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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104화 (104/227)

104화

강민은 실수했다는 걸 느끼며 말했다.

“고, 고생이 많았나 보지?”

“그걸 말이라고 해! 중간에 도망친 넌 모르겠지!”

그녀는 강민을 째려봤다.

강민은 지금 그녀의 눈빛이 지옥의 일급 악마보다도 무섭다고 느꼈다!

“아, 아니 미안하게 생각해.”

세나는 이를 갈았다.

“업무, 그리고 업무! 회의에 회의! 나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일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면서 생각했어!”

이어 바닥을 작은 발로 쾅 구르며 외쳤다.

“이럴 바엔 세계를 구하는 영웅 따위 되는 게 아니었다고!”

세계를 구하자 들이닥친 것은 격무!

부귀영화 따위는 사실 이전에 다 얻었다!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건 나를 비롯해서 같이 고생했던 동료들이 다 함께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었지!”

생사고락을 같이 한 친구들이 다 죽어가는 얼굴로 일하니 일 초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은 것을 견디고 일했다.

“혼자 고생하라 하면 못 했을 거야! 억울해서!”

세나가 강민을 노려봤다.

“그런데 니가 도망갔지!”

“하하하…… 하하…….”

강민은 할 말이 없었다.

그렇기는 하다.

격무가 싫어서 도망쳤다!

그래서 지구에 있다. 이건 부정의 여지가 없는 사실!

“그게 시작이었어!”

“그, 그랬어?”

“하나둘씩 도망갔지! 그리고 결국 에이리 그년까지 도망가고 말았어!”

세나는 악마의 마기와 같은 원독을 전신에서 피워올렸다.

“히, 힘들었겠네.”

“그걸 말이라고! 나도 얼른 도망치고 싶었는데! 파충류가 말려서!”

“그, 그랬어?”

파충류는 그도 잘 아는 용이다.

그를 파충류라 비하할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세나의 힘과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냥 히스테리 부리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히스테리가 맞기도 하고.

“남은 일 처리하고 겨우 올 수 있었어! 그래서 피부가 이 꼴이라고!”

“사, 살은 빠졌잖아.”

화가 나 외치는 세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강민이 말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음인지 세나는 분기를 가라앉히고 소파에 앉았다.

“그건 다행이긴 하지.”

“그래.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 푹 쉬어.”

겨우 분노를 가라앉힌 기색인 걸 다시 자극할 수는 없었다. 강민은 조심하면서 세나의 비위를 맞췄다.

세나가 이어서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런데 그 계집애는?”

“에이리?”

“달리 누가 있겠어.”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은 답했다.

“에이리는 지금 한국에 없어.”

“없어?”

강민은 간단히 설명했다.

“경호원 일을 시작했거든. 평판이 아주 좋아. 덕분에 지금 부자 아줌마 호위가 되어 유럽을 관광하고 있다는 모양이야.”

“아주 자리 잡은 모양이네?”

“능력이 있으니 그런 거야 쉽지.”

지나치게 뛰어난 육체적 능력과 용모 때문에 초반에는 도리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적성에 비교적 잘 맞는 일을 찾아 활약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연봉 일억도 금방 넘길 것 같았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세나는 에이리의 성공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강민이 얼른 말했다.

“물론 너도 마찬가지일 거야! 너무 뻔해서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을 뿐이지.”

“호호, 알긴 아네.”

세나는 기분이 좋아진 듯이 웃었다.

“하하, 당연한 거 아냐.”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 말이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세나는 어마어마한 능력자다!

세나가 처음 했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그런데 내 능력이 필요한 일이란 게 뭐야?”

“실은…….”

강민은 사정을 설명했다.

***

강민이 한 시간 정도 지나 이야기를 끝낼 수 있었다.

“재밌는 일을 하고 있네.”

고개를 끄덕이며 세나는 흥미진진 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휴가 온 거니까.”

“마음 편히 영웅 놀이하면 그게 참 재밌긴 해. 내가 생각할 때도 제일 즐거웠던 게 다들 파티 짜서 모험 나가던 초기 때였던 거 같으니…….”

세나는 그리워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강민도 그건 동감이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나중에는 명성이 쌓이니 업무의 폭풍만 휘몰아치고 여기저기서 접견 요청 들어오고. 끔찍했어.”

“귀찮았지.”

둘 다 함께 표정이 우울해졌다.

한숨을 쉬며 추억을 정리한 다음 세나는 핵심을 파악하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그 이남식이라는 자의 위치를 찾아달라는 거지?”

“응. 너라면 간단하잖아?”

“어렵진 않아.”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대현자.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일컬어질 정도의 존재였다. 그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사용하는 마법의 다양함은 상상을 초월!

