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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72화 (72/227)

72화

방학이 끝났다.

모두 우울한 얼굴로 학교에 돌아왔다.

우울하지 않은 얼굴로 등교한 학생들도 몇몇 있긴 했다. 대표적으로 재철 일당과 호성이 그랬다.

방학 때도 이것저것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던 그들에게는 학교생활이라고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 여유 있을 정도!

그들은 오랜만에 쉰다는 느낌으로 학교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강민은 그들을 놓아두지 않고 점심시간이 되니 모이라고 메시지를 넣었다.

모두들 개학 첫날부터 뭔 일인가 하면서 강민이 부른 곳으로 시간에 맞춰서 갔다.

***

강민이 강민단원을 모은 장소는 물론 지난 학기부터 쭉 사용하던 학교 뒷공터였다.

여전히 폐자재가 쌓여 있는 을씨년스러운 공간에 강민이 앉아 단원들을 기다렸고, 곧 재철 일당을 비롯해서 강석까지 다들 시간에 맞춰 왔다.

“왔구나.”

“무슨 일이야?”

“오늘도 뭐 할 일이 있어?”

“3학년도 다 정리했겠다. 학교에선 이제 편하게 지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러게.”

다들 의아하게 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어제 방학 전날까지도 그들은 모두 강민단 기지에 모였다.

하지만 강민은 거기서 별반 말을 하지 않았다.

“니들이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불러냈지.”

강민은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곧 시험이 있잖아.”

“응. 중간 고시가 있지.”

“모의고사도.”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모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강민은 그들의 불길한 예상에 도장을 찍듯이 웃으며 말했다.

“너희 셋! 꾸준히 시험 성적이 올라가지 않으면 나와 훈련을 하게 될 거다!”

“허억!”

“너무한다!”

재철 일당은 청천벽력같은 선고에 경악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강민과의 훈련!

그것은 영어로 번역하면 ‘웰컴 투 더 헬’이다!

다른 말로 바꾼다면 ‘오픈 더 헬 게이트’이다!

어찌 되었든 ‘헬’은 변하지 않는다.

랭보의 시 중에 지옥에서의 한철이라는 것이 있던가. 어쨌든 그걸 온몸으로 체험하게 될 정도의 고난!

“다 너희들 잘되라고 하는 거야. 내가 너희들 서울대 끌고 간다고 한 게 농담인 줄 알았냐. 방학 때 실컷 공부한 성과를 내야지!”

강민은 미소를 지으며 자비를 호소하는 재철 일당의 울부짖음을 깨끗이 무시하고는 강행했다.

그 말을 옆에서 들으면서 호성은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나는 별 상관없는 거 아냐.”

“나도.”

강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공부를 잘하니 시험 성적 때문에 불안에 떨 일은 없었다.

호성이 목표에 비하면 다소 불안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야 강민에게 배운 것도 있고 시간도 아직 남았으니 충분히 안전권이라 할 수 있었다.

강석의 경우는 그야말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

“그렇지 않지.”

그러나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은 저 녀석들 성적이 꾸준히 올라갈 수 있도록 지도를 해 줘야지!”

“헉?”

호성이 경악한 눈동자가 강민을 향했다.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 물론 실패하면 고통은 다 함께 나눠야 하니……. 알고 있겠지?”

강민의 의미심장한 눈동자가 반대로 호성을 향했다. 그리고 그의 굳은 어깨를 양손으로 툭툭 쳤다.

굳은 신뢰의 표시!

그것은 실패할 경우 재철 일당과 마찬가지로 강민과 훈련을 하는 특권을 부여하겠다는 말이었다.

이어 강민은 강석을 바라봤다.

“강석은…….”

강석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강민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강석은 강민단의 다른 대원들과 달리 무언가 잘못이 있어 강제가입된 것이 아니다. 자의에 의한 것이다. 다른 이들과 같은 대우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강석은 고민하는 강민 앞에 나서며 타오르는 눈동자로 말했다.

“나도 그렇게 할게.”

“어, 그래?”

놀랐다는 표정으로 강민이 강석을 바라봤다.

