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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117화 (117/227)

117화

먹을 것을 얼마간 사 들고 그들은 강민단의 기지로 갔다.

다들 간소하게 간식을 들고 있던 중에 강민이 품에서 발표하기 위한 물건을 꺼내서 일행들 앞에 내밀어 보였다.

“짠.”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이게 뭐야?”

“그냥 카든데?”

“뭐가 대단하단 거야?”

저런 카드의 뭐가 신기하고 대단한 거냐고 잔뜩 폼잡은 건지 알 수 없어서 웅성거리며 물었다. 강민은 잘난 척하며 발표했다.

“무제한 카드와 체크카드다! 물론 세탁이 깨끗이 된 거. 이 체크카드에만 20억에 달하는 돈이 들어있지!”

이지연에게 받은 것이다.

때가 아니다 싶어 쭉 감추고 있다가 상황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지금 단원들에게 이야기 하려는 차였다. 장갑맨에 대한 관심이 과열되어 있을 때 이야기 하면 혹시 단원들 실수로 흘린 이야기 같은 것 때문에 정체가 들키고 말 위험도 있고.

“그게 왜?”

“니가 돈 많이 모아둔 거 다들 알고 있어.”

“꿍쳐 두기만 하지 말고 단원 복지를 위해 풀어라!”

“그래!”

하지만 강민이 큰돈을 이미 모으고 있단 걸 아는 단원들은 지금 강민이 내민 카드가 바로 그 돈을 모아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자기가 악덕 운영자처럼 비난이 거세지자 욱한 강민이 반론했다.

“여기 모여서 뒹굴거리며 먹는 주전부리값이며 기지 운영비로 다 쓰고 있는데 무슨 엄살이야. 필요한 게 아니면 아껴야지! 강민단 활동자금인데!”

“쳇.”

“별로 필요도 없으면서.”

강민의 말은 정론이었지만 단원들은 투덜거리면서 납득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강민은 이제까지 주로 혼자서 다 해결했다. 활동 자금을 풀어 장비와 정보를 모으고 다 함께 해결한다는 조직적 행동과는 사실 거리가 멀었다.

이지연 지킬 때 정도만 활약한 게 전부.

하지만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앞일은 모르는 거야. 자금은 모아둘수록 좋은 거지.”

“그래서 그건 뭔데?”

“쓸데없이 돈 많이 모았다 자랑하려 모은 것도 아닐 테고.”

단원들이 투덜거리며 물었다.

“나한테 루이비통 곰돌이라도 만들어주려고?”

단원들의 대화 사이로 끼어들어서 세나가 흥미진진하게 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단원들 가운데 남자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다.

루이비통 곰!

루이비통 제품을 모아 만든 곰!

화장해서 예뻐진 다음 남자들에게 뜯는 게 명품가방을 받는 가장 쉽게 받는 방법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공포의 곰!

그리즐리보다 무섭고, 북극곰보다 힘이 세다!

주공격 목표는 등골!

“어디서 그런 무서운 걸 들은 거야?”

“내가 보기엔 시시하기만 하던데 인터넷을 하니 한국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곰이라면서 누가 올려뒀던데?”

세나가 답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자매품으로 샤넬 곰돌이나 구찌 악어, 뭐 프라다 호랑이 같은 것도 있다던데.”

남자 단원들이 다 같이 또 상상해 보고 수군거렸다.

“그거 한 마리면 정말 사람 하나 잡겠다.”

“하나만 잡을까.”

혜경도 별로 명품에 관심은 없지만 그런 걸 만들려면 사람 인생 하나 정도 말아먹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명품이 인기가 많다곤 하는데 사실 혜경은 실감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자기 친구들은 대체로 그런 것과 친하지 않다.

하기야 학점 구멍 안 내려면 크고 무거운 가방을 등에 메고 다녀야 한다. 명품이라 불리는 것처럼 대체로 실용성 면에서 부족한 가방들을 들고 다니긴 힘들다. 사생활에선 어떨지 몰라도.