“역시.”

“하지만 시간은 좀 필요해.”

“그래?”

세나는 미간을 좁히며 설명했다.

“여긴 마력이 너무 적어서…… 강력한 마법은 사용하기 힘들어.”

“그렇긴 하지.”

이세계 지구로 건너온 이들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다만 문제라고 해도 원래 세계에 비해 약하다는 거지 다들 충분히 어처구니없이 강했다.

“마법에 사용할 정보도 좀 필요하고.”

“어떤 거?”

“그 사람이 지니고 있던 물건 같은 거면 좋아. 신체의 일부면 최고고. 그 외 모습이 담긴 그림 같은 것도 좋아.”

“구해볼게.”

본인은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가 사용하던 물건이라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구하면 내게 전해줘. 그렇게 되면 한 달 안에 어디 있는지 찾아낼 수 있어.”

“응.”

강민이 웃었다.

이제 세나가 왔으니 이남식 따위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였다.

덜컹.

강철 문이 열리려는 소리가 났다.

강민의 얼굴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헉!”

“왜?”

세나가 의아하단 얼굴로 강민을 봤다.

강민은 쩔쩔매며 말했다.

“부모님이 왔어!”

“아, 인사해야지!”

세나는 상큼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민은 한층 더 새파래진 얼굴이 되어 세나를 말렸다.

“아, 안 돼!”

“왜 그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세나가 물었다.

“에이리가 먼저 인사했어! 이런 상황에서! 너까지 나타나면 무슨 말을 들을지!”

강민은 절실하게 말했다.

더구나 지금 세나는 속옷은 챙겨 입지 않은 상태로 강민의 옷만 입고 있다! 윗옷의 품이 커서 빌려 입은 반바지는 완전히 가렸다. 그야 말로 하의실종 상태!

이런 상태로 밤중에 세나와 부모님이 만난다면 어떤 오해가 있을진 불 보듯 뻔한 일!

“그러면 더욱 해야지!”

하지만 세나는 도리어 더욱 기뻐했다.

도장을 찍어둘 생각인 것이다.

강민은 절규했다.

“안 돼! 나는 여기서 고등학생이야!”

“그게 뭐야?”

“사회적 의무를 면제받는 미성년이란 뜻이지.”

“그거랑 이게 관계있어?”

미성년이라고 여자랑 놀아나는 놈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고등학생이 밤에 여자랑 그것도 여럿이랑 놀아나면 욕먹는다고. 부모님께 그런 식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세나가 살던 세상에선 확실히 미성년과 성년의 구분 같은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 열네 살 짜리도 군대에 가서 살인을 하는 세상인데 섹스 경험 따위가 뭐 대수일까.

강민 나이 때 아들딸 거느린 가장도 드물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건 그쪽 세계 사정이고, 여긴 한국! 뉴스에 날 수 있을 만큼 쇼킹한 일인 것이다.

“그건 니 사정이고.”

하지만 세나는 강민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강민을 뒤에 버려두고 총총걸음으로 달려가 문 앞에 섰다.

문이 열리고 강민의 어머니 아버지가 들어왔다. 물론 두 사람은 집에 오자마자 현관에 서 있는 생글 웃는 얼굴의 아름다운 금발 소녀를 보고 딱딱하게 굳었다.

“어?”

“너, 너는 누구니?”

당황하면서 강민의 어머니가 먼저 물었다.

세나는 고개를 숙이면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저는 세나라고 한답니다.”

“그, 그렇구나.”

“만나서 반갑구나. 그런데…… 강민아, 설명 좀 해보겠니?”

강민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세나의 뒤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강민의 어머니가 황당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게…….”

강민은 더듬거렸다.

그럴 수밖에 더 있을까.

에이리는 한류 팬이라고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

다음 날.

강민은 강민단의 기지에 세나를 데리고 갔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세나는 명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이 강민단원이군요. 저는 세나라고 해요.”

“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강민단원들은 모두 넋이 빠진 표정으로 세나를 바라봤다. 세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도 있었지만, 또 어디서 저런 희귀한 미녀를 강민이 데려왔는가에 대한 당황스러움도 있었다.

그들은 이미 에이리와 강민이 사귀는 사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설마 강민과 저 세나라는 미녀가 단순히 친구 관계일 거라곤 생각했지만 그래도 여복이 좀 지나치게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을 깨고 세나는 말했다.

“저는 강민의 애인이죠.”

“헉?”

“또?”

“그게 뭐야?”

경악의 폭풍이 강민단원들을 휩쓸었다.

“왜 저놈만!”

“전생에 우주를 구했나!”

우주까진 아니지만 세계는 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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