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한국에서 장갑맨은 기자들의 일용할 양식이다. 씹고, 뜯고, 맛보고, 마시고! 띄웠다가 가라앉혔다가, 칭찬했다 욕했다가.
그런 만큼 강민을 가장 열심히 욕하는 자들도 기레기들이었다. 하지만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기레기가 괜히 기레기가 아니지만 언론의 자유는 소중하다. 그리고 소중하지 않는다고 테러하면 그건 정말 악당 인증하는 꼴이 되고 말이다.
강민이 지금 짜증내고 있는 건 다른 놈들이었다.
“아니 그거 말고. 이종격투기 단체라던데.”
“아, 알겠다.”
듣는 순간 에이리는 강민이 왜 화내는지 할 수 있었다.
“그래. 너도 알지? 그거 정말 짜증나잖아.”
에이리는 고개를 동감해서 끄덕였다. 확실히 그들은 당하는 본인이라면 꽤 화날 법한 짓도 여러 번 했다 싶었으니까.
“내 이름을 팔아먹는 것까지는 좋아! 저작권 장사하려고 영웅 노릇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팔아먹으려면 곱게 팔아먹어야지!”
“그렇긴 하지…….”
이종격투기 단체는 가장 빨리 장갑맨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던 이들이다. 문제라면 노이즈 마케팅으로 장갑맨은 별거 아니고 우리가 진자 최강이라는 식으로 써먹었다는 정도.
덕분에 확실히 주목도는 높아져서 관객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저번 플래카드 보니 가관이더만. 장갑맨을 능가하는 진짜 사나이들의 대결? 지지난번은 장갑맨이 겁먹고 연락해 오지 못하는 지상최강의 괴물 방한? 이것들이 장난하나!”
강민은 버럭 화내며 외쳤다.
단순히 자기네들이 더 강하다고 주장하는 걸 넘어서 요새는 아예 장갑맨을 겁쟁이 취급하고 큰 대전이 있을 때마다 장갑맨을 들먹이면서 진짜 최강은 자기네들 경기에서 탄생한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물론 상식이 있는 관객들은 그런 걸 비웃었지만, 그래도 그런 과장된 자신감에 호감을 느낀 이들도 있었던 것인지 좋다고 보는 이들도 많았다.
심한 경우는 정말 자신이 없어서 안 온다고 생각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
그래서 어떤 이종격투기 커뮤니티에서 강민의 별명은 장갑맨이 아니라 ‘쥐간만’인 곳도 있었다. 간이 쥐톨만 하다는 뜻이다.
이지연 일로 바빴을 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이제 여유가 생기니 그냥 보고만 있긴 확실히 짜증이 났다.
“그러면 어쩌려고?”
“난입해서 그 챔피언이란 놈 때려눕히려고.”
“뭐야 그런 거면 나는 갈 필요 없잖아.”
에이리는 쳇, 하고 불평했다.
“나 혼자도 상관없지만 가능하면 좀 큰 소란으로 만들고 싶다고. 그러면 사람 수는 많은 게 좋지. 그래서 너도 필요해. 아 물론 정체를 숨겨야 하니 복면을 써. 머리칼도 다 가리고. 말도 한마디도 하지 말고.”
“흠, 싸울 순 있는 거지?”
강민이 말한 것 같은 준비를 하고서 시원하게 싸우지 못한다면 도리어 손해라 싶어서 우선 물었다. 강민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약골들이긴 하지만 한 열 마리 정도는 넘겨줄게.”
“그건 매력적인데. 좋아. 받아들일게!”
둘의 눈이 함께 빛을 냈다.
***
WWF는 오늘도 호황!
경기장의 객석은 가득 메워져 있었고, 중계권도 잘 팔려서 여러 대의 카메라가 경기를 촬영하기 위해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었다. 그 광경을 사무실의 카메라로 보면서 종찬은 흐뭇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순풍만범이란 게 이거군!”
종찬은 웃음을 터드렸다.
