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해져서 놀러왔다-62화 (62/227)

62화

에이리는 계속 흘겨봤다.

“하하...”

에이리의 흘겨보는 시선이 그치질 않아서 강민은 주책없이 웃던 것을 멈추고 나름대로 자기변호를 했다.

“흠흠, 뭐 그런 복잡하고 피곤한 사회에 나같은 예외적인 존재가 있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그런건 본인이 얘기하면 그냥 변명이지.”

에이리가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곡이었다.

강민이 곤혹스런 표정을 짓다가 말을 이었다.

“쳇. 너도 지내보면 알 거야. 이유는 있다고 해도 시민의 눈으로 보자면 지금 법률은 너무 물러터졌단 말야.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보호하는 수준이니까. 사람을 고문하고 죽인 연쇄살인마라고 해도 사형을 안 시키는 데다 편안하게 수감했다가 안에서 늙어 죽게 한다고. 당한 사람만 불쌍한 거지. 강간만 해도 그래. 어린애들을 강간한 개새끼들도 가둔지 3년이면 기어나와서 다른 애들을 강간한다고.”

“그건 물러터진 수준이 아니잖아. 당연히 죽여야지. 안 죽이더라도 성기를 잘라 저잣거리에 매달아 놓는 정도는 해야지. 가둬 놓는다니. 그런게 벌이 되기는 해?”

화가 난 어조로 에이리가 말했다.

특히 아동 강간에 대해 3년 갇혀 있다 나온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에이리가 아는 한 어떤 나라에서도 그걸 3년 감옥에 갇히는 것 따위로 처리하지 않는다. 전부 사형이 기본이다. 얼마나 잔인하게 죽이는가가 관건이지 죽이는 것에선 다 일치했다.

강민도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엇다.

“안 되지. 그러니까 강간마 새끼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말야. 하다못해 화학적 거세라도 얼른 해야 될 텐데 이것도 조건이 까다로운데다 비싸고...”

화학적 거세는 비싸고 조건도 까다롭다.

일단 처음 강간해서 들어온 놈은 화학적 거세를 할 수가 없다. 재범인 경우 악질이다 싶으면 한다. 그런데 이게 꽤 비싸서 일년에 500만원쯤 든다.

똥 만드는 기계보다 못한 강간범 놈들을 관리하는데만 최소 500만원이나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성기절단보다도 좋다고 하니 그걸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쯧쯧쯧.”

말세가 여기 있구나 하는 표정으로 에이리는 혀를 찼다.

“그러니 나 같은 예외적인 존재가 필요하단 말을 이해하겠지.”

“뭐... 조금은.”

에이리도 이런 세계에서 살며 스트레스가 쌓여 누가 나서서 그런 놈들 좀 때려 죽이라고 기도하게 될 것 같았다.

아니 직접 나설지도!

그게 에이리의 성품에 딱 들어맞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인터넷 들어가면 나를 영웅으로 숭배하는 무리가 천만은 될 거다.”

강민은 뻐겼다.

무슨 황당한 소리 하냐는 표정으로 에이리가 강민을 바라봤다.

“신흥 종교라도 만든 거야?”

하지만 에이리에겐 먹히지 않았다. 그녀는 인터넷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강민이 지금 말하는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건 아닌데... 뭐 너도 인터넷을 비롯해서 한국 문화에 대해 이해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한지 이해하게 될 거야.”

“흐음. 뭐 그럼 그렇게 알아둘게.”

굳이 억지로 이해하려 들지 않고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하루 이틀 여기 머물 것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에이리는 TV를 보면서 이어 물었다.

“그런데 네가 구한게 저기 나왔던 이지연이란 여자애지?”

“응.”

“저대로 괜찮아?”

에이리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강민은 에이리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쉽사리 이해할 수 있었다.

“위험할 거 같아?”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말한 대로면 꽤 위험해 보이는데. 여기 경찰에게 보호를 맡긴 거야?”

