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사실 가장 큰 도움이 되는 보답 방법이다.
“아니 결코 그렇겐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맙지요. 사실 이런 일 하는 건 활동자금이 많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
“역시 그렇군요.”
다행이라는 듯 이지연은 안도의 한숨을 폭 내쉬었다. 강민은 그녀가 내민 카드 여러 장을 받아 품에 넣으면서 감사의 뜻을 전했다.
“후후, 그러면 앞으로도 어려운 사람들 많이 도우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고맙게 받겠습니다.”
“네.”
이지연이 돈으로 굳이 보답하려 한 것에는 강민이 지금 말한 것처럼 그걸 활동자금 삼아서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한다는 바람도 있었다.
아무래도 폭력을 주된 방법으로 하는 만큼 표면적인 영역까지 나와서 활동하긴 무리고, 대신 활동자금이라도 많이 있으면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많이 도울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해지면 찾아주세요. 힘닿는 대로 도울게요!”
“하하, 든든합니다. 꼭 기억해 두죠. 그러면 앞으로는 행복…….”
그러면서 강민은 이제 떠나려 했다.
하지만 이지연이 말렸다.
“아니, 잠시만요.”
“네?”
이지연은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강민의 시선을 느끼고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녀는 후하후하 하며 여러 번 심호흡을 한 다음에 이제까지 쭉 마음에 묻어 뒀던 것을 말했다.
“저기…… 가능하면 저도 강민 씨가 하는 일을 쭉 도울 수 없을까요?”
“아, 그건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아니 그런 거 말고요.”
“그러면…….”
마스크 안쪽에서 강민은 이제까지 중 가장 놀란 표정을 만들었다. 이지연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말했다.
“그러니까, 저도 강민 씨와 같이 일하는 걸 해 보고 싶어요.”
“으음…….”
상상도 못 한 제안이었다.
이지연이 강민단에 합류한다니!
“아, 안 될까요?”
“아니 뭐 안 될 거야 없습니다만…….”
잠시 생각하던 강민은 뭐 상관없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선도 그룹의 대주주 중 한 사람이 될 사람이 있기엔 좀 험한 곳에 추레하기도 하다 싶지만 따지고 보면 강민과 에이리, 세나는 선도 그룹 따위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고귀한 신분이다.
그리고 현재 구성원 중에서도 영화 그룹의 장래 높으신 분이 될 이가 있다. 호성 말이다. 그러니 선도 그룹의 대주주가 낀다고 해서 이제 와서 특별히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그럼 괜찮은 건가요?”
이지연은 환하게 밝아진 표정으로 확인 차 물었다.
강민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입장이 될 텐데 가능하겠습니까?”
“그렇진 않아요. 어차피 저는 경영 같은 건 잘 모르니까요. 주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경영을 배워 보겠느냐는 말도 있었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다고 이지연은 답해뒀다.
그리고 이남식과 적대하고 이번에 경영권을 장악한 파벌 쪽에서 이지연이 경영 공부를 해서 지금 구도에 끼어드는 걸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후후, 지켜 주실 거 아닌가요?”
“그거야…….”
강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지연은 더 볼 것 없다는 태도가 됐다.
“장갑맨이 지켜 준다는데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안전하게 있는 방법이 더 있을까요.”
확실히 이지연이 말하는 대로였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알겠습니다. 이지연 양도 오늘부터 강민단원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와!”
“자세한 사정 같은 건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그럼 강민단의 입단을 축하한다. 이지연!”
강민은 이지연의 입단이 확정되는 순간 거기에 맞춘 듯이 말을 놓았다. 벽이 허물어진 느낌이 들어 이지연이 굉장히 기분이 좋았고, 끄덕이며 말했다.
“응!”
*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됐다.
봄의 한 주말.
