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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80화 (80/227)

80화

가는 길에 강민의 아버지는 강민을 몇 번 힐끔 쳐다보다가 말했다.

“흠흠! 아들아.”

“네?”

“어떻게 됐느냐?”

어떻게 됐느냐.

뜬금없는 말이긴 했지만, 강민은 쉽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씨익 웃으면서 아버지에게 반문했다.

“어떤 거 같으신가요?”

“나름 괜찮은 것 같더라마는…….”

강민의 아버지가 기대 어린 어투로 평했다. 강민과 에이리가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했죠.”

“핫핫핫! 그렇군. 역시 그렇군.”

강민의 아버지는 아주 기뻐했다.

아주 자기 일인 양 기뻐하시는 모습에 강민이 신기한 듯 물었다.

“아주 기뻐하시네요.”

“본래 남자의 능력이란 예쁜 여자를 얻는 데 있는 거다.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내 아들이 그걸 이뤄 냈다는 데 달리 뭘로 기뻐할까. 이제 내 앞에서 자식이 서울대 갔다고 자랑하는 것도 다 소용없다! 네 여자 친구 사진만 하나 보여주면 그것들 다 버로우지!”

남자는 왜 좋은 학교 나와야 하는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다!

좋은 직장을 왜 얻어야 하는가?

풍족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풍족한 생활은 왜 필요한가?

예쁜 마누라 얻고 가족을 잘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이런 도식에서 보자면 예쁜 마누라는 그야말로 최종목표!

강민은 그 최종목표에 근접해 있는 상태니 강민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다른 집 자식이 서울대 간 것 따위 부러울 게 없었다.

“버로우…….”

그와는 별개로 강민은 아버지가 지금 한 말에 좀 놀랐다. 그 연배에서는 도통 사용하지 않을 말을 사용했으니까.

“안 어울리는 말도 다 아시네요.”

“술장사를 하려면 원래 유행에 민감해야 하는 거야. 특히 맥주는 젊은 애들이 좋아하니까.”

“그렇긴 하겠네요.”

맥주는 확실히 스타일이 중요한 술이다. 그런 면에서 고객 측의 문화를 이해해서 대응해 나간다는 것은 경영자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다.

그런데 한국의 맥주 자체는 하이트와 카스에서 발전이 없다는 건 비밀이다.

강민이 물었다.

“뭐 근데 요즘은 그런 거 없어도 장사 잘되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

좋은 친구는 연일 호황이다.

지금도 미어터진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고, 예약제 좌석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

자리 잡으려면 석 달 전부터 이야기 해 둬야 한다 할 정도다.

강민은 능청스레 물었다.

“맥주가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그건…… 비밀이지!”

“쳇.”

“핫핫! 네가 대학 들어가면 알려주마.”

“기대하죠.”

강민은 부모님과 시시한 대화를 하며 도로로 시선을 옮겼다.

***

영동파의 보스는 버럭 화냈다.

“이런 제기랄!”

그의 주변에는 중간 보스들이 고개를 조아린 채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극히 무거웠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조아린 부하들 중 하나를 노한 눈길로 노려봤다.

“너지!”

이어 보스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앞에 놓인 재떨이를 들었고, 내던졌다. 날아간 재떨이는 정확히 보스가 노린 간부의 머리에 충돌했다.

퍽!

“커억!”

피를 주변에 튀기면서 비명을 지른 그는 얼른 자세를 정돈하고 고개를 계속 조아렸다. 찢어진 머리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죄, 죄송합니다!”

“입이 무겁고 실력이 확실하다는 말을 듣고 고용했더니!”

“으으…….”

단순히 임무에 실패한 게 아니다.

그가 직접 움직여 고용했던 히트맨이 숨겨야 될 모든 사실을 줄줄이 불어버렸다.

덤으로 그가 중국에서 벌였던 범죄까지도 자수했다.

황당한 일이지만 그 때문에 얼마나 일이 복잡해졌는지!

“경찰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어! 손해가 얼마인지 아나!”

만일을 대비해 중간에서 꼬리를 끊어내는 방식으로 거래하지 않았다면 정말 이번에는 위험할 뻔했다.

하지만 그러고서도 체포된 조직원만 수십이 넘고 와해된 하부 조직은 열 개를 넘는다.

재산상의 손실은 단순 피해만 수십억. 사후 처리를 위해 뿌려야 할 돈을 생각하면 백억이 넘을 수도 있다.

“그 손해만이 문제가 아냐! 어르신이 이제는 심하게 불쾌하고 계시다고!”

보스는 역정을 냈다.

어르신의 분노. 이것이 그의 입장에서는 가장 커다란 손해였다.

신뢰란 얻기는 어렵고 잃기란 얼마나 쉽던가. 그래서 살인이라는 위험한 짓도 기꺼이 하고자 했는데 이런 결과라니!

“죄송합니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간부는 말했다.

하기야 그에게 달리 할 말이 있을 리도 없었다.

“어떻게 할 거지!”

“대책 회의 중입니다.”

“대책 회의!”

보스는 이를 갈았다. 부하들의 하는 일에 믿음이 가지 않아서였다.

그는 속의 분노를 우선 삭이기 위해서인 듯 한숨을 길게 쉰 다음 말했다.

“일단 장갑맨인가 하는 그놈부터 처리해! 절대 우연일 리가 없어!”

간부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장갑맨의 개입은 두 번째였다. 이런 경우는 정말 노렸다고밖에는 말이 안 된다.

장갑맨은 이지연을 보호하고 있다!

앞으로 모든 작전과 계획은 그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짜여져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을 생각해서 어떻게든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빌어먹을!”

보스는 이를 갈며 의미 없는 욕설만 반복했다.

