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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82화 (82/227)

82화

“그러니까, 그 때문에 이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거 같지 않습니까?”

“자네 말은 그 장갑맨이란 자가 너무 강해서 우리 협회 선수들의 강함이란 게 한심하게 여겨진다는 건가?”

종찬이 신경질이 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유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우리가 파는 게 뭡니까. 지상 최강 아닙니까? 그런데 엄한 데서 저런 게 나오면…….”

“크으! 확실히 그렇군.”

아무리 장갑맨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종찬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현실 분석은 냉정히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장갑맨의 대두가 요즘 격투기 사업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최강을 논하기 위해 시작된 이종격투기 밖에서 최강을 말하는 존재가 나왔으니!

유만은 말했다.

“그러니 장갑맨에 대한 열풍이 지나갈 때까지는 별수 없겠죠. 그냥 좀 어려운 시절을 견디는 수밖에요.”

“잠깐.”

어깨를 으쓱이는 유만에게 종찬이 두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네?”

“그럴 필요 없지 않나?”

“없다니요?”

유만은 종찬이 뭘 말하려는 건지 순간 알 수가 없었다.

종찬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장갑맨을 우리가 이용하면 되잖아!”

“어떻게요?”

유만은 당황했다. 그러자 그거야 뻔한 것이 아니냐는 듯 종찬이 얼른 말했다.

“우리가 더 세다는 걸 증명하거나, 아니면 그를 우리 협회로 끌어들이던가!”

“그게 가능하면 좋은 방법이 되겠죠. 좋은 한국인 선수가 없다는 것도 해결이 될 테고. 하지만 어떻게요? 더구나 영웅이라고 띄워줘도 경찰에서는 엄연히 범죄자로 구분하고 있는 사람인데.”

유만은 종찬이 답이라고 내놓은 설명이 더 황당했다.

그러나 종찬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느긋했다.

“그거야 생각해 봐야지.”

“누가요?”

“니가.”

“…….”

유만의 표정이 슬퍼졌다.

남의 돈 받아먹기가 참 힘들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강민은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요.”

“어디.”

혜경이 그걸 받아 살폈다.

지금 강민이 그녀에게 넘긴 것은 이번에 나온 시험 성적표와 시험 문제였다. 잠시 성적과 문제를 확인한 혜경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와~ 대단한데!”

“그렇죠? 누나 덕분이에요.”

고개를 끄덕이며 강민이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이번 시험 성적의 향상에는 수학이나 화학 쪽의 점수가 오른 덕이 상당했다.

“내가 무슨. 다 네가 열심히 한 덕분이지.”

혜경이 부끄럽게 말하는데 강민은 음흉하게 웃었다.

“아, 그런가요? 그럼 어머니가 보너스 넣겠다고 했는데…….”

“그, 그건…….”

강민이 갑자기 한 말에 당황해 혜경은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허둥대는 모습을 잠시 즐겁게 보다가 강민은 손을 내저었다.

“하하! 농담이에요. 하지만 확실히 신세를 졌어요. 이대로면…… 흠, 내년 수능도 문제없겠는걸요.”

강민의 성적은 꾸준히 오르고 있었고 그 상승폭도 컸다. 이대로라면 내년 여름방학 전에 전교에서 최상위권이 될 것이다.

“호호, 그렇게 되면 내 후배가 될지도 모르겠네?”

혜경은 서울대 학생이다. 만일 강민이 성적 향상을 이루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다면 어지간해서는 서울대 학생이 될 것이다.

즉, 강민은 혜경의 후배가 된다. 과까지 같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음, 어쩌면 그렇겠네요. 의대는 관심이 없고…… 유학을 가진 않을 테니.”

“그렇게 되면 좋겠다.”

“저도 그쪽이 좋긴 하겠네요.”

강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혜경을 바라보고 웃었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고 혜경은 잠시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가 물었다.

“참, 그런데 에이리는?”

“아, 걔는 나갔어요.”

“그래?”

혜경은 의외라는 표정이 됐다.

“뭐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는 없는 일이고…….”

“그건 그렇지.”

에이리 이야기가 나오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층 복잡해졌다.

특히 혜경에게 복잡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은 강민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였다.

사귄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바람둥이라느니, 그러고서도 강민이 마음에 들면 도와주겠다느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참 헛소린데 마음에 이상하게 걸렸다.

어쩌면 너무 헛소리라서 마음에 걸리는 걸지도 몰랐다.

“아! 그런데 혹시 내가 질문 하나 해도 괜찮을까?”

“뭔데요?”

“저기 말야, 에이리한테 들었는데 너 그 애랑 사귄다면서?”

대뜸 물었다.

“헉?”

강민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이 되었다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아…… 굳이 뭘 그런걸…….”

“정말인가 보지?”

놀라는 강민의 모습은 에이리가 한 말이 맞다는 것에 대한 보증 수표나 다름없었다.