영화관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디지털로 크게 촬영되어 붙은 각종 영화의 포스터가 여기저기 있었다. 화려하고 멋진 것도 있고, 장중하고 엄숙한 것도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크게 붙은 영화 포스터는 아주 특이한 어떤 마스크를 쓴 남자의 모습이었다.
바로 장갑맨!
그에 대한 영화가 얼마 전 완성되어 이제 개봉된 것이다.
무수한 사람들이 매표소 앞에 줄을 서서 자신에게 편한 시간의 표를 사기 위해 노력했다.
장갑맨에 의한 이남식 체포 사건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가져다준 충격에서 회복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장갑맨을 신뢰하고 영웅으로 떠받들게 된 덕분인지 다른 영화에 비해서도 장갑맨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훨씬 뜨거운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우르르 몰려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무척 눈에 띄는 그룹이 있었다. 주로 학생으로 구성된 것 같았는데 구성원 가운데 몇 명 있는 여성들이 하나같이 못 믿을 만큼 아름다웠다.
특히 둘은 외국이었는데 어디 유명한 모델이 아닐까 싶을 정도!
주변의 남자들이 영화보다 더한 구경을 했다며 수군거리곤 여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지나갔고, 여자 친구와 같이 온 이들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분노의 하이힐에 발을 찍히고 후회하며 쩔뚝쩔뚝 걸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강민단!
그들의 중앙에서 일행을 이끌고 있는 것은 강민이었다. 방학이 지나고, 3학년이 된 첫 중간고사를 지나 주말이 되었다. 그 기념으로 다들 모여 이번에 개봉한 장갑맨 영화를 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는 방금 보고 나온 영화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말했다.
“재밌군!”
“잘 만든 것 같아.”
“그러게.”
다른 단원들도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남식 사건이 끝나고 에피소드 추가와 개선을 위해 각본 수정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까 싶었는데 실제로 완성된 물건을 보자니 아주 만족스러웠다.
특히 액션이 압권!
배우들이 몸을 바쳐가며 연출한 액션 장면은 남자들을 오징어로 만드는 전설의 영화 이후 가장 뛰어난 장면들이라 평할 수 있을 만큼 스타일리시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사실 강민의 전투장면 CCTV가 시중에 많이 돌아다닌 덕분이었다. 실제 초인의 전투 장면인 만큼 호기심으로 볼만한 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졌고, 특히 특수효과나 무술감독 하는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이 영화 역시 바로 그 부분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여서 만들어진 영화!
“정말 저랬어?”
혜경이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물었다.
“아 고증을 따지면 까고 깔 데야 얼마든지 있지요. 그래도 뭐 저 정도면 준수하달까.”
강민이 한 말에 혜경은 영화 속에 주인공이 보여줬던 현란한 몸동작을 생각하게 감탄한 표정이 됐다. 직접 싸우는 걸 본 건 아니라서 사실 강민의 실력이 어떤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이거 시리즈물로 나오는 거 아냐?”
재철이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장갑맨이 이걸로 사라진 게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잖아.”
“그런데 영화 다 끝나고 맨 뒤에 장갑맨은 아직도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에 의한 각종 범죄 예상 보고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건 손발이 오그라들더라!”
호성이 낄길 웃으며 그리 말했다.
“사실인데 뭐가 어때서.”
“아, 사실이라도 저런 식으로 영웅시해서 보자니 좀 그렇잖아?”
호성의 말에 재철 일당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더라. 좀 징그러운 느낌이었지.”
혜경은 ‘나는 멋있던데.’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다들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굳이 말하는 것은 그만뒀다.
“뭐 우리야 맨날 보고 있으니까.”
“안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저렇게 신비롭고 대단하단 분위기겠지.”
“평론가 평은 갈린다던데?”
강석이 말했다.
호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어쨌건 장갑맨은 범죄자니 말이야. 범죄자를 미화하는 내용이라고 좋게 평가하기 힘들다 이런 평론가들이 있다는 거지.”
