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고급 외제차에 탄 영동파의 보스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이제까지 같이 식사했던 사람은 이 지역 유지 중 하나로 경찰을 비롯해 정부기관에 영향력이 적지 않은 사람이었다.
정부고관에 손에 미친다기보다, 이 지역 공무원들 중 그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 사람이 많아서였다.
따지자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거물은 아닌데 앞으로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만날 필요가 있었다.
총을 쓴다든가 하는 시끄러운 일이 생겨도 대처하기 위해 말이다.
‘어서 찾아야 할 텐데…….’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자애를 찾는 것이다.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람들 눈을 속이고 몰래 사라져 버린 것은 틀림없지만, 탐문 중에도 전혀 이렇다 할 흔적이 발견되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차가 멈췄다. 집에 도착한 것이다.
운전사가 문을 열었다. 그는 차를 나섰다.
높은 담장이 둘러쳐진 커다란 집이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집으로만 보이지만 주변 건물들은 모두 그의 것으로 그의 부하들이 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거주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보스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아빠!”
아름다운 아내와 착한 딸이 그를 맞았다.
“하하, 그래.”
딸을 안아 주며 보스는 말했다. 그는 깡패지만 그의 아내는 그와 무관한 일반인이다.
젊었을 적 반하고서 몇 가지 모략을 써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지만 그다지 심한 것도 아니었고, 이후 잘 대해 줬기 때문에 이제는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딸은 십 년 전에 얻었다. 아내를 닮아 용모가 예뻤다.
“식사는요?”
“하고 왔소. 할 일이 있어서 방에 있을 테니 신경 쓰지 마시오.”
딸을 내려 주며 웃는 얼굴로 말한 뒤 그는 이 층으로 올라가 자시 방에 들어갔다.
“휴우.”
의자에 앉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어쩐다?”
이지연. 그 계집애를 처치하는 일이 이토록 사람을 괴롭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떻게든 제거해야 했다.
얄미운 계집년이었다. 쉽게 잡혀서 살해당해 주면 오죽 좋아!
갑자기 귓가에 발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응?”
놀라며 보스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검은 마스크를 쓴 사람이 있었다. 보스가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의 비명보다 빠르게 장갑맨의 주먹이 그의 배를 쳤다.
“커으…….”
보스는 기절했다.
***
“일어나.”
“어…… 크윽…….”
뺨의 고통과 냉혹한 어조에 자극받아 보스는 눈을 떴다.
주변은 어두운 어느 숲이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이는 불빛으로 보스는 알 수 있었다. 여긴 자기 집 뒤에 있는 산이다.
강민이 말했다.
“정신을 차렸군.”
“너, 너는 누구냐?”
“내가 누군지 몰라?”
“그게 아냐! 네놈의 진짜 정체를 밝히라는 거다!”
발작하듯 보스가 외쳤다.
장갑맨!
이 빌어먹을 존재 때문에 그의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이렇게 꽁꽁 묶인 채 산에 끌려와 있다.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민이 기가 막힌 듯 고개를 흔들었다.
“미친 새끼. 제 처지를 모르는군.”
그의 배를 걷어찼다.
“커억!”
보스는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채 고통에 몸을 떨었다.
보스를 내려다보며 강민은 절대자답게 냉혹하게 말했다.
“질문은 내가 한다. 너는 답하는 것밖에 못해.”
“이 새끼 내가 누군 줄……. 컥!”
보스는 매서운 눈빛으로 협박했다.
그러나 강민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 걷어찼다.
“내가 그런말하는 새끼들 한둘을 본 게 아냐. 그놈들이 전부 어떻게 됐는지는 네 부하들을 보면 알 수 있는 거 아냐?”
지금 영동파의 보스처럼 강민에게 자신의 지위를 들이밀며 협박하던 놈들은 정말 많았다. 힘 좀 있다는 놈들은 다 그랬으니까.
