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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94화 (94/227)

94화

경찰들 사이에 요즘 기이한 소문이 떠돌게 됐다.

그것은 현재 한국 최대의 조직폭력단이라 평가 받고 있는 영동파에 대한 것이었다. 내용은 영동파의 두령이 점점 사업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들은 즉각 확인에 들어갔고, 곧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됐다. 곧장 모두들 비상이 걸렸다. 이런 움직임은 반드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조폭이란 바퀴나 파리, 모기와 닮았다.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열심히 처리해도 잠시만 깨끗해질 뿐 곧 그 자리를 다른 벌레들이 차지하기 마련이다.

그 자리잡기의 과정은 때로 굉장히 치열하기 마련이라 민간에까지 피해가 끼칠 수 있다. 또 길거리 노점상을 비롯해서 자기 관할 구역에서 보호비랍시고 금액을 뜯어가느라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영동파의 두령이 왜 잘나가는 조직을 축소시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로 인해 조폭들끼리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리면 매우 골치 아프다.

하지만 사태를 주시하던 경찰은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영동파의 사업 축소는 조심스러웠고, 또한 뒷 후환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가령 사업을 축소하며 이로 인해 발생하게 될 조폭 실업자들이 다시 주먹질을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합법적인 사업을 하도록 여러모로 힘쓰고 있었다.

주로 슈퍼나 작은 주점 같은 것이었는데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고, 원래 조폭이던 자들이 운영하는 것인 만큼 그들이 정착해 가게를 계속 성공적으로 운영해 나가면 다른 조폭이 거기 뿌리를 내리기 힘들게 된다는 효과도 있었다.

축소과정이 조용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당연히 다른 쪽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갑자기 왜 영동파의 보스는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되었단 말인가?

영동파에 끈이 닿는 경찰들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수확은 없었다. 물어봐도 깡패들은 자기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라면서, 아무리 형님을 설득해 봐도 소용이 없다고만 말할 뿐 어떤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결국 경찰은 방심하지 않고 영동파의 동양을 주시할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모두들 종교에 귀의한 모양이라는 둥, 조폭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는 둥, 자식들 때문에 이 일에서 손 떼기로 했다는 둥, 여러 가지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 떠들었을 뿐이었다.

***

남자가 휴대폰을 들고 한참 서 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들고 있던 전화에서는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라는 말이 작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옆의 의자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에게 공손하게 보고했다.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군.”

남자는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는 영동파의 보스에게 어르신이란 말을 듣던 선도그룹의 총수 이남식이었다. 그가 지금 부하를 시켜 연락을 취하던 건 바로 영동파의 보스였다.

갑자기 조직을 축소하고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쩐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취한 것이다.

하지만 영동파의 보스는 그의 연락을 감히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합니다.”

“일을 처리할 자신이 없어서 도망치기로 한 것이 아닐까요.”

전화를 든 부하 근처의 또 다른 부하가 말했다. 이남식도 확실히 무슨 일이 생겼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갑자기 이렇게 행동이 변할 리는 없는 일이다.

부하가 말했다.

“어느 쪽이든 이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손을 더럽히기 귀찮아 놔두었던 것을…….”

이남식은 불쾌한 듯 찌푸려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놔 둬라.”

제대로 손보려 하면 역시 어느 정도 시끄러워진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 숨었는지 종적을 찾을 수 없는 계집아이를 처리하는 게 훨씬 중요했다.

선결문제가 있는 한 영동파는 뒤로 물려둬야 했다.

“괜찮겠습니까?”

부하가 물었다.

영동파는 나름대로 안전을 추구한답시고 선도그룹의 칼이 되어 더러운 일을 해온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게 외부로 흘러나가면 피곤해진다.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제 발로 물러가겠다는데 그런 것까지 관여할 수는 없는 일이지. 자칫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는 법이고.”

이남식은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 마련한 것들이니 안전을 보장해 주는 한 괜히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제 목숨이 아까운 것 정도야 알 테니까.

“그러면 계집아이 건은 어쩌시겠습니까?”

계집아이를 죽이는 일은 영동파가 전담해 왔다. 갑자기 그들이 손을 떼기로 한 만큼 달리 일을 진행시킬 자들을 찾아야 했다.

이남식은 말했다.

“중국 쪽에 연락하면 좋은 칼을 얻을 수 있겠지.”

“네. 그쪽 기업 몇과 합작사업을 하면서 끈이 만들어진 조직이 몇 있습니다.”

