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저마다 떨떠름하게 대기실에 있거나 피하고 싶거나 분노하고 있거나, 결국 선수들은 모두 경기장으로 나왔다.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모두 링 위에 올라왔다.
선수들을 향해 강민은 외쳤다.
“너희들은 전부 동시에 우리에게 덤벼도 좋아! 얼마나 버티는지 보도록 하지!”
선수들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규칙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 모든 수단을 다 써서 나를 쓰러뜨리도록 해 봐! 최강이라면서! 어서!”
선수들은 노해 강민을 향해 달렸다.
그들을 흘깃 쳐다본 다음 강민은 에이리에게 먼저 권했다.
“자, 먼저 드시지.”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모습은 무심한 듯 보였지만 사실 복면 안에서는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가슴이 뛴다!
오랜만에 걱정 없이 두드려 팰 수 있는 상대가 생긴 것이다.
그녀는 나는 듯이 달리면서 선수를 향해 다가갔고 거리가 좁혀지자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퍽!
“억!”
파악!
“아악!”
쾅!
“큭!”
선수들 중 그 누구도 에이리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일부러 맞아주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자존심이 있고 승부욕이 있다.
이런 싸움에서 일부러 맞아줄 리가 없다. 더구나 상대는 여자가 아닌가! 싸움으로 먹고 살면서 여자에게 진다는 결과가 나오면 그건 체면이 문제가 아니라 밥줄이 끊긴다.
“이 계집이!”
선수들은 자기 나라말로 저마다 욕하면서 에이리를 향해 계속 공격했다.
현란한 공격이 이어졌다.
가라테 선수 하나가 정권 찌르기를 날렸다. 그 옆에서 권투를 배운 듯한 선두는 잽을 날렸다. 에이리는 한 발자국 움직여 가볍게 피하면서 발을 부웅 움직였다.
선수 하나가 거기 걸렸다.
퍽!
무거운 소리가 나며 그의 몸이 공중에 떴다.
가벼워 보이는 듯한 발차기였는데 담긴 힘은 엄청났던 것이다. 에이리는 이어서 공중에 뜬 선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퍽!
“끄악!”
가슴에 주먹 자국이 나며 선수는 뒤로 튕겨져 나갔다.
링의 경계선에 충돌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다른 선수들이 그의 눈을 보니 하얀데다 더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하긴, 공중에서 때려 이 미터도 넘게 몸이 날아간 공격이다.
저걸 맞고 죽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니!
선수들은 두려움이 굳어 더 쉽게 공격을 하지 못했다.
와아아아아!
환호성이 터졌다.
“장갑맨도 아닌데 저 여자는 대체 뭐야?”
“뭐긴 뭐야 비슷한 괴물이겠지!”
“아, 저 여자, 들어본 적 있는 거 같아!”
“그러고 보니…… 장갑맨 동료라고 하나 있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거 순 헛소문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진짜였던 거야?”
“그런 거 같아.”
“와, 이거 진짜 대박이다.”
“그래! 대박이야!”
사람들은 흥분해서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웠다.
시시하지만 전투의 즐거움을 맛보며 에이리는 굳어 있는 상대들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이어 움직였다.
까딱.
그들을 전투에 초대하는 도발의 손짓.
모욕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선수들이 달렸다!
***
위잉!
위잉!
경기장 밖에서 경찰차 여러 대가 빠르게 달려와 멈춰 섰다. 차에서 경찰들이 줄줄이 내려왔다.
“어서 가자!”
“얼른!”
형사들과 경찰들이 서둘러서 길을 헤치며 경기장 안에 들어갔다.
“응?”
“뭐야!”
한참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려 움직이는데 어느 순간부터 앞이 막혀 있었다. 따라 들어가던 두 형사가 무슨 일인가 주변의 경찰관에게 물었다.
“문이 닫혀 있습니다.”
“얼른 열어!”
짜증스럽게 형사는 요구했다.
경찰관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게 안에서 잠그고 있는지 전혀 열리지가 않아서…….”
“부숴서 열어!”
“꿈쩍도 안 합니다. 이십 톤 트럭이라도 앞에 대놓은 것 같습니다.”
“용접기는?”
“안에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게 하다간 민간인이 크게 다칠 수가 있습니다.”
“그럼 일단 운영자한테 연락해 봐! 얼른 열어야 안에 있는 놈을 잡을 거 아냐!”
눈을 부라리고 형사는 말했다.
경찰관은 경례하고 서둘러 달려갔다.
“알겠습니다!”
문이 열리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형사 옆에서 같이 온 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이대로 계속해도 될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공무집행 중인데 이게 무슨 범죄라도 되는 양 말하는 후배를 보며 형사는 눈을 부라렸다. 후배는 찔끔 움츠러들며 서둘러 설명했다.
“장갑맨을 잡으러 온 것이잖습니까. 욕 많이 먹을 것 같은데.”
“장갑맨이 작살낸 인간이 몇인데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인간 백정!
형사들 사이에서 장갑맨에 대한 별명이다.
누구 하나 죽인 적이 없는 장갑맨에 대한 별명치고는 험악한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것도 상당히 순화된 표현이다.
백정은 적어도 고통 주는 걸 목적으로 칼을 휘두르진 않는다!
