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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92화 (92/227)

92화

기다리고 있던 차에 두 사람은 올랐다.

“휴. 형 수고했어요. 약속한 보수는 계좌로 보낼게요.”

“그래.”

박석남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얼른 말했다.

이건 완전 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대단한 병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약도 귀한 게 아니었는데 일부러 가서 치료했다는 것만으로 오십이 넘게 벌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꿀 알바!

이것도 다 의사가 된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니 어렵게 공부한 보람이 느껴졌다. 이런 데서 의사가 된 데 보람을 느낀다는 게 좀 쪼잔해 보이진 하지만.

그러나 벌이가 좋다는 데 대한 기쁨도 잠시. 박석남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방금 보았던 환자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장민희라고 한다.

장민희라.

옆에서 호성이 생각에 잠겨 있는 박석남을 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그 여자애 어머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예선인 것 같은데.”

확신을 담아서 박석남이 말했다.

그러나 호성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할 뿐이었다.

“그게 누군데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박석남은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너는 모르겠지.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한 20년 전에 꽤 인기를 끌었던 여자 스타가 있었어.”

“그게 장예선이란 말이군요.”

호성은 눈치 빠르게 박석남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눈치챘다.

“그래.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혜성처럼 사라졌지.”

“전형적인 전설의 스타?”

박석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지. 하지만 약간 화제가 된 정도라 크게 반향을 일으킨 게 아니고. 스타긴 했어도 뭐 한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스타라든가, 그런 정도는 아니었거든.”

“그냥 당시 잘나가던 여자 연예인 정돈가 보군요.”

그러면서 호성은 요즘 활약 중인 동급생 수란을 생각했다. 그녀도 잘나가고 있는 편인데 그 정도 위치였을까? 20년이 지나고서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 그보다도 좀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 위치. 그래도 갑자기 사라진 셈이니까 뒷말이 많긴 했지.”

“그럼 이지연 씨의 어머니가 바로 그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건 놀라운 이야기였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는 거지. 하지만 이름이 다르고 딸이 전혀 모르는 기색인 걸 보니 확신은 못하겠어.”

“그래도 그 엄마도 굉장히 미인인 것 같던데.”

호성은 이지연의 용모를 떠올리며 말했다.

만일 그녀의 어머니가 지금 박석남이 말한 것처럼 장예선이라고 하면 이지연이 그렇게 미인인 것도 그럴 듯한 이야기다. 역시 자식은 부모의 용모를 물려받는 법이니까.

더구나 요즘이야 연예인이라 하면 의느님의 힘을 빌리는 게 보통이지만 당시에는 성형 수술이 그렇게 보편화되지 않았다.

지금은 천연기념물 수준인 자연 그 상태의 미인인 것이다.

“그렇지? 그래서 어쩌면 지금 이렇게 힘들게 되어서 아는 사람에게 들키기 싫어 이름을 감추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것도 있을 법한 얘기네요.”

박석남이 한 말에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가 화려했다면 그 때문에 지금의 몰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을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단지 몰락으로 인한 자존심 문제라면 죽이려 드는 사람까지 나타날 이유는 없는 것이니까.

박석남은 이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강민에게 물었다.

“아, 그런데 왜 그렇게 있는 거야? 큰돈 들여가며 일부러 나 같은 의사 부를 만한 병은 아니던데. 훨씬 유능한 의사 찾아가서 싸게 치료받을 수도 있는 거잖아.”

“비밀을 지키겠다면 간단히 설명해 드리지요.”

호성은 강민에게 의사는 아군으로 끌어들여둘 수 있다면 그러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은 상태였다. 한두 번 신세 질 게 아닌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의사 한 사람 정도 포섭해 두면 역시 편리하다.

“아, 그야 당연한 거 아냐.”

박석남은 나를 못 믿냐는 표정으로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호성은 웃으며 협박했다.

“만일 이거 소문나면 형 인생 끝장나는 거예요. 불법 시술한 거 터뜨려서 제가 의사 자격 박탈하게 해 버릴 겁니다.”

“새끼, 협박은.”

박석남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지만 사실 좀 등골이 서늘했다. 이런 건 잘못하면 정말 의사 면허 정지도 당할 수 있다.

자칫 위협한 꼬투리를 잡힌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하지만 그런 만큼 호성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폭력조직에서 죽이려 했다고 해서 시끄러웠던 여자애 있지 않습니까?”

“아, 그래. 그런 게 있었지.”

박석남은 얼마 전 한창 시끄러웠던 사건을 떠올리며 답했다.

뭐라더라, 폭력조직이 청부업자를 사용해 고등학교 여학생을 죽이려 했다던가. 장갑맨이란 기묘한 놈과 얽혀서 정말 시끄러웠던 일이었다.

호성이 남석의 귓가에 작게 말했다.

“걔가 그 여자애예요.”

“뭐?”

박석남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두 눈을 크게 뜨고 호성을 바라봤다.

호성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진짜로.”

“허참…….”

그렇다면 왜 그렇게 두더지처럼 숨어 지내고 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하기야 누군가 자기를 죽이기 위해 벼르고 있다 하면 숨어서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지 않게 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호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대체 왜 그런 꼴을 당하고 있나 이해할 수 없었는데 형이 한 말이 만일 맞다면 중요한 단서가 되겠는데요.”

“그렇긴 하겠군…….”

왜 이지연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있는가. 그것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에 관련된 과거의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장예선이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추는 과정이 신비했던 만큼 그 이면에는 어떤 신기한 일이 있었을지 모르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런 만큼 절대 어디서 비밀을 흘리시면 안 됩니다.”

