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괜찮아. 내가 강민 그 놈 정도는 아니라도 몸 안 상하게 때리는 방법은 잘 안다. 그리고 원래 깡패새기들이라는게 인간성이 쓰레기라서 약속 같은 거 귓등으로도 안 들어. 그저 두들겨 패고 또 패서 개새끼 길들이듯 길들이는게 최고지.”
재철의 하는 말에 수구와 만수가 혀를 내둘렀다.
“우와 무시무시한 소릴...”
“자긴 깡패 아니었던 것처럼 말하네.”
자기는 깡패 아니었던 것처럼 말한다는 지적에 재철은 찔린 듯이 얼굴 표정을 일그러뜨리고는 둘에게 항변했다.
“어허. 무슨 소리! 내가 깡패니. 더 잘 아는 거야.”
“그럴 듯 한데.”
호성은 피식 웃었다. 분명 재철은 일진이었으니까 깡패의 생리에 대해 잘 아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재철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일진에 대한 적절한 처방일 수 있다는 건 그럴 듯한 이야기다.
다음 호성은 쓰러져 벌벌 떨고 있는 추성길에게 다가가 물었다.
“후, 일단은 이 정도로 하지. 다시 물어봐.”
“야, 시키는 대로 잘 할거야?”
호성이 묻자 겁먹은 표정으로 추성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모습을 드러낼 당시의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네, 네... 하, 하겠습니다.”
호성은 고개를 돌려 다른 일진도 바라봤다.
“무, 물론입니다!”
그 역시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호성은 손을 털며 몸을 일으켰고 공터에 널브러져 있는 3학년들을 바라보며 무서운 얼굴로 으름장을 놓았다.
“거짓말이면 우리집 권력을 사용해서 너희 같은 쓰레기들은 싹 다 지워버린다. 얼굴도 전부 기록해 뒀으니 한국에서는 어디서도 도망 못 다닐 거란 거 기억해 두라고.”
“아, 알겠습니다.”
“네!”
삼학년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호성의 말에 복종했다. 그들에는 다른 선택은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
공터는 텅 비었다.
방금까지 강민단원들과 싸워 깨졌던 3학년들은 강민단원들의 하는 말에 철저히 복종할 것을 맹세하고 이곳을 떠났다.
남아 있는 것은 강민단원들 뿐이었다. 그들은 공터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바위에 앉아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재철이 속이 시원하단 얼굴로 말했다.
“끝났다.”
그랬다.
추성길을 물리치고 복종하겠단 맹세를 얻어냈다. 호성의 협박도 있었으니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학교를 완전히 강민단원이 장악하겠다는 방학 계획은 오늘로 성공한 것이다.
재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눴다.
“한 일주일 일찍 끝났나?”
“그쯤 될 거야.”
“처음 시작할 땐 언제 정리하나 싶었는데 결국 다 했군.”
“그러게. 진짜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는데.”
처음엔 정말 그랬다.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생각도 들었다. 강민이 제 힘을 사용해 어이없는 일을 시킨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정작 시작하고 보니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금방 다 처리할 수 있었다. 우스운 일일 수도 있지만 성취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재철은 감회어린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걸로 우리 학교에서는 셔틀이 사라지는 건가.”
“그렇겠지? 그래도 은따는 남을거야.”
왕따와 달리 은따는 그냥 모르는 척 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폭행을 하거나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서 발생해도 별 문제가 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몇 명의 주동자에 의해 반 전체가 선동되어 움직이는 경우도 있지만 자연발생적이라고 할까, 대상이 어떻게든 반 아이들에게 미움을 사서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거야 별 수 없겠지.”
“맞아. 사람이 모이면 그런 거야 당연한 거지.”
만수와 재철이 말했다. 호성이 동의해 고개를 끄덕였다.
“셔틀이 사라지는 것만 해도 굉장한 거지.”
“그렇긴 하지.”
셔틀이야 말로 진짜 일진이 있어야 만들어 지는 것이다. 주먹 센 놈이 호구 하나를 만들어서 부려먹는 거니까.
“사실 우리도 셔틀 많이 만들고 부려먹었는데 이런 일을 다 하네.”
“그러게.”
“상상도 못했던 일이긴 하지.”
재철이 문득 말했고 다른 단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고 나니 지금과 불과 얼마전까지 너무 차이가 나서 네 사람은 폭소를 터뜨렸다.
웃음이 어느 정도 진정된 다음 재철은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있는 남자의 이름을 신기한 듯이 거론했다.
“강민 그 새끼는 대체 뭐지?”
“물으면 우리는 알겠냐?”
“그러게.”
모두 어깨를 으쓱일 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강민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상상도 못한 힘을 가지고,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대체 어떻게 그런게 가능했을까?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근데 진짜 굉장한 놈인 건 맞아.”
“그런거야 너무 뻔하잖아.”
“강민이 바로 장갑맨인데 어련할까.”
대화의 종지부를 찧듯이 호성이 말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에 대한 놀라움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그가 장갑맨이라는 것이다. 본인은 별로 그런 식으로 알려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그와 상관없이 강민이 지닌바 힘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바로 그거였다.
“이번 이 싸움도 강민한테 배웠던게 아니면 절대로 못 이겼을 거야.”
재철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겠지.”
다들 동의했다.
삼학년과 싸워 이긴다.
말은 쉽지만 사실 쉽지 않다. 고등학생 시절 한 살 차이는 의외로 차이가 크다. 또한 상대들은 샌님처럼 공부만 하는 삼학년이다 아니다.
모두 일진이랍시고 나름 주먹깨나 쓰던 자들이었다.
