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장갑맨이 범죄를 저질렀다!
물론 장갑맨은 범죄자다.
현대 법률은 개인이 제멋대로 복수를 하는 걸 용서하지 않는다. 오직 국가만이 다른 사람을 벌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제까지 해온 장갑맨의 행위는 어느 것 할 것 없이 모두 범죄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범죄라고 해도 모두 같은 범죄로 취급되는 것은 아니다. 정상참작도 있고, 합의도 있고 한 것처럼, 범죄라고 해도 사람들은 적어도 범죄에 대한 처벌은 꼭 국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성폭행당한 어린아이의 부모가 범죄자를 죽였다면?
그러면 사람들은 그 부모를 욕할까?
아니다! 칭찬한다!
왕따를 당하던 아이가 왕따 당하던 학생을 죽이면?
사람들은 그 아이를 욕할까?
아니다! 사회의 쓰레기를 잘 치웠다고 칭찬한다!
이렇듯, 같은 범죄라고 해도 적어도 사람들의 그 범죄에 대한 태도는 경우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장갑맨도 그랬다.
어쨌든 살인도 저지르지 않고 사회의 쓰레기라 할 수 있는 것들만을 골라 두들겨 패며 그 강력한 힘을 과시해 온 장갑맨은 비록 법적인 틀에서는 범죄자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영웅이었다.
영웅!
그것도 세계적인 영웅!
그는 등장과 동시에 화제가 되었고 이미 세계적인 팬클럽을 거느렸다.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한류스타는 책보다도 돈을 못 버는 케이팝 따위가 아니라 장갑맨이라 주장할 정도!
실제로 이미 장갑맨의 전투를 녹화한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일억을 넘긴 지 오래!
그래서 사람들의 장갑맨에 대한 인식은 영웅이지 범죄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사람들의 인식을 부정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장갑맨이 한국 굴지의 대기업인 선도 그룹의 총수 이남식을 습격했다는 것이다.
그 영상은 주차장의 CCTV에 모두 녹화되어 있었다.
경찰은 그 영상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장갑맨이 이남식의 목숨을 노리고 공격을 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발표했으며, 이 과정에서 다섯 명이 심한 상처를 입어 지금은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습격대상이 되고 만 이남식은 현재 심한 충격을 받아 모처에 칩거, 나오지 않은 중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들끓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신이 났던 것은 역시 평소 장갑맨을 좋지 않게 생각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차피 범법자에 불과한 장갑맨이 영웅 취급받으며 떠받들어지는 데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수에서 밀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더구나 사람들이 너무 장갑맨이 띄워주니 그 반발심리 때문에 장갑맨을 싫어하게 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수가 워낙 차이가 나고, 장갑맨의 범행이 범행답지 않았기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대고 삭힐 수밖에 없던 입장이었다.
그런 상황이 이제 바뀐 것이다.
장갑맨이 재벌 총수를 공격해 죽이려 했다고 하니까!
경찰이 이를 공인했으니까!
물론 장갑맨을 광신적이라 할 만큼 좋아하던 사람들이 이 정도에 굴할 리는 없었다.
더구나 선도그룹은 국내에서 악평이 자자했다.
자사 백화점 내 점주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나 부동산 개발 과정의 용역 업체 문제나, 자사 정직원, 비정규직의 대우 문제나.
또 욕을 먹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치권과의 부정한 관계 문제!
정치와 경제가 서로서로 뒤엉켜 굴러온 것은 한국의 아주 오래된 전통이지만, 이번 정권과 선도그룹의 관계는 도가 지나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야말로 악의 기업!
그들은 선도그룹의 악행을 보다 못한 장갑맨의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에 공감하는 이들도 어느 정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결국 범죄는 범죄!
이전에 비하면 장갑맨에 대한 열광은 확실히 그 정도가 덜해졌고, 늘어가기만 하면서 기세를 더하던 장갑맨의 팬들 역시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간에는 이런 이야기가 하나씩 떠올랐다.
역시 장갑맨은 범죄자일 뿐이 아닌가!
***
“아니야!”
강민은 분노해 외쳤다.
재철이 웃으며 말했다.
“범죄자 맞잖아.”
“아니, 그게 맞긴 하지만 내가 이득을 보려고 이런 짓 하는 건 최소한 아니잖아.”
명목상 범죄자니 어쩔 수 없이 범죄자란 사실은 지워지는 게 아니라서 강민은 멋쩍게 말했다. 그건 모두 동감했지만, 재철은 고개를 흔들었다.
“뭐, 사람들이야 그런 거 알게 뭐겠어.”
“그게 문제긴 하지만!”
강민은 이를 갈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걸 다 실패했어?”
강석이 물었다.
강민이 얼마나 강한지 생각하면 겨우 서넛 경비병을 못 뚫고 표적을 놓쳤다는 건 좀체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강민은 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중국 놈들이 너무 세!”
“니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세?”
호성이 놀라 물었다.
강민이 너무 세다고 말하다니!
터미네이터가 현실에 등장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것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강민을 바라보는 학생들 전부가 한 생각이기도 했다. 강민은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아니, 그렇게 센 건 아닌데, 나를 방해할 정도로는 셌지.”
모두의 얼굴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것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에게 ‘너무 세.’라는 말을 듣다니! 영화나 만화 속 주인공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 때려눕히는 데 10초 정도 걸렸어. 그동안 차 타고 이남식 그놈은 도망치더라고.”
“그랬군.”
강민은 당시 일이 생각나자 더욱 화가 나는 듯 이를 갈았다.