그 옆에 서 있던 유만도 마찬가지도 밝은 표정이었다.
“이번 보너스도 기대할 수 있겠지요?”
“그야 당연하지! 네 아이디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흥했을 리가 있나!”
“인정하시는군요.”
종찬이 이런 면에서는 괜찮은 상관이라 생각하며 유만은 뿌듯했다.
다른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기획서랍시고 해서 제출하면 이걸 일이라고 해 왔냐면서 괴롭히는 상사 놈이 그걸 빼돌려서 자기 걸로 발표해 대박내 승진했다는 기가 찬 이야기도 많이 들었을 정돈데.
결과만큼 인정받는다!
적어도 종찬은 그 면에서는 믿을 만한 상관이었다.
그 종찬은 야망에 불타는 눈으로 이어 포부를 밝혔다.
“이대로 쭉 성장해서 야구의 뒤를 잇는 한국의 스포츠 산업이 되는 거다!”
“축구도 있는데요.”
그건 좀 무리가 아닌가 하면서 유만이 지적했다. 야구에 비하면 밀리긴 해도 한국 축구 프로 리그는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종찬은 고개를 저었다.
“흥, 야구 빼면 한국 프로 스포츠 산업은 다 적자 산업이야! 흑자를 내는 우리라면 승부할 저력이 있다!”
그건 그랬다.
심지어 야구도 몇몇 인기 구단을 제외하면 적자인 산업!
그런 면에서 요즘 확실히 흑자 산업이 되었고 장갑맨 덕에 격투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부쩍 늘게 된 이종격투기 산업은 야구의 뒤를 이을 만한 산업적 잠재력이 있다.
특히 기업 스폰서가 많이 필요하지 않고 개별 선수의 인기가 중요하지 팀 단위로 많은 선수를 이끌 필요가 없다는 면에서 운영비가 적게 들어가서 허들이 낮아 산업의 도전과 활성화가 쉽다.
이제 쓸 만한 한국 선수만 나와주기만 하면 충분!
유만은 이어 찌푸린 얼굴이 됐다.
“근데 요즘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닙니까?”
“뭐가?”
“전에는 선수들에게 시나리오를 작성해서 장갑맨을 도발하는 방식으로 했잖습니까. 그런데 요새는 플래카드에도 붙이고…….”
유만은 종찬의 지나친 노이즈 마케팅에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종격투기 협회는 현재 인터넷상에서는 허언증 환자 모임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종찬은 코웃음을 쳤다.
“초반에 해서 반응이 좋아서 점점 수위를 높인 거지. 그래서 아무 문제도 없었으니 상관없잖아?”
“욕하는 사람들이 많던데요.”
“뿌리내릴 때까지의 사소한 고난이지. 이 단계만 넘기면 장갑맨 이름 팔아먹을 일도 없을 테니 상관없어.”
대중의 기억력은 신뢰할 게 못 된다.
기업의 입장에서 대중의 찬사도 비난도 한때의 파도에 불과할 뿐이다. 그때만 살면 되는 것뿐! 특히 한국이 그런 면이 세다. 잠시 끓어올랐다 사라질 뿐인 유행!
그러니 반대로 말하면 대중은 기억하지 못하니 어지간히 나쁜 짓 정도는 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렇긴 하네요.”
“장갑맨이 참 영웅이란 말야.”
이 모든 성공의 중심에는 장갑맨이 있다.
종찬은 진심으로 장갑맨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물론 노이즈 마케팅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장갑맨 덕분에 이종격투기 자체가 팍삭 쭈그러들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다 옛말!
유만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지적했다.
“그 영웅이 보면 우리는 참 화낼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깊은데.”
“아니야. 장갑맨도 기뻐할 거야. 산업의 활성화는 경제 발전을 낳고 경제 발전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정의를 위해 일하는 장갑맨이라면 우리도 이해해 줄 거야!”
종찬은 당당하게 그리 주장했다.
“그건 좀…….”
