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그렇다, 예, 물론, 팬이에요 등 다양한 답이 객석에서 쏟아졌다. 강민은 만족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즐거워하신 것 같아 기쁩니다.”
이어 그는 이번 일의 사정을 밝혔다.
“제가 이번에 이렇게 난입하게 된 것은 이들 단체에 악감정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그러나 강민의 눈은 이미 경기장 내에 크게 붙어 있는 플래카드의 선전 문구에 가 있었다. ‘장갑맨을 능가하는 최강자들의 대결’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강민의 눈길에 짜증이 들어찬 것은 당연!
“물론 사사건건 제 이름 들먹이면서 지들이 더 세다고 주장하는 게 참 짜증나긴 했습니다. 그건 인정하지요.”
관객들은 와하하 웃었고 강민은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혔다.
“그렇지만 그것만은 아닙니다.”
이제 진짜 목표를 거론할 차례였다.
“이걸 기회로 부탁드립니다. 스마트폰을 가지신 분은 촬영이라도 해서 여기저기 인터넷 같은 곳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알도록 소개해 주세요.”
강민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아주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강민을 촬영하고 있었다.
“제 이름을 장사에 사용하는 것은 좋습니다. 돈 벌려고 이런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성이 있다면 마음대로 사용하십시오. 그렇지만 가능하면 이익 중의 일부 정도는 좋은 일에 사용해 주세요. 그것이 제 이름을 두고 장사하시는 분들이 취해야 할 그나마의 의무나 보답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미니 말을 끝내자마자 사람들이 호응했다.
“맞다!”
“그렇고말고!”
“멋지다!”
이어 관객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박수 소리는 곧장 시냇물이 모여 강물을 이루는 것처럼 켜져서 경기장 전체를 가득 메우는 폭풍이 되었다.
“장갑맨!”
“장갑맨!”
“장갑맨!”
박수에 이은 장갑맨의 연호!
강민의 쇼맨십은 나쁜 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 연호에 응해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호응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앞으로 정의를 위해 매진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사람들은 또 환호!
“와아아아아!”
그들의 환호 소리를 들으며 강민과 에이리는 왔을 때처럼 링을 팍 밟고는 날아오르는 것처럼 점프해서는 경기장의 철골을 밟아 그곳을 빠져나갔다.
경기장을 빠져나가 건물 지붕을 따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밖으로 나가는데 가는 도중에 에이리가 강민을 비웃는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정의를 위해 매진?”
“읏!”
마스크 안쪽에서 강민의 얼굴이 붉어졌다.
대중 앞에서 하기엔 너무 낯 뜨거운 말이었다! 에이리는 양팔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이어 말했다.
“시공간이 오그라들려던 걸 참느라 고생했네.”
“저, 정의는 열정이 필요하다고!”
강민은 자신의 입장을 항변!
그러나 에이리는 그것도 그렇다고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서 말했다.
“하기야 니가 원래 세계에서도 철판 깔고 헛소리는 참 잘했지.”
강민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이세계에 가서 했던 연설이 하나하나 떠올랐던 것이다. 확실히 지금같이 낯 뜨거운 말을 참 많이도 했었다.
“내가 그때는 타오르는 중2의 불꽃을 참지 못하여…….”
강민이 이세계로 갔던 당시는 고등학생인 데다가 왕따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강력한 힘을 얻은 데다가 영웅적인 활약을 했다.
당연 중2의 불꽃이 폭발할 수밖에!
*
장갑맨의 돌연 등장!
WWF배 경기에 갑자기 등장한 장갑맨의 소식도 당연히 한국을 뒤흔들었다. 한국만 흔들었느냐? 그렇지 않다.
미국도 흔들고, 일본도 흔들고, 유럽도 흔들고, 중국도 흔들었다.
그와 함께 있던 복면 여자의 놀라운 싸움은 한층 장갑맨에 대한 흥분을 키웠다.
그녀에게는 양복걸이라는 촌스러우나 맞춘 듯한 별명이 부여되었고, 그녀가 프로 선수 열다섯 명과 혼자서 대결하던 장면은 그것만 편집되어 전 세계 인터넷을 떠돌아 다녔다.
