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민은 이제 순순히 그가 답할 거라는 것을 느끼고 조롱하는 태도로 물었다.
“착하구나. 그래서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그, 그건 위, 위에서 시켜서.”
“위라. 그 위가 누구지?”
“호, 홍동구.”
각귀는 두려운 듯이 말했다. 하지만 강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홍동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대답이 될리 없었다.
“홍동구가 누군데?”
“저, 전국구 조직의 간부입니다. 그자가 저 소녀를 죽이면 큰 돈을 준다고 해서 이런 일을 하게 됐습니다.”
“얼마나?”
“오, 오십억.”
강민은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오십억이라니.
강민은 인권에 대해 별로 이상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대다수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것이기도 했다.
오십억은 보통 사람 하나의 목숨값으로 치기엔 너무 비싸다. 그 반, 그 반의 반, 그 반의 반의 반을 위해서라도 사람을 기꺼이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지연은 가난한 집 딸이라고 한다. 그런 비싼 돈을 들여 죽이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예쁜 소녀라서 차라리 몸을 노리고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지경이다.
“그런 자가 왜 고등학생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소녀의 목숨을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해치려는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애원하는 표정으로 동정을 구하듯이 각귀는 말했다.
그러나 강민은 역겨움을 느꼈다.
“그래. 시키는 대로 강간하고 죽이려 했던 거겠지.”
그는 주먹을 휘둘렀다. 퍽 하고 얻어맞아 요란한 소리가 났다. 각퀴는 고통에 벌벌 떨며 옆으로 눕고 말았다.
“크악!”
버둥대는 각귀를 흘겨 본 다음 강민이 시선을 돌린 것은 한성질이었다. 그는 강민과 눈이 마주치자 두려움에 쩔쩔매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넌 그렇게 얻어터지고도 정신을 못 차리냐.”
“으으으으...”
강민은 그에게 다가가 자근자근 밟아대기 시작했다.
마치 정말 목숨을 끊어버릴 듯한 기세여서 옆에서 보는 이들은 심한 두려움을 느꼈다. 한성질 역시 죽을 듯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강민이 대리는 것을 멈출때 까지도 그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항상 그러하듯 특수한 방법으로 대려 고통만 준 것이다.
“쯧쯧. 내가 생각 같아선...”
발아래 벌벌 떠는 한성질을 보며 강민은 이를 갈았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의 모습에서 강한 살기를 느낀 한성질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강민은 고개를 흔들며 살기를 억제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지. 아오, 진짜. 그럴 수는 없지!”
죽이면 뒤가 피곤해질 수가 있었다.
지금 장갑맨에 대한 수사가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은 건 깡패를 상대로 한 폭행이라는 측면이 컸다. 사회적인 공분을 살만한 범죄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깡패들을 죽인다면, 비록 대상이 깡패라 해도 경찰 역시 총력을 기울일지도 몰랐다. 그러면 현대 경찰의 수사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강민의 입장상 아무리 조심했다 해도 단서를 남기고 가게 될지 몰랐다.
그런건 피해야 했다.
강민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겠다.”
그리고 발차기.
정확하게 한성질의 사타구니였다. 강민은 자신의 발 끝에서 각귀의 알을 터드렸을 때와 같은 감촉을 이때도 느꼈다.
“꺼으으으으...!”
한설질은 눈의 흰자위만 드러내고 비대한 몸을 벌벌 떨었다.
한성질을 고자로 만들어 두 번째 정의의 철퇴를 사타구니에 날린 강민이 몸을 돌려 이제 바라본 것은 남은 두 깡패였다.
복면 안쪽에서 음산하게 웃으며 강민은 말했다.
“니들은 뭐 예외일 거 같으냐?”
“히, 히익...”
“저, 저는 그냥...”
똥뱃살과 모댓포로 여기 온 깡패들은 공포에 떨며 자비를 구걸했다.
하지만 강민은 오래도록 피에 절은 생활을 하면서 자비를 무척 아기게 됐다. 그는 이 세상엔 정말 죽는게 나은 인간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역시 죽일 순 없었다.
“이 강간범 새끼!”
강민은 똥뱃살을 걷어찼다.
케엑!”
또 터졌다.
강민은 이어 무댓포를 걷어찼다.
“터져라!”
“키에엑!”
속이 시원하게 터졌다. 이렇게 남자 넷을 순식간에 고자로 만든 강민은 만족감에 상쾌하게 웃었다.
“후, 그나마 속이 시원하군.”
이어 강민은 이지연을 돌아봤다. 그녀는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강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죽여버리고 싶은 자들이라지만 강민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자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생각이었다.
강민은 이어 그녀에게도 권했다.
“어떻습니까? 이 놈들 원하는 만큼 두들 겨 패 보지 않으실래요?”
“아, 아니 저는...”
평범한 여지 고등학생이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하, 그냥 농담입니다.”
이지연은 속으로 해괴한 농담을 다 한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폰 가지고 계시죠?”
“네...”
“그거 좀 줘 보시겠어요?”
“네.”
이지연은 강민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맸다.
“감사합니다.”
강민은 그걸 받아서는 뒷패널을 열고 안에 설치해 뒀던 도청기와 위치추적기를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걸보고 이지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앗...”
강민은 스마트폰을 이지연에게 돌려주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설치해 둔 거였습니다. 항상 곁에 있을 순 없었거든요. 혹시 불쾌하시다면 지금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강민이 설치한 거였다면 다행이었다. 그녀는 이 깡패들이 자신의 휴대폰에 이상한 장치를 해 둔 걸로 생각했다.
“아, 아니요. 저를 도우려 하신 거였으니까...”