확실히 비판적으로 보자면 지금 보고 나온 영화는 실존하는 범죄자를 미화하는 내용이다. 좋게 보지 않는 사람이 없는 쪽이 이상하다.
워낙 장갑맨이 민간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서 영화도 무사히 나온 거지 사실 심의 과정에서 막혀 못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다.
“거기다 뭐 그 사람들이 보기엔 흔한 액션 영화고.”
“그래도 굉장히 높게 평가한 평론가도 많다잖아.”
물론 평론가 평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서 오락 영화로서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 재철이 끼어들었다.
“아, 그걸로 평론가 비교 평가하는 것도 웃기더라. 저 평론가는 좌빨, 저 평론가는 우빨 이렇게. 하긴 그렇게 나올 수도 있겠더라. 재벌과 싸우는 불법의 영웅처럼 나와 있었으니까.”
웃긴 일이긴 한데, 현재 한국에서 장갑맨은 일종의 정치적 아이콘으로서의 성격도 띠게 되었다. 재벌을 응징했다고 하는 사건 때문이다.
마치 단순한 도적에 불과한 임꺽정을 영웅으로 포장해 놓았던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강민은 코웃음을 쳤다.
“뭐 그냥 악당들 때려잡은 거지, 거기 재벌이고 아니고가 무슨 상관이야.”
“그건 그래.”
다들 동감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놈은 때려잡고 착한 사람은 구한다!
그냥 쉬운 원리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길을 북적거리며 이동할 때였다. 어느 매장을 지나는데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호성이 아는 체를 했다.
“아. 이 노래. 요즘 꽤 유행이지?”
“뷰티걸 신곡 아냐?”
“뷰티걸이라기보다 수란 아냐?”
“수란이지.”
재철이 그 말을 받자 수구와 만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이야기에 끼어들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혜경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수란?”
“뷰티걸에서 요새 핵심 보컬하고 있는 애 있잖아요. 걔 본명.”
“아, 그랬구나.”
“네. 요새 걔 노래 실력 정말 끝내주지 않아요?”
“응. 갑자기 팍 노래 실력이 늘었던걸.”
혜경도 동감이었다.
수란의 노래 실력은 그룹의 다른 아이돌에 비해서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독창 파트 같은 게 배분될 때 노래를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요즘 뷰티걸의 노래가 따라부르기 대단히 어려운 고난도 곡이 많이 섞이고 있기도 했다.
“수십 년 노래만 판 가수 같아서 아이돌 노래라고 까던 사람도 많이 줄었죠. 뭘 한 건지 몰라.”
“기계음 아닐까?”
“그걸 의심해서 기계음 제거 조작해서 분석한 영상도 있었는데 아니라더라.”
성형은 과거 사진을 뒤져서 진실을 밝히고, 옛날 사고 친 것도 사이를 뒤져 몽땅 캐낸다! 인터넷 시대 사람들의 행동력은 쓸데없이 활발!
노래라고 그 잉여스러운 탐색 대상에서 벗어날 리는 만무했다. 어디 숨어 있던 것인지 모를 다양한 전문가들이 나서서 라이브 영상, 뮤직 비디오 등 여러 가지 영상을 분석한 결과 수란의 목소리는 진짜라고 인정받았다.
“진짜 대단하네.”
“수란 같은 애가 많이 나오면 허황된 설레발에 불과한 한류 케이팝도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지도 모르지.”
강석도 수란의 노래 실력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민은 살짝 뿌듯함을 느끼면서 모두를 향해 고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단원들 모두에게 이야기할 게 있으니까 지금 당장 기지로 돌아가자!”
“뭐길래?”
“후후, 그건 뭐 가서 들으면 알 거야.”
강민이 잘난 척하며 말하자 다른 단원들이 수군거렸다.
“폼잡아 놓고 시시하면 욕해야지.”
“그래. 여러 소리 들을 거다.”
에이리와 세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은 괜히 폼잡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