“네. 사실이죠.”

“역시 그랬구나. 한데 굳이 숨길 필요가 있니. 굉장히 자랑스러울 거 같은데.”

혜경이 에이리의 모습을 생각하며 말했다.

아름답다.

그 이상의 표현이 달리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미녀. 그것이 에이리에 대한 혜경의 인상이었다.

강민은 피식 웃었다.

“자랑하려고 여자 사귀는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렇긴 하지만…….”

강민의 답이 너무도 교과서적으로 올바른 것이라 말을 했던 자기만 바보가 된 것 같아서 혜경은 멋쩍은 표정이 됐다.

“그리고 사실 저하고 에이리하고 사귄다고 하면 이어질 질문들이 많을 거 같아서…….”

그러면서 강민은 에이리에게 ‘그렇지 않겠어요?’ 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서 나중에 적당한 때가 되면 말할까 했던 거죠.”

“그랬구나.”

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여러모로 말이 많을 것 같은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평범한 고딩과 맥심 표지 모델로 나와 역대 최강급의 비주얼이라 호평 받는 외국 미녀 커플.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혜경은 이어서 또 뭔가를 물으려 했다.

“그러면…….”

“또 있나요?”

강민의 반문에 혜경의 의문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아, 아니야. 그냥…….”

방금 혜경이 물어볼까 했던 것은 에이리에게 들었던 바람둥이라는 평가에 대한 진상이었으니까.

에이리와 사귄다는 걸 들키고서 아주 자연스럽게 여기는 모습이라 그 이야기도 거짓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그건 본인에게 묻기에는 적절치 않은 질문이었다.

“아참, 에이리랑 친하게 지내주세요. 한국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심심할 테니까.”

“응, 그렇게 할게.”

혜경에게 강민도 그리고 에이리도 감당이 되지 않겠다 싶을 만큼 특이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래서 더 재밌고, 또 그게 아니라도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기도 했다. 강민은 가르치는 보람이 느껴지는 드문 학생이기도 했고.

***

김경길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고심하고 있었다.

“음…….”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으음…….”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서성거렸다.

“음…….”

다시 자리에 앉아 천정을 바라봤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 듯, 그의 표정에서 울적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경길의 수심 어린 표정이 기약 없이 계속되던 때였다.

똑똑.

“들어와.”

답과 동시에 문이 열렸고, 한 소녀가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약간 작은 체구에 아름답고 귀여운 인상의 소녀였다. 요즘 김경길이 밀어주고 있는 신인 그룹 뷰티걸의 멤버 수란이었다.

“아, 우리 수란이 왔구나. 요즘 어때?”

“어떤진 사장님이 가장 잘 아실 거 아녜요.”

김경길이 앉은 책상 앞의 소파에 앉으면서 수란은 불평하듯 말했다.

“하하, 너희가 바쁘긴 하지.”

“그래서 요즘은 학교도 못 가다시피 하고…….”

이벤트니 콘서트니 해서 요즘 뷰티걸의 활동은 그야말로 잠도 자지 못하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짬짬이 시간을 내서 강민을 비롯해서 학교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는 물론이고, 학업 자체가 완전 중단된 상태였다.

“참아주렴. 지금은 중요한 때니까.”

스포츠 경기와 비슷한 점이 있어서 연예인은 기세가 중요하다. 한번 불이 확 타올랐을 때 그걸 이용해서 높은 곳까지 도착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좀 느긋해져도 상관없지만, 그 전에는 사람들의 뇌리에 자기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막말로 뭐든 해야 한다.

“그렇긴 하죠. 그래서 저도 그렇고 다들 참고 견디고 있어요.”

“장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거예요?”

수란은 용건을 물었다.

“음……. 그게 말이다.”

김경실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번에 네 친구 있지 않니.”

“강민이오?”

김경길이 강민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래. 그 아이를 설득하러 가 봤는데…….”

“성공했나요?”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김경길은 고개를 저었다.

“아쉽다만…….”

“아, 역시 그렇군요.”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 강민은 별로 이런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인상이다.

그걸 가장 잘 알려주는 것이 평소 수란과 문자라든가 통화할 때 보이는 태도였다. 친구를 대한다는 것 이상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네.”

“그 아이를 설득하게 좀 도와주지 않겠니?”

“제가요? 어떻게?”

수란은 깜짝 놀란 얼굴이 돼서 물었다.

“별거 있겠니. 같이 가서 이야기 좀 하자는 거지.”

“그런 걸로 될까요?”

자신이 가서 무슨 대단한 도움이 될까 생각했더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김경길은 그것만으로도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뭐든 성의를 보이는 게 중요한 법이니까 괜찮을 거다.”

“으음. 그러면 알겠어요.”

특별히 힘든 일도 아니고, 오랜만에 강민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아서 수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날짜 잡아 보자꾸나.”

김경길은 결의에 찬 표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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