하지만 강민은 그런 협박에 한 번도 넘어간 적이 없었고, 그런 협박을 듣다가 지쳐서, 그런 말을 하는 놈들을 괴롭히는 걸 취미로 가지는 데까지 이르렀다.
강민이 아무래도 그러한 사실을 이놈에게도 가르쳐 줘야 하겠다고 생각할 때 갑자기 보스가 손을 내밀며 그를 말렸다.
“자, 잠깐…….”
그는 강민이 협박이 통하는 인종이 아니고, 또한 살인도 아주 쉽게 해치울 종자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뭐야, 할 말이 있어?”
“도, 돈을 주마.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허이고?”
기가 막힌 듯 말했다.
보스는 서둘러 이어 제안했다.
“백억은 어때? 이백억도 좋네! 아, 아니 오백억을 주지! 이러지 말고 우리랑 협력을…….”
강민은 피식 웃으며 보스의 멱살을 잡아 종잇장처럼 가볍게 몸을 들어올렸다.
“내가 그깟 돈을 그렇게 탐내는 사람으로 보여?”
“대, 대체…… 왜?”
강민의 손아귀에 대롱대롱 매달려 보스는 더듬거리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물었다.
사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계집은 돈도 없는 가난한 어린애에 불과했다.
한데 어떻게 이런 방패를 얻어서, 이놈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강민은 이를 갈았다.
“참 기가 막히더군. 집에서는 좋은 아빠에 남편 노릇 하면서, 밖에선 여러 사람 고혈을 빨아먹으면서 이제는 착한 여자애까지 죽여 욕심을 부리려 든단 말이지.”
영동파의 보스는 퍼뜩 깨달았다.
믿기 힘들지만, 이놈은 이익 때문에 움직이는 놈이 아니다!
그렇다면 설득의 방향이 바뀌어야 했다. 그는 서둘러 외쳤다.
“내가 잘못했네!”
“잘못했다고?”
마스크 안쪽에서 강민의 표정이 변했다.
자신의 사과가 먹혔다고 생각했던지 영동파의 보스는 죄책감에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서둘러 이어 사과했다.
“그래, 잘못했어! 하지만 용서해주게. 어쩔 수가 없어!”
“어쩔 수가 없다니?”
잡았던 멱살을 놓아 바닥에 떨어뜨리며 강민은 물었다.
기침을 콜록거리다가 영동파의 보스는 애걸하는 것처럼 말했다.
“내가 나쁜 놈인건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아무 원한도 없는 여자애를 죽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는 아니야!”
“그러면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강민은 그 앞에 앉으면서 물었다.
영동파의 배후에 더 큰 힘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에게서 얻어내려던 정보이기도 했다.
“그건…….”
영동파의 보스는 더듬더듬 강민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어르신을 만나게 되어 의뢰를 받은 데서부터 시작해 최근의 실패까지 하나하나 아주 상세하게.
그 이야기를 다 듣는 데 수십 분이 걸렸다.
“흠.”
강민은 이 일의 모든 배후라 할 어르신이란 자가 생각보다 힘이 셀 것 같다고 느끼면서 영동파의 보스에게 요구했다.
“이야기는 잘 들었다. 그러면 그 어르신의 정체에 대해서 말해보실까?”
영동파의 보스는 ‘어른신’에 대해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쭉 대처했을 뿐, 제대로 그의 정체를 말하려고는 결코 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크게 두려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민은 노여운 눈빛을 그에게 보내면서 경고했다.
“당신을 용서할 생각은 없지만 다른 녀석들에 비해 후하게 대우할 생각은 있어. 하지만 그것도 다 제대로 마지막까지 이야기했을 경우에 한한 거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 알겠네. 말하지, 말하겠네!”
강민의 겁박에 심하게 겁을 먹고 영동파의 보스는 손을 내저었다.
“어서 말해.”
그때였다.
타다다당!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이 그 총탄 세례를 맞아 몸을 옆으로 피했다.
