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드디어!’
강민은 기쁜 얼굴로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나갈 준비를 했다.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한 강민을 보고 강민단원들이 물었다.
“어디 나가?”
“일이 생겼어.”
“바쁜 거야?”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 보관해 뒀던 장갑맨 활동용 가방을 메고 강민단원들을 향해 말했다.
“조금. 나는 나갈 테니까 너희들은 쉬어. 통닭하고 피자라도 시켜서 먹든지.”
야식을 먹으면서 쉬라는 제안을 거부할 고등학생은 한국에 없다!
“아, 그거 좋은 제안!”
“그래! 역시 휴식은 중요하지!”
“공부를 위해서도 말야!”
가장 환호한 것은 역시 공부가 괴롭기 짝이 없던 재철 일당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석이나 호성도 싫어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건 뭐 나도 찬성.”
“그래. 좀 쉬어가면서 해야 하는 거야.”
여러 시간 가르치기도 하면서 자기 공부를 하느라 둘 역시 꽤 지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강민의 제안은 고마운 것이다.
“그럼 나는 갈 테니까 알아서들 완료하고 가.”
“응!”
“수고해!”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강민은 밖으로 나갔다.
***
깊은 산속이었다.
산에는 때로 별장이 하나씩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리조트처럼 놀러 온 사람들에게 빌려 줘서 수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산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한 용구를 보관하는 용도라든가, 그들이 혹시 기상 변화로 인해 움직이기 힘들 때 안전하게 머물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군인들이 비상시를 대비해 참호와 함께 만들어 놓는 것들도 있다.
그런 것 중에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버려지고 빈껍데기만 남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강민이 서둘러 움직여 도착한 곳은 그런 폐산장 중 하나였다.
크기는 두 사람이 겨우 지낼까 싶은 곳으로 오래도록 쓰지 않아 창문은 깨졌고, 겉의 페인트도 다 벗겨진 상태였다.
산장 앞에 도착한 강민은 이미 장갑맨으로 옷을 다 갈아입은 상태였다.
산장의 문을 열고 강민은 안으로 들어갔다.
산장 안에는 에이리와 묶인 왕수천이 있었다.
“아, 왔군. 기다리고 있었어.”
“수고했어.”
강민의 말에 에이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뭘 이 정도 가지고.”
“흠! 그런데 이자란 말이지.”
묶여 끙끙대고 있는 왕수천을 들여다보며 강민이 말했다.
그의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에이리가 말했다.
“전문적인 암살 훈련이라도 받은 모양이었어.”
“그래?”
강민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움직임이 아주 좋던걸.”
“너한테 그런 소릴 들을 정도면 정말 굉장한데.”
관심이 간다는 듯 강민은 왕수천의 몸 위아래를 흘겨보며 말했다. 에이리에게 저런 평가를 받았다는 건 정말 엄청난 실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에이리가 재빨리 덧붙였다.
“물론 여긴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걸 감안한 평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반인의 기준으로 이 남자가 초인에 가까운 실력을 가졌으리란 건 틀림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현재 강민보다 강한 에이리에게서 저런 말이 나올 리가 없다.
“어쨌건 두 번째 시도이다 보니 아주 비싼 히트맨을 쓴 건 틀림없는 모양이야.”
“어쩔 거야?”
“일단은 긁어낼 수 있는 건 긁어내야지.”
강민은 그리 말하며 왕수천에게 다가가 그의 입을 막고 있던 재갈을 벗겨냈다.
“윽!”
신음을 지르며 왕수천은 노한 눈동자를 강민의 마스크로 향했다.
강민은 그의 눈동자를 정면에서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름은?”
“…….”
왕수천은 말하지 않았다.
“다시 묻지. 이름은?”
왕수천이 입을 열었다.
그는 원독에 불타오르는 눈동자로 강민을 바라보며 저주처럼 외쳤다.
“네가 장갑맨이구나. 모습은 봤다. 주먹깨나 쓰는 모양인데, 그딴 게 아무 의미가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마. 기대해. 곧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해 줄테니!”
“허?”
강민은 황당해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의 옆에서 에이리가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온몸을 떨었다
“푸훗…….”
하지만 버틸 수 없었던지 그녀의 입에서 바람이 새어나왔다.
“푸하하하하하하!”
이어서 풍선이 터지듯 에이리는 깔깔대며 웃었다. 왕수천은 그녀의 웃음에 당황했다.
강민이 그녀에게 외쳤다.
“뭐가 그리 웃겨!”
“하하하……하하! 그, 그래도 너한테…… 협박을……. 하하하.”
강민에게 협박을 하다니!
에이리는 그게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더 마그누스.
그는 여러모로 전설적이지만, 그의 전설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고문이다.
유황불에 목욕을 하고, 마취 없이 온몸을 뜯어내도 웃으며 버틴다는 악마조차 울며 벌벌 기게 만들었을 정도로 강민의 고문 실력은 특별하다.
그런 고문의 대가 앞에서 협박이라니!
