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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74화 (74/227)

74화

지연은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세요.”

“응.”

교대 온 남자 알바생이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지연은 총총 걸음으로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남자 알바는 아쉬운 눈으로 지연을 바라봤지만 얼마 전 큰 사고를 당한 아이에게 쉽게 껄떡거리는 건 도리어 호감만 깎아 먹을 짓인 거 같아서 참고 견디고 있었다.

“휴우.”

밖으로 나온 지연은 늘상 그러하듯 한숨을 쉬고 총총 걸음으로 걸었다.

지난번 큰일을 당했기 때문에 이제 그녀는 절대 골목길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다소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항상 사람이 보이는 밝은 길만을 찾아 움직였다.

그래야 안심이 됐다.

곧 그녀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여러 사람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중에는 호리호리한 30대 초 정도의 남자가 모자를 쓴 채 앉아 있는 것도 보였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지연은 차를 기다렸다.

곧 버스가 도착했다. 지연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에 올랐다. 버스에 타고 나니 긴장됐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지연은 빈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일찍 학교에 등교해서 지금까지 일했으니 피로한 것은 당연했다.

익숙한 음악과 함께 내릴 정거장이 되었다.

깜짝 놀라 눈을 뜨며 지연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아직 잠에 취한 듯한 발걸음으로 얼른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를 따라 이제까지 버스를 타고 있던 남자가 그녀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

밤길은 어두웠다.

“…….”

올라가야 하는 골목길을 바라보는 소녀의 표정도 어두웠다.

편의점에서 나와 버스를 탈 때까지는 약간 돌아가도 밝은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게 가능하니까 상관없는데, 자기 집이 있는 이 낙후된 동네에서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집 자체가 복잡한 골목을 지나가야만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길을 걷다 보면 항상 방학 때 있었던 악몽에 휩싸이곤 했다.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집에 가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이지연은 각오한 얼굴을 하고 가슴께를 잠시 꽉 잡았다. 거기에는 장갑맨에게서 받았던 부적으로 만든 천 목걸이가 있었다.

‘도와줘요.’

다시 그런 행운이 있을 리 없단 걸 알지만 이것이 지금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그녀 나름의 방식이었다.

***

타박타박.

조용한 밤의 골목길에 가벼운 체중의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이지연의 발걸음 소리였다.

걸어 올라가고 있는 이지연은 식은땀이 흐르는 표정으로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 확장된 동공과 얼굴의 식은땀은 그녀가 이 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언제 어느 골목에서 불한당이 뛰어나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틀림없는 트라우마 증세였다.

사실 고등학생 소녀가 갑자기 납치당해 강간 살해당할 뻔했었다. 그런 경험이 악몽이 되어 마음에 들러붙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시끄럽고 떠들썩한 사건이긴 했지만 이런 경우에 대한 제대로 된 국가의 사후 관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지연은 마음의 상처를 홀로 껴안고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아르바이트조차 쉴 수 없었다.

십수 분을 걷던 이지연은 골목을 꺾어 들어갔다. 사람이 없는 무서운 골목이었다.

그러나 그 골목을 지나지 않으면 집에는 도착할 수 없었다.

이지연은 부지런히 걸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르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 그림자는 한참 전부터 그녀를 쫓고 있었지만, 이지연은 눈치챌 수 없었다. 너무도 은밀한 걸음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무협소설에 나오는 고수처럼 이지연을 따르던 남자는 자신의 기척을 숨길 줄 알았다.

왕수천이다.

그가 점점 이지연과 가까워졌다.

그녀의 등이 한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왕수천은 허리춤에 꽂아 놓았던 칼을 쥐었다. 이어 꺼냈다.

날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왕수천은 거리를 가늠했다.

완벽한 거리라고 생각되는 지점이 되었다.

왕수천은 칼을 휘둘렀다.

***

팍!

칼날은 이지연의 등 뒤에서 튕겨 나왔다.

왕수천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일격에 즉사시킬 수 있는 검이었는데 뭔가 보이지 않는 것에 맞고 튕겨 나왔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갑작스러운 감촉에 놀라며 이지연도 등을 돌아봤다.

“아!”

그렇지 않아도 놀랐던 이지연의 표정이 등 뒤에서 칼을 쥔 채 서 있던 남자를 보고 한층 놀란 표정이 됐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기회였다.

바보 같은 계집이라 기쁘게 생각하며 왕수천은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팍!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마치 무언가 보이지 않는 장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검이 튕겨 나가고 말았다. 왕수천은 포기하지 않고 휘둘렀다.

“칫!”

그러나 그때마다 같은 결과였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왕수천도 이런 얼토당토않은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린 듯이 주저앉아 있던 이지연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주변에서 하나씩 불이 켜졌다.

