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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120화 (120/227)

120화

격전은 이후로도 십수 분간 계속됐다.

근육질의 육체가 땀 흘리며 움직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둘의 얼굴은 부풀었고 여기저기서 피가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한 사람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더는 일어서지 못했다.

다른 남자가 그 쓰러진 상대를 내려다보며 거칠게 호흡했다.

“헉, 헉, 헉…….”

호흡하고 있는 자는 알렉스 카이젤이었다.

쓰러져 있는 것은 물론 헉슬리.

방금 카이젤이 날린 킥에 얻어맞고 쓰러진 그는 더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추이를 살피며 스러진 시간을 재던 심판이 결국 판정을 내렸다.

“승자 카이젤!”

와아아아!

뜨거운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최강을 결정하는 경기다운 격렬한 싸움 끝에 결과가 나왔다. 남자라면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심판을 대신해 사회자가 올라오며 다시 한번 선언했다.

“여기 한국에서 WWF 배 최강자가 가려졌습니다!”

“와아아아!”

환호성이 그에 응답했다.

“진정한 세계 최강은 알렉스 카이젤로 밝혀졌습니다!”

카이젤은 링의 중앙에 올라가며 상처 입은 거대한 몸으로 포효하듯이 함성을 울렸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그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카이젤은 마이크를 잡고 흥분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거칠게 외쳤다.

러시아어라서 알아듣는 사람은 통역사뿐이었다. 사회자의 스마트폰으로 통역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회자는 그걸 보면서 관객들에게 설명했다.

“지금 카이젤은 자신만이 진정한 세계 최강이며, 한국에서 유명한 광대 따위는 비견할 가치가 없다면서 자신 있다면 직접 이 링 위로 올라와 보라 말씀하시는군요.”

사람들이 저마다 웃으며 수군거렸다.

“자신감은 대단한데!”

“역시 그래야지!”

“약한 놈들 괴롭히는 게 뭐 대단해서!”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갑맨이 세다고 해 봐야 결국 약자들을 상대해 이겼을 뿐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얼산쓰와 그들의 대형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니 어쩌면 그렇게 평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장갑맨이 더 센 것 같은데.”

“CCTV 봤잖아.”

“그러게 말야. 센 건 알겠지만 저건 너무 허풍인 것 같은데.”

물론 장갑맨이 역시 더 세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이들이 훨씬 많았다.

보여준 활약이 워낙 초월적인 데다가 장갑맨이 해낸 것들은 사람의 영웅심과 정의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그뿐인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짜 영웅!

그런데 사람들이 수군대며 말을 나누는 사이 경기장 천장에서 갑자기 두 사람이 링 위에 떨어졌다.

사람들이 앗 하고 놀라는 그 순간 떨어진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가 훤칠한 남자와 여자였다. 둘 모두 검은 슈트를 입고 있었고, 복면에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용모를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자 쪽은 그렇게 가린 모습만으로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몸매가 좋았다.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그리고 남자가 카이젤을 향해 말했다.

“대단한 자신감이던데.”

일부러 변조한 목소리를 하고 있는 듯 이상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때 사람들은 지금 말을 꺼낸 남자가 누군지 번개처럼 깨달았다.

“엇!”

“혹시?”

“혹시는 무슨 틀림없어!”

관객들이 흥분했다.

강민은 사회자의 마이크를 뺏어 들고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장갑맨입니다.”

“장갑맨!”

“자, 장갑맨!”

“장갑맨이라니!”

강민의 말이 터진 순간 모두 열광했다.

“진짜야?”

“까, 깜짝 이벤트 같은 거 아닐까?”

쉽게 믿지 못하고 당황하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야 예고도 전혀 없다가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했다. 믿기 힘들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강민은 이어서 말했다.

“못 믿는 분이 계신 것 같아서, 실제로 증명해 볼까 합니다. 여기 이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남자를 통해 말입니다.”

그리고 강민이 가리킨 것은 카이젤!

카이젤은 강민이 내민 손가락의 뜻을 알아챈 듯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거 좋은데!”

“그러게!”

사람들이 강민의 말에 거부감을 보일 이유가 없엇다.

그들은 기뻐하며 재촉했다.

“카이젤, 세계 최강을 증명해라!”

“그래! 기세 좋게 외쳤잖아! 이제 증명할 차례다!”

강민은 관객들의 응원을 들으면서 카이젤의 정면에 서고는 말했다.

“자, 언제든 오라고.”

상대는 러시아인. 당연히 한글을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런 단순한 대화에는 본래 언어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전의 가득한 몸짓뿐!

카이젤이 일그러진 얼굴로 강민을 향해 거대한 몸을 날렸다.

와아아아!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결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

사무실에서도 이 광경은 전달되고 있었다.

화면 안에서 카이젤과 강민은 서로 대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결이라고 해도 사실은 대결이 아니다. 강민이 카이젤을 농락하고 있었다. 공격을 당하는 족족 피하면서 한 대도 때리고 있지 않았다.

“이런…….”

종찬은 미간을 좁히며 그걸 보고 있었다.

종찬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걱정스러운 안색의 유만이 서 있었다.

“어떻게 하죠?”

이것 보라고, 그래서 적당히 하자고 했던 게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런 때에 그런 말을 하면 욕만 먹고 재수 없으면 해고당할 수 있다는 것은 유만도 안다.