하지만 그에게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

이지연은 주변을 둘레둘레 살폈다.

지난번과 비슷한 공사장이었다. 공사는 중단되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몰래 사람을 만난다면 주변의 눈에 띄지도 않을 테고 여러모로 좋아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기다리자니 이전 그러했던 것처럼 어둠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강민이었다. 물론 장갑맨의 차림을 하고 있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얼른 인사를 나누고 강민은 물었다.

“요즘 힘드시지 않은지?”

“힘들어요. 주변에 사람들 눈도 많고……. 아무 도움도 안 되면서…….”

한숨을 쉬면서 이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요즘 경찰을 대단히 싫어하게 됐다. 이전부터 자신을 조금도 도와주지 못한 채 항상 일이 끝난 다음에 시끄럽게 굴면서 괴롭히기만 한다는 인상이 강해져서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하! 다들 각자 사정이 있는 법이니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그리고 경찰이 연관된 조직을 급습하고 폭력배들을 체포하기도 해서 그들이 쉽게 경거망동하지 못하는 겁니다. 너무 미워하진 마세요.”

하는 게 별로 없어 보여도 경찰이 아니면 엉망이 될 일들이 세상에는 아주 많다.

“네. 하지만 그래서 시간 만드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곤혹스러운 얼굴로 이지연이 말했다.

지금 그녀의 말은 요즘 경찰이 주변에 달라붙어 혼자서 행동하게 놔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 번이나 노림을 당했으니 신변경호가 강해지는 건 당연했다.

오늘도 매우 힘들게 시간을 만들었다.

“덕분에 안전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건 확실히 문제지요.”

더구나 경찰이 지금은 과잉보호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결국 이지연은 같은 위험을 겪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말입니다.”

“네.”

“상황이 진전되는 것을 보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제 측에서 직접 개입할 생각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직접 개입하겠다는 강민의 말에 반가워하면서도 이지연은 물었다.

“의심 가는 놈들의 기지에 쳐들어가서 대장을 잡아 놓고 자세히 물어서 어떤 놈이 이런 천벌 받을 짓을 하는 건지 명확히 밝히겠다는 것이죠. 그리고 가능하면 최상부에서 이번 일을 저지른 놈들을 일망타진하는 겁니다.”

즉, 사건을 깨끗이 정리하겠단 말이었다.

이지연의 얼굴이 확 밝아진 것은 당연했다.

“아, 그런 거군요.”

“그런데 이렇게 나갈 경우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강민의 어투는 엄격했다.

이지연은 약한 불안을 느꼈다.

“먼저 이지연 양의 안전입니다.”

“제 안전요?”

이지연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제가 강하게 나가면 상대 측에서도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초강수를 둘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런 경우 이지연 양과 가족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가 있습니다.”

“아!”

이지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그렇게 되면 정말 큰일이다.

그런 이지연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강민은 말했다.

“무엇보다 안전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인데 반대로 위험해져서야 보람이 없죠.”

“그럼…… 어떻게?”

강민의 말투는 느긋해서 무언가 방법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예상케 했다.

“일이 모두 종료될 때까지, 피난해 있으실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요?”

“피난처는 제가 마련해 두겠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안전하다고 판단할 때까지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겁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이지연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물었다.

피난해 숨어있는 것 자체라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지연은 여러 사정이 있다. 너무 장기화 되면 곤란하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만… 3개월 안에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3개월…….”

이지연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됐다.

하지만 강민이 말한 3개월도 실은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현대 한국에서 강민에게는 이세계와 같이 강력한 서포트 조직이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이지연의 사정을 생각해 최대한 빨리 끝낸다고 생각하고 말한 시간이었다.

“그동안은 외부와의 접촉을 피해야 합니다. 물론 추적당할 수 있는 물건 같은 건 전부 집에 놓아두고 가야 하겠죠. 특히 휴대폰이라던가.”

이지연의 얼굴은 곤혹스러워졌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그건 곤혹스럽군요.”

강민도 이지연이 그런 것처럼 곤혹스러운 표정이 됐다.

어지간해서는 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아픈 사람 문제라면 그게 안 된다. 강민은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는 게 전공이지 고치는 게 전공이 아니다.

잠시 강민은 이걸 어쩌나 하고 생각하다가 물었다.

“병원의 시설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종류의 질환입니까?”

“그런 건 아니에요. 약을 꾸준히 드시면 되니까요.”

이지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강민은 속으로 안도했다.

“그건 다행입니다. 그런 경우면 방법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생활비가…….”

“걱정마세요. 이쪽에서 마련하겠습니다.”

왕수천을 잡는 것조차 아르바이트 문제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집이다. 피난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들에게 돈을 부담하게 할 생각이 강민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이지연은 크게 놀란 표정이 됐다.

“저기…… 왜 그렇게까지 도와주시려 하나요?”

강민은 잠시 아무말도 못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듣는 경우가 있었다. 이 세계에서 특히.

그때마다 참 난감했다. 씨발 사람 돕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돕는 거지! 라고 외치고 싶어질 때도 많았다.

그래도 참고 친절하게 답했다.

“음! 특별히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이지연 양을 괴롭히는 악당들이 그만큼 끈질기고 강할 뿐입니다. 이왕 손을 댄 일인데 중간에 그만둬서 결국 그런 놈들이 이기면 짜증나는 일 아니겠습니까?”

“네. 그렇군요.”

도움받는 입장인 이지연으로서는 강민이 무슨 말을 해도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러면 마음에 결정되면 연락해 주세요. 만일 하게 되면 겨울 방학 쯤에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그 전에 결정을 내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학교를 쉬어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별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얼마나 위험한가를 생각하면 욕심 부릴 수 없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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