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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87화 (87/227)

87화

결국, 수란은 얼버무리듯 답했다.

“호호, 어쨌든 효과가 있는 것 같던데요.”

“효과가 있어?”

김경길이 경악한 표정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노래 부를 때 전보다 편한 느낌이에요.”

“허어?”

수란의 말은 점점 더 놀라웠다.

“특히 고음부를 부를 때, 억지로 힘을 내지 않아도 무리 없이 목이 소화해 주는 것 같다고 할까?”

“설마 그럴 리가…….”

김경길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일단 훈련을 시작한 기간 자체가 굉장히 짧다.

아니, 아직은 기간이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없을 정도다. 그냥 두 번째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목소리가 좋아진다니!

그러나 수란은 고개를 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진짜예요.”

“어디 불러보겠니.”

믿을 수가 없어서 김경길이 부탁했다.

수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데뷔 이후 부르기 시작한 그룹의 노래 중 고음부가 특히 어려웠던 곡이었다.

훈련하면서 이 노래를 몇 번 부르고 나면 목이 아파서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덕분에 콘서트를 할 때 립싱크를 해야 했던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목이 아프거나 숨이 가쁘거나 한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

고음부 파트가 끝나고 수란은 노래를 중단했다.

“됐나요?”

김경길은 입을 딱 벌린 채였다.

수란의 목소리는 분명히 더 나아져 있었다. 심지어 문외한이라도 수란의 노래를 꾸준히 듣기만 했다면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해 김경길은 말했다.

“다시 해 보렴,”

수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 곡 역시 고음부가 꽤 어려웠던 곡이었다. 이른바 ‘삑사리’가 나서 인터넷에서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때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부르면서 당시처럼 힘든 부분은 전혀 없었다.

마치 쉬운 노래를 부르듯이 부를 수 있었다.

“어때요?”

김경길은 아무 말도 못했다.

“……이거 믿을 수가 없는데.”

한참 가만히 있던 김경길이 고개를 흔들며 한 말은 그것이었다.

수란도 김경길의 말에 동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많이 놀랐어요.”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경길은 열렬한 관심을 띈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훈련을 한 거니?”

“그건 비밀이에요.”

새침하게 수란은 답했다.

“아니, 나한테도?”

“강민이 알면 굉장히 화낼걸요.”

잠시 고민하다가 수란은 김경길에게 그렇게 말했다.

김경길의 답답하던 얼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변했다.

“끄응! 어쩔 수 없지.”

처음부터 강민은 훈련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김경길에게 말해둔 바가 있었다.

만일 김경길이 추근대다가 강민의 화를 돋우게 되면 지금까지 진행한 것도 전부 파토가 난다.

“어쨌든 그러하면 계속 훈련은 받아보자.”

“네. 저도 그랬으면 해요.”

목소리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만두고 싶을 리가 없다. 가수라면 특히 그러하다.

무협소설에 나오는 무림인에 비유하자면 벌모세수를 받고 있는 것!

그런 기연을 스스로 걷어찰 리가 없는 것이다.

수란은 몸을 돌려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허참. 정말로 저런 걸 할 수 있다니…….”

혼자 남은 김경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뭐하던 녀석이지…….”

이어진 중얼거림은 많은 감정을 담았다.

강민.

도대체 알 수 없는 아이였다.

불과 17세의 나이인데.

***

수업을 끝내고 강민은 RK에서 제공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길이 막혀서 도착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할 짓이 없어 심심했던 강민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울 생각인 것이다.

“어디 보자…….”

잠시 인터넷 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강민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어?”

그가 돌아다니곤 하는 인터넷 게시판에 해괴한 게시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해서 눈을 좁히고 내용을 다시 확인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뭐야 이건?”

강민은 황당해서 낮게 중얼거렸다.

그가 보고 있는 게시판 글에는 최근에 있었던 한 이종격투기 시합의 챔피언전이 소개되어 있었다.

딱히 격투기 마니아들이 다니는 커뮤니티가 아님에도 그 시합이 소개된 것은 당시 있었던 해프닝이 큰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라 장갑맨?

게시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이겨 동양 챔피언이 된 야마다 준이라는 일본 선수가 승리 소감으로 장갑맨을 향해 도전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나와라 장갑맨! 정말 네가 소문처럼 강한지 나와 결판을 내자!’

그렇게 외친 야마다 준은 만천하에 쩌렁쩌렁 울리게끔 이어서 외쳤다고 한다.

‘만일 경찰이 걱정이라면 걱정하지 마라! 내 계정으로 연락해라! 한국 경찰이 손댈 수 없는 곳이다! 네가 편한 대로 맞춰서 만나도록 하겠다. 그리고 거기서 승부를 내자!’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물론 화제가 되긴 했지만 좋은 의미라기보다는 그 챔피언을 비웃거나 생각이 짧다고 비판하는 종류의 글이 많았다.