“아악!”

이지연은 한층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 소리는 한층 날카롭게 주변을 뒤흔들렸고, 불이 켜지기 시작한 집의 수는 늘어났다. 어떤 집에서는 창문이 열렸다.

하지만 뛰어나와서 도우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왕수천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재수 없게!”

어설프게 배운 한국어로 외치고 그는 몸을 돌려 골목을 달려 빠져나갔다.

“아아아…….”

이지연은 멀어지는 왕수천을 벌벌 떨면서 바라보면서 달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몸 주변을 살폈다.

눈에 뜨이는 것이 있었다.

옷 안에 넣어두었던 부적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

탁탁탁!

“제기랄!”

어두운 골목길을 계속 달리며 왕수천은 짜증을 부렸다.

다 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다 됐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건 대체 뭐야!’

왕수천은 자신의 검을 막았던 기이한 힘을 생각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한 번도 목표를 노리고서 실패한 적이 없던 그의 검이 그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기기괴괴하기 짝이 없었다.

‘젠장.’

왕수천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아직 번쩍이는 살의가 남아 있었다. 그는 이걸로 지연을 죽이는 걸 포기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는 이미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

‘힘들어지겠지만…….’

경찰에게 가 틀림없이 연락할 것이다.

그러면 한동안은 손댈 수 없다. 어쩌면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족으로 한국에 스며들었다.

외국인 관리가 엉성한 한국에서 외국인 범죄자가 몸을 숨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일이 틀어져 버린 방식이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왕수천은 목표를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아마 경찰에게 가더라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자가 헛소리를 한다고 판단할 것이다.

경호 역시 잠시 이루어지고,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마법 같은 힘이 칼을 막은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누군가가 죽이려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못 한다!

못 한다면 그건 청부살인사건이 아니다.

강도사건을 착각한 정도로 치부될 것이다.

‘아직 기회는 있다!’

왕수천의 눈이 어둠 가운데서 악의를 담고 번쩍였다.

***

강민은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가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스마트폰에 갑자기 신호음이 났다.

“응?”

갑자기 뭔가 하고 강민은 폰을 꺼내 봤다.

그의 표정이 변했다.

메일이 한 통 와 있는데, 그 계정은 평상시 사용하지 않는 것이어서다.

아니, 평상시 정도가 아니라 만들고 나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사용했던 적이 없다.

바로 장갑맨 신분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외국의 계정이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 메일 주소를 아는 사람은 단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알려줬던 이지연 한 사람뿐이다.

‘역시 또 사건이 생겼나.’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메일인지 궁금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정보가 흘러나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근처 게임방에 가서 확인하는 게 그나마 안전했다.

강민은 밖으로 나갔다.

***

주말.

시내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모두 즐기러 나온 모양인지 대체로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오들오들 떨며 주변을 바라보는 소녀가 하나 있었다.

이지연이었다.

또다시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대단한 충격이 된 듯, 이런 사람 많은 곳에, 이런 대낮에 나와 있음에도 그녀는 전혀 안심하고 있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폰을 보고 나온 정보대로 걸어 목적지를 찾기에 바빴다.

바쁘게 움직인 이지연은 횡단보도를 건너 다른 골목에 들어갔다. 거기서는 지금 보고 있는 스마트폰 속의 메일에서 설명하고 있는 건물이 있었다.

이지연은 반가운 얼굴로 그걸 보면서 중얼거렸다.

“여기서 한 블록 더 가면…….”

빠른 걸음으로 얼른 움직였다.

목적지가 보였다.

공사 중인 커다란 건물이었다. 임금 문제든가, 부동산 경기 악화 때문이든가 한창 진행되던 공사가 지금은 중단되어 있는 상태로 방치된 건물이라고 했다.

건물 주변에는 절벽을 세워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받은 메일에 따르자면 저 건물 뒤편에 가면 열린 뒷문이 있다고 한다.

이지연은 서둘러 그 문을 찾아 움직였다.

‘있다!’

메일에 나온 설명대로 열린 문이 하나 보였다.

이지연은 안으로 들어갔다.

공사장 안에는 온갖 자재들이 공사하던 대로 내팽개쳐진 채 텅 비어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겁먹은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면서 이지연은 아직 완공되지 않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외장도 완성되지 않은 건물이라 1층 안은 어두웠다.

약간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맞을 텐데…….’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이지연은 심호흡을 하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녀가 바라보는 어둠 사이로 마스크를 쓴 남자가 걸어나왔다.

“아!”

이지연은 놀란 목소리를 냈다.

남자, 장갑맨이 얼른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의 인사는 중간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지연의 처지가 안녕하다면 도저히 이런 곳에 자신을 만나러 왔을 리가 없으니까.

“아니, 안녕하시진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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