옆의 부하가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중국은 별로 치안이 좋은 상태는 아니다. 나라가 너무 넓으니까. 또한, 관료들 역시 청령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때문에 중국에서 활동한 기업은 그 지역을 정리할 수 있는 조직폭력배와 그리고 관료들에게 끈을 잘 대야만 원활한 활동이 가능하다. 중국어로는 이를 콴시라고 한다. 관계라는 말인데 한국의 인맥과 별다를 것도 사실 없다.

“연락해서 최고의 칼을 구해보도록 해.”

중국의 치안 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폭력배들의 범행도 상궤를 벗어나 있다. 인육을 취급하는 놈들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 그만큼 칼을 구하기도 편리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어르신의 주변에도 배치해 두는 게 어떨까요?”

“저 버러지들이 갑자기 손을 떼기 시작한 것이 장갑맨 때문이라 생각하는 건가?”

이남식이 물었다.

굳이 중국에서 공수한 칼을 경비에 사용해야 한다면 그런 특수한 전투능력을 가진 적이 있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런 적이라면 현재 장갑맨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그 외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이남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해 자신의 일을 방해하게 된 기묘한 피에로였다. 하지만 단순한 피에로와 다른 것은 정말 처리하기 골치 아프다는 점.

“장갑맨이라…….”

이남식은 불쾌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감히 자신에게 이런 짜증을 겪게 하다니. 어떻게 해서든 향후 후회하게 해 주리라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선도그룹의 총수인 그에게 대한민국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

강민은 시내를 걷고 있었다.

곧 그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점 앞에 섰다. 그는 커피점 안에 들어갔다. 안에는 많은 여성들이 여기저기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곳의 커피 값은 커피값이 아니라 자릿세를 내는 거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여겨지는 광경이었다.

그는 그런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리며 걸었다. 한 좌석에서 손을 번쩍 들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강민. 여기.”

호성이었다.

강민은 반색하며 그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니가 나를 다 불러내고. 무슨 일이야.”

강민이 여기에 온 이유는 호성이 만나자고 했기 때문이다. 주말에 시커먼 남자 놈 만나 뭐 좋을 것이 있겠나 마는, 특별한 용무가 있다고 하니 거절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말하기 전에 호성은 커피 한 잔 시키라고 권했고 강민은 그에 따라서 커피를 한 잔 시켜 자리로 돌아왔다. 이번에 패물을 정리해 얻은 돈만 십오억이 넘는다. 가용 현금이 이십억이 넘는 만큼 강민도 사실상 부자!

커피 따위에 부담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전에 부탁한 거 있잖아.”

“아, 벌써 소식이 있는 거야?”

강민은 반색했다. 특별한 용무가 있다 하더니 벌써 이지연에 관련된 조사 결과가 나온 모양이다. 물론 조사 시작한 지 일주일은 훌쩍 지났으니 보는 관점에 따라선 벌써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뭐.”

“어떤 이야긴데?”

“아버지한테 지나가는 말로 물어봤거든.”

역시 그냥 물어봤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선도그룹의 지난 총수인 이호천한테 아들이 둘 있었대. 지금 총수인 이남식은 차남이라는 거야.”

“장남은 뭐 하고?”

보통 가업을 승계하는 것은 장남이기 마련이다. 단순히 장남이라서가 아니고 성인이 되는 시기가 빠른 만큼 일도 빨리하기 마련이고 어지간히 무능하지 않다면 동생이 일을 시작할 때 쯤이면 이미 자기 기반을 다지게 된다.

그런 만큼 장남과 차남이 있다면 경영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장남인 경우가 흔했다.

“장남은 물론 문제가 생겨서 기업을 물려받을 상황이 아니었던 거지. 그리고 그 사정이란 게 사랑의 도피라는 거야.”

“아하. 알겠다. 그 대상이 바로 장예선?”

강민은 단박에 사정을 눈치채고 말했고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호성은 커피를 한 모금 쪽 마신 다음 말을 이었다.

“장남의 이름이 이청연이었는데, 막 떠오르는 스타였던 장예선을 만나 장남이 반해서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야. 장예선 쪽에서도 집안 좋겠다, 또 이청연이 미남에다 성격도 좋아도 금방 호감을 느꼈다고 하는군.”

연예인은 현대의 공주 취급을 받지만 사실 진짜 지배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역시 그냥 광대일 뿐이다. 그래서 연예인들, 특히 여자 연예인들은 재벌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는 것이 신데렐라가 되는 것이다.