어쨌든 이 일을 해결하는 게 우선 제일 중요하다.

“경찰을 불러!”

종찬의 결론은 간단했다.

유만은 부정적이었다.

“경찰을요? 하지만…….”

물론 경찰을 부르면 사태는 해결될 것이다.

장갑맨은 아무 문제 없는 일반인이었다 해도 행사에 방해가 되니 잡혀갈 텐데 그는 현상 수배범이다. 경찰이 잡으려 드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이제까지 협회는 장갑맨을 만나기만 하면 작살 낼 수 있다며 과장된 허풍을 해댔지 않은가. 이제 와서 경찰을 부르면 협회는 붕괴한다.

이제까지 쌓아 올린 기반도!

종찬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부른 거로 하면 안 돼!”

“그러면 알겠습니다.”

유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관객 중 한 명이 놀라 전화한 것으로 조작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 시대가 된 만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그게 가능한 사람을 찾아봐야 했다. 아니면 누구 친구한테 연락해서 그 녀석에게 이쪽 신고 좀 해 달라고 하든가.

“얼른 중지시켜야 해!”

경찰을 부르기 위해 밖으로 가는 유만을 보면서 종찬은 절실하게 외쳤다.

그동안 화면에서 카이젤은 강민의 주먹 한 방을 얻어맞고 그대로 링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

카이젤을 단숨에 쓰러트린 강민은 감탄한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속으로 시간을 가늠했다.

‘흠, 시간은 별로 없겠군.’

그가 가늠하는 시간은 물론 경찰의 개입까지 남은 시간이다.

협회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일을 일단 막기 위해 경찰을 부를 것이다.

경찰과 싸울 수는 없으니 강민은 도망가야 하고, 그러면 상황은 종료된다. 이후 협회는 약간 창피를 감수하는 것으로 이 사태를 끝내려 들 것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이걸로는 간에 기별도 안 되겠군!”

강민은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이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경기에 참석한 놈들 다 나와! 우리 둘이서 다 상대해 주마!”

하지만 당연히 나오는 이들은 없었다.

오늘 경기가 잡힌 선수의 숫자는 15명 정도.

전부 정규 대결은 아니고 손님들이 나가고 난 뒤에 있는 작은 대결 같은 것들도 같이 여럿 잡혀 있었다.

강민은 깔보는 어투로 경기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아니면 자신 없나? 일대일도 아니고 일 대 십, 아니 백으로라도 상대해 주겠다는데 나오지 못하다니! 자신만만하게 지껄이는 소리 들은 다 뭐였던 거지! 망신당하고 싶지 않다면 얼른 나와.”

대기실까지 이 소란은 전달되고 있었다.

선수들은 대부분 분한 표정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했고, 매니저를 비롯해 같이 온 사람들이 선수를 말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어 강민은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해 말했다.

“그리고 여러분, 아마 곧 이 경기장에는 경찰이 들이닥칠 겁니다.”

관객들이 수군거렸다.

그러고 보면 경찰이 오는 게 당연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강민은 범죄자니까.

그러면 이 대결을 더는 못 보는 건가, 겨우 한 사람 쓰러뜨리는 걸 구경한 정도로 장갑맨을 구경하는 건 끝나는 건가, 하며 다들 아쉬워했다.

강민은 그들의 아쉬움에 파고들면서 말했다.

“그러면 저도 도망가야 하겠지요. 저는 어쨌거나 결국 범죄자니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제 경기를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야 물론이지!”

“이런 걸 어떻게 놓쳐!”

사람들이 큰 목소리로 호응했다.

이런 이벤트를 놓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가.

단순한 무명 선수의 이벤트라 해도 흥미진진할 진행이다. 한데 사건의 중심에 선 것은 바로 장갑맨.

이 이상 가는 이벤트는 대한민국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오늘 경기 표값은 백만 원도 넘었을걸!”

“백만 원이 뭐야 암표만 삼백에도 팔렸겠다!”

“좋아하시네. 천만 원도 있겠다!”

표값으로 이벤트의 가치를 사람들이 환산하며 떠들어댔다.

강민이 이어 외쳤다.

“그러니 여러분, 관람료 대신에 문을 막고 경찰이 들어오는 걸 막아 주십시오. 공무집행 방해가 되겠지만 뭐 다들 잘 알고 계실 거 아닙니까?”

암시적으로 말하며 강민이 그리 외치자

경기장은 또다시 환성의 폭풍우로 메워졌다.

“그렇지!”

“우리는 고의로 방해한게 아냐!”

고의로 방해한 게 아니다!

그저 좋은 자리를 찾아 이동하다 보니 그게 우연히 출구 쪽 입구가 되었을 뿐!

그 입구 앞에 모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일 뿐, 절대로 정말 경찰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핑계!

그것이 명분!

무수한 사람들이 일어나서 저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앞에 서서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경찰이 들어오려 해도 이제 10~20분은 족히 벌 수 있게 됐다.

그쯤이면 대결을 하기엔 충분!

다들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어서 해라!”

“해라!”

“해라!”

대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퍼졌다.

강민은 열광을 등에 업고 경기장 내 다른 선수들을 도발했다.

“듣고 있지! 자, 다 얼른 나와라! 겁쟁이 소리 듣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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