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강민의 부모님이라고 다를 리가 없다. 강민이 재능이 있단 말을 듣자 이전까지의 약간은 시큰둥했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서 김경길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경길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노래, 아니 스타가 되기 위한 재능입니다.”
“스타라면 연예인 말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정말 굉장한 재능입니다.”
김경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의 어머니가 호기심을 느끼고 물었다.
“그런걸 어떻게 아시는 거죠?”
“이걸 좀 봐 주십시오.”
김경길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강민의 부모님에게 내밀었다.
“응?”
강민의 부모님의 표정이 변했다.
스마트폰의 액정에서 출력되고 있는 동영상에는 강민이 나와 있었다. 어딘가 콘서트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같았다.
“얼마전 콘서트 때 우연히 찍은 겁니다.”
“강민이가...”
“허어...”
김경길은 이어서 이어폰을 연결한 다음 두 사람에게 넘겼다. 강민의 부모님은 각자 한 쪽식 귀에 꽂았다.
김경길은 죽였던 볼륨을 켰다. 강민의 부모님은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즉각 두 사람의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김경길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노래가 끝나길 기다렸다. 곧 노래가 끝났고, 강민의 부모님은 얼떨떨한 얼굴로 이어폰을 뺐다.
김경길은 폰과 이어폰을 받아 품으로 회수하며 소감을 물었다.
“어떻습니까? 굉장하지 않습니까?”
강민의 부모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 필요도 없었다.
굉장했다. 강민에게 이런 재능이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정말 엄청난 재능이었다. 알아볼 눈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강민의 어머니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으시단건지...”
“제게 아드님을 맡겨 주십시오.”
열의에 가득찬 얼굴로 김경길이 장담했다. 강민의 부모님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곤혹스런 표정을 했다.
“한국, 아니 전세계를 떨쳐 울리는 스타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으음.”
“여보.”
강민의 어머니가 남편에게 얼른 뭔가 말해보라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강민의 아버지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투로 입을 다물었다.
“흠...”
“저는 반대예요.”
답답했던 듯 강민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님?”
김경일이 곤혹스런 얼굴을 했다.
강민의 어머니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스타 같은 거 한때뿐이지 않나요? 성공 가능성도 작다고 하고. 강민이 정도면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 의예과도 노려볼 수 있을 텐데 굳이 이런 확실하지도 않은 길을 가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러긴 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석해 보겠다고 몰리는 인원이 백만이 넘는 나라!
그만큼 청년이 살아가기 힘든 기형적인 나라라는 의미!
그래서 화려하고 손쉬워 보이는 아이돌에 목매는 어린 아이들이 한국에는 부지기수다! 한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아이돌 지망생이 바글바글한데 이름이라도 보는 사람들에게 익히게 하는 인원의 숫자는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인간 로또!
더구나 연예인은 스포츠 스타나 마찬가지로 승자독식이 다 이뤄지기 때문에 제대로 성공하지 않으면 영양실조와 친구로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강민군을 그런 지망생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강민군은 최고입니다. 틀림없이 성공할 겁니다. 그리고 성공하면 의사 정도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명성과 부를 누릴 수 있습니다!”
김경길은 반발해서 자신있게 외쳤다.
그러나 부모니 걱정은 그런 말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할지 안 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스타가 되려다가 포기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아이들 이야기는 자주 들리는데. 또 스타가 되고서도 자살을 하지 않나...”
강민의 어머니는 불안한 듯 한숨을 쉬었다.
딴에 그렇긴 했다.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나 생활고 소식 같은게 최근에 무척 많았다. 여자는 성접대를 하나다가 못 견디고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강민의 어머니가 그런 불안한 진로에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김경길은 자신의 가슴팍을 탕탕 쳤다.
“그런 점에서 저희 기획사에서 다 뒷받침 할 수 있습니다. 안심하세요!”
“그래도...”
천하의 RK가 보증한 다 해도 역시 석연치 않아 하는 강민 어머니의 태도에 답답해 하며 김경길의 강민의 아버지에게 구원요청을 보냈다.
