 아쉬워한다면 그건 벌 받을 소리다.
“노래하는 건 좋아해. 또 인정받고 있고. 여기다가 공부까지 바라면 욕심이지. 뭐 그리고 내가 그렇다고 대학 못 가는 것도 아니잖아.”
다른 학생들이랑 같이 가지 못한다는 것일 뿐, 수란도 시간을 만들면 언제든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긴 하지. 그럼 수능 쳐서 대학에 들어가려고?”
“아니. 노래가 점점 더 재밌는걸. 대학 갈 시간에 좀 더 노래를 하고 싶어. 그리고 대학은 정말 배우고 싶은 사람이 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 나도 배우고 싶어지면 그때 가려고 해. 그때도 늦지 않을 테니까.”
“그 말이 맞아.”
강민도 동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수란은 기세를 타고 있는 스타고, 가수는 그런 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 일급 스타로서 활동할 수 있다.
“그러면 이것도 오늘로써 마지막인가?”
“그렇게 되겠지.”
“아쉽다…….”
수란은 한숨을 쉬었다.
강민이 위로해 말했다.
“하하하,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데 뭘.”
“그래도 이렇게 같이 일하진 못할 거 아냐. 정말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안 해 줄 거야?”
수란은 안타깝게 물었다.
강민의 트레이닝은 몸으로 체험해 그 효과를 보고 있다. 가능하면 다른 멤버들은 물론이고 목소리 때문에 고민하는 후배나 선배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었다.
“그러고 싶진 않아.”
그러나 강민은 수란 이외의 사람에게 이 트레이닝을 하는 것을 완강하게 거절했다.
아는 사람이 많으면 비밀은 새어 나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회사에 소속된 가수들만 목소리가 갑자기 많이 좋아진다면 다들 비밀을 잘 지키더라도 결국 강민의 존재를 들키게 되는 수가 있다.
“사장님이 진짜 아까워하던데.”
수란이 아쉽게 말했다.
강민은 찌푸린 얼굴이 됐다.
“너네 사장님 열정은 높이 사는데, 내가 감당하기엔 좀 힘든 분이더라.”
처음엔 가수하라고 계속 찾아와서 결국 이걸로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찰거머리!
인정은 해도 함께하고 싶진 않은 타입.
그런 심경을 이해하는지 수란은 웃었다.
“좀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런 열정이 있으면 지금은 허풍에 불과한 한류도 진짜로 만들 수 있을 거야.”
강민은 호의적으로 말했다.
이건 진심이다.
“치, 그래봐야 진짜 한류는 장갑맨이잖아.”
수란이 아쉽게 말했다.
사실 그렇긴 했다. 이제 전 세계에서 한국 하면 장갑맨, 장갑맨 하면 한국이다. 실질적으로 돈이 되어 뭔가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그 인지도와 인기는 한국이 탄생한 이래 그 어떤 사람보다도 압도적!
사실 돈도 장갑맨 자체가 못 버는 것뿐이지 장갑맨 투어라고 해서 관광객도 많이 오고 각종 영상이나 관련 상품 같은 것도 많이 팔려서 매출도 높은 편이었다.
“뭐 지금은 그렇지만 장갑맨만 한류가 되란 법은 없지. 다른 분야도 덩달아서 인기가 있으면 또 다 좋은 거 아니겠어.”
“그렇긴 해,”
수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네가 그걸 해내는 거야.”
“가능하다고 생각해?”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란은 물었다.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태도로 강민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안 그러면 내가 손봐준 보람이 없지!”
“응, 열심히 할게.”
강민의 응원에 힘이 난 듯 수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하면 이제 알아서 충분히 잘하겠구나 안심하며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그러면 나는 이제 가 볼게.”
“아, 잠깐만.”
떠나려는 강민을 수란이 막았다.
강민은 고개를 돌려 수란을 바라봤다.
“왜?”
“저기…….”
수란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주저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결국 수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다음에 다시 보자.”
“그래!”
강민은 쾌활히 웃으며 손을 흔들고 방을 나갔다.
“휴우.”
수란은 강민이 나간 다음 한숨을 쉬며 스스로의 바보 같음을 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