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해져서 놀러왔다-84화 (84/227)

84화

“네.”

서길준은 자신의 옆 사람에게 눈짓했다.

그는 양복 상의를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선 에이리의 맞은편에 섰다.

그는 군대 특수부대 출신으로 경호 일을 한 지 10년 가까이 됐다.

체력적인 문제로 현장에선 물러났지만 짧은 시간 대결이라면 아직 현역 요원들 중에서도 이긴다고 자신할 만한 인재가 드물었다.

“갑니다.”

에이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성큼 앞으로 움직이며 손을 내뻗었다.

흠칫 놀라며 남자가 반응해 움직이려 할 때는 이미 늦었다. 에이리의 주먹이 눈 앞에 있었다.

에이리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말했다.

“상대에게 그런 말을 하시면 안 되죠. 다 읽혀요.”

믿기지 않았다. 별로 빨리 움직인 것 같지도 않았는데.

방금 에이리의 움직임이 어떤 것인지 알아낸 것은 서길준뿐이었다.

에이리는 상대가 하는 말을 들으며 그의 마음이 만들어낸 공백을 찔러 들어갔다.

인간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반사 속도는 0.1초 정도의 지연이 있다. 0.1초는 사실상 인간의 한계다. 그러니 사실은 훨씬 더 길다. 말을 하게 되면 그 지연이 길어진다.

에이리는 그걸 찌른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안목이었다.

진짜 굉장한 물건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서길준이 일어섰다.

“어디 이번엔 검으로 해 봅시다.”

“얼마든지.”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이라면 더욱 뻔한 승부다.

서길준은 나섰던 부하직원에게 말했다.

“가져와.”

부하는 놀란 표정을 아직 수습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용구함에 갔다. 거기서 목검을 두 개 가지고 와서 넘겼다.

에이리와 서길준이 서로 검을 쥐고 마주했다.

‘이게 무슨…….’

검을 마주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서길준은 에이리에게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검도에 능하며 단수도 무려 4단이다. 목검을 쥐면 무적에 가깝다.

‘제법인데?’

하지만 맞은편 에이리로선 그가 아직 버티고 서 있는 게 기특했다. 비록 마나를 끌어올리진 않았지만 검을 쥐고 있는 데 저렇게 버티는 것만 해도 대단했다.

툭!

에이리는 몸을 날렸다.

서길준은 어떻게든 방어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목검이 움직인 방향을 지나 에이리의 검이 들어와서는 서길준의 코끝에 도달했다.

“어떤가요?”

웃으며 에이리가 물었다.

“채, 채용하겠소.”

서길준은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로 말했다.

괴물이다!

그것이 에이리에 대한 서길준의 생각이었다.

***

강민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잘하고 있으려나?’

주변을 흘깃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이 에이리가 경호원 면접 가는 날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 강민의 생각이긴 했지만, 남자한테 기대어 먹고 살 수 없다는 그녀의 생각은 완고해서 결국 오늘 갔다.

‘실력이야 문제가 없지만.’

실력이야 문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지상 최강이다. 농담이 아니고, 그녀는 1/60억이다.

다만 현대문명에 대한 적응도가 낮아서 그런 면에서 경호원에 적합하지 않을 우려가 있었다.

강민이 곧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익숙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응?”

들어가는 순간 강민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집에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곧장 거실로 향하자 눈에 익은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잘됐군.”

반가움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남자는 김경길이었다.

“아니, 또…….”

“하하! 다시 봐서 반갑네.”

강민은 얼른 자물쇠를 바꿔야겠다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거실에 들어가서는 한 번 더 경악했다.

“엇?”

“안녕.”

소파에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있는 소녀. 수란이었다.

“너, 너는 왜?”

“하하! 별거 아닐세. 그냥 같이 이야기나 하려고 왔지.”

강민의 등 뒤에서 기세등등하게 나타나며 김경길이 말했다.

강민은 그를 바라보며 불평했다.

“이야기는 저번에 모두 했던 것 같은데요.”

“아니지! 그때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다시 찾아오겠다고.”

정말 고래 심줄 같은 사람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 바닥에 앉으며 강민은 물었다.

“음, 그래서 뭘 이야기 하시려고요.”

“달리 있겠나. 같이 노력해 보자는 것이지.”

“응. 나도 강민이 나랑 같이 활동하면 좋겠어.”

수란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어, 그건…….”

강민이 잠시 멈칫했다.

어째서 수란을 데려온 건지 알 만했다. 같이 부탁하면 심리적으로 좀 더 압박되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그건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다.

남자는 미인에 약한 법인데 수란은 미인일뿐더러 강민과 친한 사이니까.

그런 소녀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설득하려 하면 김경길 혼자서 설득하려던 때보다는 역시 딱 잘라 거절하긴 힘들다.

“자네는 재능이 있어!”

“아니, 그건 여러 차례 들은 건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나도 정말 아깝게 생각해. 그렇게 훌륭하게 노래를 부르면서…….”

“음…….”

강민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됐다.

“같이 하자. 응?”

“성공 가능성이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그러면 내가 보증하도록 하지! 만일 자네가 노력해서 실패한다면 내가 직접 우리 회사에 채용해서 대우해 주겠네!”

나름대로 파격적인 대우였다.