“어쨌건 조용히! 이 20억은 이지연에게서 고맙다고 받은 거야.”

강민이 드디어 출처를 밝혔다.

“오, 역시!”

“부자가 된 보람이 있네!”

모두들 이지연의 보상이라는 데 감탄하며 말했다.

하지만 한 사람, 호성만은 찌푸린 얼굴로 비판하듯 말했다.

“근데 20억이면 적은 것 같은데.”

다른 단원들이야 거액이란 것과 친하질 않아서 20억이라 하면 그저 대단한 금액처럼 보이지만 못지않은 부잣집 집안인 호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지연이 너무 박하게 보상한 거다 싶었다.

이제 배당금만으로도 일 년에 500억은 벌 텐데, 20억 가지고 목숨값을 퉁치려 들다니.

아무리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지만 이쯤 되면 이지연이 너무 치사하다고 비판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호성도 이지연을 만나본 바가 있으니 그게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아마 가난에 너무 찌들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감이 오지 않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게 다가 아니고 언제든 필요하면 또 연락하라니까. 심지어 강민단원이 되고 싶다고 해서 받아들이기로 했지.”

강민은 서둘러 오해를 정정했다.

“와!”

“굉장한데.”

그러면 사실상 재원은 무한에 가깝다는 말이다. 어차피 하루에 활동비가 일억씩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호성도 강민단원이 되고 싶어 했다는 데서 그녀가 결코 욕심 부리느라 제대로 자신이 입은 은혜를 갚지 않으려 드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강민은 이어서 밝혔다.

“그래서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생각하다가…… 일단 너희들 학비로 쓰려고.”

“우리?”

“응.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라.”

“으으 그런 것 말고 현금으로…….”

재철이 안타깝게 말했다.

강민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각자 일억 정도는 주마. 그렇지만 대학은 졸업하고 난 뒤에. 그 전에는 안 돼!”

“젠장 지가 우리 엄마도 아니고.”

당장 준다는 줄 알고 기뻐하던 단원들은 금세 투덜거렸다. 그 말을 듣고 강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엄마가 못하는 걸 해 줘야지. 안 그러냐?”

“아, 그, 그렇습죠.”

오랜만에 강민이 자신의 위압감을 뿜어대는 데는 이전처럼 깨갱하고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강민에게 직접 갈굼받지 않았지만 한번 시작되면 다시 악몽이 부활한다.

“그 외에 혹시 너희들이 급히 필요한 돈이 생기거나 하면 쓰려고. 단, 호성은 여기서 뺀다. 상관없지?”

“뭐, 나야.”

강민의 말에 호성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줄 줄 알았어. 그러면 앞으로 일 년도 남지 않았으니 서울대를 목표로 다들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자!”

“으으…….”

“결국 이거야…….”

강민단원, 정확히 재철 일당은 죽을상이 되었다.

고생 좀 한 덕에 큰돈이 생기나 했더니 결국 이런 귀결이라니. 즐거움은 없고 고난과 고통만이 가득한 시간들!

하지만 작년 마지막 시험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재철 일당의 성적은 정말 무섭도록 올라서 지금 속도로 계속 성적이 오르면 수능 칠 때쯤이면 정말 서울대를 노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강민이야 벌써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즐겁게 듣고 있던 세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호 다들 열심히 해. 참 내가 사 온 과자가 있으니 그거라도 먹으면서 공부해.”

그러면서 자신의 가방에서 종이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오오 여신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세나는 모두에게 아름다운 누님 대접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건 에이리도 물론이지만 좀 더 기분파에 대하기 편하다는 평판이었다.

“맛있어 보이네.”

“근데 어디 과잔가요?”

하나를 쥐면서 호성이 물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세나는 답했다.

“내가 사는 곳 근처 빵집.”