그걸 오늘 거의 4대1로 싸워 모조리 깨부셨다. 강민에게서 받았던 그 고통스럽지만 효과는 분명한 훈련 덕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재철이 비록 대단히 싸움을 잘 하고 호성도 일가견이 있다곤 해도 게임이나 만화도 아니고 사방에서 네 사람이 덤비는걸 상대로 이겨내는 건 불가능하다.
키득 웃으며 만수가 말했다.
“어디 무협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기연이라도 얻었나.”
“그럴지도 모르지.”
너스레를 떨며 재철이 말했다. 확실히 정말 그런 일이라도 있었던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민의 변화는 급작스러웠다.
재철은 이어서 말했다.
“강민이 뭐 어째서 저렇게 잘난 놈이 됐든,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
의외라는 듯 호성은 물었다. 단순하게 보면 재철은 지금 과거 누리던 대부분의 영광을 빼앗긴 체 노예와 같은 부림을 당하고 있다.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었다.
재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성 너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진짜야.”
“왜? 나보다 니가 더 괴롭지 않아? 싫은 봉사활동에 공부에 매일매일 지금도 계속해야 하잖아.”
“그건 내가 옛날에 저지른 일이 있으니까 해야지. 한 짓 생각하면 솔직히 아직 부족하다 싶기도 하고.”
재철은 창피한 듯이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경악한 표정으로 굳었다. 그리고 수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재철에게 다가가더니 이마에 손을 대었다.
“열이 있나.”
“갑자기 안 하던 소리를 하네.”
만수도
“이것들이 분위기 좋은데 깨고 있어!”
친구들의 반응에 창피해진 재철이 당황하며 수구의 손을 이마에서 떼내며 역정을 냈다. 그런 반응이 도리어 재밌었던 듯 다른 단원들은 낄낄대며 웃었다.
“흠흠.”
재철은 헛기침해서 분위기를 바꾸고는 설명을 이었다.
“어쨌든 강민한테 얻어맞고 이렇게 지내고 있는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옛날에는 진짜 인생 막 살았는데 요즘 고생하는 게 오히려 옛날보다 더 재밌는 거 같고.”
재철은 스스로 말하고도 신기하다 여겨졌지만 실제 그랬다.
옛날 막살때는 뭘 해도 잠시 즐거울 뿐 줄곧 불안하고 허무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사라졌다.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도 들고.
의외로 만수와 수구 역시 재철의 생각에 동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다 보니 이것도 나름 할만한 것 같아.”
“재밌는진 모르겠는데 보람은 있지. 세지는 것도 느껴지고.”
세 사람은 그렇게 의견을 일치시켰고, 재철은 호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니가 제일 불쌍하지.”
“그렇지.”
“없는 거 없이 다 있는데 이런 꼴이니까.”
수구와 만수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냥 외부에서 바라본다면 그럴 것이다.
강민에 의해 행동이 구속되었다지만 다른 세 사람은 강해지기도 했고, 잘 해 봐야 짜장 셔틀이나 되었을 인생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호성은 비록 악당이었으나 미남에 돈도 많고, 머리도 좋아서 부족한게 없었다. 강민에 의해 얻을 게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세 사람의 하는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호성이 반발했다.
“무슨 개소리야. 나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
“나는 뭐든 다 가지고 있는 입장이라서 오히려 지루해. 강민처럼 특수한 체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중요하지.”
호성은 거만하게 말했다.
그말을 들은 세 사람의 표정이 팍 일그러지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잘난 척은!”
“사실이라서 더 까고 싶다!”
네 사람은 그 자리에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강민단이 진행한 계획이 중 하나가 완료된 밤. 그날 강민단의 결속은 조금 단단하게 다져졌다. 강민도 모르는 사이에.
***
“어디보자.”
호성은 자신의 방에서 통장을 펼쳤다.
몇 차례의 거리가 된 그 통장에는 632,210,000이라는 숫자가 출금가능액란에 휘황찬란하게 찍혀 있었다.
‘6억을 좀 넘기네.’
그것은 호성이 강민에게 받은 돈에다 금을 처분해 얻은 돈을 넣어 만든 통장이었다.
평범한 통장은 아니었다!
이왕에 통장을 만든다면 이자도 주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CMA통장에 만들어 넣었다. CMA! 매일 이자를 넣어주는 훌륭한 통장!
덕분에 현금을 많이 넣어둔 이 통장은 매일매일 들어오는 이자만도 6만원에 달했다. 일억당 만원 꼴.
고등학생이니 그것만 해도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이자만 가지고도 운영비는 충당하겠군.’
기지도 있다.
인원도 있다.
돈도 있다.
어느날 갑자기 시작한 강민단이란 정체불명의 단체가 점차 실체를 감추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 구성원 중 하나 된 입장에서 뿌듯한 느낌도 들었다.
삼국지에서 세력을 형성해 천하를 정벌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 아닐지!
호성은 그런 생각도 해 봤다.
이어 그는 즐거운 기분으로 큰 돈이 든 통장을 접어 품에 넣었다. 다음에 강민을 만나면 이걸 전해줄 생각이다. 오늘은 이것도 있고, 달리 할 일이 있어 강민에게 부탁해 기지에 가는걸 하루 빼먹었다.
호성은 자신의 방에서 나왔고, 집을 빠져 나가 마당에 들어섰다.
마당의 커다란 나무가 만드는 그늘 아래 탁자에 앉아 있는 경호대장이 보였다. 호성은 얼른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저씨.”
“도련님. 무슨 일이신지?”
쉬고 있던 그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실은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요.”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