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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93화 (93/227)

93화

“그 형이 지연 양 어머니 얼굴을 보고 아는 사람 같다는 거야. 장예선이라고. 이야기 듣고 나도 찾아봤는데 확실히 닮았어.”

“그래?”

모두들 놀란 표정이 됐다.

이건 뭔가 중요한 단서가 될 거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호성은 주변의 분위기가 변한 것을 느끼면서 이어 말했다.

“근데 정작 이지연 양은 그런 이름 자체를 모르는 모양이더라고.”

“그거야 뭐 사정 보면 짐작 못 할 것도 아니지.”

“그러게.”

모두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연의 객관적인 상황은 매우 나쁘다. 만일 그녀의 어머니가 그 장예선이란 연예인이었다면 숨기고 싶은 사정 같은 것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 결국 호성 니가 하고 싶은 말은 이지연을 노리는 자들이 있는 건 그녀의 어머니가 장예선이라는 사람인거하고 관계가 있을 거란 거야?”

강민이 정리 삼아 말했다.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실 부모가 뭔가 일이 있었으니까 자식을 노리는 사람이 생기는 거 아니겠어? 그냥 다짜고짜 집요하게 지연 양을 죽이려 든다니 있을 수 없다고 봐.”

“그렇긴 하군.”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는 국가다. 이런 나라에서 사람을 죽인다는 건, 더구나 대단한 기업체를 이끄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려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호성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할 거야. 상대가 선도그룹 소유주라는데…….”

“그래. 선도 그룹 하면 우리나라 10대 재벌 중 하나 아냐. 그런 걸 어떻게…….”

모두들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 어린 표정을 보였다.

선도 그룹은 크기도 하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세다. 그런 집단을 지배하는 이를 상대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사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도 있었다.

에이리였다.

“신경 쓸 필요 있어? 나는 그 그룹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고 또 큰진 모르지만 결국 생각해야 하는 건 대가리 아냐?”

“에이리 말이 맞아. 결국 상대해야 하는 핵심은 본인이지. 선도그룹이란 거 자체에 겁먹을 필요는 없는 거야.”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강민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안도한 표정이 됐다.

“그러면…….”

“생활하던 대로 지내. 필요하면 부를 테니까.”

“응.”

“그런 거라면야…….”

모두들 수긍했다. 그들은 강민이 바로 세간에 유명한 장갑맨이란 것을 다시 떠올리며 강민이 이번 싸움에서도 문제없이 일을 해결하리라 생각했다.

강민이 이어 말했다.

“그렇지만 호성 네게는 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선도그룹과 장예선. 이걸로 좀 조사해 주지 않겠어?”

호성의 집안은 대단한 부자다. 그러고 한국의 부자들은 부자들끼리의 커넥션과 정보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한 정보도 호성이라면 어쩌면 쉽게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다.

“흐음…… 해볼게.”

“고마워.”

강민은 감사의 뜻을 표했고, 그날 강민단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

강민은 에이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연에게 집을 빌려 준 이후 에이리는 강민의 집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묵고 있어서 집으로 가는 길이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둘은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들어서자마자 그 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에이리에게 쏠린 것은 당연했다.

에이리는 이게 한두 번도 아닌 일이라 이제 신경 쓰지도 않는 투로 받아넘기고는 강민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어떻게 할 거야?”

“가장 쉬운 방법이라면 주모자를 잡아서 실토하게 하는 건데…….”

“그렇게는 못할 거 같아?”

강민이 말꼬리를 흐리는데 에이리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잘 있지도 않은 모양이야. 잡기 어려워 보여. 정확한 스케줄을 알아낸다면 쳐들어가서 잡아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런 큰 기업의 사장이면 역시 가 봐야 할 곳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기 마련이다. 시간을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어도 굳이 집에 머물러 있을 이유도 없다. 사실 집의 위치 자체도 비밀인 경우도 많았다.

에이리는 이어서 물었다.

“그리고 또 너무 거물인 것도 문제라 싶은 거지?”