“으으…… 이런 제기랄.”
짜증을 삭히는 강민의 옆에서 재철이 투덜거렸다.
“나는 장갑맨 욕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도 아쉽더라.”
“나도 그랬어. 쭉 뿌듯했는데.”
만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은 의아하게 물었다.
“니들이 욕먹는 것도 아닌데 열 받을 건 뭐 있어?”
“그래도, 소속감이라는 게 있잖아.”
수구도 동감이었던지 옆에서 말했다.
이어서 혜경 역시 손을 들고 동감을 표시했다.
“사실은 나도 좀…….”
“누나도요?”
강민은 놀랐다.
설마 헤경까지 장갑맨이란 이름을 좋아했다니. 부끄러운 듯 얼굴을 조금 붉히면서 혜경은 말했다.
“응. 장갑맨 멋지잖아. 근데 오점이 생긴 거 같으니까…….”
“다들 좋아했던 모양이군.”
강민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호성이 물었다.
“장본인인 넌 어때?”
“나? 나야 그냥 정체나 숨기려고 한 차림이었으니까…….”
“그것뿐이야?”
호성이 그럴 리 없다는 태도로 추궁하자 강민의 태도 역시 약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애착도 좀 생기긴 했어.”
“역시 그렇지?”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팬의 수만 천오백만을 넘는다고 말해지는 영웅상을 만들어 놓고, 그걸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 같은 게 존재할 리 없다!
그러나 강민은 이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땐 아니지. 그리고 이번 일이 해결되면 그 오명도 마찬가지로 씻길 테고.”
“그렇긴 하지.”
모두 동감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이 한 말처럼 지금은 지연의 일을 해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이남식 찾으려면 앞으로 고생이겠네.”
“이런 꼴을 겪고 쉽게 모습을 드러낼 리는 없을 테니까.”
“장기전이 될 거 같은데.”
재철 일당이 수군거렸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강민의 얼굴이 찡그려졌을 정도!
“크으…….”
“어쩔 거야?”
호성이 물었다.
강민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 당장은 이렇다 할 수가 없지. 먼저 이남식을 찾는 게 우선이야.”
“그러지 말고 언론에 터뜨리는 건?”
호성이 제안했다.
강민이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언론에?”
“지연 양이 정말로 피가 섞인 가족이라면 확인하기도 쉽고 유산상속 문제로 정리하기 쉽잖아. 이렇게 불필요하게 싸우는 것보다 언론에 터드려서 공론화하는 게 훨씬 쉽지 않을까? 그러면 선도 그룹 측에서도 쉽게 어떻게 하지 못할 거고.”
정의는 이쪽에 있다!
더구나 그 정의를 증명하기 위한 자료 역시 모두 아군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테러리스트 같은 방법을 사용할 필요 없이 정정당당하게 언론과 법을 이용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호성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민은 난색을 표했다.
“음,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닌데…….”
“재판이 오래 걸릴 수가 있잖니.”
강민 대신 답한 것은 혜경이었다.
“그래요?”
“흔히 듣는 이야기잖아. 재판으로 결판내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합의한다든가 하는 이야기 말이야.”
헤경은 이미 강민에게 법률적으로 해결하면 어떨까 하는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전공이 법 쪽도 아니라서 당시에는 당장 답해줄 수 없었지만, 학교로 돌아가 그쪽 전공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거기서는 혈족 관계 자체는 입증이 어렵지 않다고 해도 유산 상속 문제는 충분히 오래 끌 수 있다고 말했다.
호성은 아쉽게 중얼거렸다.
“이쪽이 훨씬 유리한데…….”
“그건 확실해. 하지만 문제는 적이 시간 끌기 자체만 가지고 싸울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야.”
혜경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호성이 혜경이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 눈치챘다.
“시간을 끄는 동안 지연 양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인가요?”
강석이 혜경이 뭘 말하는 건지 알아채고 물었다.
혜경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리고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은 역시 얼굴을 비출 일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면 이지연이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 거면 저놈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재철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얼굴을 비춰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은 이남식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이런 일이 생긴 만큼 그렇지 않을걸. 정말 엄중하게 자기를 보호하고 움직일 거야. 아무리 강민이 세다지만 그런 걸 뚫고 납치하는 건 쉽지 않을걸.”
이남식은 돈이 많다!
사정이 사정이 만큼 경찰도 움직일 테고, 최고의 특수팀이 그를 경호하면서 요소요소에 저격병도 배치할 것이다.
아무리 강민이라도 라이플 탄환보다 빠를 수야 있을까!
그러니 그런 방어를 파괴하고 이남식을 납치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재철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런 거라면 우리도 마찬가지죠. 강민이 보호할 건데!”
“그러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혜경은 고개를 저었다.
“왜 못해요.”
“범죄자인데? 그리고 학교하고 일상 생활은 어쩔 거야?”
“아…….”
강민이 지키면 끄떡없다고 말한 이들의 얼굴이 금세 풀죽은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 강민은 범죄자인 데다가 학교 생활도 해야 해. 장갑맨 차림을 하고 오래도록 활동하긴 힘들어. 언론에 노출된다거나 이지연을 붙어서 보호한다는 것도 힘들지.”
강민이 장갑맨으로서 이지연을 지키려 하는 순간, 경찰이 달려들어 강민을 체포하려 할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호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니 결국은 이남식을 어떻게 하는 선에서 처리하는 게 최선이란 말이군요.”
“응.”
“응- 하지만 이남식은 숨어버렸는데.”
강석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찾을 방법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