“그럼. 나도 같은 강민단원인데 나만 특혜받으면 이상하잖아.”

강석은 꿋꿋하게 주장했다.

나도 강민 단원!

강석은 강민단원이라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든 상태였기 때문에 확고하게 이 특이한 집단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특별대우 같은 걸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이야?”

강민이 그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재삼 물었고, 강석이 고개를 끄덕이려 할 때였다.

재철 일당이 서둘러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강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야, 후회한다! 객기는 한때고, 고통은 영원하다!”

“그래! 그러지 마! 자존심 따위는 한때일 뿐이지!”

“한 번 맛보고 나면 왜 그런 미친 선택을 했던지 베개를 눈물로 적시며 후회하게 될걸!”

셋 다 겁을 주며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강민과의 훈련은 진짜로 끔찍하다!

지금은 그래도 몇 차례 같이 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끔찍한 건 변하지 않았다. 고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으음…….”

세 사람이 너무도 진지하게 말리니 강석 역시도 망설이는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강민이 그들 세 사람의 뒤에서 턱 하니 머리를 걸치면서 말했다.

“뭐야 너희들 그렇게 자신이 없어?”

셋 모두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굳이 친구에게 지옥을 맛보여주고 싶진 않다고 할까…….”

“응.”

강민은 셋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럼 간단하네. 너희가 열심히 하면 돼! 성적을 떨어뜨리지 말고 꾸준히 올리라고!”

“으으…….”

확실히 그렇긴 했다. 그렇게 하면 분명 강석은 물론 그들 세 사람 역시 고생할 일이 없다.

강민은 아무 말도 못 하는 셋의 등을 탕탕 두드렸다.

“자, 그럼 중간고사까지 열심히 하는 거다!”

“으응.”

“열심히 해라. 안 하면 너희들…….”

번적이는 눈으로 모두를 쓸어봤다. 모두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원의 다음에는 협박! 당근과 채찍은 이렇게 쓴다는 듯한 모습이다.

당하는 입장에서야 채찍만 쓴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앞으로 잘 해 보자.”

유쾌하게 웃는 얼굴을 보이는 강민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

학교에서 돌아온 강민은 에이리와 식사를 했다.

집은 마련했고 계약했지만 정확하게 옮기기로 한 날짜는 아직 며칠이 남았다. 이사를 한다고 해도 멀지 않은 곳이라 자주 얼굴을 보는 덴 문제가 없었다.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드는 데 문제가 되는 것은 집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보다는 강민이 학교에 다닌다는 점 때문이었다.

“학교란 덴 재밌어?”

“막상 다닐 땐 시시한데, 떨어져 있다 가면 재밌는 곳이지.”

강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스스로 말하고서 완벽한 답이라고 생각했다.

예전 학교 다닐 때는 왕따라는 입장이기도 해서 정말 끔찍했는데 십 년 만에 돌아가니 아주 마음에 들었다.

“기사단 같군.”

“기사단도 그래?”

에이리는 기사단 출신이다. 기사단과 쌈질은 많이 했지만, 기사는 아닌 강민은 기사단 생활에 대해선 잘 모른다.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람이 많거든. 처음에는 규율도 많고, 재미없는데, 익숙해지면 괜찮아져. 또 후배 들어오면 데굴데굴 굴리는 재미도 있고.”

“그건 또 군대 같네.”

군대 가본 적은 없지만, 군대에 대해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비슷할 것 같았다.

에이리는 고개를 저었다.

“군대랑은 다르지. 군대처럼 상명하복에 철저한 건 아니니까.”

“그런가?”

생각해 보면 그럴 것 같았다.

에이리의 기사단과 충돌할 때 그들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정말 이야기 속 기사라는 느낌이어서 자유롭게 활동했고 명예 같은 것에서 집착했다.

싸우는데 명예가 어디 있냐고 밟아주긴 했지만.

“흠. 뭐, 그것도 기사단 나름이긴 하지만.”

“역시 다양한 모양이지?”

