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해져서 놀러왔다-69화 (69/227)

69화

중년의 남자로 보였는데.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강민이 얼른 물었다.

“아니, 누구신지?”

“실례하네. 여긴 자네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미리 들어와 있던 거지. 나는 김경길이라고 하네. 혹시 들어본 적 있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강민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낯설지 않은 이름이라 강민은 잠시 생각했고,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긴가민가하면서 말했다.

“김경길이라면…… RK의?”

“다행이군. 그렇게까지 유명세가 떨어지는 건 아니라서 말이야.”

김경길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웃는 얼굴을 보였다.

강민의 얼굴이 한층 당혹스러워졌다. 김경길이라면 한국 최대의 연예기획사 사장 이름이다. 한 마디로 거물이다.

“아니 그런 분이 여긴 무슨 일로…….”

“그건 자네를 보러 왔네.”

“저를요?”

“그렇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 거의 틀림없으리라 생각을 품으면서 강민은 확인차 물었다.

“혹시…… 전에 노래했던 것 때문에?”

“잘 맞췄네!”

김경길은 함박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강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럼 저를 스카우트하고 싶어서 오신 건가요?”

“그렇지. 자네한테는 재능이 있어. 스타가 될 재능이!”

김경길은 호기롭게 외쳤다. 강민의 표정이 한층 일그러졌다. 괜히 노래 한번 잘못 불렀다가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별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괜히 화제가 된 것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기획사 사장이 직접 찾아오기까지 한다니!

스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한국에 널려 있으니 걔들 찾아가라고 하고 싶은 게 솔직한 기분이었다.

옆에서 에이리가 웃으며 부추겼다.

“좋겠네. 스타래. 스타. TV에 나와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사람들 이야기하는 거 맞지?”

“아~ 나 원 이거…….”

“어떤가? 생각 없나?”

김경길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대세는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만 했다 하면 몰려드는 청소년들!

어째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긴 해도, 직접 찾아와 삼고초려 하는 데야 역시 먹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해 보는 게 어때? 네가 광대 노릇을 하는 것도 재밌을 거 같은데. 아, 이건 음유시인이라 해야 하나.”

에이리도 거들었다.

하지만 싱글싱글 웃으며 부추기는 에이리의 태도에서는 진정 축하한다기보다는 놀린다는 기색이 훨씬 상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에이리가 있는 세계에서는 광대나 음유시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은 편은 아니다.

“그게 그거지. 어쨌든…….”

투덜거리면서 강민은 김경길을 바라보고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별로…….”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 보게. 자네는 정말 재능이 있다니까!”

겨우 부모에게 직접 이야기해서 허락을 들으면 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는데, 그 대상이 그럴 생각이 없다니 답답했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 어마어마한 노래 솜씨를 보면 틀림없이 꿈을 가지고 오래도록 노력해 왔음에 틀림없는데 이런 기회를 맞아서 저렇게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하다니.

“재능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 옆의 아가씨는 여자 친구인가? 좀 설득해 주지 않겠나?”

김경길은 에이리에게 SOS를 보냈다.

에이리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아가씨여서, 용모만으로도 세트로 뽑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다 일단은 강민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난 다음의 이야기다.

에이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는 강민이 하겠다면 찬성하고 싶군요. 춤추고 노래 부르면 귀여울 거 같고.”

“남의 일이라고 이게.”

강민은 에이리를 노려보며 으르렁댔지만, 에이리는 즐거운 듯 웃으며 혀를 내밀어 보였다.

강민은 이어 코웃음을 치며 에이리에게 훈계하듯 설명했다.

“그리고 너 아이돌 스타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은데, 고향에서야 어쨌든 여기서는 만인의 선망을 받는 직종이라고. 인기 있으면 왕이나 귀족보다 높으면 높지 낮진 않아.”

“와~ 딴따라가 출세하네.”

감탄한 얼굴로 에이리가 말했다. ‘딴따라’라는 말이 김경길의 심기를 거슬렸다.