장갑맨의 강함이 압도적이라 다들 점치고 있기도 했고, 그게 아니라도 경찰에 수배령이 떨어진 장갑맨을 그런 식으로 도발해 움직이려 한다는 자체가 우스운 노릇이란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 챔피언의 말에 크게 기대하는 기색을 보이는 이들의 숫자도 적진 않았다.

특히 이종격투기를 좋아하는 이들의 경우는 각 커뮤니티가 후끈 달아올랐다.

과연 얼마나 강할지, 과연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등에 관련해 게시글마다 백 플은 기본이요, 천 플은 옵션이라 할 정도로 전래없는 열광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정작 본인에 대해 말하자면.

‘바본가?’

도통 관심이 없었다.

이런 승부 따위 이겨봐야 얻을 게 없고, 지면 손해다. 또 승부한다는 자체가 강민에게는 많은 위험을 동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예민하게 굴자면 경찰의 함정수사 같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강민으로서는 도저히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강민은 게시글을 빠져나와 다른 글에 관심을 기울였다.

*

강민단 기지에서 강민은 헛기침을 한 뒤 호성에게 다가가 말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 또 부탁할 게 있어?”

한참 돌들을 가르치며 피곤한 기색을 보이던 호성이 이제는 익숙하다는 태도로 강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지 뭐.”

“말해봐.”

“혹시 아는 의사 있어?”

강민은 조심스레 물었다.

“의사? 의사라면 몇 명 알고 있지.”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몇 명 알고 있다. 강민의 아버지 관계로 찾아가는 주치의라던가, 그 외에 병원 원장이라는 사람이 친구로 있기도 하다.

전에 과외 받았던 대학생 중에 의예과 출신도 있었다. 레지로 피눈물 나게 바쁠 때가 되어서 연락은 못하고 있지만 이야기하면 만나는 정도야 문제없다.

“혹시 그중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사람 있어?”

“정확히 어떤 건지 내용을 알아야 알아보지.”

호성은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흠. 그런가?”

하기야 도움을 얻는다고 해서 어떤 도움이냐에 따라 확실히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에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 없다.

사소한 약품 몇 개 빼돌리는 정도야 문제가 없지만, 마약류를 구해달라거나 진단서 조작 같은 도움의 경우는 아주 난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강민은 사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가 갑자기 의사를 찾는 이유는 이지연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병이 있었고, 그 때문에 쉽게 사회에서 모습을 감출 수가 없다.

적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경찰의 윗선에도 어느 정도 압력을 가하는 게 가능하단 건 틀림없었다. 그쯤 되면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는 것도 삼갈 필요가 있었다.

“어때?”

“으음! 그 정도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마약 같은 걸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설명을 다 들은 호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답했다.

“그래? 그럼 잘됐네.”

“근데 정말 되겠어?”

이제 이 싸움을 정리하겠다며 기세등등하게 나서려는 강민을 보고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호성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좀 안다.

호성네 집도 힘 좀 쓴다고 유명한데 지금 강민이 상대하려는 자들에는 도저히 비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러나 강민은 별걱정 없다는 듯이 되려 물었다.

“내가 누구지?”

“장갑맨이지.”

“그래.”

강민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걸 보고 호성은 별걱정을 다 했다는 생각이 됐다.

그러고 보면 경호대장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원하는 그 누구의 목숨이라도 주머니 속의 구슬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걱정해야 하는 것은 강민을 적으로 돌린 자였다.

결코, 그 반대는 아니다.

***

새벽.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주변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런 새벽의 도로변에 봉고 한 대를 주차시켜 놓고 혜경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 옆에는 강민이 있었다. 혜경은 강민을 보고 물었다.

“으음, 아직 안 와?”

“곧 올 거예요.”

강민은 어둠 저편을 보고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이런 시간에…….”

투덜거리듯 묻는 혜경은 며칠 전 강민에게 부탁받아 이런 꼭두새벽부터 밖으로 나와 있게 됐다.

사람을 한두 사람 옮겨야 하는데, 한 사람이 아파서 그게 힘드니 좀 도와달라고 한 것이다. 혜경은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혜경의 이름으로 봉고를 하나 빌려 이런 새벽에 나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사람을 옮기는 것까진 좋아도 왜 이런 새벽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들은 바가 없었다.

“뭐 그런 사정이 있다고만 알아주세요. 나중에 설명할게요.”

“나쁜 짓 아니지?”

강민이 얼버무리듯 말하는 데 혜경이 불안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제가 그럴 것 같아요?”

“그렇진 않지만.”

이런 면에서 강민은 믿을 만하다는 것이 혜경의 생각이었지만 또 혜경은 강민이 착하다고는 별로 생각을 안 했다.

착하면 에이리라는 강민의 애인이 그런 해괴한 소리를 할 리가 없는 거고.

일단 혜경의 입장에서는 여러 여자랑 동시에 사귀는 걸 당연시 한다는 부분에서 이미 아웃이었다.

그러는 사이 강민이 말했다.

“아,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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