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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79화 (79/227)

79화

강민은 이마의 담을 닦았다.

“휴우~.”

“잘했어.”

에이리가 그를 칭찬했다.

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걸로 칭찬 들으면 기분이 묘한데.”

“악당을 벌주고 정보를 잘 획득해 냈으니 칭찬 받을 일인 거지 뭘.”

강민의 등 뒤에 꿈틀대며 쓰러져 있는 왕수천을 보면서 에이리가 말했다.

그는 정말 미주알고주알 전부 다 토해냈다.

아마 왕수천은 자기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강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받아들이지.”

“그럼 앞으로 어쩔 거야?”

에이리가 물었다.

정보를 많이 긁어내긴 했다.

그 정보에 따르면 적은 상대하기 꽤 복잡한 것으로 보였다. 상대하려면 계획이 필요해 보였다.

“아무래도 경찰은 믿을 수가 없어.”

“그래?”

에이리는 한국 경찰이 유능하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번에도 크게 터드렸는데 결국 흐지부지됐단 말야. 증거가 효력이 없다면서 제대로 수사가 진척되지 않았거든.”

“그런 것도 있어?”

증거가 될 수 없다니!

황당한 말로만 들렸다.

“법의 허점 같은 거지.”

강민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럼 직접 나서겠다는 거야?”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사건 같아 보이고……. 경찰에 맡겨선 언제까지 가도 끝날지 모를 것 같으니까 직접 움직이는 게 가장 편하겠지. 더해서 악당한테 크게 털지도 못했고 말야.”

강민이 한 말을 듣고 에이리는 기대에 부푼 얼굴이 됐다.

“나도 도와줄게!”

그야말로 주먹이 운다!

전공은 칼질이지만 칼질은 할 수 없는 곳이니 주먹밖에 울 수가 없기도 했다.

강민이 얼른 말렸다.

“아니, 넌 됐어.”

“왜! 이번에도 이렇게 도움이 됐는데!”

에이리가 화냈다.

강민이 이번에도 에이리를 말리기 위해 꺼낸 설명은 같은 것이었다.

“그렇긴 해도 한두 번이지. 역시 넌 너무 눈에 띄니까.”

“으읏.”

눈에 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참 피곤한 특징이었다.

이번에도 특징을 죽인다고 죽여 봤지만 그래도 거리에 나서보면 눈에 확 띄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에이리도 여기서는 양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경호 같은 게 필요하면 부탁할게. 다만 직접 침투해서 공격하는 데는 역시 안 좋아.”

“칫!”

“삐지지 말고.”

에이리는 아쉽게 한숨을 쉬었고 강민의 등 뒤에 있는 왕수천을 보며 물었다.

“그럼 저건 어쩔 거야? 깨끗이 죽일까?”

“아니, 여긴 한국이라고 무서운 소리 너무 쉽게 하지 마.”

강민이 기겁을 하며 말하자 에이리가 도리어 강민을 황당하다는 눈길로 바라봤다.

“이제까지 네가 한 짓이 살인보다 못해 보이진 않는데.”

실제로 그랬다.

왕수천은 그야말로 산 게 산 것 같지 않은 꼴을 하고 있었다.

악마도 무릎 꿇고 울게 만든다는 강민의 고문을 받았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살아도 산 게 아니다.

그래도 이 점에 대한 강민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래도 살인은 아냐.”

“미묘하군.”

에이리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태도로 중얼거렸지만, 강민은 여전히 당당했다.

“원래 그런 거지.”

“그럼 어쩔 거야?”

“자수 시켜야지.”

에이리가 어이없다는 태도로 말했다.

“자수? 저놈이?”

“저런 꼴론 더 이상 나쁜 짓도 못할 거 아냐? 그리고 알고 있는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전부 불라고도 해 뒀고.”

그는 강민의 고문을 받았다. 강민의 제대로 된 고문을 받고서 강민의 지시를 거절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고통스럽다.

더구나 강민의 압도적인 힘을 그는 알고 있다. 강민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길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강민의 고문을 받고 그 지시를 지키지 않을 리가 없다.

“그래도 말이지…….”

“그리고 만에 하나 제대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게 밝혀지면…….”

강민은 에이리의 지시에 말꼬리를 죽이면서 왕수천을 바라봤다.

그의 죽은 말꼬리가 암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 괜찮겠네.”

“그렇지.”

에이리가 만족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서 강민도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

어느 날 경찰서에 갑자기 웬 외국인이 자수하러 왔다.

이름은 왕수천.

한쪽 손이 완전히 뭉개지다시피 한 그는 자수한 즉시 병원에 갔고, 절단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자세한 조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한마디로 축약하면 이렇게 된다.

장갑맨이 떴다!

또 한 번 전국이 시끄러워졌다.

이번은 이전에 비해 한층 더 그러했다.

장갑맨만 해도 화젯거리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욱 과열되는 기미가 보였다.

장갑맨이 개입한 사건이 지난번 그가 해결했던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점.

경찰이 지난번 수사 종결을 해 놓고 이번 사건에 대해 미연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

범죄자가 조선족을 가장해 한국에 들어왔다는 점.

그가 어마어마한 살인 경력을 지닌 무서운 범죄자였다는 점.

그를 협박해서 자수하게 만든 장갑맨의 수법이 너무나 잔혹했다는 점.

이러니 시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제가 된 사안이 하나하나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충분할 정도인데 그런 게 이번 사건에는 다섯 개나 겹친 것이다.

게다가 장갑맨이 끼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여섯 가지다.

차분히 정리해 보자.