“아니, 그건 좋지 않은 말이군. 다들 아티스트라고.”

“그게 그거 아닌가요?”

에이리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광대나 예술가나 다를 것이 없었다.

사실 그녀가 사는 곳에서는 예술가를 별로 높게 치지 않는다. 그냥 가끔 축제 같은 게 있으면 불러다가 음악이나 하게 하거나, 아니면 초상화를 그리게 화가를 불러들이는 게 다일 뿐이다. 광대나 크게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다.

사실 지구에서도 예술가에 대한 평가가 바뀐 건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뭐?”

하지만 예술가를 높게 치는 현대사회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김경길이 겨우 분을 참는다는 표정이 됐다.

강민은 난색을 보이며 김경길을 말렸다.

“아, 쟤는 신경 쓰지 마세요. 외국에서 살다 와서. 한국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한국이 아니라도 이런 세계화 시대에 스타를 무시하는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강민은 그의 관심을 돌림 겸 얼른 말했다.

“그보다 지금은 별로 그러고 싶은 뜻이 없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으음, 이해를 못 하겠군. 노래 들어봤네. 하루 이틀 노력한 솜씨가 아니었는데.”

“그건…….”

역시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었어!

강민은 속으로 탄식했다.

강민의 육체가 어떤 식으로 단련되었고 강화됐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의 노래를 듣고 대단한 노력과 천부적인 재능이 겹쳐진 결과라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아예 포기했다든가? 그래서 다시 그 꿈을 부추기는 사람이 나타나서 무서운 건가?”

아~ 이 사람은 소설가로서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강민은 그리 생각하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는 심정이 됐다.

“그러면 그러지 말고 한 번 더 꿈꾸어 보지 않겠나? 장담하는데 자네한테는 재능이 있네. 나한테는 그걸 뒷받침해줄 능력이 있지! 어떤가?”

“아니…… 그게…… 그럼 뭐 솔직히 말하죠.”

“경청하지.”

진지한 표정으로 김경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진 강민의 말은 놀라운 것이었다.

“너무 작아요.”

“뭐?”

“그러니까… 스타라는 게 겉보기는 화려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 규모가 너무 작은 사업이란 겁니다.”

“아니 우리 회사만 해도 주식 평가가 이조에 가깝네. 그런데 무슨…….”

강민은 그런 사실은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나라 최대의 연예기획사가 일조입니다. 영업이익은 천억이 되던가, 안 되던가?”

“잘 아네?”

“뭐 그냥 인연이 있다 보니.”

별거 없고 그냥 수란이 소속된 곳이라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기업 검색하면 주가차트와 각종 분석까지 다 뜬다.

“하여간에, 한국 최대 회사가 그것밖에 안 되는 게 스타라는 산업의 실체인 거죠. 한국에서 제일 큰 게임 회사는 주식 평가액이 오조를 넘었고, 머지않아 10조에 도달합니다. 이익? 천억이 우습죠. 한해 3, 4천씩 버는 기업도 여럿 있습니다.”

한국에선 까이고 또 까이는 게임 산업이지만 산업의 규모와 수익 면에서 보자면 그 어떤 다른 문화 산업 영역도 감히 게임에 비교할 수가 없다. 다른 영역 다 합쳐봐야 게임보다 작을 정도니까.

그래서 거기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먹으려는 무리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도 모모 단체에서 제대로 빨대를 꽂으려 덤벼들고 있다.

“그렇지만…….”

“이래선 그야말로 환상 아니겠습니까? 한류라고 한참 떠드는 시점에서 그 정도인데, 한류라는 게 사라지고 나면 어떨지…….”

“그건… 사실이긴 하네. 하지만 그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고, 자네와 같은 인재가 필요한 거지! 또, 한류라는 게 실제 이익 부분에서는 작아 보여도 그 영향력이란 돈으로 잴 수 없는 부분에서 정말 큰 힘을 가지고 있네. 우리 덕에 뚫린 해외 시장이 얼마나 큰 줄 아는가? 우리가 아니었다면 국내 대기업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자들도 인지도니 유명세니 하는 것 때문에 엄청난 돈을 들이며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을 걸세!”

