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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75화 (75/227)

75화

“네에…….”

힘없이 웃으면서 이지연은 강민의 말을 받았다.

멋쩍게 머리를 긁고서 강민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쓸데없이 시간을 끄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닐 테니, 본론부터 듣도록 하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 그게…….”

강민이 본론으로 넘어가기 위해 이야기를 들으려 하자 그 순간부터 이지연의 표정이 새파랗게 변하고 말았다.

당시의 일이 그녀에게는 그만큼 충격적이었단 의미다.

‘당연하겠지.’

메일의 내용에 따르면 또 다른 살인 시도였다고 한다. 충격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강민은 얼른 그녀를 달랬다.

“괜찮아요. 진정하세요.”

“네.”

강민이 달래니 조금씩 이지연은 진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겨우 그녀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그리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30분 정도 더듬거리며 말을 하고서야 그녀의 설명은 끝이 났다.

“그렇게 된 거였어요…….”

“흐음. 경찰에는 갔습니까?”

이지연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강민이 한 말은 그것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경찰이야말로 한국에서 가장 쉽게 보호를 청할 수 있는 곳이다.

이지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네. 경찰에 갔지만…… 설명할 수가 없어서…….”

“그렇긴 하군요.”

강민은 혀를 찼다.

이번 사건에서 고약한 점은 그녀의 목숨을 구한 것이 마법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경찰에게 그녀의 곤경을 이해받기가 힘들다.

칼질해서 죽이려는 남자에게서 살아남았는데 어떻게 살아남았느냐하면 마법 덕분이란 답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답하면 미친년 소리밖에 더 나올까.

그래서 지연은 경찰에게서 도움을 청하는 와중 기대했던 반응은 얻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지난 사건 때문에 너무 과민해진 거라면서 집에서 푹 쉬라는 이야기만 들었어요. 경호하는 경찰 아저씨도 금세 돌아갔고… 전 너무 불안해서…….”

감정이 북받친 듯 이지연은 울었다.

강민이 달랬다.

“이해합니다. 울지 마세요.”

“네…….”

이지연은 점차 진정됐다.

이렇게 되면 역시 직접 나서서 제대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민은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호리호리한 30대 남자로 보였어요. 칼을 사용했고, 한국말에는 좀 서툴렀어요.”

“그리고?”

“그 외에는 잘…….”

미안한 얼굴로 지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두운 골목이라 했고, 상황이 그러했으니 기억하고 있는게 얼마 없다고 해도 별수 없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강민도 지금 지연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먼저 품에서 오늘 여기 오기 전에 마련했던 것을 꺼내 내밀었다.

“그러면 우선 이것을.”

“아, 이건.”

강민이 내민 것을 지연은 밝은 얼굴로 받았다. 그건 이번 사건에서 지연의 목숨을 구해준 마법의 부적이었다.

지난번 그것은 이제 효력을 잃고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네. 같은 겁니다.”

소중히 그것을 품에 넣으면서 이지연은 불안한 눈동자를 향했다.

“하지만 이걸 사용하고서도 또 오면 어떻게 하죠?”

염치가 없다는 것은 안다.

벌써 장갑맨에게 두 번이나 신세를 졌다.

보통 신세가 아니다. 그는 목숨을 구했다. 그래도 기댈 데가 지금은 강민밖에 없었다. 이렇게 물어봐서 어떻게든 도움을 구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강민은 친절하게 답했다

“아, 걱정마세요. 이번엔 단순히 지연 양의 몸을 지키려는 게 아니라 만일을 대비한 낚시이기도 하니까요.”

“낚시라는 게 무슨?”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이지연이 물었다.

“비슷한 시도가 또 있지 않겠습니까?”

“아마도요…….”

지난번 그렇게 일이 크게 번졌는데도 불구하고 또 이런 시도가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경찰이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포기할 리가 없었다.

“근절해야겠죠. 그러기 위해선 일단 그 남자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강민이 무얼 꾀하는지 깨닫고 이지연은 놀란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강민은 이번에 이지연을 죽이러 그 남자가 또 나타난다면 그를 직접 잡아서 족쳐버리겠다는 말이다.

아무 인연도 없고, 사례도 한 게 아닌 자신에게 그렇게까지 도움을 준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이지연은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해 주실 건가요?”

“이왕 돕기 시작한 것이니 그 정도는 당연하죠.”

강민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은 세계를 구했던 남자다. 남을 돕는 것에 대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숨 쉬듯이 해온 일이라고 할까?

하지만 도움을 직접 받는 입장에서는 뼈에 사무치게 고마울 수밖에 없다.

“감사…… 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지연은 고마움을 표시했다.

“감사합니다…….”

반복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강민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서 얼마나 정신적으로 곤궁한지도 느낄 수 있었고, 또 돕는다는 실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잠시 이지연이 진정되길 기다린 다음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회의를 해 보죠.”

“네.”

그리고 한동안 강민은 이지연에게 자신이 준비한 플랜을 설명했다.

사실 간단한 내용이었다.