가장 먼저 화제가 된 것은 역시 이 사건이 지난번 사건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경찰은 어마어마하게 까였다.

증거가 그렇게 명백한 사건을 흐지부지 하더니 또 이런 사건이 터졌고, 자력으로 해결을 못해 장갑맨이 끼어들어 겨우 해결했다.

거기다가 사건의 당사자인 이지연이 그자의 습격을 받아 처음 경찰에 신고하러 갔지만 경찰들이 믿어주질 않아 그냥 돌아가야만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아예 전국이 들끓어 올랐다.

비록 후자는 경찰의 입장에서도 억울한 점이 많은 것이지만, 그걸 고려해도 욕먹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살인마가 조선족을 가장해 한국에 들어왔다는 점도 엄청난 문제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조선족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던 한국에서 이번 사건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어 외국인에 대한 증오심을 촉발시켰다.

이로 인해 제노포비아를 우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높아졌고, 실제 그런 위험을 경계할 만한 상황에까지 갔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은 거의 사라지기 시작했고, 범죄자 취급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노예처럼 부려먹어도 좋다는 인식이 나왔다.

조금 있으면 한국판 KKK단까지 등장하지 않겠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노숙자 구타에 이어 외국인 노동자 구타 사건 같은 것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대우는 한층 열악해졌고, 정상적으로 일하던 외국인들도 한국을 증오하게 됐다.

이런 형편에서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을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외국인에 대한 철저한 관리다.

믿을 수 있는 외국인을 한국에 들여와서 그들과 정상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게 되면 신뢰는 점차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 점에 대해 요지부동이었다.

여야 모두!

그럴 경우 최저임금 동결을 비롯해서 배부른 돼지들의 이익에 손해가 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장래 천만 외국인을 한국에 들여와 자국민과 경쟁시켜 임금상승을 막고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저하에 대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어차피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그들에게는 노예일 뿐!

노예의 삶 따위에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게 된 사회적 혼란과 치안 악화 같은 것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돈 많은 돼지들이야 어려워지면 그냥 해외로 떠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관리 부실에 대한 비난과 책임을 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 부랴부랴 외국인 관리에 대한 특별법이니 관리강화니 해서 시끄러운 움직임을 보이긴 했다.

그리고 장갑맨은 이번에도 소녀의 살해를 막고 살인마를 자수시켰다는 데서 열광과 찬사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비판의 의견도 많았다.

아무리 살인마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몸을 장난감처럼 뭉개버린 그의 고문에 대해서 인권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이 반발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지난번 깡패들의 불알을 터뜨려 버린 것부터 그러했지만, 그의 수법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있었다.

이번엔 그것이 한층 강하게 표면화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따지고 보면 소수였다.

사회의 많은 불의에 스트레스를 받아온 이들은 장갑맨의 행위에 감탄했고, 기뻐했고, 찬양했다.

팬클럽은 기세를 더해 팬을 늘렸고, 그의 추종자는 인터넷에 넘쳐났다.

머지않아 장갑맨은 한국의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될 것만 같았다.

경찰들의 입장에서 장갑맨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차라리 이지연이 죽어버리는 것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평범한 범죄의 하나로 치부할 수 있으니 편리했다.

장갑맨처럼 기괴한 존재가 끼어들어 이렇게 욕만 먹고 있자니 자기들이 못한 건 생각도 안 하고 장갑맨 욕하기에만 바빴다.

사실 장갑맨이 심각할 정도로 여러 사람들을 폭행한 건 사실이라 경찰이 움직일 명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항상 그러했듯이 장갑맨을 잡을 방도는 없었다. 추적할 방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단서가 될 수 있는 이지연의 경우도 관련된 사실에 대해 입을 꽉 다물었고 그녀의 주변을 조사해도 뭔가 연결될 만한 구석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지연은 물론 왕수천 역시 입을 꾹 다물었다.

경찰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다시 장갑맨은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채, 신비롭게 모습을 숨겼을 뿐이다.

장갑맨을 도와주는 양복맨이 있는 것 같다는 소문도 함께 떠돌았지만 확실한 자료가 없는 탓에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곧 묻혔다.

***

집 앞에서 에이리가 고개를 숙였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그녀가 인사하는 앞에는 강민의 아버지와 강민이 있었다.

오늘은 에이리가 강민의 집을 떠나 따로 구한 집에서 살기로 한 날이었고, 그 이사를 도와주고 있는 참이었다.

사실 에이리는 짐이 없기 때문에 이사랄 것도 없었고, 몸만 가면 됐지만 아쉬운 김에 데려다 주기로 한 것이다.

“아니다. 더 있어도 되는데…….”

“그러게.”

강민과 강민의 아버지가 함께 말했다.

“아니요. 언제까지고 그럴 순 없죠.”

에이리도 아쉬운 마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 멀진 않지만 강민과 함께 지낼 수 없게 될 테니까.

앞으로는 강민의 집을 찾아가는 것도 눈치 보이는 일이 될 테고, 마음 놓고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강민단 기지 정도가 될 것이다.

그래도 주변의 눈을 생각해서라도 장기 투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이지연의 일이 일단락된 지금이 적기였다.

“또 놀러 오렴.”

“네. 그렇게 할게요.”

“연락해.”

“응.”

간단히 마지막 말을 나누고 강민과 강민의 아버지는 몸을 돌렸다. 떠나는 두 사람을 향해 에이리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정말 여러모로 신세 많이 졌어요.”

“그래.”

웃으면서 강민의 아버지는 에이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후 두 사람은 차로 돌아가 탑승했고,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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