그리고 유튜브에서는 불과 일주일 만에 일억 조회 수를 넘기며 최초의 10억 조회수 동영상이 나올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반향을 일으킨 건 단지 그런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 이벤트에서 장갑맨이 외친 말이었다.
‘나를 가지고 장사하는 건 좋다! 누구든 상관없다! 그러나 그걸로 돈을 벌었다면 이익의 일부는 좋은 일에 써라! 그것이 올바른 일이 아니겠는가!’
그의 외침은 당연히 큰 호응을 얻었다.
장갑맨을 통해 돈벌이를 하던 많은 회사들이 자진해서 적지 않은 돈을 좋은 일에 쓰라며 내놓았다. 한국에서는 장학금이나 생활보호 대상자 보조금, 수술비 등으로, 혹은 해외 원조로.
정말 규모가 큰돈이 그렇게 쓰였다.
드물지만 뻔뻔하게 버티는 기업도 있었다.
그런 기업은 얼마 가지 않아 인터넷에 자세하게 소개가 되고, 범세계적인 공격에 노출되는 신세! 덕분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그 회사에서 내놓은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매우 나빠져서, 결국 그 회사는 장갑맨 관련 사업을 접어야 했다.
특히 한국에서 이것으로 큰 소동이 벌어진 곳은 영화판이었다.
올 초에 성공한 장갑맨 영화는 물론, 관련 영화만 현재 3개가 진행 중이었는데, 이제 이걸 다시 어떻게 계약서를 짜고 수익을 배분해야 할지 골치가 아파진 것이다.
또한, 초반에 개봉하며 천만을 넘긴 장갑맨의 영화 역시도 제작사 측에서 수익금을 좋은 일에 써야 한다는 외압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을 타의로 기부해야 했다.
그래서 결국 강민의 이 발표는 장갑맨의 인기를 한층 올리는 반면 관련 산업의 성장에는 제동을 걸게 됐다.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돈을 내놔야 하는데 그런 수익금 기부와 병행해서까지 충분한 이득을 낼 수 있는 장갑맨 관련 상품은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한 푼도 강민에게 들어오지 않는 데다가 너무 많은 장갑맨 상품이 나오면 소비자들이 장갑맨이란 상품에 대해 금세 물려버릴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러한 흐름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장갑맨 상품의 신선도를 유지했고 꾸준히 기부금을 낼 수 있는 기업들만이 관련 사업을 계속함으로써 저질 기업들의 한탕주의를 막아 장기적인 산업이 가능해지게 만들었으니까.
인터넷에서는 이 사건은 ‘장갑맨 경기장 선언문’이라 부르며 많은 관련 영상과 패러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것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은 역시 진정한 한류는 장갑맨이라면서 칭송했다.
***
달칵 문이 열리고 아주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대단한 미소녀가 강민단의 기지에 들어왔다.
“안녕.”
그녀는 방 안에 들어오며 사들고 온 주전부리가 든 봉지를 내려놓으며 거실에 왁자지껄하게 모여 있는 강민단원들에게 인사했다.
강민이 놀란 얼굴로 그녀를 맞았다.
“어, 웬일이야.”
“단원이 기지 오는 데도 이유가 필요해?”
투덜거리면서 소녀는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이지연이었다.
강민이 멋쩍게 말했다.
“뭐 그래도 너는 특수한 입장이니.”
“저기도 특수한 입장이 하나 있네.”
그러면서 이지연이 지적하는 것은 돌대가리 삼총사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호성이었다. 호성도 확실히 그 신분만 따지면 이지연에 못지않다.
“그렇긴 해도.”
“너무 지루하고 답답해서 탈출해 왔어.”
한숨을 쉬며 이지연은 이어 속내를 털어놨다.
“그렇게 지루해?”
“친족단인가 하는 곳에서 이것저것 하라고 주문하는데…… 힘들어.”
힘없는 목소리로 지연은 진저리가 쳐진다는 듯이 말했다.
“친족단?”