그러나 장갑맨은 죽이지 않았다뿐이지 몸서리치게 만드는 고통을 그가 상대한 범죄자들에게 부여해 왔다. 불알 분쇄 같은 건 애들 장난 수준이다.
개중에는 저렇게 두들겨 패서 조져 놨으면서 어떻게 안 죽일 수 있을까 신기하게 생각되는 케이스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현재 경찰 쪽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과거 독재시절부터 활약해온 이들이 명예고문 비슷하게 있는 경우도 있고, 간부인 경우도 있었는데 숙련된 고문 기술자인 그들이 보기에 저렇게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멀쩡한 경우도 있을 정도.
“그렇기는 해도 솔직히 죽어 마땅한 새끼들이었잖습니까. 죽인 것도 아니고 좀 여기저기 어루만져 줬을 뿐인데.”
이번에 고환이 작살나고 성기가 쥐어뜯겨서 온 아동강간범 같은 경우도 그랬다.
잘 받아봐야 기껏 15년!
장갑맨이 아니었다면 그놈은 지은 죄의 10%도 벌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배 형사는 버럭 화를 냈다.
“바보 같은 소리 하긴. 안 배웠어? 법치국가에서 처벌의 권리를 가진 것은 국가뿐이야!”
“그거야 압니다만…… 그래도 현장에서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기 간부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일선에서 일하는 애들은 전부 장갑맨 팬이에요.”
후배는 서슬 퍼런 선배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불평했다.
실제로 많은 범죄를 접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의 뻔뻔함을 겪어온 일선의 경찰들은 장갑맨과 적대관계라는 표면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지.”
“그랬습니까?”
선배 형사의 말에 후배는 깜짝 놀랐다.
선배는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면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건 구분하자는 것뿐이야.”
공과 사의 구분.
후배도 그건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장갑맨의 하는 일을 마음속으로부터 응원하고 있다 해도 그 때문에 장갑맨을 봐주거나 할 수는 없다. 그건 한국의 치안을 뒤흔드는 일이 된다. 국가적인 체면도 문제고.
이어서 선배가 말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게 있는데. 그가 우리 손에 잡힐 거 같아?”
“그건…… 그렇네요.”
후배가 고소를 지었다.
장갑맨을 체포하라!
명령은 거창하게 내려졌지만 사실 아무도 그 명령이 진지하게 실현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못한다고 하는 쪽이 올바를까.
경찰은 이제까지 장갑맨의 활약에 대해 제대로 발표하지 않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상식을 무시하는 육체능력이라니! 경찰들은 다들 여러 훈련을 거쳐 민간인을 능가하는 체력과 전투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래봐야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장갑맨은 인간이란 규격을 벗어나 있는 존재였다.
잡으려고 하면 특수팀을 움직이고 군대까지 협력을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경찰 측에서는 그런 특수부대까지 투입해서 장갑맨을 잡으려고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실은 잡기를 거의 포기하고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충 열심히 하는 척하면 그걸로 충분한 거야.”
“알겠습니다.”
두 형사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
밖에 경찰이 도착해 시끄러운 동안 경기장 안 역시 마찬가지로 시끄러웠다.
물론 극적인 이벤트와 관객들의 환호성 때문.
대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승부는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모조리 링 위에 기절해 쓰러진 상태였고, 이제 남은 것은 단 한 명!
마지막 남은 선수는 에이리를 보면서 두려운 안색이었다.
동료들이 얼마나 쉽게 박살났는가를 보았으니 당연!
“흐얏!”
그러나 이대로 있을 수도 없었기에 그는 용기를 내어 에이리를 공격해 들어갔다. 에이리는 간단히 그의 공격을 피하고 손을 움직였다.
에이리의 손칼이 그의 목덜미에 작렬!
퍽!
“켁!”
남자는 볼품없는 비명을 터뜨리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것이 마지막!
“휴.”
에이리는 손을 탁탁 털었다.
강민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마이크를 들었다.
“끝났습니다.”
와아아아아!
함성이 터졌다.
“진짜 최고!”
“어떻게 저렇게 강하지!”
“역시 장갑맨이 최강이었어!”
“이종격투기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군!”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성을 쏟아내며 저마다 장갑맨과 그 동료의 강함에 감탄했다. 너무나도 우월한 그 전투력에 이게 진짜인가를 의심하는 사람까지 나올 지경!
“이거 사기 아냐?”
“정말 못 믿겠는데…….”
어떤 사람은 장갑맨은 나서지 않았다는 걸 지적했다.
“심지어 이번에 싸운 건 장갑맨도 아니잖아.”
“그러게.”
“그러면 장갑맨은 사실 약한 거 아냐?”
다른 사람이 그걸 가볍게 무시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같이 온 여자가 저만큼 센데 남자인 장갑맨은 어떻겠냐? 말할 필요도 없이 더 강한 거지!”
“그런가.”
장갑맨이 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말했던 사람은 그 설명에 그도 그렇다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 장갑맨의 강함에 대해 의심의 말을 꺼낸 사람도 정말 그의 강함을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강함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놀라워서 직접 보고 싶다는 투정을 한 정도다.
강민은 주변의 열광적인 호응 가운데 마이크로 말을 이었다.
“즐거우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