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이남식의 능글맞던 얼굴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다.
강민이 이남식을 잡은 손에 천천히 힘을 가했다.
“히, 히이익!”
이남식은 해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덜덜 떨었다.
그는 벌써 오줌을 싸고 말았다. 이어서 오랜 시간 동안 이남식의 처절한 비명이 산중을 가득 채웠다.
*
강민이 이남식을 걸레처럼 만들고 몸과 영혼 모두를 완전히 굴복시켰을 때는 서서히 해가 밝아오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강민은 보람찬 하루 일을 마쳤단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양손이 다 뭉개진 채 벌벌 떨면서 정신 퇴행 증상을 겪고 있는 이남식의 곁에 앉아 있었다.
이어 전화가 왔다. 세나에게서였다.
“세나. 무슨 일이야?”
-어제 난리가 났었는데, 이야기 들었어?
전화를 받자마자 세나가 한 말에 강민은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난리가 났다니?”
-그 목표가 됐던 여자애 있잖아. 걔를 노리고 자객들이 쳐들어 왔대.
강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뭐야! 하필이면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운이 없었지.
기막힌 우연이었다.
강민이 이남식을 치려 움직였을 때, 이남식 역시 이지연을 치려 움직이다니. 이얼산쓰 네 사람이 보이지 않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너한테 연락하려다가 어차피 시간에 못 맞출 테니 하던 일에나 더 집중하라고 지금 연락한 거야.
“그랬군.”
혀를 차면서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건질 수 없다면 하나에 집중한다.! 냉혹한 모험의 세계를 지내온 세나나 강민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다행히 막아 낸 모양이야. 강민 단원들이 결사적으로 시간을 끈 것도 있고, 에이리가 운 좋게 시간에 맞춰 현장에 도착했다나 봐.
“천만다행이군…….”
강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 정말 큰일 날 뻔했지 뭐야.
“모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겠군.”
일단 재철 일당에게 경호 임무 비슷하게 해서 지연네 집 주변을 지켜보라 하긴 했지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전투력의 차이가 너무 극심했기 때문이다. 한데 예상외의 활약으로 지연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나중에 선물을 크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이어 세나는 물었다.
-너는 어때?
“나?”
강민은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쪽에는 이남식이 벌벌 떨면서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제 강민이 하는 말에 결코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악마조차 울부짖게 만든다는 강민에 걸려 만신창이가 되었으니까. 저러고서도 욕심 부리며 강민의 말에 저항할 수 있다면, 그의 정신력은 악마 이상으로 악독하다는 뜻이었다.
“나도 물론 잘 끝났어.”
-아, 그럼 이 일도 이제 끝난 거야?
세나는 반가운 듯이 물었다.
“그래. 이지연을 노리는 자는 이제 없어.”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쾌하게 선언했다.
*
남자는 바에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는 이지연을 보았다고 얼마 전 선도그룹의 광고를 보고 연락했던 청년이었다. 당시와는 전혀 다르게 깨끗한 옷을 차려입은 모습이 적지 않은 돈을 받은 것 같았다.
그의 앞에서 대화 상대가 되고 있는 여인은 젋어 보엿고 화장은 짙었지만 예뻤다.
“하하하.”
“호호호.”
대화를 하며 농담이 교환됐고 둘은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여자는 남자를 보면서 입발린 소리를 했다.
“오빠 멋지다.”
“그렇지?”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여자는 호기심에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성공했어?”
“그건 뭐 사업에 성공한거지.”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물론 그의 신세가 이렇게 편 것은 사업에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어디 취직한 것도 아니다.
그저 공돈이 생겼다.
지난번 여자애를 보고 광고에 따라 전화를 했더니 통장에 이만원이란 돈이 들어왔다. 주기로 한 돈은 일억이나 되는데 왜 이만원이냐니까 정말인지 확인되면 준다고 했다.
그리고 확인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확인 전화가 오는 대신 그 여자애가 살던 동네가 엉망으로 파괴된 것만 봤다. 경찰이 잔뜩 와서 뭔가 작업을 했고, 주변 많은 건물 창문이 깨지고 사람들이 다쳤다고 한다.
이야기에 듣기에 어떤 중국 범죄자가 와서 여자애를 납치해 가려 했다던가.
남자는 그때 크게 놀랐다.
놀랄 수밖에.
자신의 전화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하지만 그는 경찰에게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았다.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었다. 받은 돈도 아까웠다.