이지연은 강민이 언제든 대응할 수 있는 계속 한 가지 루트를 따라서만 일상생활을 하고, 그동안 몰래 강민 측이 그녀를 감시하면서 다시 공격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적이 다시 나타나면 그때에 맞춰 강민 측에서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 포획한다는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어떻습니까? 문제없죠?”

강민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실드 마법으로 몸을 보호하는 이상 위험부담도 적고 따르기도 편리해서 쉬우면서도 완벽한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아…….”

한데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설명을 다 들은 이지혜의 표정이 결코 밝지가 않은 것이다.

강민은 얼른 물었다.

“왜 그러시는지?”

“저기 이건 좀 힘들어서요.”

곤혹스러운 표정을 돌리면서 이지연이 미안한 듯 말했다.

“문제라도 있나요?”

“알바를 해야 해서…….”

“알바요?”

상상도 못했던 이유였다.

분명 강민이 지금 이지연에게 따라 움직이라고 준비한 루트는 그녀가 알바를 한다면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인적은 드물어 언제 공격 받을지 모르지만 경호하기 편하고 돕기 위해 등장하기도 편리한 장소를 골라서 움직이도록 해 두고 있었으니까.

이를 위해 특히 산책 시간을 많이 배정해 두고 있었다. 두 시간 가량.

“네…….”

죄송한 듯이 이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강민은 처음 그녀를 구출해 냈을 때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했다.

분명히 당시 그녀는 집안 사정이 어렵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어흠! 어렵다고 하셨죠.”

“네…….”

이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미안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지혜의 모습을 보면서 강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실 가난하다는 말에 별로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가난하다 해도 형편이 좀 급한 정도려니 했을 뿐이니까.

한데 이렇게 목숨이 위험한 상황인데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말하는 모습을 보자니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형편인 것 같았다.

당시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당장 필요한 금액이 얼마쯤 되죠?”

“아! 그, 그, 그, 그럴 수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런 모습에서 강민은 이지연이 착한 소녀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어려운 사람 돕는 건데요 뭐. 그리고 나중에 다 갚아 주실 거죠?”

“네…….”

이지연은 갚는다는 말에 겨우 심리적인 저항감과 미안함을 물리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강민은 별로 돈을 돌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강민이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도적질해서 얻은 것이다. 그런 돈을 사용하면서 생색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지연은 당장 필요한 금액을 이야기했다. 백만 원을 좀 넘기는 정도였다.

“돈만 해결 되면 이대로 하는 데 아무 문제 없는 거죠?”

“네. 문제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네.”

이지연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길을 강민에게 향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내일 다시 만나서 드리겠습니다.”

“굳이 왜…….”

미안한 듯이 이지연은 말했다. 강민에게 발걸음을 하게 한다는 것이 미안해서였다.

하지만 강민에게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계좌이체를 하면 자칫 들킬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

확실히 그렇다.

고개를 흔들며 강민은 푸념처럼 말했다.

“옛날 미국 만화 보면서 영웅 노릇 하는 사람들이 왜 얼굴 가리나 싶었는데 비슷한 처지가 되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그런 것 같네요.”

강민의 말에 이지연은 겨우 여유를 찾은 듯이 작게 웃었다.

*

강민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는 에이리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처음엔 신기해서 즐겁게 보던 텔레비전도 이젠 질렸는지 얼굴에 심심하다고 써 붙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수한 몬스터와 직접 싸워 때려잡은 역전의 용사가 그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화려함도 그녀가 겪은 싸움에 비하면 초라하고, 시니컬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사회비판도 그녀가 겪은 참상에 비하면 애교다.

별반 자극이 안 될 수밖에!

그런 에이리를 위해서라도 마침 잘된 일이다 싶어 강민은 말을 붙여봤다.

“알바 하지 않겠어?”

“알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대뜸 에이리는 보내왔다.

하지만 얼굴 가득 호기심이 충만해 있는 것이, 지금 강민의 제안에 커다란 관심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여자애 하나 지키는 일이야.”

“자세히 얘기해 봐.”

에이리는 흥미가 동한 듯 적극적으로 물었다.

강민은 대략적인 사정을 설명했다. 물론 강민이 지금 지키겠냐고 말한 대상은 이지연이다.

강민 자신이 나서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학교가 있고, 에이리는 지금 할 일이 없으니 적임이다 싶었다.

그리고 몸이 재구축되면서 본래 힘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강민에 비해 현재는 에이리가 월등히 강하다는 것도 그녀에게 맡길 적절한 이유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에이리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흠! 재밌겠는데.”

“그렇지? 너라면 좋아할거라 생각했어.”

에이리는 원래 쌈박질과 사건을 좋아했다.

에이리는 고민스럽게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역시 눈에 띄어선 안 되겠지?”

“그야 당연하지.”

에이리가 외국인이란 건 멀리서 봐도 뻔하니 좀 여러모로 치장을 해서 모습을 덜 튀게 만들고 경호작업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어서 에이리는 물었다.

“잡으면 좀 때려도 돼?”

“안 죽이는 범위 내에서 마음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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