그러니 훌륭한 스타가 되는 것은 영달을 위한 지름길일뿐더러 애국의 길이기도 하다!

김경길은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것 같았다.

김경길의 말은 사실이다.

인지도 면에서 고생하던 한국 기업이 그 지역에서 한류 드라마가 히트치는 덕분에 인지도가 급상승하고, 시장지배율을 높여 진출에 성공했다는 사례는 드물지가 않다.

반대로 한국 대기업이란 것들이 해외시장에서 일본 기업인 척하면서 한국을 코 푼 휴지처럼 내던지는 걸 생각하면 행동하는 애국 산업이란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그건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효과로 득을 본다고 해도 그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큰 이득이 돌아오는 건 아니죠. 뭐, 원래 문화산업이란 게 그렇긴 합니다만, 꼭대기가 다 해먹는 구조가 너무 강고한 겁니다. 그래서 뭐 저는 별로 그쪽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좋은 취미 정도로만 관심이 있달까? 그러니 그렇게만 알아주세요.”

김경길은 울적한 얼굴이 됐다.

하지만 그는 금세 다시 힘찬 얼굴을 회복하는 강민에게 말했다.

“뼈아픈 지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군. 그러나 이 산업이 실제 어떠하든 자네에게 가능성이 있고 성공할 거라는 내 의견에는 차이가 없네. 그리고 설령 자네 지적대로라고 해도 뭐 어떤가. 자네라면 꼭대기에 충분히 갈 수 있을 텐데.”

그렇긴 했다.

그러나 여기서 인정하면 쫓아 보낼 수가 없다!

“성공이나 실패는 그렇게 쉽게 확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웃으면서 강민은 그렇게 말했다.

“그건…… 그렇네만.”

그건 확실한 사실이라 김경길도 뭐라 할 말이 없던 모양이었다.

그도 오래도록 연예계에서 생활했다. 스타를 만드는 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게 정말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주식만큼이나!

틀림없이 뜰 거로 생각한 노래나 그룹이 형편없이 박살나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가 연출되는 경우도 정말 많다.

강민이라고 그런 예측이 어긋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니 관심은 감사합니다만 지금 당장은 뜻이 없다고 알아주세요.”

“휴우! 그러면 일단 물러가도록 하겠네. 하지만 나는 아직 포기한 게 아니야.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네. 기다려주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김경길은 말했다.

“으음.”

그러실 필요 없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말하면 괜히 화만 더 돋울 것 같아서 강민은 꾹 참고 견뎠다.

김경길은 힘없이 방을 나갔다.

쿠당.

문이 닫혔다.

줄곧 흥미진진하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에이리가 강민에게 권했다.

“해보는 게 어때?”

“말했잖아. 시끄러운 건 싫다고.”

강민은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 저었다.

“적당히 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럴 거면 왜 해. 하려면 확실히 스타를 목표로 해야지. 그러니 나로서는 여러모로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지.”

에이리는 강민의 답에 그렇긴 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야기하는 중에 듣기로는 잘난 놈들이 대부분을 다 먹는 것 같았는데, 그러면 대충한다는 식으로는 투자한 시간도 못 건지는 수가 있다.

“하지만 열정은 넘치는 것 같았어.”

“내가 보기에도 그래. 뭐, 그러니까 그만큼 큰 기업을 만들어낸 거겠지.”

에이리의 말에 동의하면서 강민은 앞으로 어쩌나 하고 생각했다.

열정이 넘친다는 건 인정해줄 만한 일이지만 정작 자신이 그 대상이 되니 곤혹스러웠다.

미소녀가 끈질기게 어택해 온다면 몰라도 이건 또 중년의 아저씨고!

어떻게든 김경길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 둬야 하겠다고 강민은 결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