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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73화 (73/227)

73화

강민은 장난으로 하는 말일 수 있지만, 이세계에서의 그의 권력과 힘은 대단한 것이라서 자칫 장난을 넘어선다.

정말 그런 일을 하게 되면 체제 자체가 붕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겨우 전쟁이 정리되어 가는데 그에 반발하는 기득권층과 또 커다란 싸움이 벌어질 위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강민은 이세계에서 꽤 위험시됐다.

너무 강했고, 너무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졌으니까.

“쳇.”

에이리의 말이 옳다는 걸 알기에 강민도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세계에 오래 살면서 그곳의 형편을 알았기에 강민도 자신의 개인적인 이념을 강하게 추진할 생각은 없었다.

에이리의 지적처럼 반발이 너무 크다.

일단은 씨앗을 뿌려두는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다. 시간이 지나면 거기서도 자연히 민주주의 사회가 나타날 테니까.

강민은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어디서 온 전화야?”

“아, 그 맥심 편집장이라는 사람.”

“또 하자고 해?”

에이리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반응이 아주 좋다는데.”

그야 좋겠지.

강민은 확신했다.

에이리가 모델로 나서서 헐벗은 사진을 찍는데 반응이 안 좋을 리가 없다!

전 세계 남자들이 갑자기 고자라도 되지 않는 한은!

여신이 따로 있나.

“어쩔 거야?”

“일단은 일자리도 마땅치 않으니 받아들일까 해.”

에이리가 하는 말에 강민은 버럭 외쳤다.

“뭐 하러. 돈이라면 내가……!”

역시 내 껄 남이 보고 침 흘리는 것은 싫다.

이기적인 욕심!

당연한 수컷의 욕심!

에이리는 그런 강민의 심경을 눈치채고 기분 좋은 듯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내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너한테 기대 놀고먹을 수는 없지.”

이 면에서 에이리의 입장은 단호했다.

아무리 강민이 좋아도 집 안에 장식될 예쁜 인형 노릇은 결단코 하지 않겠다는 것!

사실 에이리 본인이 대단히 뛰어난 능력자이고 자존심이 강하다. 그런 여자가 남자에게 기대서만 살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네 말처럼 눈에 띄는 것도 좋진 않으니 계속 할 수도 없는데. 이건 정말 곤란한걸. 쓸 만한 직업을 구하기가 힘드니.”

“그러게 말야.”

에이리는 현대사회에 필요한 직접적 능력이 없다.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평범한 직업을 구한다고 치면 단순 노동 이외엔 사실 거의 할 게 없었다.

“고민을 좀 해 봐야겠어. 눈에 잘 안 띄면서 벌이는 괜찮은 거로.”

“눈에 안 띄면서 벌이가 괜찮다라…….”

“그런 거 있어?”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거의 없지. 뭐든 잘하면 눈에 띄는 법이고.”

역시 유명해지지 않으려면 그냥 단순노동이 최고다. 사실 그렇게만 해도 주변에선 상당히 화제가 될 거다.

게다가 에이리의 진. 짜. 전공을 살리면 세계 격투계가 홀라당 뒤집혀질 것이 분명하니 유명해지지 않기가 힘들다.

“작가라든가 증권맨 같은 건 유명해져도 몸을 숨길 수 있는 거긴 한데.”

“증권맨은 뭐야?”

에이리는 작가는 알지만 증권맨은 모른다.

“주식으로 장난치는 사람 말하는 거지.”

“주식…….”

에이리가 주식을 알 리가 있다.

강민은 간단히 주식이 뭔지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다음 에이리의 감상은 한마디였다.

“그거 사기꾼 아냐?”

현대 금융공학에 사기적인 측면이 있긴 하나 사기는 아니다.

어쨌건 설명을 듣고서 확실히 자기가 할 일은 아니란 걸 에이리는 깨달았다.

“확실히 그건 내가 할 만한 건 아니군. 그 계집애라면 잘 어울릴 것 같지만.”

“그렇지? 나도 그 생각했어.”

이어서 강민이 제안했다.

“검술 실력을 살려서 경호일 같은 건 어때?”

검술만이 아니고 육체능력도 굉장하니 사실 하려면 적임이긴 하다.

“눈에 안 띄어?”

“경호해야 하니 눈에 띄는 건 피해야지. 차림새도 그렇게 한다고 하고.”

호성에게 그렇다고 전에 들었었다.

에이리가 안 띄게 하려 해서 안 띌 만한 존재인가 하는 문제가 있긴 해도, 그 점에만 주의한다면 확실히 경호업 같은 것은 에이리에게 대단히 적합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에이리도 그렇게 생각한 듯 관심이 가는 얼굴이 됐다.

“음. 어떻게 할까?”

“시간이 넉넉하니 느긋하게 생각해 봐. 언제든 상담에는 응하지.”

“십 년 만에 와서 낯선 건 마찬가지면서 잘난 척은. 그래도 고마워.”

피식 웃으며 에이리는 말했지만, 강민을 향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깊은 애정과 감사가 깃들어 있었다.

*

이지연은 지친 얼굴로 책상에 앉았다.

그녀의 반 남자인 친구 하나가 얼른 다가와 인사했다.

“지연아 안녕.”

“응.”

희미하게 웃으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그는 인사를 한 다음에도 떠나지 않고 주저주저하며 말했다.

“저기, 방학 때 힘든 일 있었다고 들었어.”

“아, 그거…….”

이지연 납치사건은 세간에 크게 알려졌다.