그걸 보고 에이리와 강민은 잠시 놀란 표정이 됐고, 과자로 가려던 손이 멈칫 멈췄다. 이어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 다른 이들은 별생각 없이 각자 과자를 들었다.

“음, 골목 경제에 보탬도 되겠…… 헉.”

재철이 와그작 부숴서 씹어 먹다가 새파란 얼굴이 됐다.

“어억…….”

재철만이 아니었다. 대철일당 전부에 강석과 호성까지! 모두 일제히 새파란 얼굴이 되어서는 바닥에 쓰러졌다.

“왜, 왜 그래?”

혜경이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서며 모두가 괜찮은지를 살폈다.

그러나 강민은 전혀 놀라지 않은 기색으로 고개를 돌려 세나를 노려봤다. 이때 세나를 노려본 것은 강민만이 아니라 에이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거 니가 만들었지?”

강민이 째려보며 물었다.

“이, 이상하네. 이번엔 자신 있었는데.”

세나는 귀엽게 웃으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천사처럼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당해본 적이 있는 이들에게는 악마의 현신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

남자는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개척되지 않은 산길은 험해서 성급히 달리다간 돌부리에라도 걸려 넘어질 것 같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 아주 무서운 것이 쫓아오는 듯이 헐레벌떡 길을 달렸다. 온몸은 땀투성이였고, 입안은 메말라 침은 끈적해졌다.

“헉, 헉, 헉, 헉…….”

달리면서 그는 가끔 뒤를 흘깃 바라봤다.

그가 보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는 짧은 순간 안도하면서 계속 앞으로 달렸다. 그러나 그가 안도하는 바로 그 순간에 앞쪽에 있던 나무가 흔들리더니 검은 그림자가 불쑥 떨어져 내렸다.

마스크에 장갑을 한 기묘한 차림의 남자!

바로 장갑맨이었다.

강민은 남자의 앞을 막으면서 조소했다.

“겨우 여기까지 왔나.”

“이, 이 새끼!”

남자는 강민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반사적으로 칼을 꺼내 쥐면서 위협조로 외쳤다.

그러나 그것이 허세에 불과하다는 것은 칼을 꺼내 쥐면서도 계속 뒷걸음치며 도망갈 길이 없는가를 살피고 있는 데서 뻔히 알 수 있었다.

“그런 게 나한테 위협이 될 것 같아?”

“주, 죽여버린다! 오지 마!”

“이거 바보 아냐?”

강민은 피식 웃으면서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부웅!

남자는 칼을 휘둘러 그 주먹을 막아보려 했지만 아무 의미도 없었다. 강민의 주먹은 남자의 복부에 그대로 들어갔다.

퍽!

“컥!”

북치는 소리가 나고 남자는 뒤로 날아갔고 흙바닥을 뒹굴었다.

“으으…….”

땅바닥을 기며 도망가려는 남자의 뒤를 추적해서 강민은 그의 머리를 잡았고 들어 올린 다음 얼굴을 마주하며 말했다.

“열 살도 안 된 어린애를 폭행하고 강간할 때는 신이 났겠지.”

“아, 아…….”

남자는 아무말도 못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조고두.

열 살도 되지 않은 여자애를 강간해서 심한 상처를 입힌 사건으로 전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고, 전국 각지로 도망치던 흉악범이었다.

그를 노리고 강민이 추적을 시작했고 불과 이틀 만에 잡아 이렇게 징벌을 하는 중이었다. 철저히 종적을 감췄던 이남식 역시 강민에게 결국 잡혀 지금은 감옥에 처박힌 신세다.

이런 시시한 강간범 따위가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제 뒷감당을 할 시간이다.”

강민은 벌벌 떠는 그에게 음산하게 웃어 보이고는 한 손으로 그의 두 고환을 쥐었다.

조고두가 공포에 벌벌 떠는 표정이 됐다. 아랫도리가 서서히 알싸하게 아파왔다. 그리고 점점 더 강민이 힘을 줬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박살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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