오십억을 들여 청부살인 하려고 했다 한다.

강간을 일을 저지르려던 놈들이 멋대로 한 것에 불과하다. 사건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청부살인이었다.

그렇다면 이 정도로는 일이 끝날리 없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강민은 그녀의 생각해 동의하며 말했다.

“그것도 있지만 보험도 들어뒀어.”

“보험?”

강민은 웃으며 답했다.

“매직 페이퍼를 한 장 줬거든.”

“여기서 마법 사용했어?”

에이리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마나가 너무 적어서 여기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페이퍼 정도는 만들 수 있어. 충전에 시간이 걸리지만.”

“그럼 실드를 준 거야?”

몸을 지킬만한 간편한 마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실드 정도였다. 강민이 손수건에 그려 준 마법은 에이리의 생각대로 실드였다.

“그래. 한 번 정도는 몸을 지킬 수 있을거야.”

“지속 시간이 긴 편이니 괜찮겠군.”

실드는 한번 발동되면 15분 정도 지속된다. 위험을 피해 도망쳐 도움을 구하기엔 충분했다. 대화를 거기서 마치고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일어나자.”

“기지에 갈 거야?”

에이리가 물었다.

강민은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저것도 처리해야 하고.”

강민이 가리킨 것은 그가 어제 각퀴를 털어 얻은 돈과 금을 넣어두었던 가방이었다.

*

강민과 에이리가 기지로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강민단원들이 열렬히 환영했다.

“강민!”

“왔구나!”

영웅의 귀환을 환영하는 듯한 기세였다.

강민은 사정을 짐작하고 거만하게 웃었다.

“뉴스 벌써 봤구나?”

“그럼! 또 한 건 했던데!”

재철이 말했다.

“최고야!”

강석도 존경의 눈으로 강민을 봤다.

“인터넷은 벌써 난리다! 팬클럽 숫자만 백개는 되는 거 같아.”

수구가 감탄하며 말했다.

“맨날 싸우기 바쁜 포탈 댓글도 오늘은 웬일인지 천하통일 됐더라. 깡패새끼들 고자 만들었다는 말엔 축제던데!”

호성도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강민도 놀랐다. 한국 포탈 사이트의 댓글란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싸움판. 적이 없는 콜로세움! 뭔 놈의 쌈거리가 그리 많은지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어 죽이지 못해 한이 맺힌 키보드 워리어들의 전장이다.

그들이 한 가지 주제로 통일된 의견을 내어 놓는다는 것은 일본과 한국이 사이좋게 될 가능성 만큼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강민의 한 일에는 그들조차 한 목소리가 되어 찬양을 했다.

“그래. 내가 고자라니 만플 달기 운동이 한창이더라.”

고개를 끄덕이며 만수가 이어서 말했다.

내가 고자라니는 한국의 대형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관용어 같은 것이다.

야인시대 심영의 처절한 모습이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 듯 이후 ‘의사양반’과 함께 세트로 크게 유행했다. 이제는 안터넷에 정착하다시피한 표현이 되었다.

흔히 고자라 불리고, 성기능 부전과 관련된 이야기나 기사 같은걸 보면 그 밑에 ‘내가 고자라니!’ 하고 달곤 했다.

“다들 기뻐해 주니 나도 기분이 좋군.”

강민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유쾌하게 웃었다.

호성을 비롯한 강민단원들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강민에게 요청했다.

“좀 더 자세히 얘기 해 봐. 어떻게 된 거야?”

“자자, 애기 나중에 해 줄 테니까 진정하라고. 그보다 호성, 너 나 좀 보자.”

강민은 먹이를 바라는 새끼 새처럼 주변에 몰려 기대 어린 눈동자를 반작이는 단원들을 진정시키며 호성을 불렀다.

“응.”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가는 일이 있었다.

***

방에 따로 들어가자마자 호성은 강민에게 물었다.