주변에서 서두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총으로 무장한 인원 십수 명이 달려왔다.
그중 하나가 서둘러 영동파의 보스에게 다가가며 안위를 물었다.
“보스, 무사하십니까?”
“으하하하! 병신 같은 놈! 내가 이런 일에 대비도 없이 살아갈 것 같으냐? 내가 누군데! 내가 영동파의 보스야! 저 새끼를 죽여!”
기쁜 듯 웃으면서 영동파의 보스는 명령했다.
그가 이제까지 강민에게 순순히 이야기를 했던 것은 전부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몸에는 위치추적기가 심어져 있어 언제든 부하들이 그걸 보고 찾아올 수 있다.
바로 이런 경우를 대비해!
더구나 이곳이 집에서 멀지 않은 뒷산이라는 것도 그는 확인했다. 시간만 끌면 돌격소총으로 무장한 그의 최정예 부하들이 온다.
그리고 그의 시도는 이렇게 성공했다.
제아무리 장갑맨이라도 총 앞에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타다당!
타다당!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7.62mm 카라시니코프가 나무 사이를 오가는 강민을 노렸다.
강민은 재빠르게 이곳저곳을 오갔다. 그러면서 틈틈이 발로 돌을 걷어차며 자신을 공격하는 적들을 역으로 공격했다.
“컥!”
“아악!”
어둠속에서 불시에 날아오는 돌멩이를 피할 재간이 그들에게 없었다.
더구나 강민의 돌멩이는 방탄복을 피해서 날아왔기 때문에 한방 얻어맞으면 팔이나 다리가 나무젓가락처럼 박살나기 일쑤였다.
총소리에 이어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연달아 이어졌다.
“어, 어어?”
상황이 기대처럼 쉽게 돌아가지 않는 것을 느끼고 영동파 보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변 곳곳에서 홈염이 일어나며 빛을 밝혔지만, 어디에서도 장갑맨이 쓰러졌다는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 둘 홍염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아악!”
“악!”
그리고 삼 분도 흐르지 않아 숲에 남은 것은 다시 강민과 영동파의 보스만이 되었다.
총을 들고 달려왔던 부하는 모두 불구가 된 채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강민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보스에게 다가가며 냉혹한 눈동자로 말했다.
“나도 네놈이 수작 부리는 걸 모르고 놔두고 있던 건 아냐.”
“사, 사람도 아냐…….”
영동파의 보스는 덜덜 떨며 말했다.
그의 바지는 축축했다.
강민은 그의 공포에 질린 모습이 즐거운 듯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 같은 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사람이길 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지. 그러니까 이제 순순히 답하도록 할까? 네 뒤에 누가 있는지를!”
강민의 무시무시한 눈빛 앞에서 더 이상 입을 다문다는 건 불가능했다.
“어, 어르신의 정체는…….”
*
로브 차림의 한 여성이 비틀거리며 긴 복도를 걷고 있었다.
“후후훗!”
홀로 비틀거리며 걷는 여자는 귀가 길었다. 또한, 얼굴에는 피로의 기색이 아주 짙어서 광대뼈가 보이고, 눈 아래는 다크서클이 눈 화장처럼 진하게 새겨져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표정과 눈빛에는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내 못 참겠다는 듯 몸을 쭉 펴며 웃었다.
“오호호호호호!”
한참을 웃었다.
하지만 이내 견디지 못하겠는지 비틀거리며 기둥을 잡고 몸을 기댔다. 이내 후들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드디어 끝냈어! 드디어!”
그러나 목소리만큼은 생기발랄했다.
“이제 나를 막을 자는 없어! 나는 간다! 나는 반드시 가서 그 요망한 계집애가 마그누스랑 짝짜꿍하는 꼴을 막고야 말 테야!”
양 눈에 승리의 빛을 번쩍이며 그녀는 말했다.
“오호호호호!”
다시 지친 몸을 이끌고 그녀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