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이 차에 모두 올라타고 문을 닫는 시점에 빠른 속도로 움직인 이가 있으며, 그가 차 밑면에 스며 들어갔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차는 곧 도로에 들어갔다.
이남식은 비서에게 물었다.
“지금 가는 시시한 사장단 회의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을 텐데 그쪽은 어떻게 됐지?”
“그것은 아직…… 죄송합니다.”
비서는 황송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남식이 지금 말하는 것은 이지연에 대한 것이다. 그녀는 행방불명이 된 이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 계집년의 어미는 지병이 있다. 의사를 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을 텐데.”
“그게 해당하는 환자가 최근에 병원에 전혀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산망 통합이 이루어진 이후 누가 언제 병원에 찾아왔다는 기록은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물론 개인정보인 만큼 제 3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 하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얻어 그 마케팅을 통해 타깃팅 전략을 펼쳐 성공한 백화점이 훌륭한 기업의 성공담으로 신문에 버젓이 오를 정도다.
그런 한국인 만큼 비교적 쉽게 그쪽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간 병원 기록을 봐도 찾아왔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의료보험을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거 아닌가?”
“환자의 얼굴을 가지고 최근 몇 달간 같은 약을 조제하도록 진단서를 끊어준 의사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해 봤습니다만 그런 여자는 온 적이 없다고…….”
일일이 의사에게 물어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선도그룹의 규모와 자금이라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계집년이 어미가 죽도록 버렸다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남식은 불쾌한 표정이 됐다.
“그 경우 골치 아플 텐데.”
“그러나 결국에는 드러날 수밖에 없을 테니 염려 마십시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꼭 곤란하기만 한 건 아니잖습니까.”
비서가 이남식에게 말했다.
현재 유산 상속 문제는 이남식이 억지로 막아둔 상태였다. 하지만 이대로 이지연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유산상속 자체가 무효가 될 테고, 그 경우 막대한 주식은 이남식에게 흘러들게 된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이남식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비서가 낙관적이랍시고 한 말이 너무도 엉터리였기 때문이다.
“멍청한 놈. 이번 정권 내에 해결해야 한다. 언제까지고 우리가 마음대로 정부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건…….”
비서가 곤혹스러운 표정이 했다.
확실히 그건 문제였다. 지금 선도그룹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만 해도 정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부지기수였다.
이지연에 관련된 것들은 거의 전부가 정부의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료정보 같은 것도 전부 그렇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게 되면 그런 정보를 얻을 길이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새로 정권을 얻은 이들을 매수하면 되겠지만 짧은 시간에 가능한 일은 아니다.
“만에 하나 현재 야당이 총선이나 대선 둘 중 하나에서만 이기기라도 하면 지금까지 편리하게 도움을 얻어온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자칫 역풍이 되어 날아올 수도 있어. 그런 일을 피하려면 이번 정권 내에서 깨끗이 계집애를 처리하고 뒷 후환이 없도록 청소를 해 놔야 해.”
저지른 일의 위험도를 볼 때 그것이 최선이다.
비서는 면목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실종자 신고를 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갑자기 이야기를 줄곧 듣고 있던 이가 말했다.
“어떤 건지 얘기해 보게.”
이남선이 흥미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사람이 많고 땅이 넓기 때문에 신문에 크게 광고를 내어 상금을 걸고 사람을 찾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효과는 좋은 편이지요. 한국은 사람수가 작고 땅은 좁기 때문에 훨씬 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중국은 나라가 큰 만큼 행정적으로 인간을 관리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이사도 허락 없이는 못 다니게 하는 방식으로 인구이동을 통제하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여기다 사정을 한층 어렵게 만드는 것이 남아선호사상에 더해진 중국 정부의 한자 녀 정책이다.
농업국가 구조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중국은 남아선호 사상이 여전히 강했고, 그런데 정부는 인구증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오래도록 한 자녀 정책을 취해 허락 없이 자녀를 하나 이상 낳지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민간에서는 엄청난 수효의 아이들이 국가에 등록되지 않은 채 태어났다. 커다란 관리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찾을 때 중국에서는 포상금과 함께 신문 등지에 얼굴을 싣는 경우도 많았다.
문화대혁명의 처참한 실패와 갑작스러운 자본주의화의 반동 때문에 중국인들은 돈에 대한 욕심이 아주 많았고 그만큼 돈이라는 동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으니까.
“나쁘지 않겠군.”
좋은 일로 찾는 것 같단 느낌이 드는 만큼 모르는 입장에서 보기에 의심하지 않는다.
더구나 포상금이 걸려 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어려운 불황의 시대!
상금이 크게 걸리면 여기저기서 제보가 있을 것이다.
상금을 노린 헛소리가 많이 모일 우려도 있지만, 그 정도 걸러내는 건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시행할까요?”
“상금은 일억을 걸고 시행하게.”
비서가 묻자 이남석은 대뜸 말했다.
“신문사에 연락하겠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무엇보다 뉴스가 사람들의 헛된 환상을 키우는 면이 있지만 일억이면 어마어마한 돈이다.
사회초년생이 10년을 모아야 겨우 모을 수 있는 돈.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도록 처리해 두도록.”
“물론입니다.”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화제가 되었으니 화젯거리를 찾는 출판사나 영화 기획사 쪽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해 두면 문제없을 것이다.