“그거 때문이야?”

‘그거’가 무얼 의미하는진 뻔했다.

“그래.”

강민은 가방을 벗어 땅바닥에 내려놓았고, 지퍼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호성에게 공개했다. 오만원짜리 지폐 뭉치 수십개와 반짝반짝 빛나는 황홀한 금괴까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눈이 돌아가고도 남음이 있음 직한 돈이었다.

“이번에도 처분 부탁한다.”

“와, 이거 지난번 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호성이 감탄하며 말했다.

강민도 동의했다. 무게만 해도 이쪽이 약간 더 나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몇 명의 고혈을 빨아 이런게 재산을 쌓아 올렸을지. 쯧쯧쯧.”

“그렇겠지?”

호성도 찌푸린 얼굴도 강민의 말에 동의했다.

그걸 보면서 강민은 올챙이 개구리적 생각 못한다는 말을 떠 올렸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자시를 비록 애들 괴롭혀서 깡패 대장 노릇 하던 놈이 지금은 적의 사자 노릇 하고 있으니 자기가 그렇게 만들었지만, 깜짝깜짝 놀랄 지경이다.

강민은 이어 지시했다.

“이번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계좌를 만들어서 거기 다 넣어 줘.”

“지난번처럼 안 보내고?”

의외라는 얼굴로 호성이 물었다.

그는 강민이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사정이 어려운 고아원 같은 곳에 돈을 보내리라 생각했다. 물론 강민은 이번 역시 홀라당 돈을 다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것도 할 건데 일단 조용해진 다음에 하려고. 그리고 우리 운영비도 있어야지. 기지 월세만 해도 꽤 나가잖아?”

“운영비...”

운영비란 말을 듣고 호성이 감탄한 얼굴이 됐다.

강민이 의아해 물었다.

“왜?”

“좀 멋진 거 같아서.”

호성이 머쓱하게 답했다.

강민도 그런 호성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소녀는 어렸을 적 비밀기지를 꿈꾼다! 그리고 실제로 만드는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꿈은 유지되지 못한다. 비밀기지 자체에 대해 회의하기도 하고, 비밀기지는 가지고 싶지만 성장에 따라 비밀기지 자체에 대한 눈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민은 그 꿈을 이렇게 현실로 만들고 있다. 악을 두들겨 패는 얼굴 가린 영웅이란 것과 함께. 그 동료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강민이 그 마음을 이해하며 어깨를 툭툭 쳤다.

“후후, 너도 그렇고 재철도 그렇고 시간이 지나서 내 수족으로서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제대로 활약하게 해 주마. 기대하라고.”

“응.”

정말 큰 기대가 어린 얼굴로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고 복면을 쓰고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을 두들겨 패는 영웅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면 온 몸이 기쁨에 떨릴 지경이다.

“그리고 또 부탁할 게 있는데...”

“뭐든 말해!”

“에이리의 신분을 구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어?”

“신분을?”

“그래. 사정은 뭐... 복잡하니까 나중에 기회되면 설명할게. 에이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부을 구하기 어려운 입장이야. 돈은 좀 들어도 괜찮으니까 한국에서 활동하기 편리한 귀화 한국인 신분을 구해 주고 싶어.”

약간 곤혹스러워 하는 강민의설명을 들으며 호성은 고개를 그덕엿다.

사실 에이리를 처음 봤을 때부터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느꼈다. 우즈벡 출신이라 하긴 했지만 그것도 어딘가 믿어지지 않았고. 무언가 다른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강민의 갑작스러운 변화 자체가 신기 그 자체다.

에이리는 강민의 그 변화에 연결되어 있는 비밀인 것 같았다.

“일단 알아볼게.”

어쨌건 에이리에게 신분을 마련해 주는 일은 경비 대장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혹시 수가 있을지도 몰랐다.

“고마워.”

강민은 웃으며 사의를 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