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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67화 (67/227)

67화

“혹시 외국인에게 신분을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외국인에게 신분을요?”

의아한 얼굴로 경호대장이 반문했다. 호성은 약간 찜찜한 기분에 잠깐 망설이다가 대놓고 말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불체자 있잖습니까.”

“아... 그러니 불체자에게 한국인 신분을 주고 싶다고요?”

“그렇죠. 가능하면 좀 그럴 듯 하게.”

경호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피곤하지만 가능은 합니다. 그런데 그게 왜?”

“그 문제로 곤란을 겪는 친구가 하나 있어서 도와주고 싶어서요.”

“그런 친구분이 있으십니까?”

“친구의 친군데, 어쩌다 보니 알게 됐습니다. 돈이 좀 든다면 말하세요. 드리겠습니다.”에이리는 확실히 친구의 친구인데 알게 된 게 맞긴 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한번 해 보겠습니다.”

“네. 되도록 빨리 알아봐 주세요.”

“그렇지요.”

경호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성이 이제 자신의 방으로 떠나려는데 경호대장이 그를 불렀다.

“아참, 그런데 장갑맨 아십니까?”

“지금 한국에 장갑맨 모르는 사람이 어딨을라고요.”

경호대장을 돌아본 호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경호대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갑맨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야기거리다. 매스미디어와 완전히 담을 쌓고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게 왜?”

“지난번에 저한테 물으신게 생각나서 말입니다.”

“아... 그거...”

호성이 조금 흠칫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얼마전 호성은 그에게 강민을 막을 방법이 혹시 있을까 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강민의 신체능력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경호대장은 어림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장갑맨이 정말 말씀하신 것 만큼 강해서 말입니다. 혹시 전에 만나보기라도 하신 겁니까?”

“그럴리가요. 그냥 우연이지.”

과장된 웃음을 띄면서

“하기야 그게 당연하겠죠.”

“그런데 아저씨야 말로 관심이 많으신 것 같네요.”

호성이 반문했다.

경호대장은 멋쩍게 웃었다.

“하하하, 그럴 수 밖에요. 자칫하면 지금 사용하는 경호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될 테니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죠. 제가 아는 친구들은 벌써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지 연구에 들어갔다더군요.”

“가능할까요?”

씁쓸하게 웃으면서 경호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돌격 소총이라도 들고 싸우는 거면 몰라도 지금은 무리죠. 그야말로 룰 브레이커입니다. 이제까지 통했던 어떤 전술도 그 사람한텐 안 통할 거 같으니.”

“그렇겠죠.”

호성은 그렇게 답하면서 과연 돌격 소총 같은게 있어도 이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강민은 한 번도 제 능력을 끝까지 드러낸 적이 없었다. 장갑맨으로 활약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사실은 돌격소총을 상대로 한 부대와 싸워도 강민에게는 대응할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진짜 믿어지지 않게 강합니다.”

“저도 보고 합성이나 영화 동영상인줄 알았죠.”

호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합성이나 영화 동영상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강자. 현대에서 강민의 강함을 설명하기에 그보다 적합한 설명은 없는 것 같았다.

***

군부대 하나에 휴가 나갔던 이등병이 돌아왔다.

백일 휴가 나갔던 그 이등병은 돌아오자마자 환호하는 선임들의 환영을 받아야 했다.

“야 맥심 사 왔냐?”

“옆 부대 일병 새끼처럼 커피캔 꺼내면 앞으로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꽃필 줄 알아라!”

선임들은 으름장을 놓으며 이등병을 겁줬다. 사실 맥심 커피 사 왔으면 이제 아무 수도 없긴 했지만 아직 휴가의 단맛에 취해 있는 이등병도 그 정도로 고문관은 아니었다. 그는 사온 맥심을 선임들에게 내밀었다.

“아, 물론 사왔습니다.”

“오오오!”

“어디어디!”

환호하며 그들은 이등병의 손에서 맥심을 매처럼 낚아채선 희희낙락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짬이 되는 다른 병사들도 근처로 가 이번 달 맥심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그들의 눈을 크게 떠졌다. “와, 끝내주는데.”

“역시 맥심! 이번 달도 우리의 희망을 배신하지 않는군.”

표지에 나와 있는 것은 한 외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의 헐벗은 사진이었다. 정확히는 헐벗었다곤 할 건 없고 가슴과 다리가 좀 많이 노출되어 있고 표정과 자세가 뇌쇄적이었다.

에이리의 사진이었다.

감탄하던 중 한 병사가 의아하게 말했다.

“근데 웬일로 외국인이지?”

“그러게 말야. 보통은 한국인 쓰지 않나.”

다른 병사가 동의했다.

맥심 한국판은 보통 한국 모델을 쓴다.

다른 병사가 그 의문에

“뭐 어때 이쁘면 장땡이지!”

“그건 그렇지.”

“그렇긴 하다.”

모두 다 같은 마음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서는 평등하게 사랑해줄 자신이 있는 것이 본래 남자란 짐승의 속성이다.

“화장실 자주 가겠군.”

“안에는 어때? 얼른 펼쳐 봐.”

그들은 잡담을 하며 페이지를 하나하나 넘겼다.

“어디보자...”

안쪽에는 표지보다도 한층 뇌쇄적이다 못해 뇌쇄적인 포즈의 사진들이 나와 있었다. 성인 잡지도 아니건만 꾹꾹 젊음을 눌려 담은 채 억울하게 참고 있는 그들로서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한 자극이었다.