하지만 강민이 했다 해도 기괴한 일이었다. 대체 언제 휴대폰에 저런걸 설치해 놓을 수 있었을까?
“이해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강민은 각귀의 근처로 갔고 이지연에게 부탁했다.
“자, 그러면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해 주세요.”
“촬영요?”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죽이고 싶지만 그럴 순 없으니... 경찰의 힘을 빌려야 할 테고, 경찰에게 보여줄 게 있는 쪽이 더 확실할 테니까요.”
“네.”
이지연은 강민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지연 역시 경찰을 만나야 한다면 일일이 어려운 설명을 하느니 이런 자료를 동영상으로 찍어 두는게 편할 것 같았다.
이지연이 근처에 앉아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강민이 각귀의 머리를 들어올리며 재신문을 했다.
“자, 그러면 다시 지금까지 나눴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해보도록 할까? 보기 싫은 장면은 촬영하고 싶지 않고 너도 그건 매우 괴로울 테니 순순히 응하는게 좋아.”
“으으...”
각귀는 온 몸을 벌벌 떨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강민은 진력이 다 빠진 표정을 각귀에게서 시선을 돌려 이지연을 바라봤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고 열심히 촬영에 열중하고 있었다.
“끝났습니다.”
“그, 그래요?”
활영을 끝내며 이지연이 물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에 가서 신고하실 때 거기 촬영된 것과 함께 이야기 하세요. 훨씬 편해질 겁니다.”
“네...”
아직 사건의 충격이 다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이지연은 보였다. 강민은 걱정이 되어 엄격하게 말했다.
“절대로 경찰에 가는걸 피하면 안 됩니다. 아직 이번 일은 끝난게 아닙니다. 또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저는 이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피하면 이 놈들은 다시 찾아올 겁니다.”
“아, 알겠어요.”
다시 찾아온다는 말에 이지연은 표정이 파랗게 변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연은 내심 가능하면 경찰을 보지 않고 이번 일을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긴 했다.
“네. 혹시 무서워 경찰에 가는걸 꺼릴 까봐 한 이야기입니다. 꼭 가도록 하세요. 하지만 저에 대해선 최대한 이야기 하는걸 피해 주세요.”
“피해요?”
의아해서 이지연은 물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하기 위해서였다곤 해도 사람 넷을 저런 꼴로 만들었고, 또 이전에도 한 둘을 박살을 낸 게 아니니까요. 저에 대해서도 경찰은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겁니다.”
이지연은 그럴 법 하다고 생각했다.
네 명의 깡패는 죽여 버려 마땅한 놈들이라 생각은 돼도 이제 저들은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할 것이다. 경찰에서 그냥 있을 리는 없었다.
“네.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요. 꼭.”
이지연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든든합니다.”
강민은 사의를 표했다. 어차피 이지연이 강민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 것도 아닌 만큼 그녀가 입을 다물던 열던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얻을 수 있는 도움은 얻어 두는 것이 좋을 테니까.
강민은 다음 순간 무언가 기억난 듯이 품을 뒤졌다. 곧 그의 장갑낀 손이 무언가를 쥐고 빠져나왔다.
강민은 그걸 이지연에게 내밀었다.
“아참, 그리고 이걸 드리겠습니다.”
“뭔가요?”
조심스레 받으며 이지연이 물었다. 그것은 그냥 보기엔 손수건으로 보였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표면에 직접 그린 것으로 보이는 이상한 그림이 있다는 거였다.
그것은 만화나 게임에서 보곤 하는 마법진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었다.
“부적입니다.”
“부적이요?”
되묻는 이지연에게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손수건의 정체는 강민이 지금 말한 대로 부적이었다.
이지연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마법이 설치된 것으로 한 번 정도는 치명적인 공격에서 그녀의 몸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절대 몸에서 떼놓지 말고 꼭 가지고 다니세요. 이게 한 번은 지연 양을 위험에서 구해 줄 겁니다. 물론 그런 일이 없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니 말이죠.”
강민이 이런 호의를 보이는 것은 이번 일이 생각보다 큰 힘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십억이나 들여 소녀를 죽이려는 놈들이 있는데 어쩌면 이들은 경찰에 저 깡패들이 들어가도 이지연을 죽이는 걸 포기하려 들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네.”
“그리고... 만일 저 부적의 힘을 사용하게 되면 그때는 제게 다시 연락을 주세요.”
강민은 심각하게 말했다.
부적의 힘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은 누군가 그녀를 한 번 죽이는데 성공했다는 말과 같다 봐야 하니까. 그런 경우라면 경찰의 경비로는 이지연을 지킬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 말뜻은 이해했는지 겁먹은 얼굴로 이지연은 물었다.
“어, 어떻게 하면 되나요?”
“메일 주소 적어 드릴 테니 그쪽으로 연락 주세요.”
“네...”
그리고 강민은 품에서 메모지를 꺼내 메일 주소를 적어 내밀었다. 한국의 메일 주소는 아니었다. 한국 메일 주소는 개인정보를 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
이지연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또 이제 겨우 만났을 뿐인 상대를 철저히 신뢰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강민은 소중하게 자신이 적어준 메일 주소는 품에 넣는 이지연을 보고 이어서 말했다.
“아, 그리고 이놈들 신고하는 건 한 몇 시간 정도 기다려 주세요.”
“왜요?”
의아하게 이지연은 물었다.
“경찰한테 넘기기 전에 한 가지 할 게 있거든요.”
강민은 간단히 답하고는 각귀에게로 가 그의 턱을 발로 툭툭 쳤다.
“야.”
“으으...”
각귀는 두려운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너희 본부는 어디냐?”