“응. 이전 놈들처럼 쉽게 해결하기 힘들어. 경찰에도 선이 닿아 있는 게 틀림없고. 자칫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경비만 강화되면 나라도 지금은 손쓰기 힘들어질걸.”

현재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 부분이었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침입했다가 실패하면 경각심만 일깨운 꼴이 된다. 차라리 벌집을 건드리지 돈과 권력이 있는 이에게 준비할 기회를 주는 것은 현명한 짓이 못 된다.

“나는 어때?”

잘난 척을 하며 에이리가 물었다.

그녀는 강민보다 강하다!

그러니 설령 경비가 강화되더라도 위치만 밝혀지면 얼마든지 기업의 총수 따위는 처리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자부심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하지만 강민은 회의적이었다.

“선도그룹 정도면 전쟁지역에서나 볼 수 있을 기관총 경호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아니, 해외로 나가서 그런 놈들로 주변을 보호할걸. 너라고 해도 좀 위험할 거야. 건물 같은데 콕 처박혀서 온갖 무기로 주변을 둘러싸고 안 나올 테니까. 강하다곤 해도 수천 발씩 날아오는 총알을 손으로 다 잡아내는 건 무리잖아.”

“그건 그런가.”

평범한 인간 따위는 만 명이 덤벼도 문제없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에이리라 해도 현대병기를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총 몇 발 정도는 무사할 수도 있지만, 현대 무기는 그 정도가 아니고, 총알이라 해도 대물저격총 같은 거라면 아무리 에이리라 해도 정통으로 맞으면 버티기 어렵다.

또한 총탄은 소리보다 몇 배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검으로 쳐내기도 쉽지 않다. 그런 건 사방에서 얻어맞기라도 한다면 역시 위험하다.

에이리는 이어 물었다.

“잠입도 힘들 거 같아?”

“영화처럼 어설픈 센서 같은 게 있을 리 있겠어?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센서의 성능은 우리가 사용하던 경보 마법에 더 가까워.”

영화에서는 줄기줄기 그물처럼 펼쳐놓고 센서를 사용하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헛소리다.

센서는 파장에 가깝게 작동한다. 그리고 물건을 지키기 위해 펼치는 경계 센서 같은 건 전방위를 모두 커버한다. 센서가 레이저를 이용하는 것인 만큼 아무리 강력한 사람이라 해도 그것을 피하기는 불가능하다.

에이리는 설명을 듣고 곤혹스러운 표정이 됐다.

“그럼 손대기 껄끄럽겠군.”

“그리고 또 깡패들은 그나마 괜찮지만 이쪽은 대기업 회장이야. 확실한 상황에서 공격하는 게 아니면 여론의 역풍도 어마어마할걸.”

“니가 그런 것도 신경 써?”

강민이 진지하게 하는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차피 정체가 드러난 것도 아닌데 그런 걸 걱정하다니.

“이왕 장갑맨이란 이름으로 칭송받고 있는 게 놓치긴 아깝지. 그리고 단지 그런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장갑맨으로 이것저것 해 보려면 좋은 이미지인 게 편해. 뭐라 해도 일단은 범죄자니까 여론을 아군으로 만들어두면 그나마 활동하기 편해질 게 아니겠어?”

“그렇긴 하지.”

에이리도 그건 일리가 있다 싶었다.

한국에 와서 생활하며 느낀 건데 정말 장갑맨은 대단한 인기인이다. 집단을 이끌어본 경험이 있는 에이리는 잘 활용하면 그런 게 큰 힘이 된다는 건 알고 있다.

다만 강민의 성격상 그런 걸 활용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무작정 처리하기보단 일단 조사를 한 다음에 쳐들어갈까 해. 또 자료가 모이면 그때 같이 언론에도 터뜨려 버리고. 그렇게 하면 한 방에 해결은 못 해도 적어도 논란은 될 테고, 논란만 되도 다시는 지연 양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되겠지.”

쓸 만한 계획이다 싶었다.

하지만 뒤처리가 피곤해질 것 같았다. 에이리가 제안했다.