하지만 역시 유만은 견강부회라고 생각했다. 사실 종찬도 알고 있을 것이다. 괜히 저런 말을 하는 것뿐이지.
역시 유만의 생각이 맞았던 듯 종찬은 아예 대놓고 주장했다.
“그리고 장갑맨 이름 팔아 장사하는 놈들이 지금 한국에 우리뿐이냐.”
“그렇긴 하죠.”
그건 유만도 고개를 끄덕였다.
몇 달 전 개봉해서 천만 관객 돌파를 달성한 장갑맨 영화도 돈은 어마어마하게 벌었으면서 그걸로 장갑맨에게 돈 한 푼 준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관중들 사이에는 천사같이 아름다운 여성 하나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함께 앉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
경기장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었다.
화려한 음악이 흐르고, 섹시한 차림의 라운드 걸이 먼저 지나가며 분위기를 띄운 다음 사회자가 올라왔다.
그의 얼굴이 경기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비쳤다. 그는 마이크를 쥐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의 메인 경기입니다!”
관중들이 대환호!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사실 이전의 여러 경기를 거쳐 온 것이다. 이 앞뒤의 경기는 모두 메인요리 전의 전채와 그 뒤의 후식 같은 것에 불과하다!
“미국의 새로운 아이언맨! 제임스 헉슬리!”
서쪽 통로를 향해 외쳤다.
그러자 음악이 바뀌며 현란한 빛이 나이트클럽의 반짝이처럼 통로를 비추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근육질의 거한이 당당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강철로 만든 인간이란 인상!
그의 등장에 관중들은 환호했고 열광했다.
제임스 헉슬리!
무시무시한 육체에서 뿜어지는 타격의 힘은 일격필살! 현재 WWF 랭킹 5위의 강자! 미국의 희망으로까지 불리는 선수였다.
사회자는 이어 동쪽 통로를 향해 외쳤다.
“그리고 러시아의 흉터투성이 불곰 알렉스 카이젤!”
동쪽 통로로 빛이 뿌려지고 음악이 바뀌었다.
그리고 제임스 헉슬리가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카이젤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슬리가 왜소해 보일 정도의 거구에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는 몸 위에는 흉터가 많아 그가 험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러시아의 특수부대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전투를 겪었다던가.
러시아 마피아의 소탕 작전에 들어가 저항하는 마피아 세력을 몰살시키고, 나중에는 항복도 받아주지 않고 사살해 버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현재 랭킹 1위!
잡기와 타격에 특히 능했고, 맷집 또한 무서워서 러시아에 무수한 팬을 거느리고 있는 거물이었다.
현재 도박사들 간의 승부 평가는 카이젤이 유리하다는 것!
그런 강자의 등장에 관중들이 또 한 번 흥분했다.
카이젤이 링 위로 올라오자 사회자가 열광에 응답해 외쳤다.
“오늘, 1위 결정전을 합니다!”
그리고 두 선수는 서로를 노려보며 전의를 다졌고, 이어 심판이 올라오고 시합이 시작되었다. 선공은 카이젤.
그가 거대한 몸을 헉슬리를 향해 날렸다.
“으하!”
헉슬리는 이를 피하면서 카이젤의 등에 강한 타격 공격.
“차!”
퍽!
큰 소리가 났다.
그러나 카이젤은 끄떡없다는 듯이 그 공격에서 버티곤 몸을 돌려 헉슬리를 향해 주먹을 날려 공격했다.
쾅!
헉슬리는 이를 양손으로 방어했다.
그러나 체중 차도 있고 헉슬리의 공격이 가진 파워가 아주 강해 휘청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관중들은 그들의 공방이 반복될 때마다 감탄하고 흥분했다.
“뭐 저런 걸 가지고.”
물론 에이리의 눈으로 보면 시시했다.
“그야 여기선 저 정도가 최상위니까.”
“그렇긴 하지.”
에이리도 여기서 생활한 지 오래됐다. 그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 움직일까.”
“응.”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