“선도그룹쯤 되면 국내 재계에 혈연으로 연결된 이들도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 같은 거지. 참고로 우리 집도 있어.”
호성이 고개를 번쩍 들며 설명했다.
“뭐 흔한 연합이군.”
강민은 알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있던 곳에서도 혈연으로 강하게 묶인 귀족들이 모인 단체 같은 걸 만들어 서로서로 뒤를 봐주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게 기업들끼리 이루어지고 있다 생각하면 특별할 것도 없었다. 이지연은 이어 짜증스럽게 불평했다.
“정작 어려웠을 때는 얼굴도 한 번 못 보던 사람들이 입장이 이렇게 바뀌니 간섭해 오니 정말 스트레스야!”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도 무명일 때는 신경도 안 쓰던 각 국가 유력자들이 강민이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자 알랑방귀를 뀌며 아는 체하기 시작하는 걸 경험한 적이 있다.
어려울 때는 무시한 주제에!
그게 세상인심의 당연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해보면 별로 기분이 좋진 않다.
“그래서 휴식을 취하려고.”
“그렇지만 너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거 아냐?”
강민이 지적했다.
“윽.”
이지연이 정곡을 찔려 예쁜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 다 같이 같은 학교 가서 동아리라도 만들려면 빡세게 해야지.”
혜경도 그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연은 향후 진로를 강민단원답게 강민단원들이 목표로 하는 곳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그건 서울대란 말이다.
서울대!
문제는 이지연의 현재 성적이 서울대에 가기에 좀 부족하다는 것.
별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으니까. 그 고생을 하면서 이만큼이라도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대단한 일이다.
그러니 사실 여유는 별로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런데 여기 애들도 결국 목표에 가까이 도달했는데 지연이도 여기서 공부하는 게 좋지 않겠어?”
혜경이 생글 웃으며 이어서 한 말에 이지연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렇죠? 저도 그걸 노리고 여기로 온 거예요.”
사실은 그냥 놀러왔다!
“대환영!”
“미인은 많을수록 좋지!”
“그러게 말야!”
재철일당은 당연히 환호했다.
다들 자기 손에 닿지 못하는 꽃이라는 것이 안타깝긴 해도 남자로서 미녀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오죽하면 여성의 가슴을 보는 것만으로 남자는 장수하게 된다는 연구가 있을까!
에이리, 세나, 혜경 이제는 이지연까지!
그야말로 절세미녀 집합!
그리고 임자 없는 미녀도 둘 있으니 운이 좋다면 인연이 닿을 수도 있는 일이고 말이다. 강민도 여기서 공부한다면 이지연이 오는 것도 좋겠다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야…….”
“그런데 이번에 좋은 일 했던데?”
이지연이 말했다.
강민은 그녀가 뭘 지적하는지 알고 피식 웃었다.
“좋은 일이라고 할까. 내 이름으로 장사하는 놈들 중에 꼴 보기 싫은 녀석들이 있어서 경종을 조금 울린 거지.”
재철 일당이 동의해서 말했다.
“하기야 남의 이름으로 돈 벌면서 기부도 하나 안 하려 하다니. 참 흉악한 심보지.”
“우리가 봤던 영화도 그것 때문에 난리 났다면서.”
강석이 얼마 전 읽었던 기사를 기억해 말했다.
“제작사 측에서 기부금을 안 내고 싶어서 꼼수 쓰다가 결국 내놨다지 뭐야.”
“덕분에 이미지는 다 망쳤으니 다음 영화는 망할 듯.”
“그래. 후속작 떡밥 뿌려 뒀던데 이 꼴이 되면 누가 보려 할까.”
남자들이 꼴좋다며 수군댈 때 이지연이 주변을 살펴보고는 빠진 얼굴이 있어 말했다.
“그런데 두 분은 안 보이네?”
“아. 에이리는 일 한다고 바쁘고. 다른 하나는 집에 박혀 있느라고 바빠.”
에이리가 경호일을 한다는 것은 지연도 알았다
하지만 세나는 집에 있느라 바쁘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집에 박혀 있는데 바빠?”
“주식을 하거든.”
한 마디에 비밀이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