몇 사람이 죽고 누가 납치당할 뻔 했든 무슨 상관인가!
지금 자신이 가진 돈이 중요했다!
죄책감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욕심이 더 마음을 앞섰다.
“무슨 사업이야?”
“의류 사업 같은 거.”
가장 간편한 답을 했다.
“쇼핑몰 해?”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
어설프게 웃으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예쁜 옷 같은 거 많이 알겠네?”
“물론이지.”
사실은 옷의 옷자도 모른다.
지금 입은 옷도 인터넷 갤러리 같은 데서 물어물어 맞춘 것이다.
“다음에 나한테 어울리는 옷 하나 어때?”
쇼핑몰 사장이라니 당장 여자는 그런 말을 해 왔다.
“물론이지.”
남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에 들른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하지만 항상 여자에 궁했는데 이렇게 이야기도 들어주고 자기를 좋아해 주는 여자가 있다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가능하면 꾀여서 이차도 가 보고 싶었다.
남자는 이야기가 여기까지 잘 진행되었으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생각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니... 어때?”
“그러면 좋아.”
남자가 어렵게 마한 것에 비해 여자는 아주 쉽게 답했다.
남자는 물론 뛸 듯이 기뻐했고, 그는 남은 술을 얼른 마시고는 함께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성급하기는.”
여자는 웃으면서 재촉하는 남자를 놀렸지만 그는 이미 많이 흥분한 상태였다.
여자라니. 대체 얼마 만이람.
공무원 공부한다고 올라와 허송세월 하면서 매일매일이 힘들어 여자를 사귈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못했다. 지금도 사실 사귀는 건 아니다.
이건 그냥 좀 덜 노골적인 매춘에 불과하니까.
그래도 그것만 해도 어딘가. 야동이 친구라는 신세는 최소한 면할 수 있게 되니까.
곧 두 사람은 함께 바를 빠져나와 근처 모델로 들어갔다. 함께 들어간 여자는 눈웃음을 짓고 말했다.
“먼저 샤워할게.”
“그, 그래.”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침대에 앉은 채 침을 꼴깍 삼켰다. 벌서 페니스는 흥분해 솟아오른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문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탕탕탕!
깜짝 놀라며 남자는 밖에 대고 물었다.
“누, 누구야?”
“거기 있는 다 알고 있어! 얼른 문 열어!”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당황하며 남자는 문을 살짝 열어 밖을 확인했다. 그러자 문이 확 열리며 커다란 체구의 깡패가 안으로 들어왔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남자는 말했다.
“당신이 누군데 행패야!”
“내? 니가 데리고 나간 년 남편이다!”
깡패를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남자가 당황하는건 당연했다.
“남편?”
“그래!”
깡패를 그러면서 남자를 후려쳤다.
“으악!”
남자는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어디서 남의 여자한테 손을 대려고 해! 죽고 싶어!”
“마, 말로 합시다!”
벌써 부풀어 오른 얼굴로 남자는 오들오들 떨면서 부탁했다. 깡패는 코웃음을 치며 남자를 더욱 겁주며 때렸다.
“이게 말로 할 일 같아!”
“아악!”
비명소리가 나던 중에 겨우 샤워를 마친 듯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타올 하나로만 옷을 가리고 있었는데 나오자마자 본 광경에 크게 경악했다.
“꺄악! 여보!”
“이 년이 어디서!”
깡패가 화나 몸을 일으키자 그녀는 쩔쩔맸다.
“그, 그게...”
“너희 둘 다 죽었어!”
두 사람은 싹싹 빌기 시작했다.
“자, 잘못했어요!”
“살려 주십시오!”
깡패가 너무 무서웠다. 당장 살해당해 바다에 퐁당 던져 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깡패가 말했다.
“진짜 살고 싶어?”
“네...”
“그럼 이천만원이다. 내일까지 계좌로 넣어 둬. 아니면 너희 년놈들 둘 다 산채로 포를 떠 주마. 경찰에 쓸데없는 소리 해도 독같은 꼴이 될 거야! 알겠냐!”
깡패는 품에서 새파란 칼을 꺼내며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남자는 덜덜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꽃뱀에세 물렸다는 건 눈치챘지만 경찰에 신고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러기엔 지금 눈앞에서 번쩍이는 칼이 너무 무서웠다. 그러면서 나쁜 짓으로 번 돈이라 오래 가지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남자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