물론 단순히 영리집단이 사람을 찾는 걸로 되면 시끄러울 우려가 있으니 돕는다는 명분 같은 것도 붙여줄 생각이다.
이남석은 이어 이를 보고 말했다.
“그리고 찾게 되면 자네가 나서주게.”
“그러겠습니다.”
이는 어차피 이것도 임무에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그런 은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완전 방음 장치가 된 기사석에 앉아 운전을 하던 기사는 차의 상태가 평소와는 약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과속 방지턱 같은 걸 넘게 되면 마치 차 아래에 뭔가를 대 놓은 것처럼 차가 덜컹이는 감촉이 평소와 달랐다.
그는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탔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
차가 멈췄다.
어느 화려하고 높은 건물의 주차장 안이었다. 이남식을 비롯한 차 안에 있던 이들이 하나하나 내렸다. 모두들 사라지고 차 밑에서 사람이 하나 불쑥 나왔다.
“후우.”
강민이다.
“젠장. 불쾌하군.”
차 밑에 달라붙어 매연을 마시며 여기까지 오자니 옷도 많이 더럽혀진 상태였다. 하지만 일단 따라붙는 데 성공해 여기까지 왔으니 고생한 값은 충분하다 할 수 있었다.
“실종신고라…….”
차 밑에 달라붙어 따라온 상태지만 저들이 차 안에서 나눈 대화는 대충 모두 알아들은 상태였다. 물론 강민은 그걸 방치할 생각이 없었다.
저들의 책략이 효과를 발휘하기 전에 이번 사태를 해결해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찌푸린 표정으로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하지…….”
가장 쉬운 것은 그냥 납치한 다음 데리고 가서 실컷 두들겨 팬 다음 자신이 한 짓을 자백하게 하는 것이다. 효과도 빠르고 쉽다.
강민도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지니고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아오던 악당이 엉엉 울면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
만에 하나 실패하면 뒤가 시끄러워질 우려가 컸다.
경호도 지금 이상으로 힘들어질 테고. 평소라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겠지만,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행동하려니 지금 이남식을 경호하고 있는 자들이 마음에 걸렸다.
누구 하나 평범한 자들이 없었다.
싸우기 어렵다는 것은 아니다.
간단히 때려잡을 수 있다. 그러나 약간의 틈이라도 이남식에게 주면, 그는 도망갈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이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에이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에이리는 외국에 나가 있고, 또한 잘난 척도 이미 많이 해 둔 상태기 때문에 혼자서 열심히 하는 수밖엔 없었다.
사실 저 정도의 자들을 처리하지 못해 쩔쩔 맨다는 것도 창피한 노릇이다.
‘약간은 준비해 두는 게 좋겠군.’
하찮은 경호원들에게 만에 하나라도 실수를 범하면 창피한 일이 될 테니까.
***
사장단 회의를 끝내고 이남식이 내려왔다.
그의 표정은 불쾌했다.
사장단 구성원들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이 많이 떨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구연 쪽으로 돌아선 놈들이 벌써 한둘이 아닌 것 같았다. 더구나 그놈의 세력은 아직도 주식을 매집하고 있다 하니, 머지않아 주식보유수에서 추월당할 위험이 있었다.
‘크으…….’
이가 갈렸다.
그룹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역시 주식이 필요했다.
감히 아무도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할 막대한 주식이!
그걸 위해선 그 계집아이가 역시 죽어줘야 했다. 그래야 연 매출 이백조가 넘는 선도그룹이라는 왕국의 왕의 자리에 계속 있을 수가 있다!
곧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의 주변을 중국인 넷이 경호했다.
“이제 어딜 가야 하지?”
“신세계 정 회장님과의 약속이 있습니다.”
비서의 말에 이남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서 가지.”
“네.”
그들은 주차 시켜 둔 차로 이동했다.
한데 차까지 10m 정도 거리에서였다. 갑자기 차 밑에서 그림자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무언가를 던졌다.
슉!
이가 재빨리 비서를 잡아 옆으로 밀쳤다. 이남식의 앞이었다. 비서의 가슴으로 무언가가 둔중하게 충돌했다.
퍽!
“억!”
비서는 눈을 까뒤집고 비명을 지르곤 바닥에 쓰러졌다. 갈비뼈 몇 대 정도는 박살난 듯한 모습이었다. 비서의 가슴에 충돌한 것은 돌돌 말린 천 뭉치였다.
그런 것에 맞고 사람이 저런 꼴이 되다니.
대체 어느 정도의 속도로 던졌단 말인가!
“피하십시오!”
이는 강하게 외치고는 재빨리 앞으로 튀어 나갔다.
“흥!”
천을 던진 자는 이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이는 상대가 가면에 장갑을 낀 남자라는 것을 알아봤다. 그리고 적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장갑맨! 한국 전체는 물론 세계에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기묘한 존재!
“잘 만났다!”
이는 기쁜 듯 웃으며 품에 손을 넣었다 뺐다.
순에 보이지도 않을 빠르기로 빠져나온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나이프가 쥐여 있었다. 그는 나이프를 마치 자신의 손처럼 예리하게 휘둘러 강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쉭!
쉬식!
눈에 보이지조차 않을 빠르기!
보통 사람이라면 3초가 지나기 전 온몸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하지만 강민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또한 그는 이 싸움에 긴 시간을 들일 수 없었다. 칼날을 피하는 와중에도 이남식은 도망가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