그것도 고통을 주겠다는 내용으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그러니 에이리로서는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잠시 기다리던 강민은 계속 에이리가 웃음을 그치지 않자 버럭 화냈다.
“바쁘잖아. 조용히 좀 해!”
“미, 미…… 하하하하하…… 안…….”
하지만 어찌나 웃겼던지 에이리는 그러고서도 한참을 웃었다. 협박을 한 당사자인 왕수천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러고서도 상당히 시간이 지나고서야 겨우 에이리는 웃음을 멈췄다. 어찌나 웃었는지 눈가에 눈물이 매달려 있을 정도다.
“아~ 겨우 진정됐다.”
“웃는 것도 지금뿐이다!”
곧장 왕수천은 협박을 재개했다. 그걸 듣고 겨우 진정됐던 에이리는 허리를 꺾었다.
“꺄하하하하…….”
“야, 너 적당히 해라. 쟤가 자지러져서 대화가 안 되잖아.”
강민은 버럭 화내면서 왕수천에게 외쳤다.
왕수천은 굴하지 않고 노여운 눈동자로 강민에게 외쳤다.
“네놈이 감히…….”
강민은 그의 손을 잡아 손가락을 꺾었다.
뚝!
왕수천은 전혀 꺾이는 기세가 없었다.
“……이런 짓을…….”
강민은 꺾었다.
뚝!
왕수천은 여전했다.
“하다…….”
꺾었다. 왕수천은 버텼다.
그런 일이 열 손가락 모두 반복됐다. 결국, 버티지 못한 왕수천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입에서 신음을 흘렸다.
“끄으…….”
강민은 그의 눈앞에 열 손가락이 모두 부러져 시퍼렇게 부어오른 손을 보여준 다음 음산하게 말했다.
“한 가지 말해주자면, 쟤가 농담으로 웃고 있는 건 아냐.”
그렇게 말하며 강민은 부러진 손가락 중 하나를 잡았다.
그리고 아주 강하게 꽉 쥐었다.
우득, 우드드득!
강민의 손 안에서 살이 짓뭉개지고 뼈가 박살났다.
“끄아악!”
왕수천이 어린애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을 초연히 버티면서 강민을 협박하던 처음의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강민이 손가락을 놓았다.
왕수천의 손가락은 원형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살점과 뼈가 뭉개져 엉망으로 들러붙은, 진흙덩어리 같은 상태였다.
“아~ 듣기 좋군.”
강민의 옆에 앉아서 에이리가 말했다. 정말로 아주 기분이 좋다는 어조였다.
“저런 소리 듣는 거 오랜만이야.”
“나는 오랜만은 아냐.”
강민은 최근에 장갑맨으로 활동하며 사람을 조져본 적이 있다.
“하긴 넌 바빴다고 했지. 어쨌건 난 저런 비명 소리가 참 좋더라.”
오싹한 말을 하고 있으나, 에이리는 선량하게 웃고 있었다.
강민은 그녀의 웃음을 보고서 얼굴을 찌푸렸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넌 좀 변태 같아.”
에이리가 화난 얼굴로 강민의 말에 반발했다.
“무슨 소리야! 정의감이 넘치는 거지. 온갖 나쁜 짓 다 하는 놈들이 시시하게 감옥에 잡히거나, 뎅강 목 잘려서 죽는 걸 보는 건 항상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 저런 걸 당해야지. 그래서 비명 소리 듣는 걸 좋아하는 거지, 비명 소리 자체를 즐기진 않아!”
“하긴 그런 면이 있긴 해.”
지금 에이리의 말에는 동감할 만한 부분이 있다 생각해 강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왕수천은 고통에 벌벌 떨면서 눈앞의 이 남녀가 무슨 대화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이런 짓을 꾸준히 오랫동안 해 왔다는 태도가 아닌가!
강민이 왕수천의 얼굴을 냉엄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특히 이놈. 평범한 악당이 아냐.”
“그래, 아주 뼛속까지 썩은 녀석인 것 같던데.”
에이리도 동의했다.
“분명해. 아주 많이 죽였을걸. 때로는 죽여 달라고 울부짖는 말도 들으면서.”
“그랬겠지. 하는 소리나, 솜씨를 볼 때도 틀림없어. 그런 녀석들 많았잖아.”
에이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강민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니 이렇게 쉽게 알아보는 거지.”
왕수천은 침을 꼴깍 삼켰다.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재수 없게 잘못됐다는 느낌이!
강민이 그의 다른 손가락을 붙잡았다.
우드드득!
어마어마한 악력이 부러진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까으으…….”
정신을 잃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은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왕수천을 바라보면서 강민은 말했다.
“고운 목소리로 울부짖도록 해라.”
강민의 어조는 마치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는 뭉개진 손가락을 손에서 놓고 또 다른 손가락을 쥐었다. 그리고 벌벌 떠는 왕수천을 바라보면서 요구했다.
“알겠냐?”
우득!
단순에 강민의 손아귀에서 손가락이 뭉개졌다.
“으아아악!”
왕수천은 강민의 요구대로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