“설립취지에 따라 다 다르기 마련이니까. 내가 들어갔던 곳은 너도 알겠지만, 기사다운 것과 기사로서의 강함이란 덕목이 가장 중요했던 곳이었거든.”

“그랬지.”

에이리의 말에 예전 추억을 되새기며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 에이리의 품에서 음악 소리가 났다. 에이리는 품에서 폰을 꺼내 받았다.

강민은 벌써 전화 올 때가 다 있다는데 놀랐다.

“여보세요.”

곧 대화가 시작됐다.

“아. 안녕하세요.”

상대편 이야기를 듣는 듯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어, 잠시 생각하던 에이리가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정리해서 제게 메일로 보내주세요.”

에이리는 전화를 끊었다.

강민은 감탄했다.

“오오!”

“뭘 그렇게 봐?”

“벌써 메일도 다 쓰고. 놀랬거든.”

스마트폰 산 지 며칠이 지났다고 저렇게 능숙하게 사용하다니. 놀랄 만한 일이었다.

에이리는 머리도 좋은 편이니 이상할 건 없지만 다른 문화에 와서 너무 쉽게 적응하는 것 같달까?

하지만 에이리는 찌푸린 얼굴로 반발했다.

“흥, 여기서는 애들도 하는 건데 내가 하는 게 뭐가 그리 놀랄 일이야.”

“그렇긴 해도 말이야.”

에이리의 한 말이 맞긴 해도 뭔가 좀 아쉬웠다.

보통 영화나 만화에서는 이세계인이나 과거 사람이 현대사회에 오면 적응을 못 해 쩔쩔매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정작 이세계인인 에이리가 그러지 않으니 아쉽고 섭섭하달까.

“그런데 정말 편리한걸. 수십 가지 마법이 여기 하나에 다 모인 거 같아.”

“그래. 그것이 바로 마법을 뛰어넘는 과학의 힘이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면서 강민이 뻐겼다.

“뛰어넘는 건 모르겠지만 이런 건 다들 가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대단해. 우리 세계에서라면 왕후장상이나 하나씩 가지고 있을까 싶은데.”

“음! 왕후장상 이야기하니 아깝군. 내가 민주주의를 전파했어야 하는데!”

강민이 혀를 찼다.

이세계는 신분제도가 아직 완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세계다. 심지어는 노예도 있다!

강민은 노예장사 하는 놈들도 많이 박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화가 나서 현대사회의 일원으로서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리는 데도 관심이 생겼다.

당장 눈앞의 적들과 싸우느라 바빠서 시작도 못 했지만.

다만 인본주의나 민주주의에 관심 있는 지식인은 적지 않아서 사회상이나 정치제도에 대해 설명을 해 관심을 끈 일은 있었다.

“여기 정치체제 말이지? 다들 회의적이던데.”

“이런 멋진 제도가 뭐 어때서!”

강민은 화를 내며 말했다.

지구도 중세를 생각하면 민주주의 같은 건 개소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렇게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하지 않았는가!

에이리는 으쓱였다.

“멋진 건 인정해. 능력 없는 귀족 놈들 거들먹거리는 꼴 안 봐도 되는 것도 매력적이지. 귀족 천민 나누고 잘난 척하는 꼴도 마족과 싸울 때 도망가기 바쁘던 귀족 놈들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었고. 근데 필요한 조건이 너무 많잖아. 도시국가 규모에서나 가능할까, 국가에서 채용하긴 무리야. 일단 문맹률만 해도 얼만데.”

민주주의는 상업의 발달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시민의 정치참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보의 공유와 그 정보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교육받은 대중이 있어야 한다.

이세계에서는 도저히 갖출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런 문제가 있긴 하지. 한글을 전파하면 되려나.”

한글은 대단히 훌륭한 문자다. 말을 할 줄 알면, 거의 확실하게 문맹을 면하게 해 줄 수 있다!

“쓸떼 없는 소리하긴. 거긴 전후복구사업만으로도 다들 과로사 직전이라고.”

“……장대한 꿈은 나중으로 미뤄야겠군.”

“끝나고 나서도 하지 마. 전쟁 난다.”

에이리가 매서운 눈길로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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