김경길의 회사는 재무구조가 투명하고, 지배구조가 우수하며, 수익률도 나쁘지 않다. 직원 대우도 대기업급이니 결국 들어가기만 한다면 안정적이다.

“그건 고마운 말씀이시군요.”

그러나 결국 강민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실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것도 핑계일 뿐이지, 강민이 이 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아니었다.

기대하는 수란에게는 미안하지만 역시 지금은 거절해야 할 것 같았다. 괜히 애매하게 말했다가 계속 피곤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야 말로 서로에게 피곤한 일이다.

다만 이렇게까지 열렬히 자기를 설득하려는 사람을 마냥 딱 잘라 거절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니 대안이 될 만한 방향을 택하기로 했다.

“결국 그렇게 아쉬워하시는 이유가 결국은 노래 때문이죠?”

“그렇지. 자네 목소리는 정말 하늘이 내린 거야!”

김경길은 흥분해서 외쳤다.

강민의 목소리.

그는 처음 강민의 노래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강민은 그렇다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어떻습니까? 제가 저만큼 멋진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수란을 훈련시키겠습니다!”

“뭐?”

“그런 게 가능해?”

김경길과 수란, 두 사람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해.”

이어 그는 김경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면 제가 굳이 나설 필요는 없어지겠지요?”

“그야…… 그럴 수 있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김경길은 답했다.

강민의 목소리는 정말 굉장했다.

김경길도 가수를 여럿 보아왔다. 훈련으로 얼마나 목소리가 좋아질 수 있는가도 알 수 있다. 강민의 목소리는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건 안 하면 모르는 일이죠. 만일 실패하면 그쪽이 말씀하시는 대로 가수 데뷔를 하도록 하죠. 어떻습니까?”

강민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면…… 좋네.”

잠시 생각하던 김경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강민이 수란의 목소리를 그렇게까지 단련시키는데, 성공하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도리어 수란의 목소리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걸 생각하면 강민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보짓이지만, 실패한다면 강민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또한, 강민의 훈련이 엉터리라면 엉터리인 대로 대처할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해 둘 생각이었다.

목 문제로 고생하는 가수가 많은 만큼 목을 회복시키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란의 목도 보호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하죠.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강습료도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강민은 이어 김경길에게 눈을 번뜩이며 요구했다.

“회당 백만 원.”

“그러지.”

강민은 거래가 이어질거라 생각하고 한 방에 크게 부른 것인데 김경길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통이 크시군요.”

“뭐, 자네 계약료라 생각하면 싸니까.”

한 한 달 훈련해 보고 수란의 목소리에 발전이 없고 목에 피로만 쌓인다면 그때 중단시켜버리면 된다. 그래 봐야 비용은 이천만 원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비싼 트레이너 가격은 그걸 넘기고 수란은 그런 트레이너에게 훈련도 자주 받는다. 강민이 제안한 가격은 사실 별로 높은 것도 아니다.

강민 본인이 그런 트레이너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아! 그리고 어떻게 가르치는지,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같은 건 완전히 비밀입니다. 이거 어기면 그날로 저는 그만둡니다.”

“그것도…… 알았네.”

김경길은 나름 강민이 본격적으로 구는 것을 보면서 정말 그런 비법이 있나 호기심도 들었다.

“그러면 시간표를 작성해 보고, 가까운 시일 내에 시작하도록 하죠.”

“좋네.”

김경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의 시도가 성공하면 급 레벨업 한 수란을 얻게 될 것이고, 실패하면 강민을 얻게 될 것이다.

김경길은 어느 쪽이든지 손해 볼 것은 없다 생각했다.

***

강민은 아직은 낯선 골목의 한 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문이 열리고 놀랍게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신지?”

“나.”

강민이 웃으며 말하자 에이리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았다.

“어서 와.”

강민은 에이리가 청한 대로 집 안으로 들어가며 안을 살폈다.

이사할 당시와 별 차이 없이 살풍경한 집이었다. 옷과 식기 도구, 그리고 불빛 정도를 제외하면 내부는 텅 빈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잘 지냈어?”

“비교적 별일은 없었어.”

“모델 일은?”

방에 앉으면서 물었다.

모델로서 에이리는 처음 나선 이후 대단한 호평을 받았고 이후로도 하는 일마다 평가가 높았다.

사실 용모와 몸매 양 측면에서 너무도 압도적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계속하고 있긴 해. 하지만 눈에 띄는 건 곤란하니, 사진이 찍혀도 상관없을 스타일이나 아예 사진을 찍지 않는 모델 일로 부탁한다고 했지. 패션쇼 같은 데서 가끔 의뢰가 들어와. 맥심 편집장 그 사람이 좋게 봐 주고 있거든.”

모델 일 가운데는 얼굴을 일부러 가리도록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용모가 뛰어난 모델은 옷을 가리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에이리는 일부러 그런 종류의 모델 일을 받아서 하고 있었다.

보수는 용모를 드러내야 하는 것에 비하면 낮지만, 생활을 유지하기는 충분했고, 그런 모델 일이라 해도 에이리의 신체 비율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평판도 좋았다. 당연히 모델료도 올라가고 있었다.

“괜찮아? 경호원 일도 시작했다면서?”

강민이 살짝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에이리는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