즉, 현대의 신데렐라는 스타 연예인이나 되어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일반인은 그냥 지나가는 시궁창 쥐 같은 존재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집안에서 반대라도 했어?”

강민이 짐작해 물었다.

“그렇지. 너도 이야기 들어서 알겠지만 있는 집안은 있는 집안 하고만 결혼하는 법 아니겠어?”

“그렇지.”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대부분 대기업들은 복잡한 혼맥을 통해 서로 엉켜 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저것들은 다 한 덩어리라 외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권력과 재산을 지닌 이들은 항상 그러했다. 강민이 있는 이계라고 해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가진 거라곤 몸밖에 없는 연예인들 같은 경우 그들의 일원이 되는 건 기껏해야 첩으로 들어가는 정도의 방법뿐이다.

지금도 사실 이 점은 다르지 않다. 드러나게 첩으로 들이지 않을 뿐 애인이니 스폰서니 하는 경우가 흔하니까.

“그래서 장남의 경우도 협력 기업이던가, 뭐 그런 나름대로 크고 사업에 도움이 될 기업의 딸과 정략결혼을 할 예정이었는데 그걸로 틀어져 버린 거지. 이 때문에 잔뜩 화가 난 이호천이 아들을 호적에서 파버렸다고 해.”

“쯧쯧, 슬픈 이야기군.”

순수하게 사랑했기 때문에 도리어 불행해지고 말았다. 어느 세상이든지 간에 착한 사람이 행복해지긴 힘든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그래서 기업은 차남한테 완전히 넘어가고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

“그렇지만 거기서 끝나면 이지연을 그 삼촌 되는 자가 노릴 이유가 없잖아?”

강민이 묻자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서 좀 더 알아보니까 얼마 전에 이호천이 죽었다고 하는군.”

“유산상속?”

뻔한 이야기다 싶어 단정 지어 말하자 아니나 다를까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호천은 죽으면서 유산의 절반을 장자에게 남기기로 했지. 괘씸해서 호적에서 파버리긴 했지만 역시 죽을 때가 되니까 마음이 약해졌던 모양이야.”

“흐음. 하지만 이지연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던데.”

“물론 그렇지. 굉장히 옛날 일이고……. 이호천도 그건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장남에게 유산을 남긴다는 건 결국 그의 아내와 자식에게 남긴다는 말이지.”

점점 상황이 명백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아직은 미진한 점이 있었다.

“그걸 욕심내서? 적지 않은 돈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조카를 죽이려 한다는 건……. 뭐 욕심이 많은 인간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해도 일의 위험도를 보자면 좀 이해하기 어려운데.”

정말로 살인을 범한 게 들통나면 제아무리 재벌 총수라고 해도 인생이 끝장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

그것은 모든 이들에게 개소리 취급받는 표어긴 해도 그나마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재벌의 총수와 덜 격차가 나는 영역이기도 하다. 살인 같은 걸 저지르면 노숙자든 재벌 총수든 엄벌은 피할 수 없다.

“맞아. 여기서 사정이 좀 복잡해지지. 현재 선도그룹의 최대주주는 이남식이지만 그와 경영권을 다투는 다른 파벌이 있어.”

“이지연에게 그 주식이 가면 경영권이 위험하다는 건가?”

단순히 재산이 문제가 아니라면 그 점이 문제일 거라 생각하며 강민이 물었다.

“그렇지.”

예상대로였다.

그래도 강민은 이남식이 어리석다 여겼다.

“바보 아냐. 어쨌든, 조카잖아. 설명해서 협력을 구하면 될걸…….”

호성이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이때까지 어렵게 살았잖아. 인제 와서 유산이 네게 갔는데 기업을 지킬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해 봐야 잘 안 될 거라 생각한 거겠지.”

“그럴 수도 있긴 하겠군.”

“선도 그룹쯤 되면 사실 통수가 된다는 건 한 국가의 왕이 된다는 것하고 비슷하기도 하고. 그만큼 권력은 나누기 싫었다는 게 아닐까.”

“음 그럴지도.”

강민이 이계에서 활동하면서도 그런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았다.

권력과 부란 얼마나 많은 싸움의 이유가 되던지!

그 앞에서는 부모자식과 형제도 없었고, 부부라고 해도 남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인간이 가장 쉽게 흉악한 짐승이 되는 법은 그 앞에 돈을 던져 주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아마도 이번 경우 역시 그 예에 들어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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