“그러지 말고 확실한 기회가 생기면 그냥 죽여버리는 건 어때? 쉽고 편하잖아.”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긴 할 것이다.

이 지루하고 끈질긴 음모의 핵심에 있는 자이니 죽어 마땅한 죄도 지었고 죽이는 것이 뒤처리에 품이 들지 않아 편할 것이다.

하지만 강민은 그 말에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넌 사람 목숨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천 명, 아니 만 명은 때려잡은 니가 그런 말을 해?”

에이리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반문했다.

강민이 마왕과 싸울 때 그들 편으로 돌아선 국가의 병사들과 싸우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강민은 그들을 아예 도륙해 버렸다.

같은 인간을 학살한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거부감을 보였지만 강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외쳤다.

‘지금은 종족의 운명을 건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것은 명예이지 거북해할 일이 아니다!’

그러고선 선두에 서서 싸우는 강민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각오를 굳히고 싸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싸움도 많았다.

“그거야 필요했으니까…….”

강민은 에이리의 지적에 머쓱한 듯 말했다.

에이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필요했으면 지금도 필요한 거지. 나는 그냥 깨끗하게 죽여버리는 게 가장 뒤끝 없고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해.”

“그것도 방법이긴 하지. 하지만 가능한 한 뒤로 미뤄두고 싶군. 일단 최후의 방법으로 놔두고, 정보를 모아 터뜨리는 방향으로 가자. 그러고도 안 된다면 그때 죽여도 늦지 않을 거야.”

역시 강민은 쉽게 죽인다는 선택을 하고 싶진 않은 모양이었다. 에이리는 다소 불만스러웠지만 고향으로 돌아와서까지 사납게 굴고 싶진 않은 건가 보다 싶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흠, 그렇게 해.”

이어서 그녀는 물었다.

“그런데 영도파 대장 때려잡았잖아. 그걸로 끝이야?”

강민은 씨익 웃었다.

“물론 그럴 리가 있겠어? 일단 집에 있던 현금과 패물은 다 내가 회수했지.”

“역시.”

생각했던 대로라 에이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당 털기는 선행의 기본이다. 더 많은 선행을 위해서라도 자금은 필요하니까. 강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물은 거물이더라고. 가방 한가득 들어가고도 다 들어가지 못해서 따로 하나 더 들어야 했어.”

“그리고?”

강민의 성격상, 그리고 적이 저지른 악행의 정도상, 강민이 그 정도에서 그칠 리가 없었다. 절대로!

“조직은 해체하고 자수하라고 했지.”

“약한데?”

의아한 듯 물었다.

조직폭력배의 두령쯤 되면 정말 많은 사람의 인생을 시궁창에 빠트렸을 것이다. 그중 일부만 대가를 치른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거나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의 고통을 주어야 했다. 그런데 조직 해체라니.

답지 않게 약한 처치다.

강민은 그런 생각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 온 짓을 생각하면 죽어 마땅하지만, 그냥 죽이면 조직만 이리저리 갈라져서 지들끼리 싸운다고 더 혼란스러운 꼴이 만들어질 거야. 평화롭게 정리하려면 역시 장본인이 직접 움직여야지.”

단순히 대가리만 사라져서는 조폭들의 춘추전국시대를 조장하는 꼴이 될 뿐이다. 강민은 알아서 규모를 축소하고 무죄가 될 인원들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폭력단을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난 뒤에 자수하라고.

대신에 그의 가족과 재산에는 손대지 않기로 했다.

“말을 듣지 않을 가능성도 있잖아?”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직접 내가 얼마나 강한지 경험했으니까. 하지만 만일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내가 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때는 죽여야지. 두 번 기회를 줄 만큼 내가 자비로운 성격은 아니고.”

강민은 딱 잘라서 말했다.

만일 영동파의 보스가 약속을 어기면 그때는 정말 아무런 주저도 없이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바보도 아니고, 총기를 가진 부대와 대결해 강민이 간단히 이기는 모습을 봤으니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할 리는 없었다.

“지금만 해도 예전에 비하면 천사나 다름없지.”

에이리가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래. 후후.”

피에 쩔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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