호성의 경고에 당연하다는 듯 박석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그런데 어쩐 일로 네가 저 모녀를 보호하게 된 거야?”

“그건 설명하면 길고요, 그냥 어쩌다 보니 좋은 일 하게 됐다고만 알아주세요.”

“쩝, 알았다.”

호성이 더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색이었기에 박석남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약점 잡힌 것도 있고, 호성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은 일이란 것도 틀림없었으니 말이다.

*

강민이 강민단원들을 모집했다.

학교를 마치고 모두들 강민단의 기지에 모였다. 에이리도 있었고, 최근에 새로 가입한 혜경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이 신기한 회합의 인원들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모두 모인 것을 확인 하고 재철 일당과 강석이 먼저 호기심을 보였다.

“무슨 일이야?”

“그래. 갑자기 이렇게 다 모이라고 하고.”

“뭐 새로 하기로 한 일이라도 있어?”

“아니면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야?”

“조용 조용.”

강민은 그들을 먼저 진정시킨 다음 후후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다들 부른 건 다른 게 아니라 중대 발표가 있기 때문이지.”

“중대발표?”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누가 이지연을 노리는지를 알아냈거든.”

“어 그러면……!”

모두들 놀란 표정이 됐다.

강석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악당들 대가리를 잡은 거지.”

“와, 그거 굉장한데.”

강민이 어떤 식으로 정보를 얻어내는지 아는 몇몇 단원들은 감탄한 얼굴이 됐다. 강민이 얼마 전까지 노리던 것이 바로 영동파라는 전국구 조직폭력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었다는 건 즉, 그 대가리를 잡아서 정보를 토설해 내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후후, 주먹 앞에 장사가 없는 법이니까.”

“두들겨 팼다는 거군.”

에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강민은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악당을 두들겨 패는 데는 창피함이 없다!

그것이 바로 강민의 생각.

“그렇지.”

“불쌍하다.”

재철이 강민에게 얻어맞은 상대를 동정했다.

“그 마음 알지.”

수구와 만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악당이라곤 해도 강민에게 맞아본 적이 있는 그들로서는 상대가 당했을 고통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고 자연히 동정하게 됐다.

물론 강민은 코웃음을 쳤다.

“동정할 놈을 동정해야지.”

“잔소리는 그만하고, 그래서 알아낸 게 뭔지나 말해봐.”

에이리가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를 본론으로 돌렸다.

“흠, 그렇게 할까.”

헛기침한 다음 주변이 조용해지길 기다려 강민은 입을 열었다.

“일단 먼저 이야기할 건 이번 사건을 일으킨 원흉이 다름 아닌 선도그룹의 현재 최대 주주인 이남식이라는 거야.”

에이리를 제외한 모두 경악했다.

“선도그룹!”

“그놈들이 왜!”

선도그룹.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 중 하나다. 재계서열은 4위. 다양한 방면에서 덩치를 불렸지만, 백화점이나 호텔, 건설 등이 주력으로 부동산과 현금자산이 많은 기업으로 유명했다.

내수 중심 기업으로 그룹 전체의 총 규모는 100조 정도였다. 언론사에도 영향력이 많고 정치권과도 친분이 많아 다양한 특혜를 받은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에 상정됐던 주말 대형 마트 영업 금지 법률도 이들의 로비로 인해 결국 취소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와 나쁜 놈들. 대기업 주제에 동네 빵집 잡아먹고 악착같이 돈 쪽쪽 빨아갈 때부터 알아봤다만 설마 사람까지 죽이려 하다니…….”

재철이 분노해 말했다.

선도 기업은 내수 중심인 만큼 골목 상권에 대한 침탈이 심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한 행보에 대해 재고의 여지는 전혀 없다는 듯 굴었다.

혜경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자들이 어린 소녀를 죽이려 하다니, 너무 파장이 큰일인데. 이게 잘못되면 선도 그룹 자체가 무사할 리가 없어.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못 할 짓 아냐?”

“그렇죠. 그래서 왜 그러는지도 물어보긴 했는데……. 아쉽게도 이에 대해선 알아낸 게 없습니다.”

“전혀 몰라?”

강석이 묻는데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자기들도 지시받아서 했을 뿐이라더군.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지. 누가 깡패들한테 그런 일 시키면서 미주알고주알 사정까지 다 이야기할까.”

“흐으음.”

모두들 그럴듯한 이야기라 생각해서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선도 그룹쯤 되는 기업이라면 영도파 따위는 그냥 쓰고 버리는 칼이다. 그런 칼에게 세세한 사정을 이야기해 줄 필요가 없다.

강민은 이어서 말했다.

“어쨌든 누가 지연 양을 노렸는가를 알아낸 것만 해도 커다란 진전이라 할 만하지. 왜 노렸는가도 이걸 중심으로 조사하면 알아낼 수 있을 거 아냐.”

모두 그 말이 맞다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호성이 번쩍 손을 들었다.

“아 거기에 대해 할 말이 있는데.”

“뭔데?”

“어젠 의사 데리고 지연네 갔었잖아.”

“그랬었지.”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지연에게 전화를 받아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하길래 호성에게 이야기해서 의사를 데리고 가서 치료하도록 부탁했었다. 이후 전화를 해서 잘 치료 받았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 의사 형이 옛날 연예계 마니아 뭐 그런 거거든.”

“그런 마니아도 있어?”

“공부 많이 하다 보면 이상한 취미가 생기나 보군.”

호성이 한 말에 재철 일당이 수군거렸다.

현역의 어리고 예쁜 연예인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옛날 연예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옛날 연예인이면 이제는 다들 나이를 먹었을 테니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었다.

강민은 잡음을 정리했다.

“조용 조용.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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