“아버님, 어머님을 좀 설득 좀 해 주세요.”
“으음...”
여전히 강민의 아버지는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을 결정한 듯 그는 아내를 보고 입을 열엇다.
“그런건 당신이 결정한 문제는 아니지.”
“여보, 그럼...”
걱정스런 표정이 되어 강민의 어머니는 남편을 바라봤고, 반대로 김경길은 기뻐 환하게 웃는 얼굴로 외쳤다.
“아버님!”
“아아, 성급하게 굴지 말고.”
두 사람의 걱정하고 기뻐하는 눈빛을 동시에 받으며 강민의 아버지는 서둘러 뒷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냥 이건 어디까지나 강민이가 선택할 문제라 보는 것 뿐이야.”
“그러면...”
“강민에게 직접 얘기해 보시오.”
자신을 바라보는 김경길에게 강민의 아버지는 그리 말했다.
이어서 그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당신도. 함부로 애 장래를 결정하려 하지 말고. 얼마든지 여러가지 할 수 있는 애한테 왜 굳이 그런걸 강요 하려 해. 여기까지 잘 한 것만 해도 얼마나 장한데.”
“그래도...”
남편의 말이 옳다는 것은 알지만 부모로서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겟느냐는 뜻이 담긴 표정으로 강민의 어머니는 남편을 바라봤다.
그러나 강민의 아버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장사가 안 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뜻하는 대로 뒷받침을 해 줘야지. 우리 뜻 대로 애를 만들려 해선 쓰나.”
“그건 그렇네요.”
결국 납득한 듯 아쉬움에 한숨을 쉬면서도 강민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경길은 일단 대화가 여기서 끝났구나 생각하면서 확인차 물었다.
“그럼 제가 직접 만나서 강민 군을 설득하는 것은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오.”
강민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김경길은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 생각하고선 자신감에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을 향해 맹세하듯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드님을 꼭 전세계가 감탄하는 스타로 만들겠습니다!”
“아니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고...”
강민의 아버지는 여전히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으로 손을 내저었다.
***
밤에 소파에 앉아 쉬고 있던 강민에게 카톡이 왔다.
강민은 누군가 하고 폰을 들어 확인했다.
-안녕.
뷰티걸의 멤버로 맹활역 중인 수란이었다.
-오. 수란. 반갑네.
-정말 반가운 거 맞아?
빠진 답이 돌아왔다.
강민은 살짝 찔렸다. 그간 일이 바빠서 수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얼른 변명을 생각해 내서 답을 보냈다.
-하하. 네가 바쁜걸 아는데 내가 어디 함부로 연락할 수 있겠어.
-뭐야 그게. 그런거 신경쓰지 마. 사실 그런 연락은 바쁘면 더 그리워 진다구.
투덜거리면서도 아쉬워 하는 답이 돌아왔다.
의외인 답이기도 해서 강민은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그래?
-그럼. 사무적이고 딱딱한 일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데. 높은 사람들 만나면 웃는 얼굴이지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있어야 할 때도 많고.
푸념이 쭉 이어졌다.
강민이 한 마디를 적어 보냈다.
-그래도 친구들 있잖아.
-그렇긴 해. 팀원들 아니면 이 일 계속 못했을 거 같아. 하지만 항상 같이 지내고 친구이기도 하지만 직장 동료잖아. 학교 친구하곤 느낌이 다르니까.
강민은 그 대답을 듣고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사실 직장동료이자 친구라 할 만한 사람들은 강민도 여럿 가지고 있었지만 수란이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은 받지 못했다.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강민과 친구들은 서로에게 서로의 목숨을 의탁해 영웅적인 위업을 이루었으니까. 말하자면 전우가. 하지만 아이돌 그룹 내의 멤버들은 그런 식의 친분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 같이 활약해서 인기를 얻어야 하긴 하지만 그 인기를 팀원들끼리 경쟁하면서 나눠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미묘한 경쟁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강민은 모르는 척 답했다.
-그래서 내가 대표 학교 친구로 꼽힌 거네? 야, 영광인데.
-영광인 거 알면 자주 연락 좀 해.