남학생은 그녀를 향해 멋쩍은 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저기 뭐 큰 도움은 못 되겠지만 언제든 필요한 일 있으면 말해 도와줄게.”

“응.”

이지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를 보고 남학생이 황홀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주변에서 그 꼴을 보던 다른 남학생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그들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이 새끼 어디서 수작질이야, 그런 거라면 나도!”

“나도 그래!”

지연의 주변에 금세 인간의 벽이 발생했다.

이지연은 용모가 특출나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에서 인기가 많고, 그녀를 우상화하는 남자들도 굴러다니는 자갈돌처럼 많았다.

일단 지연은 곤혹스럽게 감사를 표했다.

“다, 다들 고마워.”

그 인간의 벽을 붕괴시키며 지연의 여자 친구들이 왔다.

“어휴, 꼴들하곤. 지연이 어떤 일을 당했는데.”

“하하. 그래도 다들 날 생각해 주는 거니까.”

“저건 그냥 자기 욕심 부리는 거지. 생각해 주는 게 아니라고. 이때다 하고 네 호감을 사려고 작정한 것에 불과해!”

눈을 부릅뜨고 지연의 여자 친구들이 규탄했다.

남자들은 억울해 아우성을 내질렀다.

“아니야!”

“진짜라고!”

“됐어!”

지연의 여자 친구가 일갈해 남자들을 침묵시켰다. 그리고 생글 웃으며 그녀를 돌아보고는 권했다.

“그보다 학교 마치면 같이 놀러 가지 않을래?”

“그래, 그러자. 노래방에서 같이 노래라도 부르면 어때?”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큰일을 겪었던 만큼 같이 휴식 시간을 보내면서 달래주려는 것이 그녀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연은 난색을 표했다.

“미안, 오늘 알바가 있어서…….”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좀 쉬엄쉬엄 해.”

지연의 여자 친구들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응. 시간 내 볼게.”

지연도 마찬가지로 아쉬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사실 지연도 친구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정말로 아쉬웠다.

***

편의점 뒷문을 통해 무거운 쓰레기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지연이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비닐봉지를 잘 묶은 다음 쓰레기 버리는 곳에 세워두고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벌써 주변은 밤이었다.

‘힘들다.’

어두운 골목길에 서 있는 자신을 의식하자면 지연은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들 공부하거나 쉬고 있을 텐데 자신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슬폈다.

‘그래도 방학도 끝났고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힘드니까.’

벽에 몸을 기대면서 지연은 금세 현실을 되새겼다.

현재 지연은 어머니와 함께 살며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되어 있다. 덕분에 적지 않은 혜택을 얻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살면서 몇 푼 나오지 않는 기초생활수급비에 기대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지연은 언제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꿈을 위해서가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다.

방학 동안 열심히 일했다면 그나마 약간의 여유가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그 계획마저도 납치당해 겪었던 사건 때문에 모조리 틀어지고 말았다.

“…….”

당시를 생각하면 다시 무서워진다.

그래도 무서워하고 있어 봐야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노동을 해야 했다.

사실 이 알바도 편의점 사장이 지연의 사정을 보아 줘서 할 수 있었다.

소득이 잡히면 수급자 유지 문제도 생기고 해서 정식 채용으로 일해야 하는 알바는 사실 할 수가 없는데, 사정을 딱하게 생각해서 편법을 사용해 일하도록 해 준 것이다.

“힘내야지!”

씩씩하게 외치고 지연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지연을 멀리서 보고 있는 눈길이 있었다.

먹이를 노리는 짐승의 눈길처럼 사나운 눈동자였다.

천천히 그가 편의점 뒷골목의 그림자에서 몸을 빼냈다. 호리호리한 인상의 20대, 혹은 30대 남자였다.

잘 갈아놓은 칼 같은 인상이라 할까. 아주 예리한 느낌이 드는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왕수천이다.

조선족이다.

얼마 전에 한국에 들어왔다.

싼 인력이 필요한 한국의 자본가들은 조선족에 대한 입국 처리를 간소화하길 원했고, 정부는 그걸 받아들였다.

덕분에 요즘 무수한 조선족이 우후죽순처럼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 그들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 같은 것은 물론 없었다.

왕수천은 그런 조선족의 물결을 타고 들어왔다.

더 정확히 그의 이름은 왕수천도 아니다.

그는 중국인이란 것만 분명할 뿐, 정확한 신분이 없다.

그가 조선족의 신분을 얻은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범죄자가 가장 쉽게 한국에 잠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조선족의 신분을 얻는 것이다.

조선족은 쓸 만한 자격증만 하나 있으면 프리패스 수준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

예상했던 대로 한국은 아주 쉽게 그를 입국 시켰고, 행동하는데 아무 지장도 없었다.

그는 한국 정부와 경찰을 비웃으면서 감사했다. 덕분에 아주 큰 돈을, 아주 쉽게 벌 수 있게 됐다.

그는 원래 중국에서 폭력조직 사이에서 일하던 히트맨이었다. 그의 칼날 앞에서 목표로 한 대상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평판을 얻을 정도였다.

그러던 그에게 의뢰가 하나 왔다.

한국에서의 의뢰.

특이하지만, 보수는 확실한 것이었다. 의뢰 내용도 기이하지만 쉬웠다.

겨우 스물도 되지 않는 계집아이 하나를 죽여 달라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그 계집아이의 이름은 이지연.

바로 그가 바라보고 있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소녀였다.

그는 품에서 모자를 꺼내 얼굴에 깊이 눌러썼다. 남자의 허리춤에 꽂아둔 칼이 요사하게 날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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