“와, 죽인다.”

“정말.”

그들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감상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 중 하나가 호기심에 맥심을 사온 이등병에게 물었다.

“얘 뭐냐. 새로 인터넷에서 뜨기 시작한 배우 같은 거야?”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래?”

“이번호 사니 나와 있었습니다.”

대답하는 투를 보니 정말 모르는 모양이었다.

“읽어보면 알겠지.”

“하여간 수고했다.”

모델의 정체야 어쨌든 중요한 건 화보를 감상하는 것이다.

“씨발 이 우월한 몸매봐라. 된장들은 다 별로군.”

“슴부격차가 너무 심하다.”

병사들이 에이라의 몸매를 드러낸 사진을 보면서 탄식처럼 말했다.

한국 여자들은 보통 A컵을 넘기지 못한다. 안타까운 유전적 한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맥심의 모델은 눈으로 간단히 측정해 봐도 D컵은 넘을 듯한 몸매이니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사회 나가면 이런 애 만날 수 있을까.”

“너희 집 재산 백억 이상이면 되겠지.”

그러나 이 부대 인원의 집안 재산을 다 모아도 백억은커녕 오십억에도 미칠까 말까 한다. 그냥 다들 서민이나 중산층 집안의 청년들일 뿐이었다.

“이런 여자를 여자친구로 두고 있는 놈은 행복하겠지.”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

“으으, 그놈은 전생에 지구를 구했을 거야.”

희망과 부러움과 시기를 꽁기꽁기 담아 그들을 투덜거렸다.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소발에 쥐잡기라고 어떻게 맞추기는 했다. 정확하게. 강민은 지구는 아니지만 세계를 구하는 와중에 에이리를 자기 여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내 슬픈 표정으로 그중 한 명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 생기겠지.”

“여자친구는 멸종한 환상속의 동물 아냐?”눈물 나는 대화였다.

***

후드를 뒤집어쓴 가냘픈 체구의 여인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책이 가득가득했고,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이 반짝이며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한참 같은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끄덕이던 여자가 펜을 멈췄다.

“후후후!”

그리고 기뻐 웃었다.

“다 됐다!”

후련한 외침이었다.

그녀는 바로 지난번 에이리와 보기로 누가 강민을 만나라 갈가 내기를 했던 마법사였다. 그녀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방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겨우 끝냈나.”

“또 왔군요.”

지금 들어온 남자를 보며 여자는 반갑지 않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들어온 남자 역시 에이리가 뽑기를 할 당시 탐관인으로 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여자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며칠이나 틀어박혀 나오질 않으니 나라도 와서 상황을 살펴 봐야지. 눈 좀 봐라. 쯧쯧 밑이 아주 시커먼데.”

“이건 아주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얼굴이 엉망이라는 말에 화가 난 듯이 여자가 외쳤다. 그건 인정한다는 듯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겠지. 쉬운 거면 전에 억울해 분해 하면서 에이리만 보내지도 않았을테고.”

“하지만 고생한 보람은 있었죠!”

여자가 다시 기쁜 표정을 회복하며 외쳤다.

남자는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쫓아 가야 해?”

“그럼 에이리 그것만 보내 놓고 나는 손가락만 빨고 있으란 거예요?!”

잔득 화난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여자는 말했다. 그녀가 분노하자 주변의 빛들이 펴와롭던 색에서 빨갛게 변하더니 주변에 이글거리는 열까지 뿜어내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 기세에 두려운 듯이 주춤 뒤로 물러나면서 말했다.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아직도 바쁘잖아?”

실제로 그렇다.

아직도 세계는 전후복구 사업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그러나 여자는 요지부동.

“마왕이 나온 것도 아니고! 악마가 기어 나온 것도 아니고! 용이 설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서류 업무잖아요! 그런건 알아서 하라고 해요. 여기까지 해 줬으면 됐지 어쩌라고! 밥상 차려줬더니 아예 더먹여 달라는 거 하고 대체 뭐가 달라요!”

“그래도 자네는 에이리하고는 업무 비중이 다른데...”

에이리는 전사였다.

행정업무하곤 친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는 다르다!

그녀는 세계에도 몇 없을 정도의 고급 두뇌! 무수한 작업에 그녀의 능력이 필요했고, 또한 슬모가 있었다.

“아, 거 시끄러우시네! 어쨌든 나는 갈 거예요!”

“뭐 자네가 간다는데 누가 뭐랄 수 있을까마는. 거, 존하고 루크는 좀 있으면 죽을지도 몰라.”

남자는 혀를 차며 말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과연 위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고집불통처럼 굴던 여자가 움찔 표정을 바꾸었으니까.

“왜요?”

“과로로.”

“아니 뭘 했다고...”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자 남자 용은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몰라?”

여자는 아무 말도 못했다.

“안 그래도 마그누스가 빠진 공백을 메꾼다고 다들 잠도 못 자고 있는데.”

“으으으...”

역시 아무 말도 못 했다!

남자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뭐 말리진 않겠지만.”

“좋아요! 조금만 더 있다가 가겠어요!”

이를 갈면서 결국 여자가 양보했다.

“그래야지. 다들 기뻐할거야. 안 그러면 대마법사의 호칭에 값한다고 볼 수 없지!”

남자가 아주 기뻐하며 말했다. “휴우.”

여자는 안타깝게 한숨을 쉬었다. 조금 더 있다가 가야 할 것 같았다.

이곳은 다른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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