투덜거리는 답이 돌아오니 강민은 일단 사과했다.
-하하, 미안. 사실 요즘엔 나도 좀 바빠서.
-방학인데 뭐 해?
바쁘다는 말에 호기심을 느낀 듯 수란이 물었다.
-그렇지 뭐. 방학이니까 할 일이 더 많아진 것 같달까.
-재밌겠다.
아쉬운 듯한 답.
수란은 잃어버린 학창 생활에 약한 향수를 느끼는 것 같았다. 강민은 그녀를 응원해 줘야 하겠다 생각하며 얼른 말했다.
-니가 하는 일이 더 재밌겠지. 이번에도 음원차트 1위 했더라?
뷰티걸의 이번 신곡은 성적이 무척 좋아서 여러주 1위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거리를 돌아다니면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유명 그룹의 신작과 경쟁이 없었던 덕분도 있긴 하겠지만 노래 자체도 좋고 그룹의 이미지도 많이 좋아진 덕분이었다.
강민이 그런 문자를 보내자 기분이 좋은 듯한 답이 돌아왔다.
-헤헤 그래서 요즘 힘내고 있긴 해.
-그래. 앞으로도 열심히 해. 응원하고 있어.
강민은 그렇게 문자를 보냈다.
수란은 그 문자를 받고 아쉬운 듯이 찌푸린 얼굴을 했다. 사실 오늘 굳이 강민에게 그녀가 문자를 보낸 것은 꼭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한데 그 이야기는 아무래도 나올 기미가 없었다.
수란이 알기에 오늘 사장님이 강민을 꼬드기러 간 걸로 알고 있는데 전혀 강민과의 이야기에서는 그런 기색이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진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쉽지만 좀 더 기다려 봐야 하겠다 생각하면서 수란은 다른 화젯거리를 찾았다.
금세 떠오르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아 맞다. 그런데 장갑맨 사건 이번에 터진거 또 봤어?
-물론 봤지. 굉장하던데.
장갑맨 사건은 새로운 센세이션이 되어 무수한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고 있었다. 심지어 장갑맨 때문에 죽을 뻔 했던 소녀 자체는 상대적으로 훨씬 덜 관심을 받을 정도!
무수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장갑맨에 대한 열광이 넘쳐 흘렀고 그에 대한 찬사와 농담이 줄을 이었다.
벌써 척노리스 시리즈를 패러디한 장갑맨의 비밀 같은 이야기가 나타나 있을 지경이었다.
이건 어느 정도 외국에서도 알려져서 외국의 대형 사이트 4chan 이나 2ch 같은 곳에는 장갑맨의 동영상을 올려놓고 누가누가 더 세냐는 대결 토론으로 밤을 지세우는 잉여들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응. 벌써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충무로에선 군침 흘리는 사람들이 있데.
수란이 말했다.
실제로 그녀가 말한 대로 벌써 한국 충무로에는 영화 소재로서 장갑맨에 탐을 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강민도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영화같은 이야기긴 하지만 장갑맨을 전혀 모르는데 어쩌려고.
-그거야 뭐 작가가 각색하겠지. 그리고 겨우 소문 도는 정도잖아. 어떻게든 그 전엔 알아내서 짜보겠다 이런거 아니겠어?
-그럴수도 있겠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장갑맨의 진짜 정체는 자기자신.
정체를 드러낼 일이 있을린 없으니 앞으로 장갑맨이란 특이한 캐릭터가 한국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소비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사실 기대도 됐다.
어쩌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캐릭터 상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다른 캐릭터들은 만들어진 세계의 만들어진 가상이지만 장갑맨은 진짜 존재하는 것이니 만큼 그럴 가능성도 다분했다.
-그런데 정말 장갑맨 정체는 뭘까?
문득 수란이 물었다.
-글쎄?
강민은 능청스레 말했다.
-군대의 비밀 군인이나 뭐 초능력자 같은 거 아닐까? 아니면 외계인의 비밀개조 수술을 받았다던가!
수란이 흥미진진한 듯 말했다.
-하하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